바다를 품은 정원

오윤화展 / OHYUNHWA / 吳潤花 / painting   2016_0104 ▶ 2016_0228 / 주말,공휴일 휴관

오윤화_나의 정원 My garden_장지에 분채_112×145.5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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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16 이랜드문화재단 6기 공모展

주최,기획 / 이랜드문화재단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공휴일 휴관

이랜드 스페이스 E-LAND SPACE 서울 금천구 가산동 371-12번지 이랜드빌딩 Tel. +82.2.2029.9885 www.elandspace.co.kr

예술은 작가의 고유한 사고 영역에서부터 출발한다. 사고력은 성장배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타고난 천성에 덧입혀지는 외부의 환경은 성격의 형성과 본질적인 취향에도 영향을 미친다. 천성적인 기질은 외부의 요인에 대해 반응을 보이면서 인격의 골격을 세우게 된다. 결국, 이것은 인격의 구조를 이루어 독자적인 성품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작가의 성향은 작품의 색채를 결정 짓는다. 여기에서 작품의 색채라 함은 물질적인 요소로서의 색에서 벗어나 이상을 추구하는 길을 말한다. 이로써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주제나 예술 규칙은 작가의 정신을 구현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오윤화_붉은 정원 Red garden_장지에 분채_72.7×91cm_2015

그렇다면 오윤화는 어떤 정신으로 예술을 대응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예술은 흐르는 물의 최종 종착지인 깊은 바다가 품은 포용이나 수용과 같은 마음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작가는 현실의 상황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미 정해지고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긍정의 메시지를 인정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 긍정의 자세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에게 형성된 이러한 마음상태는 현실의 벽으로부터 발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역방향으로 전개되면서 사람들에게 교감의 기회를 제공한다면, 작가가 바라는 일이 성취되는 계기임은 분명하다.

오윤화_담 Wall_장지에 분채_145.5×112cm_2015

작품의 인물들은 그다지 자연스럽지 못하다. 다소 경직된 느낌이 없지 않다. 인물의 표정은 한결같이 긴장하여 굳어져 있다. 힘겨운 상태는 작품 곳곳에 나타난다. 작품 속, 여인과 선인장의 관계도 이미 불편한 관계의 설정이다. 그러나 이것이 조화를 이루어 작품화 되면서부터 그 내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선인장이 머리카락을 대신하는 그림, 조화를 쓴 얼굴 등 각자가 개별적인 상황을 전달한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불편한 세상에 맞서는 어려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소견처럼 보인다.

오윤화_Frame_장지에 분채, 먹_45.5×37.9cm_2015
오윤화_겨울_장지에 분채_45.5×37.9cm_2014

작품 「풍선 2」를 보면, 다른 작품에서 주제로 다루는 모든 내용이 함의되어 있다. 곧은 자세로 정면을 향해 걷는 여인은 좌우를 살필 겨를이 없어 보인다. 오직 홀로인 존재임에도 자유로운 정서는 보이지 않고 있으며, 여인이 품고 있는 풍선은 작가의 심적 불안을 상징하는 듯하다. 또한 작가의 원형질 이면의 형상일 수도 있다. 바닥과 앞뒤의 가시 돋은 선인장은 사람들을 곤경에 처하게 만드는 상징과 같은 것이다. 선인장과 풍선은 언뜻 보아도 결과를 예측하게 만드는 관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인장을 밟고 풍선을 안은 여인은 이들의 관계가 상식적으로 그렇게 나쁜 것 만은 아니라는 암시를 하고 있다.

오윤화_풍선 Ⅱ_장지에 분채_130.3×97cm_2014

작품 「생」은 꽃으로 장식한 여인의 자화상이다. 침전된 화려함은 원색 이상의 감정이 내재된 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순간 스치는 것 이상의 아름다움은 작가가 꿈꾸는 세상에 대한 인식의 표현이다. 오윤화의 짙푸른 푸른색은 바다의 색깔이다. 바다는 거부할 줄 모르고 수용만을 하는 존재다. 작가의 모든 작품은 바다 같은 수용의 정서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세상을 정원에 빗대고 있다. 세상은 작가의 정원 속에 자리하면서 많은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내려 한다. 작가는 기존의 틀에 자신을 엮어 넣어서라도 맞춘다고 말하지만, 정작 정원에서의 주인공은 분명히 자신일 뿐이다. 그는 정원에서의 일상 가운데 가장 중심에 서 있다. 다만, 작가가 말하듯 "내가 내놓는 작품들은 불편함과 불안함 마저 나의 세계에 공존하는 것이라고 인정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진통의 결과물들이다."라는 것은 순리에 적응하는 것의 고통을 하소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윤화가 인정하는 공적인 세계는 작가의 본성이 작품화 되는 세계이다. 그가 인정하는 정원에서 새로운 질서를 잡아 나가는 것이 예술이자 자신의 생활이 될 것이다. ■ 천석필

오윤화_생_장지에 분채_130.3×162cm_2013
오윤화_생 Ⅱ_장지에 분채_91×72.7cm_2013

사적인 존재가 공적인 세계로 편입되기 위해 거치는 과정은 공기처럼 그 존재를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문득 또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난 뒤에 느껴지는 미묘한 감정이 있다. 한 개의 가지라도 삐죽 나오기 무섭게 동그랗게 다듬어진 정원수가 된 것처럼 느껴질 때면, 잘 관리된 정원에 존재하게 된 것에 기뻐해야 하는지 잘려나간 가지를 안타까워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는 것부터 어려운 일이다.

오윤화_바래다 Ⅱ_장지에 분채_116.8×91cm_2012

거스를 수 없는 것이되 나를 기존에 있던 틀에 구겨서라도 맞추고야 마는 듯한 씁쓸함과 그 틀 밖에서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이나 방법은 없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자괴감이 섞여 이미지화된 나의 작품들은 비합리적이고 불안한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일견 화려해 보이지만 시들어버린 꽃 덩어리, 가시를 쓰고도 평온한 얼굴 등 공존하기 어려운 이미지의 조합이 주는 불안함은, 시스템 안에서 비로소 편안하고 누구보다 적응에 빠른 모순된 나의 모습이 일으킨 저 깊은 곳에 흐르는 불편함의 투영이다.

오윤화_carnival Ⅱ_장지에 분채_130.3×97cm_2014

내가 내놓는 작품들은 불편함과 불안함마저 나의 세계에 공존하는 것이라고 인정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진통의 결과물들이다. 그러다 보니 어두운 색채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온전히 어둡지 않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있다. 나 또는 우리에 대한 풍자와 은유를 통해 안에 있던 어두움을 눈앞에 꺼내놓음으로써 그리는 이와 보는 이 모두에게 은근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 오윤화

Vol.20160104b | 오윤화展 / OHYUNHWA / 吳潤花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