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원숭이 Happy Monkeys

강상훈_김신혜_김태연_류재형_이제형展   2016_0106 ▶ 2016_0215 / 백화점 휴점일 휴관

강상훈_Monkey Series-해바라기_브론즈, 알루미늄_50×70×80cm_201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8:00pm / 금~일요일_10:30am~08:30pm / 백화점 휴점일 휴관

인천신세계갤러리 INCHEON SHINSEGAE GALLERY 인천시 남구 연남로 35(관교동 15번지) 신세계백화점 5층 Tel. +82.32.430.1158 shinsegae.com

행복한 한 해를 위한 불우한 우화 ● 2016년 원숭이 해를 맞아 이를 소재로 한 현대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았다. 김태연, 김신혜, 강상훈, 류재형, 이제형 작가들이 참석하였다. 이들 작가는 이미 오래전부터 개, 토끼, 원숭이 등의 동물을 작품에 등장시켰다. 첨예한 문제의식을 우화적 상상력으로 풀어 온 것이다. 이번 전시는 다분히 원숭이 해의 우연에 기댄 것이지만, 이들이 던지는 문제 의식은 결코 가볍지 않다. ● 전통회화에서 동물 그림(翎毛畵)은 대부분 동물의 속성이나 이름에서 연유한 상징성을 가졌다. 원숭이는 지능이 높고, 새끼를 오래 양육하고 무리 지어 사는 속성을 통해 재주, 모성애, 다산 등의 덕목을 상징하게 되었다. 새끼를 안은 어미 원숭이 모양의 연적이나 알이 많은 포도, 석류를 따는 원숭이 그림은 모성애, 다산, 다복 등을 의미한다. 원숭이는 '원숭이 후(㺅)'와 작위를 의미하는 '후(侯)'의 음이 같은 데에서 '출세'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다. 원숭이가 나뭇가지로 게 두 마리를 잡는 그림인 「안하이갑도(眼下二甲圖)」(고려대학교박물관)를 보자. 딱딱한 게의 등껍질, "갑(甲)"은 시험에서 1등 성적인"갑(甲)"과 같다. 원숭이가 두 마리 게를 잡으니 대과, 소과에 모두 급제하여 벼슬을 하라는 의미가 된다. ● 십이지신중에서 원숭이는 상상의 동물인 용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우리나라에 서식하지 않았던 동물이다. 조선시대에는 일본의 사신이 원숭이를 선물로 보내오거나, 중국에 사행 간 이들이 원숭이 공연을 구경한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원숭이의 형태와 의미는 대부분 그림과 책을 통해서 전해졌다. 따라서 사생하여 그린 고양이, 개, 닭 그림이 갖는 생동감이나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호랑이와 토끼 그림의 해학성을 우리나라 원숭이 그림에서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원숭이를 능숙하게 그리는 자가 많지 않았기에 드물고 이색적인 그림으로 대접받았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김태연_12支生圖-申_비단에 채색_203×94cm_2009
김태연_12支生圖-申_비단에 채색_72×122cm_2013

이 전시에 참석한 다섯 명의 작가 중 김태연과 김신혜는 원숭이의 전통적인 이미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였다. 김태연의 「십이지생도」는 십이지 동물에 각기 부여된 속성을 현대의 직업군과 연결시켜 표현한 연작이다. 이를테면 「12지생도-신(申)」의 경우, 원숭이의 재주, 영리함이라는 속성을 학사모를 쓰고 합격증을 손에 쥔 박사의 모습으로 그려내었다. 십이지는 고대 중국에서 방위와 시간을 표시하기 위해 임의로 선택된 12개의 동물명 한자였다. 띠 동물의 속성과 운세를 연결시키는 것, 이를테면 양띠 해는 양을 닮아 평화롭고, 소띠에 태어난 아이는 부지런하다는 식의 해석은 후에 역술의 발달과 함께 일어난 현상일 뿐이다. 한편 12방위를 나타내던 십이지는 도교와 불교에서 방위신으로 변모하였다. 십이지신이 갑옷을 입고 천의를 휘날리는 신장(神將)의 모습을 띤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김태연의 「십이지생도」는 역술의 십이지 동물 해석과 불교의 신장 도상을 결합한 격이다. 그런데 현대에 다시 태어난 이 십이지신은 그다지 운을 가져다 줄 것 같지도 않고 수호해줄 것 같지도 않다. 김태연의 작품들은 믿음의 권위는 사라지고 기복적 욕망만 남은 세태를 꼬집는다.

김신혜_주망확일원도_장지에 채색_117×91cm_2010
김신혜_주망확삼원도_장지에 채색_91×73cm_2010

김신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전통 회화 속 원숭이를 끌어 들인다. '바나나맛 우유'에 정교한 공필법으로 그려진 원숭이가 등장한다. 생수병의 산수화, 음료병의 매화꽃을 확장시킨 기존의 작품들이 '상품의 이미지를 통해 소비되는 자연'을 이야기 했다면 여기서는 한 걸음 더 나간다. '바나나맛 우유'병에는 아무런 이미지도 없다. 그런데 그 주위로 원숭이들이 향을 맡고 몰려든다. '바나나맛 우유'는 바나나가 아닌 합성 착향료가 맛을 낸다. 너무 오랫동안 그 맛에 길들여지다 보니 바나나, 하면 이 음료가 떠오른다. 광고의 이미지가 우리를 기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미지가 우리가 경험하는 유일한 자연이듯이, 인공의 향이 우리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이 향이 진짜 바나나의 자리를 차지해버린 것이다. 「일주망확엽도(一蛛網攫葉圖)」라는 고색창연한 이름은 원숭이가 하나에서 둘, 셋 늘어날 때마다 「이주망확엽도」, 「삼주망확엽도」로 이름을 바꾼다. 이 제목은 실상 중국 송대 원작인 「주망확원도(蛛網攫猿圖)」(북경고궁박물원 소장)에서 왔다. '거미줄(蛛網)로 원숭이(猿)를 잡는다'는 제목의 그림은 역설적이게도 원숭이가 손을 뻗어 거미줄을 잡아채려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거미줄을 쳐서 벌레는 잡을 수 있지만 원숭이를 잡을 수는 없다. 그림은 반대의 상황을 그려냄으로써 허황된 욕심을 경계한 것이다. 김신혜의 그림에는 거미줄 자리에 '바나나맛 우유'가 있다. 거미가 원숭이를 잡는 것은 허황될지 모르지만, '바나나맛 우유'가 원숭이를 유혹하는 것은 이미 허구가 아니다. 한두 마리가 아니라 더 많은 원숭이가 모여들어 이 맛에 길들여지게 되면 말이다.

강상훈_Monkey Series-Fallen Leaves No.7_초경석고_36×6.5×7.5cm_2009 강상훈_Monkey Series-Fallen Leaves No.8_초경석고_20.5×7.5×14.5cm_2009

강상훈과 이제형의 작품은 현대 생성된 원숭이 이미지-인간 문명에 대한 불신과 조롱에 기대고 있다. 조선시대와 달리 원숭이는 이제 동물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동물이 되었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 원숭이는 또 다른 의미에서 불편한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다. 진화론은 우리가 원숭이와 같은 조상을 가졌으며, 유전학은 우리가 유인원과 98%의 DNA를 공유하고 있음을 밝혀내었다. 문명을 가진 유일한 존재라는 인간의 권위는 위협 당했다. 원숭이는 인간이 신의 아들이 아니라, 가장 진화한 유인원에 불과하다는 것을 상기시키게 된 것이다. 영화 「혹성탈출」은 이러한 두려움을 원숭이와 인간의 지위 역전이라는 영화적 상상력으로 발현시킨 예이다. ● 강상훈은 개, 토끼, 원숭이 등의 동물을 종종 자신의 페르소나로 사용해왔다. 그 중에서 "원숭이는 인간.. 곧, 나를 보여주는 거울 속의 연기자이다."라고 작가 스스로 언급한 바 있다. 그의 작품 속 원숭이는 앙상하고 구부정한 자세로 미끄러운 바나나 껍질더미에 서있다. 쾡한 눈과 발기된 성기는 이 위태로운 원숭이를 더 애처롭게 보이게 한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알루미늄, 세라믹 재료들은 원숭이와 해바라기, 바나나 그 어떤 것에서도 야생성을 찾아 볼 수 없게 하였다. 원숭이는 무기력하고 거세된 현대인을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형_ Apetheosis_월넛, 체리, 마호가니에 아크릴채색_200×205×50cm_2009

이제형의 「Apetheosis」는 진화론에서 연상되는 원숭이의 이미지를 더 적극적으로 발전시켰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Cristo Redentor)을 연상시키는 팔 벌린 원숭이가 작은 목각 로봇 집단 앞에 서있다. 식탁 다리처럼 잘 다듬어진 원숭이의 팔 다리와 찬장처럼 열어 젖힌 몸통이 흡사 가구를 연상케 한다. 「Apetheosis」는 유인원(ape)과 신화(神化, Theosis)를 조합한 말이다. 유인원의 신격화, 유인원에 불과한 인간이 신 행세를 하면서 로봇을 만들어내는 세태를 풍자한다. 그러나 그 유인원은 검푸른 밀림을 겨우 빛바랜 사진으로 간직한 목재 가구에 불과하다. 신성을 걷어낸 인간의 민낯, 인간의 동물성을 상징하던 원숭이가 이들 작품에서는 야생성과 생기 조차 잃었다. 강상훈과 이제형은 묻는다. 신성과 야생성을 모두 잃었다면 우리에겐 무엇이 남았는가.

류재형_Monkey Pixels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6

신년이 되면 토정비결을 본다. 운세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좋은 일을 기약하고 나쁜 일은 경계하기 위함일 것이다. 우리가 전시, 『행복한 원숭이』에서 기만적이고 무기력한 원숭이를 보는 역설도 여기에 있다. 이번 전시가 새해를 여는 행복한 주술이 되리라 기대한다. ■ 유재빈

Vol.20160105f | 행복한 원숭이 Happy Monkey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