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數)를 읽다

위영일展 / WEEYOUNGIL / 魏榮一 / painting   2016_0108 ▶ 2016_0128 / 월요일 휴관

위영일_알레아토릭 페인팅 그룹1_가변크기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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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영일 홈페이지_wee012.wixsite.com/weeyoungil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1: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인천아트플랫폼 INCHEON ART PLATFORM 인천시 중구 제물량로218번길 3 B동 Tel. +82.32.760.1000 www.inartplatform.kr

이번 전시명은 '수(數)를 읽다'이다. 이것은 나의 작업과정의 일부를 표제화한 것인데, 요즘 내가 진행하고 있는 작업은 알레아토릭 페인팅 프로젝트(Aleatorik Painting Project)이다. 그것은 미술사를 바탕으로 자의적으로 재설정한 매뉴얼(가로세로 각 6단계)에 매번 6번 연속적으로 주사위를 투척 해 나온 '경우의 수'열을 비교, 해석하여 회화작업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것을 시스템 페인팅이라고 칭한다. 작업이 진행 되어감에 따라 체계가 잡혀가는 기존의 회화방식과는 달리 미리 체계를 설정해 놓고 그것에 따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 이 프로젝트에서 수열은 곧 작품의 제목이며 그 해석은 내용인 동시에 회화에 대한 나의 태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반적인 회화작품과는 달리 작품의 제목이 '6개의 경우 수열'로 되어있어 관람 시 암호처럼 작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체계를 모르는 관람객은 내용파악은 못하고 그저 수(數)만 읽고 전시장을 나 갈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체계에 대한 약간의 정보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하르트만식으로 본다면 작품의 심리의 계층이나 이념의 층위까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구성되어진 물적 층위는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위영일_수(數)를 읽다展_인천아트플랫폼 B동_2016
위영일_알레아토릭 페인팅 그룹2_가변크기, 122×244cm×3_2015~6

그렇다면 그 해석의 과정이 어떤 것이기에 그런 걸까? 예컨대 경우의 수가 '2-3-1-1-1-3'이 나왔다고 하자. 이 때 횡축 6단계인 주제-프레임-스타일-배경-중경-전경의 순으로 종축과 비교해가며 풀이하면, 2(풍경)-3(삼각프레임)-1(리얼리즘스타일)-1(레드계열)-1(레드계열)-3(블루계열)순으로 화면을 구성해야만 된다. 이것이 이 시스템의 규칙이고 나는 그것을 충실히 수행해야만 하는 것이 하나의 설정이다. 즉, 나는 이 시스템의 설계자인 동시에 그 명령어의 수행자인 셈이다. ● 그러면 이 수열로 회화를 진행해 보기로 하자. 해석지에 따라 화면을 구성하자면 "풍경이란 주제를 삼각프레임에 사실주의적인 방법과 태도로 배경과 중경에 레드계열의 어떤 색들을 쓰고, 전경에는 블루계열의 어떤 색으로 그려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의 이념의 층위가 발생한다. 이 경우 아무리 '사실주의적인 기법으로 재현을 한다고 해도 자연적이며 사실적인표현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생각해보면 붉은바탕에 파랑색으로 그려진 풍경화는 현실과 다른 어떤 암시적이거나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끼질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 속에서 회화에 대한 나의 새로운 생각들을 정리하게 된다. 이것이 수(數를) 읽는 과정이며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위영일_수(數)를 읽다展_인천아트플랫폼 B동_2016
위영일_알레아토릭 페인팅 매뉴얼_2013

한 가지 더 예를 들자면 '추상적인 주제'를 '인상주의적인 표현방식'으로 그려라 라고 수가 나올 경우 머리는 아주 복잡해진다. 기존의 통념에서는 불가능한 조합들이기 때문이다. 미술사에서 추상이란 동사적 의미로 쓰이는데, 이 시스템에서는 주제항목의 추상은 동사가 아니라 명사나 형용사적으로 쓰이므로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해석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추상적인 주제를 인상주의적 스타일로 처리를 하자면, 어떤 추상적인 상태를 선택해야만 하고 인상주의적 스타일(Impressionism, Neo-Impressionism, Post-Impressionism)중에서 하나를 택하고 또 그 유파 중에 어느 작가를 참조할 것인가를 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뒤에 따르는 색(전경-중경-후경)의 관계들 또한 신중하게 선택해야만 한다. 아마도 이 경우에 선택 할 수 있는 작가는 마네나 고호는 일단 제외되고 모네, 시냑, 쇠라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모네의 수련작품에서 외곽선이 으깨지고 색들이 간섭되는 붓질을 참조하거나 시냑이나 쇠라의 분절된 아주 작은 '색면유니트'의 붓질이 참조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대상이 구체성을 잃고 그 어떤 상태로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나온 79개의 수열(474개의 경우의 수)중 "추상적인 주제'를 팝이나 사실주의적 표현방식으로 그려라!" 라고 나온 '난해한 수열'도 있다. ● 역사적으로 여러 작가들이 '회화의 본질'을 사각의 틀, 그리기, 평면성 등에서 찾았지만 나는 그 본질이라는 해묵은 이념논리에는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이 시스템에서 여지없이 깨져 나간다. 이를테면 '사각의 틀'은 나오는 수에 따라 1(원), 2(타원), 3(삼각), 4(사각), 5(오각형 이상의 다각), 6(유기체형태)등의 프레임으로 작업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스텔라의 사각프레임에 대한 공격 같은 것은 나에게 의미가 없다. 또한 원래 프레임이 사각형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르네상스 때 작품들을 상기해보면 원형, 타원, 육각, 팔각형 그 이상의 형태들도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기의 본질'은 회화를 하는 사람들이 숙명적으로 지지체 표면에 안료들을 부착시켜야 하는 것을 굳이 클레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되겠지만, 이것이 수많은 작가들이 돌고 돈 긴 여정 끝에 다다른 소모적인 결론이라고 생각해서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위영일_수(數)를 읽다展_인천아트플랫폼 B동_2016

더구나 작업진행 중 매번 속출하는 돌발변수 속에서 그런 것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분류한 6개 이상의 스타일 중에 화면에 색을 착색하거나 이미지를 구현하는 방법은 스프레이라든지 스퀴지로 처리하는 방식이 있으므로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평면성' 또한 추상에나 해당될 뿐 사실주의, 인상주의, 표현주의, 팝, 뉴페인팅에서는 무의미한 논쟁에 불과하며 추상도 색면추상의 스타일을 참조할 경우만 해당된다. 그리고 평면성을 강조하는 접근방식으로는 이 매뉴얼상의 사실주의의 일루젼을 재현하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회화의 본질에 대한 질문보다는 내가 새로이 설정한 체계에 대한 구조를 공고히 하는데 집중하고 있고 또한 회화의 본질을 향한 일관된 한 가지 방향보다는 회화에 대한 전방위적이며 동시다발적인 여러 생각을 지향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 시스템에서는 기존의 미술사를 참조는 하지만 전혀 다른 궤적의 결과물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이 작업에 흥미를 발생시키는 지점이기도 하다.

위영일_6-5-3-1-5-6_변형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18×118cm_2015
위영일_수(數)를 읽다展_인천아트플랫폼 B동_2016

이 체계에서 6개의 경우의 수가 일치 할 확률은 '1/46,656'이지만, 작품제작이 가능한 경우의 수 조합은 총:7,776개이다. 아니 6개의 동일한 수열이라도 앞뒤의 관계를 달리 해석하면 그 이상의 작업도 가능하다. 그래서 이 체계에 따라 작업이 진행을 하다보면 나는 최소 6개(사실주의, 인상주의, 표현주의, 추상주의, 뉴페인팅, 팝아트)이상의 스타일을 동시적으로 구사해야만 한다. 결국 작가는 자신의 고유성을 버리고 마치 연기자처럼 타인의 태도나 붓질을 흉내 낼 수밖에 없다. 연기자가 타인의 행동양식을 고찰하고 연기를 하는 것처럼 나 또한 이 작업을 위해 지구상의 많은 페인터들을 참조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작가고유의 아이덴티티를 탈각하고 이렇게 카멜레온과 같은 행태를 보이는 것은, 작가를 쉽고 편리하게 규정해 버리려는 관객들의 인습적 태도에 기인한다. 고례로부터 작가는 작품에 색채, 형태, 붓질 등으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분명히 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고 했다. 이것은 타인에게 자신을 알리는 징표로 작용하며 관객은 작가를 판별하는 편리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작가를 '고정된 틀'에 가두게 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특히 현대사회 이르러 수많은 정보와 넘쳐나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이것은 아주 편리한 분류법으로, 무관심하게 작가들을 유형화여 물방울작가, 한지작가, 타이어작가 등으로 범주화시켜 버린다. 이는 곧 작가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인식의 편리함의 족쇄' 같은 해악(害惡)이 되기도 한다.

위영일_6-3-5-2-6-2_변형패널에 유채_122×162cm_2016
위영일_6-3-5-2-6-2_변형패널에 유채_122×162cm_2016_부분

결국 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하여 예술의 태생적 한계인 동어반복을 피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표면상에서 만큼은 그것을 은폐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가 근대화하면서 강고하게 규정했던 텍소노미(taxonomy)들의 허술함이 자주 엿보인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앞으로도 많은 변수와 그것의 해석 앞에서 시행착오를 겪게 되겠지만, 미술사에서 유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위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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