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limited_Spring of the wind

고정남展 / KOJUNGNAM / 高正男 / photography   2016_0120 ▶︎ 2016_0130

고정남_바람의 봄#01_아카이벌 피그먼트_57.5×115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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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120_수요일_06:00pm

갤러리 브레송 기획展 사진인을 찾아서 1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브레송 GALLERY BRESSON 서울 중구 퇴계로 163(충무로2가 52-6번지) 고려빌딩 B1 Tel. +82.2.2269.2613 cafe.daum.net/gallerybresson

끊임없는 기억의 흐름, 정해진 것은 없다. ● 고정남 사진 세계는 손에서 떨어져 나온 바람이 빵빵하게 들어간 풍선 같다. 어디로 갈지 좀체 갈피를 잡기 어렵다. 그렇지만 그 바람 빠지는 풍선도 일정한 궤적은 있다. 그 궤적은 어디서 왔고, 어떻게 생겼으며 어디로 가는 것일까? 고정남은 90년대 초 학생 운동이 정점을 찍으면서 서서히 역사에서 사라져 갈 준비를 하던 시절 전남대에서 미술을 했다. 민중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이 한 자리에서 꽃을 피우던 그 희한한 시절에 그의 미술은 기존 질서 거부와 뜨거운 조국이 섞이면서 그 씨가 잉태하기 시작했다. 종잡을 수 없는 그의 사진 세계는 바로 이 섞일 수 없는 두 개의 이질적 세계관이 섞이면서 어떤 유정(有情)의 씨로부터 나온 것이다. 고정남이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이 98년 일본 유학에서부터이니 얼추 20년이 다 되어간다. 50이 넘은 나이지만 사진 나이로는 청년 중의 청년이다. 그의 주제, 소재, 방식이 어떤 틀로 짜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피 끓는 청춘이다. ● 일본에 유학 가서 처음 그를 사로잡은 것은 일본식 가옥이었다. 그 집은 고향 장흥에서 보았던, 그렇지만 전혀 눈 여겨 보지도 않았고 그래서 그냥 그저 그런 옛 추억의 적산가옥일 뿐이었던 것이 기억을 흔들어 깨웠다. 어린 시절 부리나케 들락거렸던 친구네 집 2층집 관흥여관이 떠오른다. 일제 시대 때 부산과 여수(일본)를 잇는 물길의 요충지였던 탓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고, 그들이 남기고 간 적산가옥이 동네 이곳저곳에 있었다. 그것이 갖는 역사성의 의미는 모르겠고, 그저 어릴 적 추억을 머금은 중요한 오브제가 고향을 떠나온 그 자리에서 눈에 들어왔다. 고정남 사진의 궤적인 '장소와 관계성'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했다. 유정(有情)이라고 했던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태초의 빈 공간에 미움, 괴로움, 사람, 욕심, 집착과 같은 업(業)의 힘들이 마구 섞이면서 어떤 존재를 만들어냈다는 것 말이다. 떠나옴, 그리움, 그저 그러함, 불안감, 새로움이 처음으로 카메라를 잡은 일본 땅에서 물 흐르듯 섞이면서 그의 사진 세계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고정남_바람의 봄#02_아카이벌 피그먼트_57.5×115cm_2014
고정남_바람의 봄#03_아카이벌 피그먼트_57.5×115cm_2013
고정남_바람의 봄#04_아카이벌 피그먼트_115×57.5cm, 115×77.5cm_2015
고정남_바람의 봄#05_아카이벌 피그먼트_57.5×115cm_2015

일본에서 한 초기 작업인 「집. 동경 이야기」(2002)는 고정남이 지금까지 유지해오는 자신만의 작품 구성의 요체를 다 머금고 있다. 그 때 만들어진 고정남 사진 세계의 뼈대 위에 살이 붙어 오늘에 이른다. 그의 사진을 이루는 형상은 솥과 같다. 무슨 재료를 넣든지 다 끓여 뭔가 다른 음식을 낼 수 있는 솥 말이다. 그런데 그 솥의 발이 셋이 아니고 넷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기에 불안해한다. 첫 번 째 솥의 발은 평범한 대상에 대한 주관적 시선이다. 대도시 동경을 스치듯 지나면서 취한 장면들은 하나같이 전혀 뛰어나지 않는 그저 그런 보통의 이미지다. 관조하는 것도 아니고, 그 안에 들어가 주체적 시선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나가면서 힐끗 쳐다보는 듯 한 시선이다. 분명히, 주관적인 시선이다. 나와 아무런 관계없는 것들로 쌓여 있는 백화점을 아이쇼핑 하듯 지나갈 뿐인데, 순간, 순간 어떤 촉이 발동하여 필을 받는다. 두 번 째의 솥발은 장소성이다. 그 장소성은 '집'과 '콘크리트'로 표상되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식물성으로 확장되고 그것은 다시 자연성과 여성성으로 확장된다. 그러면서 그의 장소성은 항상 누군가 그 의미를 매개해주는 사람과 연결된다. 장소가 관계성으로 이어지고 기억과 만나면서 사진가는 표현 방식에서 새롭고 의미 있는 발걸음을 하나 대딛는다. 세 번째의 솥발은 기억의 변주다. 집이나 거리와 같은 평범한 대상, 그리고 그 안에 놓이는 사람, 오브제, 식물성 등은 모두 기억을 매개로 하여 연결된다. 그런데 그 연계가 일정한 내러티브를 만들지 않는다. 홍상수 영화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저 평범한 하나, 하나의 일상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그런데 홍상수 영화가 그러하듯, 불륜이나 위선 등과 같은 일정한 주제 의식조차도 보여주지 않는다. 작가는 그 평범한 것들을 자신만의 기억의 흐름에 따라 관계를 맺기 때문에 독자는 그것을 쉬 따라가지 못한다. 결정적으로 기억이라는 것이 불안하고, 정형화 되지 못하며, 그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솥의 발은 대동 세상이다. 평범한 대상을 통해 장소 속으로 들어가 기억의 나래를 펴는 세상은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대동 세상이다. 세상은 둘로 나뉘되 그 둘은 결국 둘이 아니고 하나다. 안과 밖, 자연과 인공, 가치 있다고 하는 것과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 모두가 다 하나로 모인 모자이크 같은 세상이다. 고정남은 그 정리할 수 없는 불순한 세계를 사진으로 말하려 한다. 발이 넷 달린 솥은 불안하다. 지금 중간 단계에 와서 본 고정남의 사진 세계에 또 하나의 발이 나오려 꿈틀거린다. 무슨 발이 나올지, 앞으로 발은 몇 개나 더 나올지 궁금하다. 그의 물과 같이 흐르는 그 어떤 것에도 이르지 못할 것이 없고, 낳지 못할 것이 없는 사진 세계의 무궁무진함이 가히 불교가 말하는 유정의 세계와 같다. ■ 이광수

고정남_바람의 봄#06_아카이벌 피그먼트_76.2×101.6cm_2014
고정남_바람의 봄#07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1.6×127cm_2009
고정남_바람의 봄#08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1.6×127cm_2009
고정남_바람의 봄#16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1.6×127cm_2008

endless flow of memory, there is no decided. ● Jung-Nam, Ko's picture world is like a balloon with full of air that falls out of a hand. It cannot make head or tail where to go. However, the deflating balloon also has a regular trace. Where does the trace come from, what does it look like, and where does it go? Jung-Nam, Ko studied art in Chonnam National University in the early 90s when a student movement was at the peak and ready to die away from the history. His art started to grow the seed over mixing the refusing of the existing public order and passional nation at the strange time when the public art and postmodernism bloomed at one place. His wandering picture world came out which was mixed with the two unmixable disparate view of the worlds. He started to take pictures in earnest from 1998 when he studied in Japan, it has been almost for 20 years. His actual age is over 50, but the age of picture is a young man of the young men. His subject, material, and method are boiling blood youth which are hard to fit to some mold. ● When he studied in Japan, the first thing that caught his heart was the Japanese traditional house. It was seen in his hometown, Jangheung, but never watched it carefully, and it was just an enemy's house of past memories. However, it shook out of his memory unexpectedly. It reminded of him Gwanheung Inn which was a friend's 2-story house and which he popped in and out frequently in childhood. Since there was an important place of waterway which connected from Busan and Yeosu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 lot of Japanese lived in there so the enemy's houses which they left were from place to place in the village. He didn't know the meaning of historicity which the house has, but just an important object which contained memory of childhood met his eyes in the place where he left home and arrived. The trace of Jeong-Nam, Ko's picture, 'places and relationship', started to form gradually. Isn't it an affection? The thing that made some presence, violently mixing the powers of karma like hate, suffering, love, greed, and obsession in the primal empty place where nothing exists. As leaving, longing, fair to middling, anxiety, and novelty mixed like running water on the Japanese lands where he took the camera for the first time, the door of his picture world started to open. ● 「The house. Story of Tokyo」(2002), which was the beginning work and did in Japan, contains every his own key of composition of work that Jung-Nam, Ko has kept until now. Fleshed out the frame of Jung-Nam, Ko's picture world which was made at that time and led to today. The form that made up of his picture is like a kettle. I mean the kettle which can make something different food by boiling no matter what ingredients are put. However, the legs of the kettle are not three but four. So people are anxious. The first leg of the kettle is subjective view about normal objects. The scenes that were taken as he went by the big city, Tokyo, were just normal images that were totally not that great as one. Neither he contemplated nor he entered there and had an independent view. It was just a view like glancing by passing. Obviously, it was a subjective view. Only pass by like being window shopping the department store where the things which have nothing to do with me are piled up, something is aroused every moment and get inspired. The second leg of the kettle is a sense of place. The sense of place started to be represented as 'house' and 'concrete', it was extended to vegetativeness unawares. It was extended to nature and femininity again. Then his sense of place always connects to someone who mediates the meaning. As the place connects to relationship and meets memory, a photographer takes a new and meaningful step of expression method. The third leg of the kettle is a variation of memory. The normal objects like house and street, and people, objects, and vegetativeness that are in them are all connected by memory. However, the connection does not make constant narrative. It feels like a Sang-Soo, Hong's movie. Just normal every single life makes a story. By the way, like Sang-Soo, Hong's movie, it does not show constant subject consciousness at all such as affair or hypocrisy. Since photographers engage with the normal things according to the flow of their own memories, readers cannot follow it easily. Decisively, because memory is unstable and not standardization, and it does not have boundary. The last leg of the kettle is the united world. Through the normal object, going into the place and everything that stretches of the memory and becomes one is the united world. The world is separated by two, however, the two are not finally two, but one. Inside and outside, nature and artificiality, valuable things and not, everything gathers in one world like mosaic. Jung-Nam, Ko tries to speak the impure world which cannot arrange in pictures. The kettle with four legs is unstable. Another leg wriggles to come out at the middle stage of Jung-Nam, Ko's picture world. Wondering what kind of leg will come out and how many legs will come out more. His endless picture world, which flows like water, is nothing to reach, and has nothing to make, is like the word of affection that Buddhism talks about. ■ Leekwangsu

Vol.20160120i | 고정남展 / KOJUNGNAM / 高正男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