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y : 자연스레 생각나는 것

박명미_정윤주 2인展   2016_0201 ▶ 2016_0220 / 일,공휴일 휴관

초대일시 / 2016_0201_월요일_06:00pm

주최,기획 / 예술지구 P_파낙스 그룹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공휴일 휴관

예술지구 P ART DISTRICT P 부산시 금정구 개좌로 162(회동동 157-6번지) ADP 2관 Tel. 070.4322.3113 www.artdp.org www.facebook.com/artdp

일반적으로 작가들은 '톤(tone)'이라는 용어를 많이 쓴다. '톤이 어둡다.' 혹은 '밝다.'라는 말로 색조나 작품의 물성, 전체적 이미지를 표현하기도 한다. '톤이 같다'고 느낄 때 시각적으로 비슷한 감정효과를 느낄 수 있다. 이들의 드로잉은 모노톤으로 이루어졌는데 박명미는 반복적으로 덧칠하는 과정을, 정윤주는 반복적으로 씻어내는 과정을 거친다. 층층히 쌓여진 시간이 담담한 톤으로 표현된 작업 방식에서 작가 본인, 혹은 이 사회가 가진 불안이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진다. ● 박명미는 49일 동안 죽은 나무에 물을 주며 그 과정을 매일 그리는 작업(영상 및 페인팅)과 드로잉 설치 작업을 보여 준다. 이러한 반복적인 드로잉(페인팅)작업은 자코메티가 초상화를 눈에 보이는 대로 표현하기 위해 수십 번 그림을 덧그리는 행위보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희생'에 나오는 죽은 나무에 반복적으로 물을 주는 행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의식처럼 매일 같이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세상이 변하게 될 거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어쩌면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는 예술가의 태도와 이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 정윤주는 보호(protect)에 관한 오브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다시 만들어진 오브제로 재해석한 설치 작업과 편집적인 드로잉 작업들을 선보인다. 접근 금지를 상징하는 라바콘(원뿔형 진입 금지봉)이나 햇빛과 비, 바람 등으로부터 보호의 역할을 하는 차양(awning)과 같은 오브제를 무게나 재질 또는 형태의 변형을 통해 기능성을 제거하였다. 무거운 시멘트로 캐스팅되어 두 개의 바퀴가 달려진 라바콘은 이동성이 추가 되어진 듯하지만 결국 또 다른 오브제에 의지하거나 지탱되어질 수밖에 없는 형태를 가진다. 연약한 종이와 가느다란 나무로 만들어진 차양 또한 위태하게 받침에 의지해 설치되어 있다. 이는 결국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들이 변형되고 바뀌어도 그것으로 인해 더 무거운 책임이나 견디기 힘든 불안으로 다가옴을 심리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 이번 전시는 서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던 두 작가가 만난 교차 지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교차된 지금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 전시 이후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다음의 교차 지점이 궁금해진다. ■ 박상호

박명미_고도를 기다리며 ; 죽은 나무에 물 주기_작업과정 설치전경_2015~6
박명미_고도를 기다리며 ; 죽은 나무에 물 주기_단채널 영상_2012~6

1. 고도를 기다리며 ; 죽은 나무에 물 주기 ● 나는 언제부턴가 예술과 삶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죽은 나무를 보았다. 그리고 죽은 잡초와 그 죽은 나무를 옥상에 심어 두었다. 2015.12.8부터 2016.1.25까지, 49일 동안 죽은 나무에 매일 물을 주고 드로잉 한 후 사진을 찍었다. 이 겨울에, 그것도 뿌리가 잘려나간 죽은 잡초, 죽은 나무에게 날마다 물을 주고 같은 캔버스에 그리고, 지움을 반복 한다는 것은 이미 '실패' 혹은 '불가능한 것' 을 알면서도 가는 예술가의 태도와 이어져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 『고도를 기다리며』는 사무엘 베케트의 소설 제목에서, 「죽은 나무에 물주기」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희생』의 한 장면에서 빌려왔다. ● 내 손의 붓. // 붓에 묻어난 물감은 어느 죽은 화가의 것이다. 나는 죽은 사람의 물감으로 죽은 나무를 그리고 있다. 어제보다 날씨는 따뜻해서 오래 그릴 수 있었다. 진심으로 그릴 수 있을까. 진심으로, 온몸으로 그린다면, 올 봄에는 저 나무가 살아 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 붓을 놓지 않는 일이다. (매일 나무 드로잉, 2016.1월 25일, 마흔 아홉번째 마지막날에)

박명미_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 사건, 세상 없는 인간/고도를 기다리며 ; 죽은 나무에 물 주기_ 설치, 영상 전경_2012~6
박명미_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 사건, 세상 없는 인간_설치_2015~6_부분
박명미_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 ; 제주 강정을 생각하며 그린 그림_ 연필, 인두자국_가변설치_2012~6

2.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 사건, 세상 없는 인간 ● 종이에 바다 드로잉을 하고, 세월호 피해자 300여명의 이름 초성만 따서 뚫는다. 이 바다 드로잉을 천장에 매단다. 간격을 두고, 죽은 잡초 드로잉으로 뚫린 얇은 종이를 천장에 매단다. 바다 드로잉 종이 뒤에 조명을 설치하여, 바다 드로잉과 잡초 드로잉의 뚫린 구멍들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게 한다. 나는 우연히도 지금껏 두 번의 레지 던시 경험(제주와 부산)을 바다와 인접한 곳에서 했다. 몇 년 사이 바다에서는 큰 사건들이 있었다. 작년에 미루고 미뤄 뒀던 일, 팽목항에 다녀왔다. 분향소에서 그 얼굴들을 보았고, 말이 없는 바다도 마주했다. 깊은 곳의 부끄러움을 이제야 꺼낸다. 나의 잡초 드로잉 프로젝트와 바다 드로잉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이것들은 지금 내가 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자 질문들이다. ■ 박명미

정윤주_c/p m.01_시멘트, 철, 오브제_99×55×38cm_2015
정윤주_c/p m.02_석고, 철, 오브제_3m이내 가변설치_2015
정윤주_c/p p.01_종이에 잉크, 아크릴채색_92.5×63cm_2015
정윤주_c/p p.02_종이에 잉크_44×40.5cm_2015

A. 보편적으로 보호의 역할을 하는 존재가 나에게는 그렇지 못할 때가 있다 / 사람들에게 그 존재는 삶에서 너무나도 당연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듯이 보인다 / 나의 삶 속에서도 그 존재는 명확하고 밀접하게 위치하며, 가끔은 그로 인해 견디기 어려울 만큼 큰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 늘 나의 삶 어느 언저리에 무겁게 위치하고 있지만 나는 그를 부정하고 싶다 / 나에게 그 존재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이다 / ● B.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각조각 무의식중에 수집된다. 기억 속의 사물들을 떠올려보면 주로 시각적인 특성이 강하며, 그 자체가 상징하는 역할이나 용도, 기능 등이 명확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번 작업의 모티브가 된 라바콘과 차양도 마찬가지였다. 안전 표지물인 라바콘과 햇볕을 가리거나 비를 막기 위해 처마 끝에 덧붙은 차양은 나에게 공통적으로 보호의 의미로 다가왔다. 두 가지 오브제를 발견하고 다음으로는 어떠한 질감이나 매체로 표현할지를 떠올렸다. 먼저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가벼운 라바콘을 무거운 시멘트로 캐스팅하여, 더욱 무거워 보이도록 연필과 흑연으로 마감하였다. 위험한 장소 어디든 유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보호장치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나 혼자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무거워졌고 시각적으로도 그 무게감을 느낄 수 있게 하였다. 그런 뒤 다시 라바콘 아래에 두 개의 바퀴를 달았다. 언뜻 보면 운동성이 더해진 듯이 보이지만 이것 역시 의지할 수 있는 또 다른 장치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차양은 연약한 나무막대와 얇은 종이를 이용하여 만들었다. 벽면의 높은 자리에 얇은 프레임을 설치하고 비스듬하게 차양을 얹어 두었다.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놓인 가녀린 차양은 형태만 갖추었을 뿐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이처럼 '발견되어진 오브제'는 새로운 재질, 매체 등을 만나 '만들어진 오브제'가 된다. 그런 과정 중 완전히 기능성을 잃어버리거나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 정윤주

Vol.20160202d | the gray : 자연스레 생각나는 것-박명미_정윤주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