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으로 돌아간 회화

나광호展 / NAKWANGHO / 羅鑛浩 / painting   2016_0202 ▶ 2016_0229 / 주말,공휴일 휴관

나광호_Helga_캔버스에 유채_112×162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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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16 이랜드문화재단 6기 공모展

주최,기획 / 이랜드문화재단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공휴일 휴관

이랜드 스페이스 E-LAND SPACE 서울 금천구 가산동 371-12번지 이랜드빌딩 Tel. +82.2.2029.9885 www.elandspace.co.kr

동심으로 돌아간 회화 ● 어린이는 빨리 어른이 되기를 갈망한다. 어른이 되고 나면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어른이라는 존재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무적인간처럼 생각한다. 어린이라서 못한다는, 힘이 없어서 못한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이상형으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어른도 어린아이 때나 별반 다르지 않는 나약함이 있다. 오히려 현실의 다양한 여건에 둘러 쌓여 그나마 있던 꿈 조차 꾸질 못하기도 한다. 나광호 역시 어렸을 적에 어른에 대해 이런 상상을 했다고 한다. 이제 아이 아빠가 되어 있는 작가는 오히려 동심을 바라본다. 어린이 같은 마음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성인은 어릴 적에 동경하던 어른과의 격차가 큰 것에 대한 회의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러한 회의감을 천진난만한 시절에 대한 순수함과 어린이의 고사리 손으로 그린 그림으로 작품화시켜 나가고 있다.

나광호_Milliet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15
나광호_Postman Joseph Roulin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15
나광호_The Brigadier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15
나광호_Waste Ground, Paddington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16

아이들의 그림은 직관적이다. 아이의 눈에 비치는 것은 완벽함으로 오지 않고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으로 대상을 인식해 버린다. 우리가 보기에 낙서지만 아이들은 대상을 그린 것이 맞다. 작가도 자신의 딸을 통해 경험하고 있다. 아이들은 닮게 그리지 않더라도 그림에 의미를 부여 할 줄 안다. 이는 오히려 어른이 하지 못하는 일이다. 미술을 배워나가면서 직관적인 감각은 무디어지거나 잃어버리게 된다. 미술을 학습으로 배워 알고 있는 지식에 자신의 직관성을 물에 타듯 흐려버리는 일은 너무 흔하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나광호는 회화의 경직성과 학습적 결과를 극복해 나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형태의 왜곡과 자연스러운 선에서 어른스러운 미술의 상식을 넘어서는 것이다. 예술에서 상식이라는 것은 작가가 벗어나야 할 커다란 굴레와도 같다. ● 나광호는 작품에 놀이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예술은 즐거워야 하고 유쾌해야 한다는 생각을 일관되게 가지고 있다. 유년기 시절에 작가가 처음 접한 그림은 아버지의 연애편지였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부친 편지에는 그림이 많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에게 편지 속의 그림을 따라 흉내 내는 것이 커다란 놀이였고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접한 그림은 신나는 일이었고 지금에 와서도 그림이 즐거웠으면 하는 변함 없는 생각이다.

나광호_Postman Joseph Roulin_리넨에 유채_162×130.3cm_2015
나광호_Man in a Chair_리넨에 유채_162×130.3cm_2015
나광호_Groundhog-Day-Study_종이에 수채_38×56cm_2016

나광호는 한 동안, 연필을 갓 잡았을 법한 아이들의 낙서를 모아 놓은 듯한 그림을 그려왔다. 이것이 추상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가 최근 작품에서는 명화를 패러디 하는데, 작품 자체의 의도는 좀 더 어렸을 때의 낙서가 발전한 정도의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명화를 따라 하는 것은 이미 머릿속에 각인된 기준에서 모방의 놀이를 즐기는 일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원작의 절대성을 순수한 동심의 이미지로 다시 살려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상식적으로 안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타당한 것인가를 되묻고 있다. 작가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풍토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른다움을 지키지 않는 것도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어떠한 목적도 없이 연필을 잡은 아이는 고뇌 없이 그림을 그리고 순수한 형태만 종이에 남겨지게 될 뿐이다. 그리고 나광호처럼 동심을 찾아 처음의 상태로 그림을 의식해 본다면 예술의 어려움은 쉽게 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 나광호의 그림은 스스로 즐겁고자 한다. 작가도 작품을 통해 유쾌함을 선사하고 싶어한다. 작품이 사랑 받고 사람들이 좋아해 준다면 만족할 일이다. 보는 사람도 힘들이지 않고 그리는 사람도 놀이로 즐기는 것이 나광호가 생각하는 그림이고 예술의 모습이다. 그림의 본질적인 유흥은 동심을 이해하면서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곧 그것은 순수한 마음이 그림으로 교감되는 순간이다. 이제는 동경하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어울리며 아이들의 시각을 빌려, 그들의 손에서 나오는 것을 어른들에게 새롭게 간직해 주는 방법을 제안한다. ■ 천석필

나광호_Redcoat_종이에 과슈_81×61cm_2016
나광호_Roof Archies Large_캔버스에 유채_112×194cm_2016

명화는 공부할 수 있는 수단이며 이를 계승하거나 답습, 편집, 반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가치라고 생각된다. 이 기준을 토대로 다른지, 비슷한지, 새로운지에 대한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는 위대함, 명성, 높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모방하는 것이며 동시에 자기화가 가능한 흉내 내는 놀이이다. 혹은 새로움을 표방한 엉터리 흉내 내기이다. ● 평가를 내리는 위치에 있거나 솔직한 동료들의 조언, 공격, 비방, 험담, 비아냥거리는 내용들, 나에게 평가되어진 내용이면서 동시에 작품과 공간에 대해 악플(惡 reply)을 달거나 하위개념으로 여기는 것에 귀 기울여보고 이러한 평판을 토대로 작품을 제작하고 이를 가치 있음으로 복권(復權)시키고 의미 있는 공간에 작품이 걸리게 하여 지속적으로 놀이로서 미술이고자 하는 것이 이번 전시를 기점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다. ■ 나광호

Vol.20160202h | 나광호展 / NAKWANGHO / 羅鑛浩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