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기 thaw

2016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전문사 졸업展   2016_0216 ▶ 2016_0312 / 일,월요일 휴관

2016_0216 ▶ 2016_0220 초대일시 / 2016_0216_화요일_05:00pm 참여작가 / 김지영_노은주_박종일_손현선_한성우

2016_0223 ▶ 2016_0227 초대일시 / 2016_0223_화요일_05:00pm 참여작가 / 박테오_양승욱_엄민희_이유민_이진형

2016_0301 ▶ 2016_0305 초대일시 / 2016_0301_화요일_05:00pm 참여작가 / 권씨_박아름_우한나_윤세라_이유성

2016_0308 ▶ 2016_0312 초대일시 / 2016_0308_화요일_05:00pm 참여작가 / 김대현_김상현_김소나_남지연_최희정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월요일 휴관

갤러리 175 Gallery 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2.720.9282

전문사 졸업생 여러분에게깊게 하는 일 "생각을 정리한다는 건 더 많은 정보를 자꾸 수평적으로 자꾸 풀러스하는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수평적 사유를 자꾸 확장하기 보다는 그걸 수직화 해서 깊이 있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게 필요한 거고 그건 어차피 독자들 개인이 할 몫이겠죠." "음... 한사람의 일생을 평가하는데 여러 가지 가치기준이 있을거에요. 그 사람이 세속적 가치에서 얼마나 뭘 이뤄냈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인생에 시대가 얼마나 들어와 있는가도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1월 15일에 작고하신 소주병에 "처음처럼"이라 쓰신 분의 인터뷰 중에서) ● 나는 얼마 전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을 보고 오사카로 가는 JR기차를 탄 적이 있습니다. 산맥을 통과해가는 기차의 디자인과 창밖에 회색지붕의 주택들은 설계도면에 자를 대고 그린 듯한 디테일한 풍경이었습니다. 기차의 속도도 냄새도 쾌적했습니다. 태평양인지 알았던 것이 비와호 호수였고, 울라프 엘리어슨의 야외에 설치된 나선형으로 빨강, 노랑, 파랑, 색유리를 두른(Color activity house 2010)작업을 생각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서울에 돌아와 얼마 후 사진을 확대해보니 그 색유리 안에서 찍은 인물사진이 흑백으로 나온 것입니다. 삼원색의 빛이 모아지는 각도에서는 무채색으로 나옵니다. 나는 시지각의 뒤틀림을 경험하였고 색상환표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았습니다. 당혹스런 감동이었습니다.

김지영_기억의 자세_실과 모터_가변크기_2016
노은주_풍경 밤_풍경 낮_캔버스에 유채_각 193.9×130.3cm_2015
박종일_Hast du lust #safety zone_잉크젯 프린트_103×153cm_2013
손현선_도는천장_캔버스에 유채_130.3×193.9_2015
한성우_풍경#7_캔버스에 유채_45×53cm_2015

지난주 새마을호와 시외버스, 무궁화호를 타고 대구-전주-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요즘 장거리는 KTX를 주로 이용했었는데, 새마을호나 무궁화호로 조금 천천히 가니 안보이던 풍경, 읽을 수 없었던 역 이름, 들과 산의 생김새, 바뀌는 옆자리의 승객들, 바람의 흔들림까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로 대구를 가는데 요금은 차이나도 시간은 10분밖에 차이가 안 납니다. KTX는 요금도 비싸고 시간은 훨씬 빨리 기능적으로 갑니다. 나는 간혹 도착지에 조금 천천히 도착한다 해도 조금 느린 기차도 타겠습니다. 아무리 잘 만들고, 잘 그린다고 한들 잘 보지 못한다면 좋은 미술가는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잘 보는 미술가"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위해 간혹 천천히 가는 기차를 타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앞날에 건투를 빌며 졸업전시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기억 하겠습니다. ■ 김지원

양승욱_4th Floor_디지털 프린트_100×150cm_2015
엄민희_손목_캔버스에 유채_41×32cm_2015
이유민_Image type-black_캔버스에 유채_145.4×121.2cm_2016
이진형_Max/msp programming_주식 데이터, 스피커, 모니터, 드럼, 기계장치, 우산_가변설치_2015

축하합니다. 조형예술과 전문사 2년의 짧은 과정을 정리하며, 제한된 시간과 환경 속에서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졸업전시를 개최하게 된 것에 조형과 모든 교수님들과 함께 큰 박수를 보냅니다. 졸업 후에도 한정된 상황은 반복될 것이고 충분한 시간과 조건이 좀 처럼 쉽게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작업을 한다는 것은 그 제한된 환경과 조건을 긍정적 방식으로 수용해야 하고 작가에게는 고도의 집중력과 사고의 거대한 확장을 부여해 줍니다. 그러한 경험은 늘 공존하는 고통이기도 하지만 마음의 행복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의 반복이 누적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깊이와 완성도가 몸에 밴, 신뢰할만한 작가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졸업생들이 그 주인공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 조형예술과는 평면, 판화, 입체, 사진, 홀로그래피, 비디오, 뉴미디어, 유리, 도자 와 같이 다양한 매체를 한 곳에 모두 혼합해 놓은 것입니다. 다양한 형식과 실험적인 방법의 결과물들입니다. 오늘은 같이 졸업하는 동료들의 작업에 다시 한번 집중하길 바랍니다. 어디로부터 그 생각이 시작되었는지, 왜 그런 형식의 표현 방법을 취했는지, 그(녀)의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서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겠지만 다시 한번 서로에 빠져서 집중해 보기 바랍니다. 아마도 새로운 세상이 다시 내 눈 앞에 나타날 것 입니다. ■ 이주용

권씨(권남득)_기계적 오류_자작 3D 프린터, 기계장치, Arduino, 조명_190×150×210cm_2015 권씨(권남득)_열병식 閱兵式 military parade_ 가상스케치(스테인레스 스틸, 모터, 기계 장치, LED)_260×480×210cm_2016
박아름_퐁_종이에 과슈, 수채_35×37cm_2015
우한나 _뭉게뭉게_이미지(종이에 아크릴채색) 현수막 인쇄_162×231cm_2015
윤세라_종로 재난 미스테리 추적 여행 단편소설 『삼일지』 page 103_단편소설_18.7×12cm_2015
이유성_오늘은 어제와 그제, 1년전 오늘의 합_방안지에 색연필_75×66cm_2014

이성의 시대 ● 파스킨은 매일 저녁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작업을 멈추고 성장을 했습니다. 밤마다 벌어지는 광란의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서지요. 중절모와 깔끔한 정장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지만 특별한 파티를 위해서 정성들여 화장을 하는 날 도 있었습니다. 멋진 의상과 위트 넘치는 유머로 파스킨은 언제나 시끌벅적한 파티의 중심인물 이었습니다. "몽파르나스의 황태자"-그것이 그의 별칭이었지요. 당시 몽파르나스의 카페와 클럽에서는 밤마다 화가, 조각가, 문인, 창녀들이 어우러져 술과 마약, 기괴한 이벤트로 이어지는 데카당한 파티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카페 로통드(La Rotonde)와 르 돔(Le Dome), 클럽 르 자키(Le Jockey)등이 그들의 주 무대였지요. 당시의 몽파르나스는 보헤미안 예술가들의 해방구였던 것입니다. 숱한 예술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고 헤밍웨이, 에즈라 파운드, 장 꼭도 등 여러 문인들 역시 이곳에서 예술의 자양분을 얻어 갔습니다. 우리 시대 예술의 노마디즘이 여기서 시작 된 것일까요? 우리는 이들을 느슨하게 엮어서 『에꼴 드 파리』라고 부릅니다. ● 그중 파스킨은 진정한 보헤미안 이었습니다. 스페인계 유태인으로 불가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독일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프랑스, 영국, 미국, 쿠바, 알제리,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을 떠돌며 한곳에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파스킨은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1930년 45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것도 화랑과 전폭적인 후원 계약을 맺고 그의 개인전이 열리기 전 날 밤, 욕실에서 자신의 손목을 예리한 칼날로 그은 것 입니다. 그의 장례식 날, 그가 둥지를 틀었던 카페의 웨이터와 바텐더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고 근무함으로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합니다.

김대현_GalAxY messiah_자기_240×120cm, 설치_2015
김상현_자리 place_세라믹, 실, 못_가변설치_2014
김소나_정지된 움직임_세라믹_가변크기_2015
남지연_기념촬영_캔버스에 유채_73×61cm_2014
최희정_untitled_코튼, 와이어_가변설치_2015

광란의 시대였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는 철저하게 돈키호테 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비평가들의 혹평과 화가로서의 무력감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자신의 인생을 구경거리로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죽음까지도... 마치 기획된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시대 어느 누가 출세가 보장된 이벤트를 앞두고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을까요? 그 시절이 "광란의 시대"라면 우리 시대를 '이성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담론을 생산하고 그 담론의 그물망 안에서 작품을 생산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꽤나 논리적이고 학구적입니다. 하지만 그 수많은 담론의 이면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집니다. 『에꼴 드 파리』 화가들의 퇴폐적인 삶이 지나치게 센티멘탈한 측면이 있다 해도 그곳에는 삶에 대한 진심이 묻어있습니다. 반면에 우리시대 담론은 지나치게 자가생산적입니다. 거대한 스케일과 화려한 볼거리, 그럴듯한 이론으로 포장된 수많은 제스처들이 우리시대 미술의 하늘을 덮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쩐지.... 진심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 졸업생들에게 보내는 글이 푸념처럼 되어 버렸네요? 그동안 정말 많은 생각들이 여러분의 머릿속을 채워 왔으리라 생각됩니다. 탈 식민, 기호, 개념, 관계미학, 젠더, 마르크스, 벤야민, 시뮬라크르... 등등 정말 머릿속이 복잡하지요?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은 아마도 "진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예술은 "이성의 시대"에도 여전히 고질적인 열병입니다. "광란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 곽남신

Vol.20160216g | 해빙기 thaw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