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밖에

looking in meaning out展   2016_0224 ▶︎ 2016_030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안상락_이동주_이병권_이현정_이환준 이희진_장상기_조태종_채영란

주최 / 상명대학교 포토아카데 사진예술고급반

관람시간 / 10:00am~06:00pm

경인미술관 Kyung-In Museum of Fine Art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11-4 제2전시실 Tel. +82.2.733.4448 www.kyunginart.co.kr

뜻, 밖에 사진은 내 마음 같지 않다. 뜻, 밖에 사진은 내 시야 밖에서 포착되고, 뜻, 밖에 사진은 말이 없다. 빛으로 그려진 그림, 사진은 내 앞에서 또렷하게 세상을 밝혀주는 듯하지만, 정작 사진으로 타자와 대화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녹녹치 않다. 사진이 말보다 어려운 것은 사진이미지의 모호함과 의미화될 수 없는 존재론적 영역을 노출시키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도움 없이 사진만으로 작가의 마음과 의도를 전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혹시 사진만으로 작가의 마음과 의도를 전달했다면, 그것은 순수한 사진이미지 그 자체는 아니다. 그것은 이미지이기를 포기한 텍스트로 읽혀지는 도상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사진이미지로 누군가와 대화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만약 사진이미지의 헐벗은 의미들을 채우려 한다면 기존의 코드에 철저히 접속을 하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빈약한 사진의 의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둬야 한다. 아니 보다 더 적극적으로 텅 빈 상태로 이미지에 달라붙은 의미들을 지워야 한다. 그때 사진에 의미를 부르는 것은 뜻, 밖에서 온다. 사진을 그림과 혼동하거나 말로 설명하려 할 때 사진은 죽는다. 이 사실을 망각하면 사진 작업은 힘들다.

안상락_혼돈과 질서_피그먼트 프린트_10×20cm_2015

안상락 ● 한 손으로 자동차 핸들을 잡고 또 한 손에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포착된 서울의 밤길들. 그가 보았고 만났던 것들은 이 사진들에서 모두 지워졌다. 그러나 그때 그곳에서 존재했던 빛들은 순식간에 포착되어 흘러서 그 흔적의 자국들이 넘쳐난다. 찰나가 흐르는 시공간의 새로운 탄생인 것이다. 안상락은 사진의 무의식적 시각을 적극적으로 실험하면서 우리가 본다는 것은 무엇인지 사진의 객관세계란 무엇인지 질문하고 있다.

이동주_초록 무덤_피그먼트 프린트_21×29.7cm_2015

이동주 ● 한강변 외래종의 식물들이 토종의 나무들을 덮어 가리면서 기괴한 형상을 띤 초록 무덤이 되었다. 문명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과거에는 있을 수 없었던 유전자 전파는 치유할 수 없는 또 다른 자연의 재앙을 불러드렸다. 이동주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자연의 순환 앞에 역행하는 문명 비판적 관점을 관조적 풍경사진에 이입시켰다. 그래도 자연의 힘은 인간보다 더 크고 경이로울 것이다. 그의 사진 앞에서 인간의 미약함을 느낄 수 있다면 다행이다.

이병권_창은 나이다_피그먼트 프린트_39.15×58.72cm_2015

이병권 ● 안과 밖을 가르는 창은 사이 경계에 있다. 창은 방 내부도 외부도 아닌 그 양쪽을 이어주는 경첩 같은 존재다. 이병권은 창을 통해서 자신을 본다. "창이 곧 나"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곧 안과 밖을 이어주는 사이 존재이자. 내부도 아니고 외부도 아닌 존재인 것이다. 마치 불교의 화두처럼 사진을 찍으면서 선택한 창은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대상이 되었다. 그의 작업은 찍혀진 대상의 형상도 의도도 불확실한 사유하는 사진 작업이다.

이현정_문밖에 두고 온 모든 어제_피그먼트 프린트_110×60cm_2015

이현정 ●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만약 안개가 색이 있다면 그것은 필시 현실에서가 아니라 방향 감을 상실한 꿈속에서 일 것이다. 마치 안갯속에서 길을 잃고 서있는 것처럼 가시적인 모든 색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광선의 파장에 따라 서로 다른 생명체가 지각하는 각기 다른 감각적 현상일 뿐이다. 사진에서 표준색온도를 맞춘다는 것은 인간이 만든 가공된 색을 쫓는 일과 같다. 이현정의 작업은 결코 가공된 표준색을 재현하지 않았다. 빛으로 빚은 과거 시간들이 응축되고 압축된 "문밖에 두고 온 어제"의 흔적이 만든 색의 존재감이다.

이환준_카메라 유희_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2015

이환준 ● 놀이처럼 자유롭게 작업하는 이환준의 작업은 역설적이게도 참으로 진지하다. 그는 단순히 사진의 객관적 재현이나 사실적 묘사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런 결과 카메라를 흔들어 놀랍도록 기묘한 형상을 만들었다. 화가가 붓으로 작업하는 방식을 카메라에 적용해서 사진가도 화가처럼 창작행위를 할 수 있지 않을까를 스스로에게 묻고 작업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업이 전적으로 그림의 성질을 가지는 것도 아니다. 의도된 회화적 이미지와는 다르게 사진의 우연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개입시킨 유희하는 사진이다.

이희진_숲으로_피그먼트 프린트_80×53cm_2015

이희진 ● 숲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관심조차 없이 나뭇가지와 그 흔들거림에 번지는 햇빛과 불어오는 미풍에 잠시 머문 시선은 아무도 그 심정을 알지 못한다. 평범한 아무 곳에서나 본 듯한 익숙한 숲길. 이희진의 맑은 풍경은 스치듯 지나쳤던 그런 무관심한 풍경들이다. 정지된 사진 속 풍경은 불현 듯 낯설게 다가와 더욱 미묘한 디테일을 드러낸 뉘앙스. 이희진의 사진은 그래서 시적이다.

장상기_고성,동네 바다_피그먼트 프린트_20×25.4cm_2015

장상기 ● 강원도 고성 동네 바다. 직장 따라 흘러들어온 곳. 어쩌다 정부치고 살다 보니 이곳이 고향 같다. 사진 한답시고 할 일 없이 빈둥거리다 마주친 동네 이곳저곳의 모습들. 뭐 특별한 의미를 두고 담은 것은 아니지만 시선이 머물렀던 장소와 사물들, 사람들의 흔적과 냄새. 멋 부리지 않아서 그대로인 모습이 그를 닮았다. 장상기의 사진은 강원도 하면 떠오르는 그 흔한 대표적 모습도, 의미심장한 마을 다큐멘터리도, 예술로 미화된 바다도 아니다. 이렇듯 솔직한 태도에서 오는 설득력과 공감. 사진에 주관美의 가치와 힘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조태종_경계에서 꼼지락 되던 것들_21×29.7cm_2015

조태종 ● 아름다워서 꺾어 두었던 그 모든 것들은 살해당한 것들이다.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에 양육되는 생명들은 진정 사랑이 아니다. 키우다 버린 화분에서, 봄나들이 상춘객 손에 들려진 꽃들에서 마음이 시들하면 금방 버려지는 것들에 그는 슬퍼한다. 조태종은 의식을 치르듯 이름 없는 잡풀과 죽음 식물에 영상을 투사하고 사진을 찍어 아직 남아있었을 다하지 못한 생명과 영혼을 부르는 애도 작업이다.

채영란_기억과 도시의 미_40×50cm_2015

채영란 ● 도시를 꿈꾸던 농촌의 어린 소녀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지금 여기 도시 한복판에 살면서도 무언가 늘 그립다. 부끄럼 없이 열심히 살았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이 도시는 그녀를 채울 수 없다. 스펙터클한 도시의 화려한 불빛은 어릴 적 꿈의 모습과 닮았지만 결코 어머니의 품속은 아니다. 채영란은 자신의 기억들이 더 이상 사라지기 전에 근원적인 것을 붙잡고 싶었다. 환상적인 도시 이미지와 충돌하는 옛 고서적의 모던한 닮은 꼴은 매우 상징적이다. 마치 블랙홀 충돌(빅뱅현상)에서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의 휘어짐처럼 말이다. ■ 이영욱

Vol.20160224b | 뜻, 밖에 looking in meaning out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