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cape is Painting, Face is Painting, Abstract is Painting

최인선展 / CHOIINSUN / 崔仁宣 / painting   2016_0227 ▶︎ 2016_0326 / 일요일 휴관

최인선_Face is Painting_캔버스에 유채_60.6×45.5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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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227_토요일_04: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소피스갤러리 SOPHIS GALLERY 서울 강남구 역삼로 218(역삼동 770-6번지) 재승빌딩 B1 Tel. +82.2.555.7706 www.sophisgallery.com

색채의 애니미즘, 회화적 스크래치 ● 최인선의 최근작은 물감이 지닌 물성의 자유를 최대한 허용한다. 과거로부터 이미 『영원한 질료』와 같은 시리즈를 통해서, 색과 형태를 위한 물감의 도구적 측면을 지양하고, 물감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그림을 추구해 왔지만, 그것이 극단적인 추상을 벗어나 구체적이고 다양한 형상을 투영하여 구성한 것이기에 의미가 있다. 수많은 형식적 실험과 끝없는 질료적 시도를 통해 회화의 물질적 가능성을 탐구해왔던 그의 붓질은 이제 채움이 아니라 빈틈을 만드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그로 인해 오히려 물감의 촉감은 그 특유의 유연함과 윤택함으로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최인선_Landscape is Painting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15~16
최인선_Landscape is Painting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15~16

무심(無心)과 허심(虛心)의 필치는 캔버스 위에 먼저 찍힌 물감이 그 다음의 물감을 부르고 호응하면서 화면에 자연스런 리듬을 부여하고, 그런 물감의 파장과 운동은 인물이든, 꽃이든, 풍경이든 어떤 구체적인 형상으로 귀결된다. 단속적이고 활달한 필치, 강렬하고 주관적인 색채는 야수파적인 생동감으로 표출된다. 강렬한 필치로 감각주의로 흘렀던 인상주의에 정신적 깊이를 새겨 넣었던 반 고흐와, 그림을 대상으로부터 독립한 색과 형태의 조형질서로 승화시킨 폴 고갱이나 나비파의 중간 지점에 야수파는 서 있었다. 때문에 최인선의 화면 속에서 강렬한 순색(純色)의 울림을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물감의 자율성-색채 그 자체가 형태가 되고, 형태 그 자체가 색채가 되는-을 획득한 마티스의 선취를 다시 읽게 된다.

최인선_Landscape is Painting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15~16
최인선_Landscape is Painting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15~16

1890년 모리스 드니가 "회화란 전쟁터의 말이나, 나체의 여인, 또는 어떤 개인적인 일화를 그리기 이전에 순수하게 근본적으로 일정한 질서에 의해 배열된 색채로 뒤덮인 평면이다."라고 현대회화의 정의를 내린 이후 백년이 훨씬 지났다. 그것이 일종의 클리셰(cliché) 같아 보일지는 몰라도 최인선은 '그리기'의 순수성을 회복시키고 '회화적인 것'의 영역을 넓히기 위한 회화사의 실험들을 꾸준히 지속해왔다. '보는 것'과 '아는 것', 즉 감각과 인식의 현상학적 상관관계를 캔버스라는 장(場)과 틀 속에서 회화적 언어로 구축하고 또 해체하려는 시도들을 멈추지 않았다.

최인선_Landscape is Painting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16
최인선_Landscape is Painting_캔버스에 유채_90.9×65.1cm_2016

최인선의 한쪽 끝이 마티스의 색선(色線)이라면 또 다른 한쪽 끝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색면(色面)이라고 할 수 있다. 완성되었다고 생각되는 화면 위에 편평한 붓으로 속도감 있게 지나가는 성긴 필획은 상식적인 화면의 평면성에 또 다른 차원을 더해준다. 화면 위로 중첩되며 지나가는 붓질은 작가 자신의 의식의 흐름과 신체적 운동의 과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바탕의 붓질은 위로 덮쳐오는 붓질의 틈새에서 자신을 은은하게 내비치고, 설사 새로운 색채에 덮여졌다 해도 감춰진 본성을 포기할 줄 모른다. 그것은 소멸된 것이 아니라 반투명한 색채의 막 아래에서 미세한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최인선_Face is Painting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16
최인선_Face is Painting_캔버스에 유채_50.5×40.5cm_2015

지우면서 그려가는 시간의 그림은 화면에 깊이를 만들어가며, 우연일지 모를 완성의 과정까지 회화의 모든 에너지를 품고 간다. 닦아내면서 덧붙여지는 광채와 아우라, 오래된 물건들의 바탕 속에 서려있는 시간의 그늘 같은 것은 그림의 표면이 아니라 이면에 집중하게 만든다. 최인선의 붓은 두껍고 빠른 필선으로 아직 마르지 않은 물감 위에 새로운 물감을 덧칠하고 있지만 그것은 칠하는(painting) 것이 아니라 넓게 그리고(drawing) 긁어내는(scratching) 것이다. 그의 붓질이 더해질 때마다 바닥 깊은 곳에서 살아있던 색채들이 후광을 비추기 시작한다.

최인선_Landcape is Painting, Face is Painting, Abstract is Painting展_소피스 갤러리_2016

코리나 벨츠(Corinna Belz)의 다큐멘터리 필름 「게르하르트 리히터 회화(Gerhard Richter Painting)」(2011)를 보면 리히터의 작업과정이 나와 흥미롭다. 그림의 마무리를 붓 대신 스퀴지(squeegee)로 하는 '그림의 마지막 황제'가 그리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추상의 모습은 상처 나고 긁히고 지워진 색채의 흔적뿐이다. 리히터의 추상적 형상이 스퀴지의 움직임으로 생겨난 해체된 형상과 얹힌 질감을 통해 불확정성의 숭고함을 던져주었다면, 최인선의 애니미즘적인 필획들은 색채와 형상의 자유로운 유희를 통해 질료 그 자체의 불변성을 재확인시켜주는 회화의 생래적 욕망을 쏟아내고 있다. 리히터는 말한다. "나는 내가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그림을 완성하고 싶다. 예기치 못한 선택과 우연, 영감, 그리고 파괴의 요소들로 만들어지는 특정한 타입의 회화, 하지만 결코 미리 정의되지 않았던 회화…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 이건수

Vol.20160227b | 최인선展 / CHOIINSUN / 崔仁宣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