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리듬, 질박한 휴먼의 노래

김환기展 / KIMWHANKI / 金煥基 / painting   2016_0301 ▶︎ 2016_0411 / 백화점 휴점일 휴관

김환기_New York 3-5-71 #203_코튼에 유채_213×152cm_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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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

관람시간 / 10:30am~08:00pm / 금~일요일_10:30am~09:00pm / 백화점 휴점일 휴관

신세계갤러리 센텀시티 SHINSEGAE GALLERY CENTUMCITY 부산시 해운대구 센텀남대로 35(우동 1495번지) 신세계 센텀시티 6층 Tel. +82.51.745.1508 shinsegae.com

신세계갤러리는 신세계 센텀시티점 7주년과 신세계몰 오픈을 기념하여 『김환기: 자연의 리듬, 질박한 휴먼의 노래』展을 개최한다. 우리는 수화 김환기를 일컬어 한국 근∙현대미술의 거장, 한국 최초의 추상화가, 아방가르드의 선구자라 부른다. 이는 우리 미술사에서 그가 얼마나 중요한 작가였는지 상찬하기 위해 붙는 수사지만, 사실 그는 그런 거창한 호칭보다는 무언가 따스한 말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는 그저 자유롭게 자연을 바라보며 그 속에 운율과 리듬을 찾고 우리 민족의 애잔함을 노래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미학자이자 환기미술관 초대관장 조요한 선생은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질박한 휴먼의 노래를 부르라고 권유하는 것이 수화의 예술세계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김환기의 삶과 작품세계를 꿰뚫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김환기는 자연을 바라보며 운율과 리듬을 찾고 이를 가지고 우리의 삶과 마음을 매만지는 사람의 노래를 불렀다.

김환기_점_종이에 채색_58×42cm_1969

1913년 남도의 작은 섬 안좌도에서 태어난 김환기는 일제강점기에 그림을 시작했다. "어떠한 연이 아니라 부지중 극히 자연스럽게 그림을 하게 되었다"는 김환기는 남도의 풍요로운 자연 안에서 화가의 꿈을 키우며 서울로 또 일본으로 공부를 위해 떠났다. 학업을 마치고 고국을 찾은 김환기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는 중에 서울대 교수, 홍익대 교수 및 학장, 미술협회 회장, 예총 부이사장 등을 역임하고 한국최초의 미술동인 『신사실파』를 조직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펴갔다. 김환기는 바른 미술대학과 제대로 된 미술관 설립이 좋은 작가를 길러낼 수 있고, 그로 인해 우리의 피폐한 삶 속에 예술이 자리잡아 상처들을 어루만져 치유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의무감도 그림을 열망하는 김환기를 잡아두진 못했다. 그는 1956년 파리로 건너가 4년간 체류하며 그림을 그렸고, 이후 63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참여한 뒤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뉴욕에 정착하여 가난 속에 하늘과 산, 별과 달을 그리다 삶을 마감했다. ● 이번 전시는 그의 예술세계의 절정기라고 일컬어지는 뉴욕시기(1964-1974)의 중요작품들을 선보이는 자리이다. 김환기는 뉴욕으로 건너간 후 실험과 모색의 시간을 갖다가 국내에는 한국일보가 개최한 『한국미술대상』展에 처음으로 신작 하나를 선보였다. 그리고 이어 작고하기 3년 전인 1971년에 신세계갤러리에서 신작들을 모아 보여주는 개인전을 가졌다. 이 전시에서 그는 기존과는 다르게 점과 선으로만 이루어진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는 "이번 작품들은 영구보전 할 생각으로 간직해왔던 것들"이라며 지인인 홍익대 교수 윤형근에게 편지를 써 심혈을 기울였음을 고백했다. 이 전시는 한국의 평론가들 사이에서 많은 논쟁을 낳았는데, 작품의 외형이 마치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추상표현주의 혹은 색면회화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의 외형이 달라졌다고 김환기가 대세에 물들었다든가 추구하던 세계가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초대관장 이경성 선생은 이 전시를 보고 다음과 같은 편지를 김환기에게 썼다.

김환기_무제_코튼에 유채_213×153cm_1971

"수화 형! 어제 형의 근작전이 신세계화랑에서 있어서 나가보았습니다. (중략) 모인 사람들은 형의 변모된 작품세계에 초점을 맞추어 활발한 토론이 오고 갔습니다. 어떤 사람은 형의 작품은 그전 것이 좋고 순수추상에의 전환은 비록 형으로서는 필연적인 탈출구라 하더라도 자연형상 속에서 멋을 발산하던 수화 형의 기왕의 작품세계와는 걸맞지 않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이런 주장에 대하여 나는 크게 반대했습니다. 수화 형에게는 표현의 방법이 자연형태를 긍정하든, 추상수법을 쓰든 자신의 체질을 바탕으로 하는 수화미학에는 하등의 변함이 없으며 오히려 자연형상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보다는 추상으로 변모하는 바람에 개별에서 보편으로, 특수에서 전체로 확대 심화된 형의 미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고요." (이경성) ● 김환기는 이 시기 점과 선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작품들을 제작하며 "내가 그리는 선(線), 하늘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點).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江山)..."이라고 적었다. 이경성의 말대로 화면에 기존에 보이던 산과 달, 백자 등의 형태들은 사라졌지만 작품세계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순수추상으로의 전환은 보다 폭 넓은 설득력을 얻기 위해 "개별에서 보편으로, 특수에서 전체로" 나아간 것뿐이었다. 김환기는 뉴욕에서 "일을 하며 음악을 들으며 혼자서 간혹 운 때가 있다. 음악, 문학, 무용, 연극 모두 사람을 울리는데 미술은 그렇지가 않다. 울리는 미술은 못할 것인가"고 적었다. 이번 전시는 저 애절한 수화의 글에서 느껴지는 감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전시이다. 화면 위에 펼쳐지는 자연의 조화로운 리듬, 그 속에 맺혀있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이 우리의 깊은 곳을 어루만진다. 그는 이 시기를 통해 그가 꿈꾸던,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눈물을 자아내는 대작들을 그려냈다.

김환기_메아리-3_캔버스에 유채_210×160cm_1965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 중 150호의 '메아리 시리즈' 2점은 김환기가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기존의 화법을 버리고 새로운 조형언어를 고민한 결과 제작된 대작으로 1963년에 이어 다시 나가게 된 제8회 《상파울로 비엔날레》(1965) 특별전에 출품된 소중한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화면 위에 형상이 사라지고 순수추상으로 들어가는 도정을 보여주고 있어 김환기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의 절정기의 수작으로 꼽히는 대형 '점화' 2점도 선보인다. 자연과 우주의 운율을 그리며 고향과 친구들을 생각한 김환기의 노래가 고스란히 흐르는 작품들이다. 이 전시는 김환기의 수작을 흔쾌히 출품해준 환기문화재단과 소장가들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의 말씀 올린다. 어렵게 만들어진 『김환기: 자연의 리듬, 질박한 휴먼의 노래』展을 감상하며 그가 뉴욕과 다를 것 없는 환경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공을 초월하여 들려주는 아름답고 애잔한 노래를 들어보시길 바란다. ■ 신세계갤러리

Vol.20160302i | 김환기展 / KIMWHANKI / 金煥基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