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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영展 / SONWONYOUNG / 孫元映 / painting   2016_0401 ▶︎ 2016_0410 / 월요일 휴관

손원영_Relaion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과슈_53×72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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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402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30am~07:3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자인제노 GALLERY ZEINXENO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길 9-4 Tel. +82.2.737.5751 www.zeinxeno.com

'관계'와'사이' ● 손원영의 작품세계는 '관계'와 '사이'를 보여준다. 작가가 만난 사람들, 작가가 만난 풍경들 '사이'의 '관계'가 작품이 된다. 작가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블록장난감과 같은 조각들을하나하나 만들고 엮어서 전체 작품을 창조한다. 물론 그 조각들은 직육면체의 정형화된 규격의 레고 블록이아니라, 액체였던 물감이 고체의 질료가 되어 형성하는 비정형의 작은 단위들이다. 하나의 물감선은 그 처음과 끝이 연결되어 평면이 되고 나아가 입체가 되어 하나의 개체가 된다. 아니 평면과 입체 그 사이에 존재한다. 이것은 블록들이 한치의 틈이나어긋남 없이 계획된 틀에 끼워 맞춰져 구축되는 구조물이 아니라, 구멍이 숭숭 뚫린 가녀린 개체들의 우연적인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겹겹의 세계인 것이다. 이렇듯 '비어있지만채워진', '우연이지만 필연의', '입체 같은 평면의', '화면으로서의 공간'이 탄생된다.작품은 그 대조와 모순의 '사이' 어딘가에 있다. 이렇듯 그의 예술은 작은 개체들이 자기도 모르게 완성해가는 진행형의 전체이다. ● 손원영의 작품들 각각은 단색으로 존재한다. 또한 각 개체는 하나의 순수한 색으로 자신이 사용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하늘색, 보라색, 연두색, 노란색, 갈색 … 부드럽고따뜻한 색들이 멋 부리지 않고 따뜻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왜 이처럼 순수하고 단순한 색이어야 할까? 아마도 우리가 그녀의 작품에 가까이 다가 갈수록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 조각조각의 단위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기 때문이다. 각 단위들모두가 제 각각의 화려한 색을 자랑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럴 수 없다.우리의 눈으로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가녀린 두께의 개체조각들은 자신을 뽐내지 않고 전체를 위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들은 겹쳐지고 흩어져 스스로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이루고 있다. 그무엇인가는 작가의 어머니의 모습일 수 있고, 존 레논의 모습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작가만이 아는 그 누군가 일 수 있다. 또는 그가 가 본숲 속일 수도 있고, 상상의 그곳일 수도 있다. 작은 조각개체들은자신도 모르게 남과 어우러지면서 어떤 형상을 만든다.   

손원영_Relaion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과슈_91×116.8cm_2016
손원영_Relaion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과슈_45×53cm_2014
손원영_Relaion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과슈_45×53cm_2016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좌표 위에서, 자기도 모르게 어떤 큰 그림을 만들어가는 하나의 작은 단위인지 모른다. 작가가창조한 '물감조각', '물질조각'으로서의 개체들처럼, 나는 남과 같지만 조금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의지하며 이 세계에서 자그마한 한 귀퉁이를 차지하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렇듯 우리들 각자는 이 세계에 와서 어떤 시간과 공간을 점하여 살아가는, 같은듯 다른, 다른 듯 같은 존재이다. 작디 작은 우리들이 구성하고있는 큰 그림은 그 평면 속 제약에 갇혀 있다면 도저히 볼 수 없는, 차원을 달리한 시각으로 거리를두고 봐야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는 조물주가 시공을 초월해 인간을 바라보는 그런 시각과 닮아있지않을까? 그러나 작가의 시각은 초월적이지 않다. ● 그가 창조해내고 있는 세계는 작가 자신이 개입된, 작가가 인연 맺고 있는 세계이다. 나와 분리된 타인들이 아니라, 내가 그들인지, 그들이 나인지 구분할 수 없는 우리이다. 내가 세계의 중심이 되어 풍경이 나를 둘러싸는 것이 아니라, 어느덧나는 풍경 속 일부가 되어, 가장자리 어딘가에 있을 그런 풍경이다. 그야말로풍경과 나, 사람들과 내가 구분할 수 없는 '하나들(ones)'이 되어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는 것 같다.

손원영_Relaion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과슈_45×53cm_2014
손원영_Relaion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과슈_33.4×53cm_2015
손원영_Relaion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과슈_45×53cm_2016

이렇듯 '관계'는 모였다가 흩어졌다가 한다. 작가가 이렇게 작은 조각들, 개체들을 표현의 틀로 고집하는 이유는 이러한 '이합집산(離合集散)'의 세상사를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그 관계 속 타자(the other)가문득 나에게 다가왔다가 어느새 멀어지기도 하고, 타자로부터 내가 밀쳐지기도 하고 끌려가기도 한다. 내가 타자를 잡아당기기도 하고 떨쳐버리기도 한다. '관계'는 이렇듯 가깝고 멂의 '사이'에있다. 그 '거리'에대한 '감'은 늘 다르다.가까이 있어도 멀게 느껴지고, 멀리 있어도 가깝게 느껴진다. ● 신비롭게도, 그의작품은 이렇듯 각 개체만이 있다면 결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개체들이 작가의 '조물(造物)'의 힘을 받아 모이고 흩어지면 하나의 공간으로 '자리를얻고/사건이 일어나게(take place)' 된다. 작가와 그 작은 조각들 '사이'에서작품은 '존재로 도래하고(come into being)', '생성된다(becoming)'. 이것은 왠지 모르게, 플라톤의 “티마이오스(Timaios)”에서 언급되었고 데리다에 의해 재조명된'코라(chôra)'의 개념을 연상시킨다. 코라는 예술가로서의 조물주에 의해생성되는 우주의 '모든 생성의 수용체(Receptacle of allBecoming)' 또는 '모체(matrix)'이다. 코라는 생성되는 것도 아니고 파괴되는 것도 아닌, 모성적인 불변의형상(form)이다. 그러나 이것은 감각도 아니고 지성도아니며, 어떤 감지 가능한 형태도 갖고 있지 않다. 코라는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공간(space)이지만, 이해될 수없는 도형들이 채우는 우주를 예비하는 공간 아닌 흔적이다. ● 손원영의 작품은 이처럼 존재가 형태를 갖기 전, 존재가 사건이 되기 전, 알 수 없는 도형들이 채우는 우주생성의공간처럼, 모체로부터 산종되는(disseminated) 모든것을 잉태한 '무(nothingness)'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무 것도 아니기에 어떤 것도 될 수 있는 코라 말이다.  ■ 갤러리 자인제노

Vol.20160402j | 손원영展 / SONWONYOUNG / 孫元映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