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서_작업실 로와_ordinary freak Ⅲ

김정아_마루_송영아_엠케이_Oreo展   2016_0402 ▶︎ 2016_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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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402_토요일_06:00pm

작가와의 대화 / 2016_0416_토요일_11:00am

관람시간 / 11:00am~11:00pm

공간 이다 alternative culture space IDA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로 271(창우동 249-7번지) Tel. +82.31.796.0877 blog.naver.com/space-ida www.spaceida.com

우리는 모두 경계에 서있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사건과 비사건의 경계,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 유한과 무한의 경계,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 일상과 일탈의 경계, 나와 타자와의 경계, 관계의 재구성, 모티브로서의 결여-창조, 해체를 통한 재영토화... 밖, 내밀함, 밤으로 명명되며 언어화 불가능한 토대로 존재하는 인식 불가능한 공간은 인간이라는 경계를 통해 인식 가능한 공간으로 전유된다. 또한 확정되거나 명백함 속에서 비 결정형의 밖을 지향하는 인간-경계는 그 지향성으로 실존하며, 인식 불가능에 대한 인식에도 불과하고 , 불가능성의 가능성으로 구조화 된다. 경계로써의 인간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 6년 전부터 사진에 대한 같은 인식을 갖고 있는 7명의 사진가들이 모여 이 경계에 대한 세 번째 ordinary freak을 시작하려 한다. 현상의 기록을 개별적 인식으로 오해하고 이를 보편성으로 획일화 하는 판타지에서 벗어나 개별성의 언어화를 통해 새로움에 대한 새로운 해석 - 진부함의 탈구축 - 을 통해 매체의 사진적 시도를 시도하고자 결성된 모임이다. 새로움에 대한 시도들을 몇 번의 전시를 통해 제시하고자 했다. 첫 번째 전시는 "사진적"이라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을 모색했고, 두 번째 전시에서 작업에 대한 개념에 집중했다. 이제 세 번째 전시 "경계에서"를 공간 이다의 도움으로 그 동안의 모색에 대한 결과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 전시로 이제 로와라는 사진가들의 목표인 새로움에 대한 새로운 시작 되지 않을까 한다. ● 로와에 속한 사진가들 중 5명의 작업을 통해 결여충족을 위한 창조로서의 차이와 반복, 무의미에서 드러나는 의미, 사고의 전재 없이 긴장감으로 구성되는 사건, 타자의 자기화를 통한 가능성, 이미지의 관계를 통해 구성되어 내면화하는 이미지를 진술한다. 이들 5인의 사진가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통해 구조에서만 숨을 쉴 수 있지만, 밖의 토대로 살아가야만 하는 중간자로서의 인간은 이미 경계임을 말한다. ■ 마루

김정아_The mere shadow_디지털 C 프린트_35×30cm_2014
김정아_The mere shadow_디지털 C 프린트_35×30cm_2014
김정아_The mere shadow_디지털 C 프린트_35×30cm_2014
김정아_The mere shadow_디지털 C 프린트_35×30cm_2014

The mere shadow ● 그녀는 그녀의 형상대로 인형을 창조했고 인종도 나이도 모두 뒤섞은 가면을 씌웠다. ● 가임기가 끝나가는 자신의 아이가 없는 한 여성이 자신만의 아이들을 만들어 내려는 의지로 시작된 작업은 그 안에 작은 아이러니를 실어 얼굴의 절반은 어른의 것을 갖고 있는 아이들을 창조하였다. ● 그렇게 시작된 작업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정형화된 DNA를 벗어나 한국이 낯선 외국인의 눈빛을 갖게 된 아이, 할머니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남자아이등 아주 자유롭게 인종, 성별, 나이에서 초월한 아이들로 변해갔다. ● 작업을 이어가던 어느날 그녀는 꿈에서 이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겪게 되었는데, 그 기묘한 경험은 이 아이들이 실재하는가 하지않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되었고, 그렇게 이 작업은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아이들의 증명사진으로 마무리 되었다. ● The mere shadow of one's former self. ■ 김정아

마루_이미지를 전유하기_디지털 C 프린트_67×100cm_2013
마루_이미지를 전유하기_디지털 C 프린트_67×100cm_2013
마루_이미지를 전유하기_디지털 C 프린트_67×100cm_2015
마루_이미지를 전유하기_디지털 C 프린트_ 67×67cm_2013

이미지를 전유하기 ● 상황 또는 사건에서 이미지로의 전환은 의미상실을 통해 낯섫음-물자체와 중첩되고는 했다. 이 의미의 인식과 상실의 중첩으로서의 이미지는 작업 속에서 다른 이미지와의 관계에서 새롭게 이미지를, 이미지의 재료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 재료 의해 구축된 내재적 이미지는 정확히 의미화를 위한 경계를 구성하는 듯 보인다. ● 새로운 무엇, 이미지들의 관계를 통해 관람자에게 내재적으로 구축되는 그 무엇은 개별적인 경계이자 경계 밖으로서 상징세계에 포섭되어야만 한다. 이 당위는 거부 불가능한 언어체계의 요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체는 상징의 부재로 인한 포섭 불가능성으로 은유 되지 않는 이미지에 의해 언어 밖의 존재성을 경험하게 될 수 밖에 없게 된다. ● 이것은 나의 무의식 또는 트라우마와의 충돌의 효과인 것이다. 그것이 현상의 기록의 과정에서이던 아니면 작업 결과물의 독해에서이던 동일하게 무엇인가를 던져주고 있었다. ■ 마루

송영아_무의미 vanity_영상_2015
송영아_무의미 vanity_영상_2015
송영아_무의미 vanity_영상_2015
송영아_무의미 vanity_영상_2015

무의미 vanity ●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中) ● 주위에 흔히 있는 존재여서 가치를 두지 않고 의미부여에서 제외된다. 제외된 것들은 무관심에서 그들만의 세상을 이루고 살아간다. 의미는 사람들의 가치에 따라서 의미가 있는 것들이 되었다가 때론 의미가 없는 것들로 탈바꿈한다. 목적과 용도가 다르다고 해서 의미가 없다고 판단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것들에 의미를 부여해 본다. 나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나란 존재도 이런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닐까? 세상에 보여지는 나의 모습도 이것들과 닮아 있다. 그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나를 찾는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 송영아

엠케이_사고없는 사건_디지털 C 프린트_60×90cm_2013
엠케이_사고없는 사건_디지털 C 프린트_45×60cm_2013
엠케이_사고없는 사건_디지털 C 프린트_45×60cm_2011
엠케이_사고없는 사건_디지털 C 프린트_40×60cm_2014

사고없는 사건1. "의미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의 모순적인 것이 아니다. 보이는 것은 그 자신이 보이지 않는 것의 뼈대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안 보이는 것은 보이는 것의 은밀한 보완적 상대방이어서, 보이는 것의 내면에서만 나타난다. 안 보이는 것은 세계에서 그런 그대로 내게 제시된 본래 제시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에서 안 보이는 것을 볼 수 없으며, 거기서 그것을 보려는 모든 노력은 그것을 사라지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보이는 것의 선상에 있고, 보이는 것의 잠재적인 초점이며, 보이는 것 내면에 새겨져 있다. (모리스 메를로 퐁티) ● 2. 어떤 객관적 사실은 그 대상에 대한 주관적인 경험을 통해 각각의 해석으로 남겨지게된다. 여기서 사고는 개연성이 사라진 현상 다시 말해 해프닝이 지워진 장소이며 사건은 내적 동요에 의해 새로운 리얼리티를 생산한다. 현상은 늘 무수하게 많은 주관에 뒤엉키고 그 주관성은 새로운 객관성을 생산해간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않는 리얼리티 우리에겐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으로 존재한다. ■ 엠케이

Oreo_My Story_잉크젯 프린트_40×30cm_2015
Oreo_My Story_잉크젯 프린트_30×20cm_2015
Oreo_My Story_잉크젯 프린트_30×20cm_2015
Oreo_My Story_잉크젯 프린트_30×20cm_2015

My story ● 찰나의 틈새는 언제나,어느새,우연히 발견되어진다.  나의 인식으로 점차 그 틈새가 벌어지면, 나는 기꺼히 그안을 표류한다. 그리고 사물과의 시간이 열리듯, 타인을 향한 시선속에도 교류가 생기는 때면, 이 외부로의 시선은 이내 나의 내면을 향한 시선의 발로가 된다. ● 특히 이 관계는,나의 물리적 관계함 없이 온전히 타인의 존재함이 나의 드라마로 귀속되는데  그들은 나의 주인공들이나, 그들이 아닌 나를 연기하고 있다에 가깝다. ● 나를 사로잡는 나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나의 모습을 혹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에  그들은 그들이기도 또 나이기도 하다. 나의 이야기속에서. ■ Oreo

Vol.20160403a | 경계에서_작업실 로와_ordinary freak Ⅲ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