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되어온 기억들의 자리바꿈

김경섭展 / KIMKYOUNGSUB / 金暻燮 / painting   2016_0406 ▶︎ 2016_0417 / 월요일 휴관

김경섭_absence_캔버스에 유채_145.5×224cm_2016

초대일시 / 2016_0406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_11:00am~05: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ARTSPACE H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29-4(원서동 157-1번지) Tel. +82.2.766.5000 www.artspaceh.com

방치되어온 기억들의 자리바꿈 ● 김경섭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기억을 사용한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전 작업들에서 보이는 것처럼) 장면에 대한 기억인지, (이번 작업에서 보이는 것처럼) 사건에 대한 기억인지에 대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어김없이 이번에도 작품 속 인물들의 얼굴 표정은 지워져 있어 우리는 그들이 행복한지 불행한지 아니면 그 어떤 감정도 느끼고 있지 않은 평온한 상태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뭉그러진 얼굴이 보여주는 것이야 말로 진실에 가깝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의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내가 그것을 진실로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작가의 말대로, 시간과 공간의 틈을 조금이라도 지니게 된 모든 기억은 '확실성'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며, 왜곡과 조작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 왜곡과 조작의 가능성을, 어떠한 연출도 가하지 않고, 우리에게 그대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현재 혹은 미래는 과거의 기억에 대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므로, 어떤 의미에서 과거는 현재 혹은 미래에 의해 다시 만들어진다고" 보았다는 점을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의 상은 불완전한 것으로 시간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자리바꿈된 것임을 설파하기도 하였다. 또한 다른 맥락이기는 하지만, 후기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이 시간과 거리의 간극을 지니고 있는 대상의 본래적인 진실성을 드러내기 위해 형상의 명확한 표현을 포기했다는 점 역시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김경섭_absence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16

이번에 작가가 활용한 중요한 소재는 바로 자신과 가족들이 소유해온 '과거의 사진들'이다. 하지만 그 사진은 '소유되어왔다기보다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그것들이 담고 있는 기억들과 더불어 방치되어 왔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이전 작업들에서 작가가 매스미디어에 등장해온 수많은 스타들의 얼굴과 현재 주위에 거주하는 주변인들의 얼굴을 중요한 모티프로 삼아왔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는 매우 획기적인 전환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러한 변화를 시도하게 된 것일까? 사실 이러한 변화는 소재뿐만 아니라 기법들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꼼꼼한 성격답게 붓 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매끈하게 처리해온 그의 작품들 위에 드디어 물감이 흘러내리게 되었으며, 마티에르가 자리 잡게 되었다. 아마도 작가는 자신을 가두고 있던 과거의 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경향을 바꾼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임을 알기에 의미가 있다 여겨진다. 드디어 작가 김경섭은 주변의 시선이나 유행에 편승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는 데 몰두하기로 결심한 듯하다.

김경섭_absence_캔버스에 유채_97×145.5cm_2016

이러한 결심을 실현하기 위해 그가 채택한 것이 바로 방치되어온 기억들이다. 과거는 현재 혹은 미래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지지만, 반대로 현재 혹은 미래를 새롭게 구성하는 자양분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고로 의미 없다고 여겨온 수많은 사건들을 반추하고 반성하는 것은 고귀한 일이다. 작가는 이번 작업을 통해 방치된 과거의 여러 장면들을 재배치하고 자리바꿈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여준다. 이에 김경섭은 월남전에 참전한 아버지의 사진 속 형상과 작가 자신의 군대 이미지를 결합하고, 예닐곱 살 때 질식사의 공포를 느끼도록 했던 마을의 다리 형상을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서핑을 즐기는 여성의 이미지와 결합하였다. 이에 더해 실제로 보았다고 굳게 믿어왔으나 실재하지는 않은, 유년기의 오로라에 대한 기억을 이미지화하기도 하였으며, 어린 자신을 안고 있는 어머니의 형상을 비현실적인 휴양지의 이미지와 결합시키기도 하였고, 아버지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다소 생소한 장면을 골프장의 이미지와 합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병치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이는 프로이트가 말한 기억의 '자리바꿈'과 다르지 않으며, 인간이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쾌락원칙'을 자발적으로 빗겨가는 행위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기억은 늘 '불쾌'를 넘어서 '쾌'를 위해 재편성된다지만, 그에게는 그러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쾌' 대신 '왜곡된 진실'에 몰두한다. 진실과 사실이 아닌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만큼 거짓인 것도 없기에, 그가 만들어낸 이렇듯 다소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장면들은 더욱 옳은 것처럼 보인다.

김경섭_absence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16

작가가 지닌 유년기의 기억 중에는 유독 다치고 상처 받은 것들이 많다. 스스로 거센 물살을 이겨낼 만큼 근력이 발달하지 않은 아이는 물에 빠져 죽음을 맞이할 뻔하였고, 낭만의 식물인 플라타너스에 걸려있던 장난감은 그를 수술의 공포로 내몰았다. 하지만 김경섭은 이러한 기억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낸 영웅적인 사건'으로 몰고 가지 않으며, 더욱 치밀하게 당시의 고통(진실)과 대면하고자 한다. 아마도 이는 예술가로 현재를 살아가는 그의 고독과 고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고로 그의 뭉그러진 얼굴들은 진실을 재현한다. 사실 이 세계가 아름답다 여겨지게 되는 동기 중에는 과거를 아름다운 것으로 치환함으로써, 현재를 더욱 격렬히 살아내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름답지 않은 진실을 목도하고 대면할 때, 우리는 비로소 현실에서 벌어지는 온갖 비현실적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어찌 보면 아름답지 않은 그리고 무자비하게 방치되어온 과거의 진실은 실재계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지만 결국 그 빈 공간을 언제나 확인시켜주는 objet a와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보여줄 김경섭의 작업이 그러하다.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고 시리지만, 이 공허함이 우리의 빈 공간을 채워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작가의 이러한 진지함과 전환이 너무도 반갑다. ■ 김지혜

Vol.20160408a | 김경섭展 / KIMKYOUNGSUB / 金暻燮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