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고찰 Brief Consideration

박은혜展 / PARKEUNHYE / ??? / painting   2016_0409 ▶︎ 2016_0501 / 월요일 휴관

박은혜_경종(警鐘)-겉모습이랑 상황에 속지마_한지에 한국화 안료_178×362cm_2015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16 Thinkartkorea 선정작가 기획 초대展

주최 / (주)신한화구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포네티브 스페이스 ponetive space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34 Tel. +82.31.949.8056 www.ponetive.co.kr www.thinkartkorea.com/gallery

유동하는 불안, 확장되는 세계 ● 박은혜는 화려한 물감 줄기로 엮인 세상을 그린다. 꿈틀거리면서 화면을 기어 다니는 강렬한 색채들은 사물의 견고한 구조를 단번에 흐물거리게 만들어 버리고, 액체처럼 유동하는 물감들 사이로는 심상치 않은 기운들이 채워진다. 그녀의 그림에서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건물도,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도, 심지어 땅에 뿌리를 박은 나무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꿈틀거린다. 이토록 사물들이 단단히 고정되지 못하고 부유(浮遊)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삶에서 경험하고 느끼는 감정에 집중하고 이것을 건져 올려 작업을 한다. 그림은 작가가 살면서 맞닥뜨리는 외부세계와의 갈등, 고립된 내부세계에 침잠된 기운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그것들은 일상의 공간, 삶의 이곳저곳에 얼룩덜룩 스며있는 불안으로 표현된다. ● 「갈증」은 옷장과 거울, 책과 화병이 있는 방안, 누구나 갖고 있는 공간을 그린 작품이다. 허물처럼 걸려 있는 옷, 낯선 공간을 비추는 거울, 방안을 떠다니는 책과 화병 등은 우리들이 눈 뜨면 바로 마주하는 공간에서 문득문득 떠올리는 환몽(幻夢)을 보여준다. 녹아내리는 사물들은 물이 되어 방안에 흘러넘치지만 작가는 갈증을 느끼고 만다. 「일상의 문제」는 작은 것에서 주제를 끌어올리는 박은혜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준다. 식탁 위 찻잔과 포트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 쌓아올려진 찻잔이 주는 불안함, 들끓는 찻잔이 주는 불길함은 일상에 안주하지 못하는 작가의 것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줄곧 고독했다는 것」, 「댓가」에서도 박은혜는 안전하지 못한 삶의 자리를 이야기한다. 「벽」은 울창한 숲속의 나무들조차도 깊숙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흘러내리고 마는 모습을 보여준다.

박은혜_THE WAY_한지에 한국화 안료_234×480cm_2016

박은혜의 그림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서 출발하지만 그럼에도 낯설다. 뒤섞인 색채, 한국화 안료가 주는 질감, 구불거리는 색선으로 분절된 형상들 때문일 것이다. 강렬한 색채의 대비는 흐르는 선들로 인해 접지되는 색면이 많아질수록 증폭되면서 열띤 감정들을 빚어낸다. 꿈틀거리는 색들은 끈적거리면서 서로 엉기는 대신 종이에 스미면서 흘러내린다. 박은혜의 개성은 이같이 독특한 표현방식에서 비롯된다. 서양화와 같이 강한 발색의 색채를 사용하면서도 한지에 자연스럽게 스미는 한국화법을 고수한다. 물기를 머금은 안료가 종이에 스미는 과정에서 화면에 만들어진 얼룩들은 우리 삶의 우중충함, 감정의 습기들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흘러내리는 눈물, 땀, 촛농, 떠다니는 모든 것들, 액화된 기운들이 화면에 고여 만들어낸 듯한 얼룩들은 화려한 색채와 버무려져 강한 진동을 뿜어낸다. ● 그림마다 보이는 구불거리는 선은 작가의 불안한 내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의식의 표현으로도 느껴진다. 혹은, 무한대로 분열하면서 증식하는 욕망으로 읽히기도 한다. 작가는 스스로 감정을 읽어내는 힘이 작업의 추동력임을 고백한다. ● "작업할 때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에 대해 가장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그림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는 것 보다 전체적인 작업이 하나의 의미로 나타내는 것이 하나의 스타일일 수 있겠네요." (작가의 말, 2016.2)

박은혜_THE WAY(8분의 2)_한지에 한국화 안료_117×180cm_2016

그렇다면, 작가의 작업들을 관통하는, 전체적인 작업이 나타내는 의미는 무엇일까. 7m에 이르는 큰 화폭으로 감상자를 압도하는 「The Way」가 그 실마리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구불구불 나아가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어서 꿈틀거리는 선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구불거리는 선들은 단지 화면을 장식하기 위하여 그림 속에 고이고 뒤엉키고 마는 것들이 아니라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대작을 가득 채운 색채의 진동에서 젊은 작가의 패기가 느껴진다. 그림 속에는 다양한 은유가 숨겨져 있다. 작가는 순간순간의 감정을 포착하여 시각화한 퍼즐들을 짜 맞추는 작업을 한다. 내면의 환희, 불안, 희망, 공포 등 다양한 감정들을 담고 있는 조각들은 아직 삶의 일부분일 뿐이며, 계속 다른 조각들이 더해지고 확장되면서 더 큰 그림이 완성될 것이다.

박은혜_Room 304(갈증)_한지에 한국화 안료_145×194cm_2015

박은혜의 작업은 다양한 메타포를 함유하고 있으며 그 속에는 개인의 내밀한 경험과 감정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그림은 아직 모호하다. 이야기보따리를 활짝 열어 농밀한 내용들을 보여주지 않으며, 보따리 속에 감추어진 물건의 형상만 언뜻언뜻 보여주고 마는 듯 싱겁기도 하다. 작업들 사이를 가득 매우는 이야기들은 분명 그녀의 것이지만,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알맹이를 놓치고 온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혹은 그림과 감상자 사이를 가로막는 것이 있는 듯한 느낌이다. 작가가 품고 있는 경계심, 외계에 대한 의구심이 그림을 에워싸고 있는 것은 아닐지. 화려한 색면 속에 숨겨져 있는 작가의 진의(眞意)는 그림을 모호하게 만드는 매력이 되기도 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러저러한 도상들 사이에 감추어진 작가가 좀 더 확연히 드러날 수 있기를 바라는 욕심이 들기도 한다. 패기 넘치는 작가는 모호한 은유 사이로 '구불구불 나아가' 상투성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찾아낼 것이라 확신한다. ● "작업의 주제는... 삶의 과정을 드러내는 것인데 그 과정은 많은 고민과 불안을 동반하지만 결국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믿고 각자의 이면적인 가치에 따라 삶의 방식을 모색해보자는 것입니다." (작가의 말, 2016.2) ● 아직 단단하게 뿌리내리지 못한 삶/작업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불안하고 고민스럽지만 자신의 방식대로 밀어붙여 나아가겠다는 젊은 작가의 의지가 보인다. 대범하고 뚝심있는 작가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불안과 혼란을 마주하면서 앞으로 나갈 것이다. 이 명민한 화가는 매 순간의 감정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감응하면서, 새로운 조각을 만들어 세계를 확장시켜 나갈 것이다. 담쟁이 넝쿨처럼 넘실넘실 뻗어나가 담장을 넘어서기를, 애벌레처럼 구불구불 길을 만들다가 어느새 허물을 벗고 날개를 펼치기를 기대해본다. ■ 김예진

박은혜_벽_한지에 한국화 안료_72.8×91.5cm_2015

나의 작업은 근원도 어떠한 목적성도 없는 모호한 인간 존재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된다. 무(無)를 향한 존재에 대한 인식은 역설적으로 고유한 존재로서의 실존에 대해 깨닫게 한다. 이러한 지점은 삶은 무의미 함에도 불구하고 욕구에 의해 아무런 목적도 없는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특정 행동으로 나타나고 결국 그 의미나 가치를 찾아 나아가는 과정이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 「짧은 고찰」시리즈는 삶의 경험을 통한 사고, 감정, 기억, 욕구 등의 감각들을 단편화된 이미지로 나타낸 내적 표현이며 나아가 실질적 행위로 이어지는 삶의 과정에 대한 순간의 기록들이다. 나는 내밀하고 이면적인 삶의 문제 혹은 그에 파생된 감각, 감정이라고 하는 언 듯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세계를 가시적 영역으로 끌어들여 구체적 이미지로 표현하는데 관심이 있다. 사실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모든 행위의 바탕에는 비합리적인 체계가 자리잡고 있으며 이성적인 생각보다 우리의 태도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세계 내에서 인간 존재나 내면적 영역은 어떠한 무게나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아무런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고유한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과 삶을 살아가는데 그 가치와 의미는 어디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인가? 작품「THE WAY」는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삶의 방식과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나타낸 작업이다. 순간의 인상, 감각을 기록하고 거기서 파생된 생각의 조각들이 퍼즐처럼 이어나가 결국에 하나의 삶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결국 존재의 의미나 가치는 무수한 과정의 조각이 이어져 각 개인의 특정한 삶이라는,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고유한 형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박은혜_일상의 문제_한지에 한국화 안료_72.8×91.5cm_2015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고민을 하게 되고 상실과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THE WAY: 구불구불 나아가다」의 부제처럼 그 여정이 녹록지 않더라도 삶을 성찰하는 자세로 진정한 나를 찾아 나아갈 때, 각자만의 삶의 의미나 가치를 찾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 인간의 시간은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의 '순간'을 알아채지 못한다. 결국 그 순간은 매번 끝없이 유예되어 현재를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나는 이러한 순간의 기록들을 통해 삶의 과정을 드러내고 결국 성찰적 의미로 환원되길 바란다. 그리고 또다시 재인식하는 과정에서 삶을 정찰해 봄과 동시에 자신의 내면적 동기에 의해 실질적 행위로 나아가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이 결과가 아닌 과정의 선상에 있음을 인지하고 삶의 의미가 과거의 회한이나 미래의 거대한 기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현재의 고민, 감정, 행위를 아우르는 모든 것들이 모여 하나의 삶을 이룬다는 것을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다. ■ 박은혜

Vol.20160409c | 박은혜展 / PARKEUNHYE / ???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