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것에 대하여 about the sparkle

장고운展 / JANGKOOON / 張고운 / painting   2016_0409 ▶︎ 2016_0501 / 월요일 휴관

장고운_시멘트 벽과 초록바닥_캔버스에 유채_112×146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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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409_토요일_05:00pm

2015-2016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777레지던스 릴레이 개인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777레지던스 777 RESIDENCE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103-1 3층 Tel. +82.31.8082.4246,9 changucchin.yangju.go.kr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777레지던스는 입주작가 릴레이 개인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장고운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장고운은 일상적 풍경을 사진으로 촬영한 다음 다시 그것을 유화나 아크릴로 캔버스에 옮겨 그린 회화 작품을 주로 제작해왔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그의 작업세계와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서 신작 위주의 유화작품들을 선보인다. ● 이번에 장고운이 천착하는 대상은 '반짝이는 것'이다. 전시를 위해 그는 일렁이는 물결에 비치는 빛이나 아침 창틀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과 같이 사소하면서 아름다운 풍경들을 수집하여 회화로 옮겼다. 전시되는 총 13점의 크고 작은 회화 작품은 빛, 일상, 회화, 재현 등에 관해 깊은 질문을 던진다. ■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777레지던스

장고운_겨울밤 바닥에 비친 빛 그림자_캔버스에 유채_117×80cm_2014

...현재 그녀는 어른거리는 이미지에 천착하고 있다. 영롱한 빛의 입자가 파동치는 듯한 근작이 실은 작업실 창문 주변에서 일어나는 낮빛의 변화나 공기의 흐름이라는 걸 알게 되면 마치 싱거운 비밀을 알게 된 양 그런 거였구나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녀가 기울이는 노력은 최종적으로 보여지는 이미지 자체보다 그 형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놓인다. 붓과 색을 어떻게 쓸 것인가, 레이어를 어떻게 형성해 갈 것인가, 평면에 깊이감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등. 회화에서 뻔한 일들이라고 생각한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면 그건 그 질문이 유효하기 때문일 거다. 더불어 전작과 근작을 비교해보면 그녀가 스스로를 변모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경주해 왔는가를 깨달을 수 있다.

장고운_눈 오는 밤 가로등_캔버스에 유채_21×34cm_2015

...대화를 나누면서 그녀가 한 말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책임감 있는 그림"에 대한 것이다. 그녀가 자신에게 부여하는 잣대는 "책임감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이다. 작가됨에 대한 자기 점검을 책임감이란 용어를 통해 하고 있었다. '있지' 않고 '있어보이는 그림'에 대한 거부감은 그간 무언가가 '있기' 전까지 '있어보이는' 상태를 누르려는 시도를 종종 발생시켰다고 한다. '있어보이는 그림'의 상태를 눈속임의 상태로 간주하면서 이를 아우라 개념을 쓰며 표현하고 있는데 유일무이성으로서의 아우라 개념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니나 자세히 듣다보면 전통적인 매체로서의 회화에 부여되던 몇 가지 속성에 대한 거리감 혹은 거부감을 기본적으로는 파악할 수 있었다. 유려한 필치와 호방하고 매혹적인 색감의 향연과 같이 그림에서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요소들은 되도록 배제시키면서 그녀가 그려오던 선과 면으로 구획되던 그림에서의 익명적이고 중성적인 듯한 화면 처리 방식은 실상 이런 거부감의 발현이었을지 모른다.

장고운_희미한 빛_캔버스에 유채_21×34cm_2015

그러나 갈등은 언제나 내재하고 있는데 익명적이고 중성적인 화면마저도 장고운 식의 레이어가 여러 번 중첩되는 붓질을 통해 구성되었기 때문에 색면회화처럼 보이는 작업일지라도 한번이라도 보고나면 그 다음엔 장고운의 그림이다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림을 대면하는 자의 입장에서도 장고운의 그림임을 파악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작가도 그 화면 뒤로 완전히 숨고 싶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작업 태도에 대해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아낼 때까지 그리는 것"을 언급하는데 딱 떨어지는 면을 그리던 시간들은 그리기를 그리기위한 그리기의 시간이지 않았을까. 말장난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리기'의 순간이 오기까지 '그리기를 그리는' 시간이 필요하고 현재 그녀의 상황이 바로 이 '그리기를 그리는' 시간이라면 이 시간을 준비하던 시간이 '그리기를 그리기 위한 그리기의 시간'이 아니라고 달리 말할 수 있을까. ■ 김현주

Vol.20160409f | 장고운展 / JANGKOOON / 張고운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