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 변관식展 / BYEONKWANSIK / 小亭 卞寬植 / painting.drawing   2016_0412 ▶︎ 2016_0522 / 월요일 휴관

소정 변관식_돈암동 풍경(설경)_종이에 수묵담채_65×97cm_1960년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성북구립미술관_성북문화재단

관람료 / 성인 1,000원 학생,24세 이하,65세 이상 노인,매주 토요일 관람객,5월5~8일 무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성북구립미술관 SEONGBUK MUSEUM OF ART 서울 성북구 성북로 134(성북동 246번지) Tel. +82.2.6925.5011 sma.sbculture.or.kr

小亭 예술의 骨氣-근대 한국 산수화의 전형1. 소정 변관식(小亭 卞寬植, 1899-1976)은 우리 민족의 혈(血)과 기(氣)를 화폭에 담아낸 걸출한 산수화가다. 그는 19세기의 마지막 해에 태어나 서세동점의 개화기, 치욕의 일제강점기, 격동의 해방공간, 통한의 분단사를 헤쳐 오면서 조국 산천을 몸과 마음으로 그려냈던 화가다. 소정은 우리 땅에 대한 깊은 애정을 파노라마로 펼쳐냈다. 그의 산수화는 또 하나의 '민족 역사화'라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 소정이 한국 미술사에 차지하는 높은 위상도 두말할 것 없이 민족 회화에 대한 자각과 예술적 구현에 있다. ● 소정은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비조(鼻祖)인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혈맥을 계승했다. 이 한국 산수의 아름다움을 독자의 근대적 양식으로 재창조해 냈던 거장이었다. 그는 '전통의 현대적 탐색'이라는 20세기 미술의 큰 숙제 앞에서 하나의 분명한 본보기를 제시했던 것이다. 특히 소정은 민족의 성산 금강산 그림으로 대표되는 웅혼한 기백, 향토적 풍경의 목가적 정취, 도원풍경의 운치 넘치는 탈속의 이상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소정 양식'이라는 하나의 강력한 근대 산수화의 전형을 이룩해 냈다. ● 소정 변관식에게는 예술적 업적에 더하여 '민족자존의 지사(志士)'라는 수사가 따라붙는다. 그는 대쪽 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불같은 기질은 언제나 불의의 권력과 권위에 저항했다. 그는 민족의 땅과 혼을 침탈했던 일제강점에 당당히 맞섰고, 썩어빠진 제도의 굴레에도 정면으로 대항했다. 그 대가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조선미술전람회나 국전 같은 미술 제도의 '중심'보다는 '주변'에 밀려나기 십상이었다. 그 스스로 제도권 미술과 단호히 결별하고 이른바 재야 작가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그 외로운 길을 고집스럽게 걸으면서도 동시대 화가들 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기 양식을 창출해 나갔다. 작품과 사람을 아우르는 골기(骨氣)! 그 통쾌한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소정 변관식_금강산 옥류천_종이에 수묵담채_40×50cm_1960년대_개인소장

2. 소정은 구한말의 개화기를 거쳐 국권 상실의 일제강점기에 생애 전반기를 보냈다. 특히 이 시기의 한국 회화는 조형의 진통을 격심하게 겪었던 혼돈과 전환의 시대였다. 탈봉건, 탈외세라는 조형의 당면과제는 불행하게도 일제 강점과 겹쳐 좌절되기 십상이었다. 나라 잃은 식민지 화가들은 일제가 강제했던 왜색(倭色) 화풍에도 주체적으로 대응해야 했으니, 실로 뼈아픈 이중고에 시달려야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시대의 전통의 문제는 마땅히 탈식민의 주체성과 결부될 수밖에 없었다. 전통은 조선적, 민족적이라는 비평의 쟁점, 예술적 실천과 그대로 통하는 것이었다. ● 전통의 근대화 혹은 근대성의 주체화. 이 준엄한 시대적 요청은 1923년에 소정 변관식과 이용우 등 신진화가들이 발족한 동연사(同硏社)에도 반영되었다. 중국화풍으로부터의 해방과 일본화법 배격의 의지로 '우리 조선화'의 새로운 시대적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이 모임의 모토였다. 동연사 동인들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전통 수묵화의 새로운 방향을 추구하는 향토적 자연주의였다. 거기에는 일제에 의해 국권을 탈취 당한 통한의 현실에서, 민족의 뜨거운 혼이 서린 이 땅에 대한 절절한 애정에서 출발했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동연사는 단 1회의 전시회를 갖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후 소정은 동연사의 결연한 민족 회화 정신을 외롭고 변함없이 이어갔다.

소정 변관식_비폭앞의 암자_종이에 담채_79×65cm_1950년대_한국은행 소장

소정은 청년 시절부터 우리 산야의 경관과 시골의 생활 풍정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화면에 불러냈다. 경물 대상을 자유자재로 변용하는 열린 시점, 틀에 구애받지 않는 자의적 구성, 서투른 듯 거칠면서도 독특한 묘미를 실은 필치, 프리미티브한 표현의 원초성이 자아내는 해학성 등을 화면에 천착해 갔다. 특히 산수의 어느 일각, 산수의 어느 시점을 집중적으로 주제 삼은 가히 '바로크'적인 파격의 조형이 특징이다. 그것은 소정의 유목(nomad)의 삶과도 통한다. 소정은 1930년대부터 조선미술전람회의 출품도 끊고, 1937년부터는 이른바 '태화관(泰和館) 사건'으로 금강산에 피신하는 등 명천대산을 두루 옮겨 다니는 삶을 이어 갔다. ● 소정은 해방과 6.25전쟁의 혼란기를 거쳐 생애 후반기를 살았다. 소정은 친일화가들의 집단적 비리에 밀려나 야인(野人)의 삶을 보냈다. 그 보헤미안의 길은 소정 스스로가 선택한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소정은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나는 사실 세상사를 모르고 살아 왔고, 잡다한 세상사를 외면하면서 살려고 했다. 내가 화단에서도 사교를 모르는 '변고집장이'로 지내 오고 있는 것도 곰살갑지 못하고 바른 말만 하고 살아 온 탓이리라." (「나의 회고록」, 『화랑』, 1974년 여름호.)

소정 변관식_외금강 삼선암 추색_종이에 수묵담채_125×125.5cm_1966_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소정은 파벌과 비리로 얼룩진 국전을 신문지상(「편파적인 심위구성-그 비공정에서 파생될 화단의 암」, 『동아일보』, 1955. 10. 28.;「공정 잃은 심사-국전 동양화부를 보고」, 『연합신문』, 1957. 10. 21.)에 고발했다. 해방 이후 제1회 국전부터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소정의 고발문은 화단의 일대사건이었다. 당시 국전은 한국미술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 국전의 권위가 강고하면 강고할수록 그 아성(牙城)을 둘러싼 이권 싸움은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의 핵심은 작품 외적인 파벌과 인맥이 부당하게 작용하는 심사에 있었다. 국전은 친일 세력의 득세로 썩어 가고 있었다. 소정은 이 철옹성의 국전을 향해 비판의 화살을 거침없이 쏘았던 것이다. 그것은 곧 제도권 미술과의 결별로 이어졌다. 그리고 1957년 소정은 생애 두 번째 방랑의 길을 걷는다. 돌이켜 보면, 당시 화단에는 해방 이후 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전위미술의 열기가 뜨겁게 일고 있었다. 소정의 국전 고발은 당시 미술계에 움트고 있었던 새로운 변혁의 기류와도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 생전의 소정 변관식은 동양화단의 이른바 '6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혔다. '6대가'는 소정과 함께 허백련, 박승무, 그리고 김은호, 이상범, 노수현(이 세 화가는 친일로 지탄받고 있다)을 일컫는다. 그 명칭은 1971년 서울신문사 주최의 『동양화 6대가전』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6대가'는 일제강점기인 1940년 오봉빈의 조선미술관이 기획한 『10명가 산수화실경전』을 다분히 염두에 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10명가' 중에 고희동, 이한복, 최우석, 이용우 등 당시의 작고작가를 뺀 생존 작가를 '6대가'로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미술사학계에서 소정 변관식은 '10명가' 중에서도 '6대가' 중에서도 예술적 성가(聲價)가 가장 걸출한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그 요인은 일차적으로 작품성에 초점이 맞춰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소정의 작가 활동상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실로 정당한 역사적 평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소정은 친일(혹은 일제 잔재)이나 화단 정치 같은 어두운 부면의 심판에서 언제나 자유로운 인물이었다.

소정 변관식_촌락풍일_종이에 수묵담채_133.5×420cm_1957_국립현대미술관 소장

3. "산수는 오로지 소정 한 사람뿐이다. 그는 성격이 지사(志士)나 의사(義士) 같아서 몸에 칼이 들어 와도 웃고서 손으로 받아칠 사람이다. 그러니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소전 손재형(素荃 孫在馨, 1903-1981)은 소정을 이렇게 평가했다. 소정 예술은 바로 그러한 인간적 면모의 현현(顯現)이었으리라. 한국 산수화의 한 경지를 이룩한 소정의 화풍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변천했다. 제1기는 1917년에서 1936년까지다. 이 시기에 소정은 서화미술원에서 그림 수업을 받으면서 화풍의 초석을 다져 나갔다. 서화협회의 지도교수는 그의 외조부 조석진과 안중식이었다. 소정의 초기 작품은 남북종(南北宗) 절충 화풍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부터 이미 거친 화면 처리와 역동적인 시점의 다각적인 전개 등에서 독자적인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제2기는 1937년 서울을 떠나 금강산을 비롯한 자연 승경(勝景)에 빠져들었던 시기이다. 그는 실경사생을 통해 자신의 화풍을 다져 나갔다. 그가 1957년 국전을 떠나기 직전까지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 시기에는 금강산을 소재로 한 그림과 농촌 등 우리 산천의 풍경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향토색 짙은 실경을 소재로 적묵법(積墨法)과 파선법(破線法)을 밀도 있게 구사한 작품을 제작했다.

소정 변관식_도화도_종이에 담채_106×28cm_연도미상_한국내셔널트러스트 소장

제3기는 1957년부터 타계하기까지 소정 예술의 완성기에 해당된다. 적묵법, 파선법과 더불어 분방한 호초점(胡椒點)을 즐겨 다루었던 원숙기다. 야인으로서의 전환 이후 소정의 산수화는 크게 두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하나는 그가 평생에 걸쳐 가장 큰 감동으로 받아들여 창작의 원천으로 삼았던 금강산 풍경을 통해 진경산수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작업이었고,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 산천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나의 이상향으로 발전시키는 일종의 전형산수(整型山水)를 천착하는 길이었다. 특히 화면 구도에 있어서 자연 경물의 어느 일부분을 부각시키는 등 파격의 담대한 작품을 보여 주었다. ● 소정 변관식은 전통 남종화법을 존중하고 고수하면서도 독자의 '소정 양식'을 완성했다. 소정 산수의 골격은 먹의 터치를 쌓아 올려 가는 적묵법이다. 일찍이 북송대의 서화가 미불(米芾)의 적묵법이 회자되고 있지만, 소정의 그것은 이보다도 더 힘차고 분방하고 자유롭다. 소정은 습필(濕筆)보다 갈필(渴筆)을 즐겨 구사했다. 그러한 필법과 묵법은 얼핏 세련미가 부족한 듯 보이면서도 오히려 특이한 형상미를 창출해 냈다. 특히 섬나라의 습윤한 풍토에서 생겨난 일본화나 여기에 감염된 이 땅 화가들의 일제 잔재 그림과는 분명한 거리를 두고 있다. 일찍이 소정은 일본식 그림을 '천박, 부조(浮佻), 경조(經佻)'로 단호히 배격한 바 있다. 오랜 역사를 지배해 온 모화사상으로부터의 탈피 또한 민족 회화의 지표로 삼았다.

소정 변관식_드로잉_종이에 연필_19×26cm_1960년대

이러한 민족 주체적 정신 속에서 소정은 실로 변환자재의 신묘한 조형 세계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역동적인 장대한 부감, 박진감 넘치는 극적인 구도, 변형과 왜곡의 자유자재한 화면 경영, 기운생동의 꿈틀대는 묘법, 먹의 다양한 변주와 둔중한 필선의 변화, 천연스레 일그러진 대상의 질박한 표정들.... 소정이 이룩한 조형 세계는 어떤 화론이나 미술사적 선례를 훌쩍 뛰어 넘는다. 민족 미술에의 기백, 그 정신과 필치가 혼연일체가 되어 이룩한 높은 세계였다. 소정은 한국의 자연, 그와 더불어 살아가는 한국인의 원형(achetype)을 회화라는 실증으로 풀어냈던 것이다. ● "우리의 정취가 흐르고 우리의 풍속이 거기에 조화되도록 하는 데서만 우리의 본연의 자태를 그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피동적이지 말고 능동적이 되어야 하겠으며, 모방적이 되지 말고 독창적이 되고, 공상적이 되지 말고 현실적이어야만 되겠다."(변관식, 「미술의 한국적 독특성」,『자유공론』, 1957. 7.) ● 소정 변관식은 무릇 반세기도 훨씬 이전에 민족 회화의 정체성을 이렇게 설파한 바 있다. 이 글의 행간은 실로 21세기 한국미술에도 여전히 유효한 잠언을 제시한다. 이것이 바로 시대를 초월한 소정 예술의 위대함이요, 또한 우리가 오늘 여기서 소정 변관식을 기려야 할 마땅한 이유가 아니겠는가. ■ 김복기

* 이 글은 『한국근대회화선집-변관식』(금성출판사, 1991)과 『한국의 미술가-변관식』(삼성문화재단, 1998)을 참고했다. 이 책에는 이구열, 유홍준, 홍선표 등의 선행연구와 여러 자료가 실려 있다. 또한 산정 서세옥 선생과의 인터뷰가 이 글에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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