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석화담 一昔花談

이혜승展 / LEEHYESEUNG / 李蕙丞 / painting   2016_0413 ▶︎ 2016_0604 / 일,월요일 휴관

이혜승_화담 35_캔버스에 유채_25×25cm_2010

초대일시 / 2016_0413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알떼에고 ALTER EGO 서울 마포구 망원동 399-44번지 www.facebook.com/spacealterego

알떼에고는 봄을 맞이하여 십여 년에 걸쳐 틈틈이 작업한 이혜승 작가의 식물 연작들을 선보인다. 작업 속 식물들은 물리적인 10년이 아닌, 작가가 자연을 바라보는 매 순간들을 응집하고 있다. 식물이 시들고 다시 싹을 틔우기까지의 시간에 온전히 나를 맡기고 그 변화를 캔버스에 옮기기까지의 긴 과정은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지친 우리의 마음에 여유를 선물한다. '일석(一昔)'은 십 년의 시간인 동시에 '하룻밤'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쩌면 작가는 식물을 통해 오랫동안 인내하며 오늘도 작업을 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건조하고 차가운 겨울을 인고하다 갑자기 만개하는 봄의 '어떤 하루'는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 ALTER EGO

이혜승_화담 3_캔버스에 유채_41×32cm_2009
이혜승_화담 7_캔버스에 유채_45×33cm_2006

군말 - 『一昔花談』에 부쳐 ● 거추장스런 군더더기가 될 것이 뻔한 말 몇 마디를 덧붙이려 한다. 이 글은 다만 전시의 제목에서 떠오르는 개인의 두서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을 뿐, 전시장의 그림을 바라보고 거기에 귀 기울이는 일은 물론 관람객 각자의 몫이다.

이혜승_화담 11_캔버스에 유채_45×27.3cm_2008
이혜승_화담 25_캔버스에 유채_30×30cm_2011

아직은 어떠한 생명의 조짐도 보이지 않는 흙바닥을 연상시키는 一과, 햇빛을 받아 싹이 돋고 가지를 뻗은 화초가 담긴 화분을 연상시키는 昔이 만들어내는 '一昔'이라는 말은 본래 '지나간 한 시대'를 뜻하는 단어로서 보통 십 년의 시간을 일컫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말이 동시에 '하룻밤'을 뜻하기도 한다는 점인데, 지나간 한 시절이 마치 하룻밤 꿈결처럼 느껴지는 일이 아주 드물기만 한 경험은 아니라는 걸 생각하면 두 의미 사이의 간극이 그리 커보이지는 않는다. 더구나 '옛날'을 뜻하는 昔에 '처음'과 '끝'이라는 의미가 함께 들어있다는 사실은 물리적 시간의 궤적을 구부리면서 우리로 하여금 이성의 선형적 흐름에서 잠시 벗어나 꿈의 영역인 정서의 장으로 들어오도록 이끈다.

이혜승_화담 29_캔버스에 유채_33×24cm_2009

'꿈'은 흔히 생각하듯이 항상 덧없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꾸는 꿈은 본래 일상의 정서적 경험들이 우리 마음의 대사 과정을 통해 정제되면서 생겨나는, 여러 개의 조각보들로 직조된 하나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꿈은 우리가 현실을 온전히 겪고 살아낸 결과물일 수 있다. 작가는 지난 십 년 동안 스스로가 살아낸 그 현실을, 자신의 경험을, 꽃들에게 들었다는 이야기의 형식〔花談〕을 빌려 우리에게 전하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이 이야기〔談〕는 말하는 이가 듣는 이에게 일방향으로 쏟아내는 언설이 아닌, 고요한 밤에 여남은 개의 숯으로 온기를 낸 작은 화롯불 곁에 둘러앉아 서로 담담히 주고받는 대화에 더 가깝다. 그 대화 속에서, 화로의 잉걸불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생명의 힘을 가진 무언가가 새로이 솟아난다.

이혜승_화담 33_캔버스에 유채_27×22cm_2007
이혜승_화담 40_캔버스에 유채_32×41cm_2010

하지만 전시의 제목을 소리내어 읽어 보면 앞서의 꿈결이나 꽃, 이야기들이 연상시키는 부드럽고 유려한 느낌과는 다소 거리가 생겨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간의 昔은 경음화에 의해 된소리인 '썩'이 되고, 이어지는 花는 격음화가 일어나 거센소리인 '콰'로 변한다. 이처럼 둔탁하고 거친 소리의 병치는 다행히 뒤를 이어 나오는 談의 차분하되 유연함을 잃지 않는 'ㄷ' 소리에 의해 조금 누그러지며, 입술을 부드럽게 닫으면서 마무리하는 'ㅁ' 소리 덕택으로 예의 꿈결같은 여운을 다시 회복한다. 그 여운의 공간은 물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이 새로이 잉태될 수 있는 자리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리듬이 생겨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 리듬은 작가 스스로가 꽃들과 나눈 이야기들 속에서 계속해서 어떤 끌림을 느꼈다고 고백하는 지점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이혜승_화담 47_캔버스에 유채_46×53cm_2011

지금까지의 두서없는 단락을 그러모아 전시의 제목을 아래와 같이 해석한다면 너무 억지스런 일이 될까. ● 一 〔일〕 : 일어나 제 몫의 아름다움을 누리지만 ● 昔 〔썩〕 : 예의 부드러움을 잃고 썩어가기도 하며 ● 花 〔콰〕 : 때로는 날 선 가시에 몸 베이기도 하는 꽃들을 바라보며 ● 談 〔담〕 : 담담하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지금 그 대화의 자리에 작가가 우리를 초대하려 한다. ■

Vol.20160413a | 이혜승展 / LEEHYESEUNG / 李蕙丞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