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경계 너머에' ' Beyond the White Boundary'

김예리展 / YERIKIM / 金禮利 / painting   2016_0416 ▶︎ 2016_0503 / 일요일 휴관

김예리_生 (생)_종이패널에 수채, 과슈_200×100cm_2015

초대일시 / 2016_0418_월요일_05:00pm

관람시간 / 09:30am~06:3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이마주 GALLERY IMAZOO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20길 12 ANN TOWER B1 Tel. +82.2.557.1950 www.imazoo.com

존재의 원형은 삶과 죽음, 그리고 그 경계선이다.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 곧 그들과의 영원한 단절을 경험하면서 죽음을 직시하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죽음의 본질을 일상 속에서는 애써 외면한다. 작가는 죽음의 본질을 탐구함으로써 삶의 양면성을 발견한다. '천'의 형상을 통해 시간의 변화와 깊이 속에서 드러난 사물의 다양한 형상과 사건을 은밀하게 작품 속에 펼치는 가운데, 예기치 못한 경이로움과 엄숙함, 그리고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을 재발견한다. 그로부터 죽음은 이제 더 이상 단절이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암시한다.

김예리_Near by_종이패널에 수채, 과슈_120×60cm_2014

작가는 특히, 모호한 경계선에 기대어 낯설고 두렵기만 한 죽음과 마주하면서 몇 가지 형식을 통해 삶과 희망, 그리고 생명의 원천을 작품에 투영시킨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주된 형식은 '천 주름' 이다. 천 주름은 삶 전체를 아우르는 일종의 사건 형상들이며, 시간의 연속적 또는 불연속 변화를 뜻한다. 이는 작품 속에서 '부분들의 고귀한 결합과 전체구조의 통일, 절제된 삶의 굴곡의 표현 양식'으로 자리잡는다. 이런 삶과 죽음의 표현 양식에 생명의 원천을 불러들인다. 바로 '색채'다. 천 주름 형식이 삶을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관찰했다면, 색채는 삶에 대한 강렬한 희망과 정열을 감성적으로 다루는 디오니소스적 접근법에 해당한다.

김예리_Eternal pledge_종이패널에 수채, 과슈_110×50cm_2014

낯설고 어둡고 두려운 죽음을 엄숙하게 정면으로 다루는 가운데, 바다와 하늘빛에서 온 열정과 치유, 믿음과 희망을 깊고 넓게 담아낸 청록색과 성스러움과 순결함을 담아낸 흰색을 투영시켜 절대적 진실을 향해 탈출을 시도한다.

김예리_靑月 (청월)_종이패널에 수채, 과슈_100×100cm_2015

이제 마지막으로 작가는 물과 같은 소재를 통해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희망의 원형을 꿈꾼다.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는 "물은 만물의 근원, 모든 것은 물에서 시작해 물로 돌아간다"고 했다. 생명의 잉태를 의미하는 물이 시간의 굴곡에 깊이 스며들고, 죽음의 원형과도 맞닿는다. 고대 중국의 관중(管中)은 "물은 만물의 본원(本源)이며 제생(諸生)의 종질(宗質)이다" 라는 말로 물을 정의하였다. 물은 땅의 혈기이니 마치 근육과 맥이 통하여 흐르는 것이고 우주적 근원에 해당하기에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생명의 원천으로 자리잡기에 충분하다.

김예리_bowl of water_종이패널에 수채, 과슈_120×70cm_2015

작품 속에서 '천'의 주름은 삶과 죽음이 역동하는 대지로 구현된다. 그로부터 어머니의 양수로부터 터져나오듯 만물의 생존을 유지시키며, 자연계의 역동적 순환을 가능케 하는 무한한 매개체로서 '물'이 대지 위를 흠뻑 적신다. 애초부터 '천' 속에 스며든 물은 그 중심점을 겨냥하고 있었다. 생명을 잉태하는 입구에서부터 대지를 온통 치유하고 정화시키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삶과 죽음의 근원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를 암시하려고 한다.

김예리_deja vu_종이패널에 수채, 과슈_60×60cm_2014
김예리_타오르는 떡갈나무_종이패널에 수채, 과슈_120×70cm_2016

이제 작가의 작품 속에서 삶과 죽음, 밝음과 어두움, 슬픔과 기쁨, 절망과 희망은 상호대립적인 악순환의 매개체가 아닌 상호보완적이며 조율이 필요한 창조적 결합체들로 작용한다. 남은 것은 관객에게 달렸다. 작품 곳곳에서 드러나는 낯설고 두려운 죽음에서부터 그 내면을 감싸고 있는 삶과 생명에 대한 추상적 접근에 대해 무엇이 두려움이고, 무엇이 슬픔이며, 무엇이 삶이고 희망인지를 가늠하는 것은 오직 보는 이의 몫이기 때문이다. ■

Vol.20160418a | 김예리展 / YERIKIM / 金禮利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