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작가, 나혜석을 만나다

문민정_손정희_안예환展   2016_0422 ▶︎ 2016_0505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6_0430_토요일_04:00pm

후원 / 마을기업행궁솜씨 주관 / 나혜석생가터문화예술제운영위원회 기획,진행 / 대안공간눈

관람시간 / 12:00pm~07: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눈 ALTERNATIVE SPACE NOON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 82-6 Tel. +82.31.244.4519 www.spacenoon.co.kr cafe.daum.net/artspacenoon www.facebook.com/artspacenoon

예술공간 봄 SPACE BOM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 82-6 Tel. +82.31.244.4519 www.spacenoon.co.kr cafe.daum.net/artspacenoon www.facebook.com/artspacenoon

제8회 나혜석 생가터문화예술제 특별기획전 『현대작가, 나혜석을 만나다』는 80년 전 나혜석의 3가지 작품 「무희(캉캉)」(1940), 「자화상」, 「화령 전작약」을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의 작업 방식과 연계하여 현대작가의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냄으로써 나혜석의 후예로서 나혜석의 예술혼을 기리고자 한다. 특히 매년 현대작가가 나혜석의 회화작품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매년 새로운 작가들과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임으로써 나혜석생가터문화예술제가 가지고 있는 특별전으로 인식되고자한다.3인 작가들의 작품은 나혜석생가터문화예술제운영위원회에 기증되어 건립되어질 나혜석 기념관에 설치될 예정입니다. ■ 대안공간 눈_예술공간 봄

문민정_VACANCY-Self-Realization_캔버스에 혼합재료_116.8×91cm_2016

문민정-HOMMAGE TO 나혜석 ● 나혜석이라고 하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는 설명이 있다. 신여성, 여류 서양화가, 여권운동가라는 다분히 왜곡된 페미니즘의 표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성적인 삶을 살지 못한 여자였고, 그저 한 인간으로 살고 싶었던 인간 나혜석이였다. 나는 진정한 여성으로서, 서양화가로서, 인간 나혜석의 예술적 신념을 재해석해 보았다. 여자이기 전에 인간이였고, 엄마이기 전에 화가로서 나혜석이 먼저 였다. 그의 인생목표는 인간 본질인 '자아실현'이었던 것이다. 그 중 인간적인  모습으로는 내 작품에서 말하는 VACANCY의 아이러니한 양면성과 닮아있다. 본연의 자리에 속해 있을 땐 그 자리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공석으로 비워둔 채 더 나은, 또 다른 탐욕으로 가득 찬 자리를 찾아 헤맨다. 그로 인해 때로는 타인으로부터  질타를 받기도 하지만, "나의 그림은 기교에만 조금씩 진보될 뿐이요, 아무 정신적 진보가 없는 것 같은 것이 자기 자신을 미워할만치 견딜 수 없이 괴로운 것이다."에서 보여진 작품에 대한 그의 신념은 어떠한 환경과도 타협점을 허용치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는 철옹성 같은 그의 신념이 고금을 넘나드는 항상성을 지니고 있음에 더 없이 반가운 것도 사실이다. '자화상'이라는 작품은 현실에 갇혀서 자유를 갈망하고 끝없이 고뇌하는 지금 현대인의 모습과 닮아 있다. 이 모티브를 토르소 형식을 빌어 해석해 보았다. 두상을 없앰으로써 나혜석 작가의 이야기를 현대인들 누구나로 대입시켜 그들의 갈등을 현실로 확장 시켰다. 그와 대비로 그가 꿈꾸는 이상향을 펼친 '화령전 작약'은 그에게 헌화하는 부케로 표현해 보았다. 내 작업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징적인 빈 의자를 배경에 배치함으로써, 나혜석이 인정받고 싶었던 명예, 지위, 수퍼우먼적인 요소를 성공화된 형상으로 패턴화시켜 드로잉 작업과 꼴라쥬 작업으로 병행하였다. 인간으로서 서양화가로서 공통분모를 가지고 오늘을 살고있는 나는 나혜석을 100% 지지할 순 없지만, 그의 예술에 대한 신념과 용기에 작품VACANCY_Self_Realization으로 오마주한다. 격정의 시대를 살며 가장 여성적인 모습을 꿈꿨을 그에게 작약 한 다발을 드리운다. 

손정희_꿈을 꾸다-Booksculpture_페인팅_116.8×91cm_2016

손정희 ● 나혜석의 「자화상」을 재해석한 '꿈을 꾸다'에서는 여성의 모범상이며, 인습과 가족을 중시하는 고전적 여인이자, 시대의 어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현실적인 여인의 모습이 아닌 희생, 복종, 인내를 미화하는 존재로서 그 평온한 자태의 이면 속에는 나혜석 그녀의 삶처럼, 현실적 억압과 인습적인 관념에 반항하고, 욕망과 갈등에 고뇌하고 꿈꾸는 이중적 모순을 감추고 있다. '꿈을 꾸다'에서 꿈을 꾸는 듯 감은 여인의 눈은, 일방적 관습과 가부장제 아래 여성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외면한 채 복종해 온 삶의 지친 굴레에 대한 반항의 몸짓이며, 저항의 몸부림을 마치 상념을 떨쳐내듯 절제된 고요함으로 표현하였다. 억압과 고통의 무게를 캔버스 안 여인의 머리 부분에서는 일부 그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나의 북아트 작업과 연계하여 나타냈다. 회피할 수 없는 당시 사회의 관습과 갈등을 재조명하고 진부한 고전으로의 부활이 아니라, 나혜석의 이상적인 삶을 현재의 작품으로 재해석보며, 이 시대 현실과 이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비춰질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아가 이 땅의 모든 어머니이자 여인들이 좀 더 주도적인 역할과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캔버스 안에 꿈을 꾸는 여인으로 대체시켰다.

안예환_여자도 사람이다Ⅰ_혼합재료_61.6×41.9cm_2016

안예환-나혜석 ● 암울한 시대에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여성 예술가로 살아가면서, 사회에서의 몰이해와 질시 속에서 견뎌야 했던 그녀의 삶은 힘겨운 투쟁이었다고 본다. "여자도 사람이다"라고 절규하면서 살아야 했던 그녀의 삶을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잎을 가시로 변모시켜야 했던 선인장의 생존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래서 나혜석의 자화상과 선인장의 가시를 이중적인 화면으로 겹쳐 표현하였다. 겹쳐진 두 그림사이의 공간은 나혜석이 살았던 시대의 상징적인 공간이기도 하면서, 그 시대와 현재까지의 시간을 나타내기도 이중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현대화된 지금 이 시대에 또 다른 나혜석은 없는지 둘러본다.

안예환_여자도 사람이다Ⅱ_혼합재료_61.6×41.9cm_2016

나혜석을 추모하는 생각의 씨앗들 ● 올해 나혜석의 탄생 120주년을 맞는다. 나혜석이 나고 자란 수원시는 이 역사적인 해를 기념하기 위해 여러 가지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나혜석의 생가가 위치한 동네에서 맞는 '나혜석생가터 문화예술축제'는 남다르다. 이 축제는 행궁동 일대의 마을주민과 예술가들이 모여서 시작한 자생적인 축제로 마을의 자원을 찾고 서로 격려하며 8년째 만들어가고 있는 축제이다. 나혜석이 자란 생가터 주변의 주민센터, 레지던시 공간, 대안공간 눈 등에서 시민이 참여하는 체험프로그램, 특별기획전시, 공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선각자의 삶을 기억하고 나혜석 생가터 복원을 꿈꾸는 행사로 성장해 왔다. 올해 축제는 나혜석의 탄생 120주년이라 마을 주민과 문화예술인들에게는 더 의미있는 행사이다. 필자는 4월 30일 오후 이 행사에 참여하여 골목을 누비는 관람객들, 그 관람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오카리나 연주 장면을 보면서 시민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동네의 역사를 기리고 과거의 인물들이 거닐던 장소를 돌아다니며 추억하고 기념하는 현장을 지켜보았다. 나혜석이 어릴 적 살았던 공간에서 대대적인 추모와 기념의 시간이 펼쳐지고 있었다

안예환_현대작가, 나혜석을 만나다展_대안공간 눈, 예술공간 봄_2016

역사적으로 누군가를 추모하는 일은 개인과 공동체의 기억을 다루는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활동이었다. 나혜석의 생일을 기억하고, 그가 살던 시대의 옷을 입고 퍼레이드를 펼치고, 기념 조각을 세우는 일은 바로 집단적 기억으로서의 나혜석을 계속 살리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나혜석에 대한 미술계의 추모가 사망한지 수십 년이 지난 1970년대 이후에야 시작되었고, 수원에서 수원시의 문화 정체성의 일부로 포용한 것은 그보다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나혜석 추모의 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원래 추모의 바탕에는 기억이라는 문제가 있다. 무엇을 기억해서 후대로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한 사회와 국가의 구성원들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기억들을 계속 재현하고 유통시키면서 현실로 구축하게 되면, 그 현실은 곧 그 사회가 만들어가는 문명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 그런데 기억의 재현과 유통의 과정은 획일적이지도 반복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현재의 정체성에 맞게 기억을 수정하여 재현하고 의미를 구축한다. 과거에 비극적 운명의 신여성이자, 가족에게도 냉대를 받았던 나혜석이 21세기 한국, 그리고 수원에서 자랑스러운 근대인이자 근대미술을 지킨 수호자이며, 용기 있게 자신의 삶을 산 여성이라는 의미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나혜석 추모의 역사는 여성과 젠더에 대한 시각이 한국에서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를 변화를 드러내며 동시에 여성의 사회적 위상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 그런데 한 도시, 국가 차원의 추모가 집단적 기억으로서의 나혜석을 공고히 하기는 하지만 그 기억을 개개인의 일상적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작동시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날마다 일상의 책임, 저마다 처한 상황의 절박함, 무관심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나혜석은 한 개인의 중요한 기억에서 비껴가곤 한다. 그러나 사회구성원이 개별적으로 기억하고 추모하지 않는다면 집단적 기억은 종종 허상이자 이념의 표상이며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혜석에 대한 추모는 수원만의 집단적 기억의 자산이 아니라 수원을 넘어 보다 많은 개개인의 기억 속에서 다시 피어나야 할 과제로 남는다. 복잡한 현대 속에서 사는 개인의 기억이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과제의 수행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개인의 일상적 기억 속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나혜석이 살아남는 일은 향후에도 여러 도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문민성_현대작가, 나혜석을 만나다展_대안공간 눈, 예술공간 봄_2016

이번 수원의 '나혜석생가터 문화예술축제'의 특별기획전 『현대작가, 나혜석과 만나다』는 그러한 개인적 차원의 추모가 예술을 통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며, 동시에 집단적 기억으로서의 나혜석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예술일지도 모른다는 답을 제공하고 있다.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예술의 속성상, 그리고 나혜석 스스로 예술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자 했던 기억 덕분이라도, 오랫동안 나혜석을 수원과 한국의 기억 속에 각인시키는 일은 예술가의 지각과 판단력을 요할 것 같다. 이 전시는 공모를 통해 선정한 안예환, 손정희, 문민정 작가가 나혜석을 해석한 작업을 제작한 후 만든 것으로 '예술공간 봄'에서 열렸다. 동양화, 서양화, 북아트 등 서로 다른 매체를 배우고 작업을 하는 3명의 여성작가는 나혜석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세대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선각자 여성 화가를 상상 속에서 만나 자신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그 이야기의 실마리는 나혜석의 작품 3점, 「무희」, 「자화상」, 「화령전 작약」으로 주최 측에서 작가들에게 영감의 토대로 제공한 것이다. ● 이 3점 모두 나혜석의 전설적인 그림들이다. 서양의 화법을 탐구하던 나혜석의 고민과 여성주의적 사고와 행동으로 뭇사람의 편견과 비난을 견뎌야했던 시간 속에서도 근대적 주체이자 신여성으로서의 삶을 증류한 그림들이다. 「무희들」은 나혜석이 남편이었던 김우영과 유럽 여행 중에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서구문화에 매료되었던 당시에 현대식 패션을 한 세련된 여성들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자화상」은 종종 서구적인 여성의 모습 때문에 나혜석과 닮지 않았다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나혜석이 유럽여행 직후에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굵직한 선과 어두운 색은 고전적이면서도 야수파적인 기법을 소화하려는 흔적처럼 보이며, 자세히 보면 논란과 달리 초상의 각진 턱 부위는 사진 속의 나혜석을 닮았다. 「화령전 작약」은 김우영과 이혼 후 사회의 냉대를 견디다 못해 수원의 고향집에 돌아와 그린 그림이다. 화령전은 순조가 부왕인 정조를 기리며 지은 건물로 수원의 행궁 근처에 있는데 바로 나혜석의 생가가 인근에 있었다. 나혜석은 일본, 만주, 유럽 등 세계를 돌아다니면서도 고단할 때면 고향집 수원에서 원기를 얻고 회복하곤 했다.

손정희_현대작가, 나혜석을 만나다展_대안공간 눈, 예술공간 봄_2016

이 전시에 참여한 3명의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 나혜석을 만나고 있을까? 나혜석이 남긴 예술은 한 신여성의 삶의 족적에 머무르지 않고 후대의 여성에게 여러 가지를 전해준다. 여성에 대한 편견에 맞서는 용기, 자아실현을 위해 타협하지 않는 도전 정신, 그리고 예술이라는 포용적인 언어로 자신의 가치를 구현하는 태도 등, 여러 유산을 남겼다. 그래서 현대의 여성작가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혜석, 여성 선각자의 비극적 삶을 예술로 추모하는 일은 제 3의 인물을 관망하는 일이 아니라 근본적인 질문, 즉 '나는 누구인가?'와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과 같다. 계급사회에서 벗어나 근대로 접어들면서 보통 사람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시절, 젊은 신여성 나혜석의 용기있는 목소리는 거의 1세기가 지난 현재에도 흉내 내기 어려울 정도이다. 오히려 나혜석의 존재덕분에 '나도 그처럼 살고 싶다.'라는 용기를 얻게 된다. ● 참여 작가들은 나혜석 추모를 통해 나혜석을 아직도 살아있는 인물로 만드는 동시에 추모의 주체인 자신, 즉 '나'의 입지를 재고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창작의 기초가 된다. 사실 추모란 사라진 것을 기억하고 지금 내가 살아있음에 대한 경외심을 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술의 영역에서의 추모도 결국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신의 가치를 펼치는 과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현대작가, 나혜석을 만나다展_대안공간 눈, 예술공간 봄_2016

안예환은 나혜석의 초상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접목하고 있다. 그동안 안예환은 보자기, 선인장, 하이힐과 같은 이미지를 통해 여성성의 양면성,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둘러싼 복합적 관점을 표현해 왔다.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전통 매체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작업하고 있는 중견화가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성의 삶과 존재의 의미를 반추하는 과정은 안 작가에게 급작스런 일이 아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들은 과거의 작업의 연장선이자 동시에 나혜석과의 대화를 유도하고 있다. 작약꽃이 배경에 펼쳐지고 그 위에 어느 정도의 공간을 두고 나혜석의 초상이 프린트된 아크릴 판을 배치하여 마치 꽃밭의 나혜석을 그린 듯한 「여자도 사람이다」는 언뜻 보기에 화려한 색과 형태로 인해 '여성과 꽃'이라는 익숙한 조합을 만드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제목 '여자도 사람이다'는 나혜석이 했던 말이고, 여성 이미지가 바로 나혜석의 자화상이며, 꽃 역시 나혜석이 위로를 얻던 수원 화령전의 기념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이 그림은 마치 교회의 제단화처럼 나혜석의 불멸성을 기리는 작업으로 정리된다. 그리고 바로 옆에 걸린 「지금 바로 여기」는 화려한 꽃 문양을 배경으로 당당하게 앉은 둥근 선인장을 보여주는데, 전자의 그림과 달리 나혜석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선명하게 드러난 선인장의 주름과 가시는 척박한 현실을 개척한 선각자의 얼굴이며, 화려하다 못해 복잡한 꽃문양은 복잡한 현실, 욕망의 흔적들처럼 보인다. ● 문민정은 장식적 패턴을 즐겨 사용한다. 캔버스 화면에 목걸이, 장신구, 의자, 꽃등 여성성의 공간과 관련된 모티프를 채워 넣으며 여성적 감수성이 폭발할 듯 화려함을 표방한다. 심지어 사용된 여성의 신체조차도 곡선미를 강조하고 있다. 문민정의 작업의 화룡점정은 자신이 먹은 전복의 껍데기에서 자개를 추출해 그 조각들을 장식의 일부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전복 조각들은 그림에 입체감을 주는 한편, 영롱한 자개의 색을 띄면서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그 색이 미묘하게 변한다. 자신이 음식으로 취하고 남은 재료와 여성의 문화를 의식하는 여성 작가라는 정체성이 중첩되면서, 문민정의 작업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예술을 하는 시간이 곧 자아를 증명하는 시간이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작품위에는 'Homage to 나혜석'이라고 적고 있으면서도 정작 작품의 제목은 「Vacancy-Self Realization」이다. 온갖 화려한 이미지를 조합하여 나혜석을 추모하고 있으면서도 '비어있음'을 추구하고 있다고 진술하는 것이다. 그림은 채움을 지향하는 반면, 정작 그림의 주제는 비움을 표방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역설은 작가 내면의 표상으로 보인다. 문민정은 작가노트에서 "나혜석이라고 하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는 설명이 있다. 신여성, 여류 서양화가, 여권운동가라는 다분히 왜곡된 페미니즘의 표현들이다."라고 적고 있다. 작가는 나혜석의 삶과 평가에 대해 완전히 공감하지 못하면서도 여성작가로 쉽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고 용기있게 살아갔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이런 솔직함은 역설적 태도를 추동시킨다. '나'도 자아를 실현하고 싶으나, 지나치게 되면 나혜석처럼 극단적인 삶으로 치달을까 두렵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비움을 통해 자아실현으로 이어진다는 불교적인 주제를 제시한다. 따라서 문민정의 나혜석 추모 역시 매우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나혜석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그리는 일로 귀결되고 있다. ● 손정희는 북아트를 전공한 작가답게 책이라는 형식을 즐겨 사용한다. 나혜석을 그리는 일에도 예외는 아니다. 크고 작은 책을 잘라 마치 추상의 편린들처럼 화면에 배열한다. 그중에서도 「꿈을 꾸다」는 직접적으로 나혜석의 자화상 이미지를 사용한 작업이다. 작가는 나혜석의 초상을 단순화시킨 후 머리 부분에 책을 잘라 알록달록한 문양으로 배치하고 있다. 야수파의 영향을 받은 원래의 자화상은 손정희의 상상력을 통해 입체파적인 굵은 선과 비대칭의 형상으로 변했고, 흑, 백, 황, 적 등 원색의 선과 면은 그 형상의 입체감을 축소시키고 있다. 이런 파격적인 이미지 해석은 손정희가 바라보는 나혜석의 삶을 보여준다. 작가노트에서 손정희는 나혜석이 강요받았던 복종과 관습, 그리고 그에 대한 반항과 갈등이라는 대립적인 구도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쓰고 있다. 따라서 문양처럼 만들어진 책의 단면들은 나혜석이 느꼈던 "억압과 고통의 무게"이며, 감은 눈은 "일방적 관습과 가부장제 아래 여성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외면한 채 복종해 온 삶의 지친 굴레에 대한 반항의 몸짓"이라고 설명한다. 언뜻 보기에 다소 추상적이며, 마티스와 피카소의 기법이 연상되는 한 여성의 이미지가 작가의 손과 머리를 통해 충돌하는 것들의 경계에 살았던 나혜석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머리와 얼굴, 얼굴의 좌우, 상체의 좌우 등 형상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요소들이 비대칭적이며, 고의적으로 균형감을 깨고 있는데, 바로 사랑과 이혼, 모성애와 자유 등 항상 반대되는 것들을 넘나들며 자아를 찾았던 나혜석의 이중성을 드러내려는 장치들처럼 보인다.

현대작가, 나혜석을 만나다展_대안공간 눈, 예술공간 봄_2016

기억은 우리가 스스로 누구인가를 파악하는 원천이다. 매일 어제의 나를 토대로 새로운 기억을 구축해가며, 기억을 통해 세상을 파악한다. 기억이 없다면 나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나혜석에 대한 추모는 바로 그 기억의 과정이자 앞으로도 계속 되어야 할 작업이다. 내일의 나를 이해하고 미래의 우리를 그리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나혜석의 삶을 페미니즘의 틀로 보던, 아니면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으로 풀어내던, 현재의 우리는 나혜석과 그가 살았던 시간과 공간의 혜택을 보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나혜석은 유용한 기억이며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현재의 문제를 반추할 수 있는 생각의 씨앗이다. 위의 세 명의 작가는 나혜석에 대해 획일적인 기억이 아닌, 다양한, 그리고 이종적인 기억을 가동시키며 잊기 쉬운 그 진리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 양은희

Vol.20160422i | 현대작가, 나혜석을 만나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