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한 破閑

한진섭_최태훈 2인展   2016_0503 ▶︎ 2016_0529 / 월요일 휴관

한진섭_생생_화강석_385×360×310cm_2016

초대일시 / 2016_0503_화요일_05:00pm

주최 / (주)인터파크씨어터 후원 / Glenfiddich

관람시간 / 11:00am~08:00pm / 주말_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복합문화공간네모 NEMO GALLERY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94(한남동 727-56번지) Tel. +82.2.6399.7459 nemo.bluesquare.kr

자신 속 타자와 대화하는 것을 근대철학이나 인식론에서는 성찰성으로 규정한다. 미적 모더니즘 역시 끊임없는 내적 사유를 통해 자신을 규정한 것처럼 30~40년을 넘게 하나의 물성을 실험한 작가들에게 재료란 단순한 재현의 도구는 아니다. 그들은 늘 시각적 형식을 실험하면서 재료의 물성에 갇힌 자신의 감각성까지 사유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니 작가들은 늘 이제껏, 바로 앞 시기에 제작한/된 작품, 현재 제작하는/되는 작품, 그리고 앞으로 제작할/될 작품들 속에서 현재 만들거나 그리는 작품을 새롭게 갱신하려고 한다. 작가들은 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작품의 형식과 의미를 따져 묻는 것이다. 그러한 시공간의 콘텍스트 속에서라야만 작가들은 자신의 존재의 당위를 스스로 보상받는다. 과거를 깨쳐야하고 현재보다 나아야하고 미래보다 더 새로워야한다는 강박, 그게 예술가의 업보이고 예술의 존재론이다.

최태훈_숨_메탈와이어_90×90×45cm_2016
최태훈_숨_메탈와이어_140×110×30cm_2016
최태훈_숨_메탈와이어_120×245×40cm_2016

한진섭은 돌만 40년을 넘게 다루었고 최태훈 역시 40년 가까이 철이라는 재료를 실험하고 있다. 하나의 재료에 천착하는 모든 예술가들처럼 이들 역시 재료가 주는 물성 자체의 감각적 사유를 뛰어넘으려고 한다. 뛰어넘고자 하는 초월성과 새롭고자 하는 혁신성(정치성)을 말하지만 사실 이는 그렇고자 하는 의지일 뿐 그렇게 하거나 자연스레 그렇게 됨을 말하는 건 아니다. 재료의 물성을 뛰어넘고자 하는 의지는 혁신성과 맞닿고 그 재료의 시간성에 오롯이 자신을 던지고 대화하는 것은 감각성과 궤를 이룬다. 늘 새롭고자 하는 의지와 재료가 던지는 한계는 작가라는 존재 속에서 끊임없이 대화하고 싸우며 담합한다. 그래서 하나의 작품은 작가의 것이라기보다 재료가 주는 시간성과 물질성, 작가와 나눈 교차적 대화의 감각성의 산물이다. 그 속엔 눈물이라는 액체성과 의지라는 고체성이 뒤섞인 생명이 숨어 있는 것이다.

최태훈_숨_메탈와이어_300×300×300cm_2016
최태훈_숨_메탈와이어_720×1800×40cm_2016

국내 돌조각의 대표적 작가인 한진섭은 단순한 형태와 돌의 질감을 살린 프리미티브한 조형미로 알려졌다. 이번 전시는 지난 가나아트 개인전에서 선보인 '붙이는 석조'를 확대하여 선보인다. 깎거나(조각) 붙이는(소조) 기존 언어를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다. 돌을 깨뜨리고 깨뜨린 돌 조각을 모자이크처럼 붙여서 만들어가는 '붙이는 석조'는 전통 조각, 특히 돌이라는 재료의 한계를 다시 묻는 작업이다. 대학과 유학을 거쳐 한 사람의 조각가가 되기까지 다뤄온 돌의 물질성을 나이 환갑에 새롭게 묻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존재 전체를 다시 묻는 것이다. 그러한 부정성과 성찰성이 이번 전시에 드러난다. 한진섭의 대형 강아지 「생생(生生)」은 형태적으로 천연덕스레 오줌을 누는 귀여운 강아지이다. 하지만 우주 만물의 순환과 생의 다채로움을 뜻하는 생생지도(生生之道)는 섭생, 배뇨의 생리가 생명순환의 근본적인 이치임을 말한다. 작품은 단순하지만 의미는 삼라만상의 생명의 논리를 품고 있다.

한진섭_봄을기다리며_화강석_220×117×98cm_2007
한진섭_세상이다보이네_화강석_158×79×70cm_2013

최태훈의 우주와 생명, 일상의 철조각은 익히 알려진 바다. 돌도 그렇지만 철이라는 소재 역시 조각에서 가장 원형적인 질료다. 문학으로 치자면 기층언어 같은 거다. 너무 원시적이고 일상적이며 흔하다. 교양 이후에 쓰는 상층언어이거나 이성에서 나온 개념언어가 아닌 것이다. 우리가 무의식 속에 숨겨왔던, 밥처럼 먹고 공기처럼 호흡하던 것이 기층언어라면 유비적으로 조각에서 철이라는 소재는 철기 이후 늘 우리 곁에 쓰인 소재다. 문학에서 기층언어가 아름다운 시(詩)나 소설로 태어나는 것처럼 버려진 쇠붙이나 공사장에서 쓰는 결속선은 생명의 이미지로 뒤바뀐다. 그러니 철이라는 물질성이나 작가가 재료와 분투한 시간성에만 매몰되어 작품을 바라보진 말자. 이번 전시에서 보이는 작품의 형태들은 원형과 사각형의 단순함을 지니고 날아다니는 꽃씨 같기도 하고 절규하며 손을 뻗는 인간들의 몸부림 같기도 하다. 금속 철사의 작은 단면들은 별처럼 반짝이고 숨처럼 헐떡인다. 차갑고 날카로운 재료 너머에 생명의 아우라가 풍긴다. 환생의 메타포다.

한진섭_행복하여라_마천석_375×350×74cm_2012

고려 문신 이인로의 『파한집』에서 주제를 가져온 이번 전시는 '한적함을 깨뜨리다'는 뜻이다. 한적함을 깨뜨려 얻는 것은 번잡함이거나 번뇌가 아니다. 오히려 온전한 한가로움을 얻는 것이다. 온전한 한가로움 속에서라야 꼼지락거리며 생명이 잉태한다. 너무 자명한 세계, 지루한 루틴을 깨어보는 것이 파한이다. 걸었던 길에서 어긋나보는 것, 성찰이 도구적 성격으로 변하기 전에 그것을 내파하는 것이 파한이다. 그것은 어쩌면 자유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90년대 초 그 많던 미디어와 설치, 영상이 한 순간 사라졌지만 그 득세의 시간 속에서도 이들은 묵묵히 돌을 깎고 철을 자르고 붙였다. 이미 마음에 한가로움을 얻은 자들은 스스로가 별이요 우주다. 그래서 급변하는 매체환경 속에서도 이들은 스스로 금석(金石)의 도(道)를 걸어 나갈 것이다. 우리는 그 과정을 잠시 지켜보는 것이다. ■ 정형탁

Vol.20160503f | 파한 破閑-한진섭_최태훈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