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e Raise

방명주展 / BANGMYUNGJOO / 房明珠 / photography   2016_0504 ▶︎ 2016_0531 / 일요일 휴관

방명주_Rise Raise-유리지붕 glasshouse #01_디지털 프린트_80×120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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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주 홈페이지_www.foasis.com

작가와의 대화 / 2016_0513_금요일_07:00pm

후원 / 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수요일_02:00pm~06:00pm / 일요일 휴관

비컷 갤러리 B.CUT casual gallery & hairdresser's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라길 37-7 Tel. +82.2.6431.9334 blog.naver.com/bcutgallery

삶의 양의성에 관한 사유1. 흘러가는 삶 속에서 우리는 문득, 홀로 설 수 없는 존재임을 겸허히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을 만난다. 누구나 결국 혼자라며 마음 한구석 허전함을 느끼다가도 이내 타인을 통해 위로 받는 자신을 본다. 인생에는 내 의지 밖의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가 하면, 한지에 먹물이 스며들듯 어느새 내 주변 누군가의 색으로 물든 자신을 은연중에 발견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나를 찾기도 한다. 지난 몇 달간 방명주의 「Rise Raise」 연작 진행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삶과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관계망을 구성하고 있는 그 자체가 아닐까. 너와 내가 만날 때 우리는 비로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존 버거 John Berger의 말처럼 "한 장의 사진은 보이는 것을 기록하면서 언제나, 그리고 그 본성상, 보이지 않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은 한 순간을 고정시킨 이미지이지만 동시에 그 바깥을 불러낸다. 방명주의 이번 연작은 그러한 맥락에서 접근해야할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 방명주의 사진 속 피사체, 그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방명주_Rise Raise-유리벽장 glass closet #01_디지털 프린트_80×120cm_2016

방명주는 「Rise Raise」 작업을 위해 부산의 오래된 식물원을 앵글에 담았다. 작가는 우연히 가족과 함께 방문했었던 이곳을 새로운 작업의 대상으로 선택했다. 방명주는 특히 온실에 집중하고 있는데, 카메라의 초점은 온실 속 개개의 식물 보다는 온실이라는 공간 자체에 맞춰져 있다. 작가는 온실의 내부와 외부를 촬영했다. 칠이 벗겨진 낡은 프레임과 거칠게 덧칠한 페인트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유리는 이 공간이 지닌 시간성을 암시한다. 작가는 말끔한 최신식 식물원이 아니라 시간의 층이 켜켜이 쌓인 온실을 선택함으로써 인공적으로 조성된 공간을 다루면서도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살리고 있다. 눈부신 햇살이 들어오는 온실을 찍은 사진에서 우리는 시간을 품은 공간 특유의 분위기, 그와 어우러진 생명의 아름다움을 본다.

방명주_Rise Raise-유리벽장 glass closet #04_디지털 프린트_40×60cm_2016

2. 「Rise Raise」 연작의 온실 사진 가운데에는 '유리지붕 glasshouse', '유리벽장 glass closet'과 '유리천장 glass ceiling'이 포함된다. 온실 위쪽에서 비스듬히 내려다 본 각도로 외관을 찍은 것이 '유리지붕', 역시 온실 외부에서 정면 혹은 측면으로 촬영한 것이 '유리벽장', 그리고 온실 내부에서 위쪽을 향해 바라본 각도로 찍은 이미지가 '유리천장'이다. 제목을 보면서 알 수 있는 것은 작가가 온실을 '집', 좁은 의미로는 '가정'에 비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실이 식물의 생육 환경에 맞게 빛,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기 위한 건축물인 것처럼 집은 가족의 보금자리이며 어린 아이를 키우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유리 온실은 방명주 자신의 삶과도 유비관계에 있다. 그녀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자기만의 삶을 유보한 채 주로 집 안에 머물면서 창문을 통해 바깥 세계를 바라보았던 시간들을 떠올렸던 것이다. 이와 연결해서 본다면 온실 속 식물과 가족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오버랩 된다.

방명주_Rise Raise-유리천장 glass ceiling #01_디지털 프린트_80×120cm_2016

이번 연작에서 작가는 일방적인 돌봄의 상태가 아니라 그 이면 裏面 혹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점은 온실의 열린 유리창 밖으로 삐져나온 나뭇가지들, 키가 껑충하게 커서 온실 천장에 닿기 직전인 선인장을 촬영한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보호의 영역을 이미 벗어나 있거나 보호받는 상태 자체가 조금은 갑갑해 보이는 나무들, 특히나 과도하게 밀집되어 있는 식물군을 찍은 '유리벽장' 사진을 보면 온실이 아니라 유리 감옥의 이미지가 연상되기도 한다. 아이는 부모의 헌신 속에서 성장하지만 동시에 스스로 자라기도 하는 존재다. 아이의 탄생과 더불어 부모라는 역할을 맡게 된 어른 역시 커가는 아이와 함께 성장한다. 아이 때문에 힘들어 하다가도 천진난만한 아이 덕분에 웃고,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하는 것이 부모다. 나를 통해 하나의 생명체로 이 세상에 온 자그마한 존재와의 인연을 신기해하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생명의 신비로움에 감탄하는 것이 부모다. 한 아이가 온전한 개체로 독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할 때, 마냥 '온실 속의 화초'로만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보호와 양육의 책임을 맡은 부모는 항상 그 수위를 고민하게 된다. 품 안의 아이가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언젠가 가만히 밀어낼 수 있는 것 또한 부모의 몫이기에.

방명주_Rise Raise-유리천장 glass ceiling #02_디지털 프린트_40×40cm_2016

지금까지 전개되어온 방명주의 사진에서 보이는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그녀의 작업이 대부분 삶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이미 조선령이「일상의 주름을 쓰다듬는 섬세한 손길」이라는 제목의 평문에서 논했던 바대로 방명주의 밝은 눈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소한 것들을 놓치지 않았다. 「부뚜막꽃」(2005) 연작이 매일 식탁에 올라가는 밥을, 「매운땅」(2008) 연작이 고춧가루를 포착했던 것처럼 「Rise Raise」 연작 역시 그녀 자신의 일상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작업과 연결된다. 방명주의 사진은 바로 삶과 맞닿은 그 지점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또 하나, 그녀의 작업이 지닌 중요한 매력은 생활 속 소재를 다루되 자기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방명주는 피사체에 대한 거리, 구도나 각도, 아주 드물게는 개입을 통해 대상의 낯선 모습을 제시한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물이라도 그 사물이 품고 있는 것을 새삼 다르게 보이게 하는 힘"에 대한 언급은 「마리오네트 Marionette」(2004) 연작에 관한 작가노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초기 작업부터 지속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일상을 면밀하게 살피지만 그 속에 함몰되지 않고 그것과의 거리를 끊임없이 조율한다. 요컨대 삶에서 출발하면서도 거리를 두는 것, 이것이 방명주의 사진이다.

방명주_Rise Raise-유리천장 glass ceiling #03_디지털 프린트_40×40cm_2016

3. 「Rise Raise」는 미발표작인 「헬리오폴리스 Heliopolis」(2011) 연작의 맥을 잇고 있다. 본래 「헬리오폴리스」, 즉 '빛의 도시' 연작은 2007년에 시작된 작업이다. 「트릭 Trick」(2003)으로부터 「스토리지 Storage」(2006)에 이르기까지 주로 사물 혹은 실내 촬영 위주의 작업을 전개해오던 방명주는 2007년 「헬리오폴리스」 작업을 하면서 확장적인 모색을 시도했다. 우리의 삶이 펼쳐지는 무대이기도 한 도시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물 표면에 비친 도심 인공조명의 추상적 이미지를, 이후에는 초고층 건물의 외장 유리에 비친 태양 또는 도시 이미지를 포착했다. 「헬리오폴리스」(2007)가 밤의 도시를 보여주었다면, 「헬리오폴리스」(2011)는 낮의 도시와 연관되는 셈이다.

방명주_Rise Raise-유리벽장 glass closet #06_디지털 프린트_40×40cm_2016

「Rise Raise」 연작 가운데 '유리지붕'은 철 구조물과 유리로 된 건축물과 유리에 투영된 이미지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헬리오폴리스」(2011)와의 직접적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헬리오폴리스」(2011)가 건물 표면과 반사된 이미지에 머물렀다면 「Rise Raise」 연작에서 작가의 시선은 건축물의 외부와 내부를 동시에 탐색하며 공간과 그 안에 담긴 생명을 함께 포착한다. 더불어 기존의 작업에서 보이던 질서와 구성을 향한 강한 의지를 내려놓고 어느 정도 카메라의 눈과 상황에 맡겨 둔다. 빈틈없는 배치와 조형성을 추구했던 경향에서 작가는 조금 비껴서 있다. 녹슨 철골 구조물, 먼지 낀 유리,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린 페인트 자국, 금이 간 유리창 등 온실 공간이 견뎌온 시간의 흔적이 사진에 그대로 담긴다. 이 점에서 대상의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려는 작가의 태도적 변화가 엿보인다.

방명주_Rise Raise-얼음땡 freeze tag #02_디지털 프린트_60×40cm_2016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전 작업과 「Rise Raise」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들 수 있는 것은 바로 인물이 포함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온실 바깥에서 정면 각도로 촬영한 '유리벽장'에는 필연적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작가 자신의 이미지가 투영될 수밖에 없다. 물론 사진 속 인물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으며 유리에 비친 이미지로만 흐릿하게 존재한다. 예를 들어 '유리벽장' 작업 가운데 온실 유리에 비친 딸아이와 사진을 찍고 있는 작가가 들어있는 사진이 있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유리벽장'에는 그녀와 어머니의 모습이 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누군가의 딸이었던 작가는 어느새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렇게 세대와 세대는 이어진다. 너무나 희미해서 제대로 알아보기 힘든 사진 속 어머니는 아마도 작가에게만 온전히 보일지 모른다. 그것은 내밀한 기억의 이미지이며 숨김과 드러냄 그 사이에 있다.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에게 어머니의 온실 사진이 그러했듯, 「Rise Raise」에서 이 사진은 방명주에게도 '거기에 존재했음'에 대한 증명이면서 사랑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Rise Raise」 연작은 어느 식물원의 온실을 찍은 사진들이지만 결국 삶과 사랑에 관한 이미지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은 우리 삶 속에 존재하는 양의성 兩義性에 대한 이미지다. 그러므로 나는 방명주의 앞선 어느 작업보다도 이번 「Rise Raise」 연작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느낀다. 이 사진들을 보면서 우리는 생명성의 본질과 시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도 있고, 작가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서 살아가는 방명주 자신의 일상에 대한 성찰을 엿볼 수도 있다. ■ 김보라

방명주_Rise Raise-모뉴먼트 monument #03_디지털 프린트_80×120cm_2016

엄마와 함께한 나들이에서 마주친 고향의 오래된 식물원에서 'Rise Raise'는 시작되었다. 낡은 온실 속 습기를 머금고 유리온실 창밖으로 삐져나온 묵은 식물들. 천창 아래 녹슨 쇠 구조물들 사이로 초록과 붉은 빛깔이 자라고 키워진다. 천창 위 푸른 하늘을 향하지만, 더 뻗어 자랄 수 없는 운명이다. ● 어느덧 내가 엄마가 되었고, 아이들이 자라나는 기특한 시간만큼 부모님의 잃어가는 기력을 안타까워하는 애틋한 감정들이 교차한다. 이제 자라는 것도 길러지는 것도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하는 가볍지 않은 시간이 흐른다. ● "어떤 의미에서 우리 각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카자 실버만, 『월드 스펙테이터』 에서 인용.) 내 뜻대로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라는 생멸하는 시간들. 새싹이 돋고, 자라고, 꽃이 피고, 잎과 씨앗이 떨어지고, 죽고, 다시 움튼다. ■ 방명주

Vol.20160504b | 방명주展 / BANGMYUNGJOO / 房明珠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