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발견

이미,지誌展   2016_0504 ▶ 2016_0522 / 월요일 휴관

사진의 발견-이미,지誌展_갤러리3_2016

초대일시 / 2016_0504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금순_서종현_이재훈_전은선_전해리_한금선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3 GALLERY3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11(인사동 188-4번지) 3층 Tel. +82.2.730.5322 www.gallery3.co.kr

사진이란 어떤 연유로 해서 사진가의 망막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그 것 또는 그 곳을 선택하고, 발견하고, 찾아내는 행위이다. 다시 말해 카메라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이미' 기억 속에 존재하느 자연의 또는 인공의 이미지를 선택하고 연출하여 '기록하는' 것이다. 기록된 이미지들이 어떤 사진언어를 가지고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 볼 일이다. ■ 갤러리3

김금순_숲2015-1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0×90cm_2016
김금순_숲2015-2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0×90cm_2016
김금순_숲2015-3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0×90cm_2016

'눈이 보배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주변의 형상이나 조화를 살피기를 권하셨고 그것이 좋은지 아닌지도 모른 채 자라온 게 아닌가 싶다. 오랜 시간 시골 숲과 더불어 보내온 날들은 내 어머니의 감성을 닮아 그런지 스스로 알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보는 것이 편해졌고 익숙해 졌으리라. 꽃이 피고 지는 반복 속에서 놓쳐버린 계절이라도 생각할라치면 못내 아쉬움에 마음 한켠이 허전하고 지나버린 계절과 상관하기 힘들 만큼 사는 것이 바쁠 때면 가버린 그 시간에 몹시도 미안한 생각이 들곤 한다. 바람에 흔들리며 반짝이는 잎이 봄날의 꿈 속 낮잠처럼 내가 나인지 아닌지 모를 그런 순간이면 가슴 깊은 곳에서 떨려오는 그 소리... 나는 또 숲을 만나러 간다.. ■ 김금순

서종현_Untitled_젤라틴 실버 프린트_12×15cm_2003
서종현_Untitled_젤라틴 실버 프린트_14.5×22.5cm_2006
서종현_Untitled_젤라틴 실버 프린트_22.5×14.5cm_2003

사진을 찍는다는 것, 즉 대상을 렌즈에 담는 행위는 보편 대중화된 놀이처럼 흔한 것이 되었다. 피사체를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 평면 위에 시각화된 메시지를 담아내는 것, 연속적인 현상을 한순간의 컷으로 설명해 주는 것. 이 모든 것들을 위해 때로는 인위적인 행위가 첨가되기도 한다. 문학으로 치자면 화려한 미사여구를 부여한 문장이라고 설명될 수 있을까. 물론 '인위적'이라는 정의의 범주를 어디까지 두는 것인가에 따라 많은 분류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해석되지 않은 피사체를 창문, 불투명한 막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인위적인 행위에 해당되는가는 보는 이의 몫이겠지만, 사진 작업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점에서 프레임을 통과시키는 행위 자체도 인위적인 범주에 넣어야 할 정도로 이번 이미지들은 최대한 모든 것들을 들어내고 오로지 '프레임'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만을 남겨놓았다. 피사체에 대한 해석보다 그것이 프레임을 통과하여 비춰지는 것 자체에 초점을 둔 것은 카메라가 렌즈를 통해 오브제를 시각화 해주는 역할과 맞닿아 있다. 존재하는 오브제는 내가 바라보고 인식한 후에 비로소 나의 의식의 메모리에 저장되고, 카메라 렌즈를 통과해야 비로소 평면 인화지에 침착하게 된다. 이미지 안의 프레임을 통과해 보여지는 '너머'의 오브제는 이러한 나의 생각의 방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카메라와 나의 눈이 그러하듯 이미지 자체가 '통로'로서의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형상 , 사물 자체의 표현이라기 보다 빛을 통과시키는 카메라 구조의 역할처럼 그것을 담아내는 프레임 너머로 보여지는 대상. 그것에 대한 해석은 보는 이의 몫으로 남겨둔다. 나의 내면의 장치는 그 자체가 카메라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렌즈 너머의 대상이 담긴 순간에 대한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카메라를 '통해' 담긴다는 것, 분리되어 있는 각각의 창이 보여주는 대상의 풍경은 다르고 그것들이 합쳐져 보여주는 모습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 서종현

이재훈_中間都市.해운대.부산_잉크젯 프린트_80×80cm_2006
이재훈_中間都市.경복궁.서울_잉크젯 프린트_80×80cm_2006
이재훈 _中間都市.해운대.부산_잉크젯 프린트_80×80cm_2006

中間都市 -그 남쪽을 향해 걷다 ● 한 여름 낮, 대학로 이화 사거리, 정림건축 사옥에는 여름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쬔다. 나는 정림건축의 그림자 밖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하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리고 한 발짝 내딛어 남쪽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땀은 비 오듯 하며 뜨거운 햇살에 눈을 치켜 뜨기 어려워 분홍색의 본더치 모자를 살짝 벗었다 눌러쓰고 호흡을 고른다. '눈에 띄는 볼거리'와 이른바 '이정표'를 지나치며 방향을 잡고 1969년형 롤라이플렉스 이안반사식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타박타박 걸으면서 도시를 훔쳐본다. 이화여대부속병원을 지나 동대문운동장을 향해 걷다 멈추어 서서 파인더를 열었다, 닫았다 하며 잠시 머뭇거린다. 이건 아니다 싶어 열었던 파인더를 살며시 닫는다. 만화경과 같은 미세한 감정의 파장들이 나의 마음을 뚫고 지나가지만, 막상 셔터를 눌리지는 못한다. 나는 카메라를 든 사냥꾼처럼, 마음속에서는 어서 빨리 사진을 찍으라고, 그것은 가장 부드러운 사냥법이라고, 그래서 현실을 기록하라고 재촉한다. ●다시 땀은 비 오듯 하며 건물 사이사이 에어컨의 실외기에서 내뿜는 열기는 나를 더욱 지치게 한다. 아직 갈 길은 먼 것 같은데 신발 속 작은 돌맹이는 언제 들어갔는지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정처 없이 걸어가는 나를 떠밀어 남쪽으로 향하게 한다. 광희 사거리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며, 신호등에 살짝 몸을 의지하고, 몸을 구부려 신발 속 작은 돌맹이를 털어 내다 주위사람들의 반응에 신호가 바뀐 것을 알아차리곤 서둘러 신을 고쳐 신고 부지런히 대열 속에 끼어든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함께 된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장충단 공원을 지나 국립극장을 향해 걸어 올라가다, 장충 리틀 야구장에서 연습중인 학생들을 보며 호기심이 생겨 철조망 사이로 렌즈를 비집고 집어넣어 보지만 생각같이 되지 않아, 이 참에 야구장으로 들어가려 하지만 내리쬐는 햇볕이 나를 가로막는다. 잠시 망설이다 가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그래 다음에 촬영하면 된다고 나를 위로하지만, 사실 다음은 없다라는 것을 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 국립극장에 시원한 바람을 쐬기 위해 돌계단을 올랐지만, 생각 같이 시원하지는 안으며, 오히려 텁텁할 뿐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퍼렇지도 그렇다고 맑지도 않은 그저 그런 하늘이며, 오래되 보이는 커플이 할일 없이 파라솔 밑 그늘에 내려 앉아 서로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지루한 듯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나는 무심히 응시해 본다. 국립극장 옆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바라보며, 잠깐 남산 정상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아 볼 것을 상상하며 망설이다가, '서울이란 도시는 계절과 상관 없는 곳인가보다'라고 생각하다가 다시 방향을 남쪽으로 잡는다. SK 주유소를 지나 할리 데이비슨 매장을 지나치며 습관적으로 사진을 한 장 찍고 육교를 건너 미8군 부대 담 길을 걸으며 신발 안에 돌맹이가 없어져 밎밎하다는 생각과 함께 뒤를 한번 돌아보며 '낯설다'라고 느낀다. 이 더위도 무색할 만큼. 단대 앞 버스 정류장에서 이태원으로 올라가볼까 다시 한번 망설여보지만 좀처럼 마음이 잡히지 않아, 담배를 하나 빼물 때쯤, 마침 내 앞에선 471버스에 아무 생각 없이 올라탄다. 버스는 휘청거리며 횡한 한남대교를 건넌다. 버스 안의 건조한 에어컨 바람이 젖은 회색 면 티 안으로 파고 들고,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회색 빛 뿌연 서울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주섬주섬 카메라를 접어 가방에 집어 넣는다. ■ 이재훈

전은선_거울속 풍경 #2_잉크젯 프린트_100×125cm_2011
전은선_거울속 풍경 #6_잉크젯 프린트_60×90cm_2011
전은선_거울속 풍경 #15_잉크젯 프린트_60×90cm_2011

거울 속 풍경 ● 거울은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이기도 하고 또 거울에 비쳐진 모습은 우리의 세계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거울을 사이에 두고 세상과 내가 마주하고 있다. 바라봄과 보이는 대상으로... 거울은 실재하는 것을 그대로 투영하는 듯 하지만 거울 속 풍경에서는 상징과 현존, 거울 속과 밖, 반영과 실재를 중첩되거나 혼재해서, 관객은 거울 속 풍경을 바라보며 자기를 떠나 다시 자기에게 돌아오기, 거기에 있을 나, 혹은 그러한 나를 바라보는 투영된 나를 들여다 보는 내밀한 공간이 되게 하였다. '거울 속 풍경'은 이렇듯 이미지의 반영이나 중첩 혹은 반사등의 반복을 통해서도 시각적 감상이 되기를 원하지만 동시에 기억의 반복을 통한 감상이 되기를 바란다. 라틴어의 거울을 의미하는 'speculum'에서 영어의 명상이라는 말 'speculation'이 나왔듯 거울 속 풍경이 감상이 되고 명상이 되길 바란다. '거울 속 풍경'에서는 지금 와 닿을 수 없지만 거울 저 편의 환상을 넘어서 지금의 나에게 울림이 되어 어떤 메아리가 되어오는 지 묻고 있다. ■ 전은선

전해리_소록도 02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0×90cm_2008
전해리_소록도 12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40×60cm_2008
전해리_소록도 13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40×60cm_2007
전해리_소록도 14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40×60cm_2008

이순심(86) 할머니가 나물을 다듬고 있는 모습. 2008. 소록도 구북리. 시신을 화장하고 난 후 운반했던 상여를 구북리에 위치한 화장터 근방의 해변가에서 태우고 있는 모습. 2007. 소록도. 화장 후 아직 남아있던 유골 덩어리를 유골함에 넣기 전에 곱게 빻고 있는 소록도 주민. 고인과 같은 남생리에 사셨다는 이 분은 섬에서의 화장을 도맡아 하고 계셨는데 연로하신 주민들이 하나 둘씩 떠날 때마다 아쉽지만 이제는 조금 담담히 자신의 차례도 기다릴 수 있을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2008. 소록도 구북리. 소록도 납골당. 매년 10월이면 추모회를 가지고 공개적으로 납골당을 개방하는데 이는 주민들과 가족들이 고인을 잠시나마라도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납골당 내부에는 층이 나누어져 있고 유골함을 바닥에서부터 매년 한 층씩 올리기 때문에 대략 돌아가신 해를 가늠할수가 있다. 좁은 공간때문에 10년째 추모회 때 유족들이 유골함을 받아가도록 되어 있는데 유족이 없을 경우 납골당 뒷편의 묘지에 매장된다. ■ 전해리

한금선_꽃무늬 몸뻬, 막막한 평화 #001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0×40cm_2009
한금선_꽃무늬 몸뻬, 막막한 평화 #006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40×60cm_2009
한금선_현장 #001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0×200cm_2014

현장 오체투지. 그리 오랜 과거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수만의 누이들이 재봉틀 앞에 앉아 산업역군이란 이름으로 꿈을 강탈당했습니다. 그리고 또, 어제는, 평생직장이란 이름으로, 애사심이란 단어로 무장되어 꿈을 꾸어 보았습니다. 오늘은 비정규직이란 이름으로 또 다른 신분을 얻습니다. 그 신분은 우리네가 아닌 자본가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언제든지 경제라는 무서운 단어를 치켜들면 모든 것이 해결 가능한, 그런 자유를. 꽃무늬 몸뻬, 막막한 평화. ● 햇살 아래 조용히 더듬어 본다. / 이곳의 삶보다 더 짧았을 그 세상 기억 저편의 얼굴을 더듬어 본다. / 높다란 담이 있어 그 담이 나를 가두는 건 아닌데. / 함께 있자고 내 팔 부여잡는 이 있어 / 그 이 때문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 햇살 아래 조용히 더듬어 본다. ● 몸뻬 길을 나서려면 난 벌써 내 지내는 그곳으로 돌아가려한다 세상에 잠시라도 / 있기는 참 힘든 일이다 그래서 길에서도 난 내 지내는 그곳을 향한다 세상을 / 향해 손을 내밀기도 힘들다 그나마 내 손잡고 힘겨운 걸음 옮기는 같은 방 / 사람의 체온이 두 손안에 머문다 ● 막막한 평화 같은 시간에 땅을 밟는다. "난 이십년. 저치는 아마 삼십년이 넘었지 아마, 그치?" / 아침이면 종일 들뜰 채비를 한다. "엄마 오늘 온다!" 이른 시간 저녁 먹곤 풀이 죽는다. / 묻지도 않았는데 "내일이라데" 뒤돌아 휑하니 가버린다. // 햇살이 오르면 다시 그리움으로 살아나기에 그 삶의 기억 땅속에 밀어 넣는다. ■ 한금선

Vol.20160504d | 사진의 발견-이미,지誌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