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곰팡이

백주은展 / BAEKJOOEUN / 白珠銀 / installation   2016_0508 ▶︎ 2016_0521

백주은_빛의 곰팡이展_스페이스 이끼_2016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24시간 관람가능

스페이스 이끼 SPACE IKKI 서울 성북구 성북로23길 164 www.spaceikki.com

빛은 곰팡이를 소멸시킨다 - 드러나는 글자들, And then you were gone. ● 우리는 사어들의 무덤에 깔려 껍질뿐인 태아가 된다고 했지 무너지는 절벽 사이에 낭만적 연민 그 뿐이라고 생이 납작 엎드려 숨어들어 보드랍고 축축하고 역겨워 지어낸 기억에 남은, 지나간 당신의 그림자 빛을 가린 목덜미 거길 지배하는 잔털 손끝에만 전해지는 그 사소함 뱀 같은 살성을 가졌어 하나씩 떼버린 발가락을 주웠어 덜 자란 손가락 태초 무렵에 걸음처럼 그림자에 배를 대고 갈게 놓쳐버린 단어들을 찾아볼게 우리의 이름은 입술보다 먼저 있었지 And then you were gone (백주은 작가노트 중)

백주은_빛의 곰팡이展_스페이스 이끼_2016

손을 뻗어 태양을 가려 보았다. 가려질 턱이 없지. 손가락 사이사이로 태양빛은 보란 듯 스며들었다. 순간 손가락이 불타오르는 듯 보였다. 모두가 투명해 지는 순간이다. 강렬한 빛은 일순간 모든 것을 사라지게 만든다.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여야 간신히 그것들의 실체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다. 아이는 티비 화면이 보이지 않는다고 투정이다. 빛은 어김없이 아이의 집까지 들어와 있었다. 언젠가 아이는 태양을 향해 주먹을 날린 적인 있다. 그러자 주먹은 어느새 사라지고 금빛 잔털들이 무질서하게 그 자리를 대체했다. 실은 그것이 금빛인지 혹은 어떤 색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색 없는 색, 빛으로 발현되는 색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어느새, 태양은 무엇이건 소멸시킨다 라는 명제가 아이의 머릿속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 아이가 태양에 주목한 것은 딱히 주목할 것이 없어서였다. 아니다. 아이에게 허락되는 시간에 태양은 얄궂게 티비 화면을 소멸시켰다. 그때부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강렬한 빛은 아이가 보고자 하는 것을 없애버렸다. 낡은 브라운관은 물론이고 주먹, 가냘픈 아기의 머리칼, 반짝이는 나뭇잎, 높은 교회의 첨탑, 저 멀리 나를 향해 달려오는 엄마, 꼭 잡은 연인들의 손, 뱅글뱅글 돌아가는 자전거 바퀴, 무심코 차게 되는 신발주머니, 희영이 머리위에서 반짝이는 구슬 머리끈, 엄마 대신 내게 내민 할머니의 주름 진 손, 아빠 몰래 펴 본 사진첩, 도서관 창문에 기대서 보는 흥미 없는 하얀 책.

백주은_빛의 곰팡이展_스페이스 이끼_2016

언젠가 아이는 엄마의 말을 기억해 냈다. 빛은 곰팡이를 소멸시킨다. 그리고 한 가지 문장을 더 기억해 냈다. 빛이 소멸시킨 바로 그 장소에서 읽었던 그 한 문장. 엄마는 물고기다.(「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윌리엄 포크너) ● 엄마는 물 없는 바닥에서 빛에 의해 소멸되고 있었다. 파닥이는 몸부림이 잦아들자 점차 엄마는 말라갔고 간혹 달갑지 않는 곤충 친구들이 엄마의 비늘위로 내려앉았다. 그날도 뱅그르르 돌아가는 신발주머니와 빛이 만드는 숨바꼭질을 의미 없이 바라보고 있었지. 시점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 것은 엄마가 물고기로 변했기 때문이라고 내가 된 아이는 생각했다. 곰팡이가 핀 화장실 타일을 보면서 창문을 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물고기는 말했다. 빛은 곰팡이를 소멸시킨다. 아니다. 뻐끔.

백주은_빛의 곰팡이展_스페이스 이끼_2016

브라운관은 해상도 좋은 모니터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빛은 여전하다. 화면을 누웠다 세웠다 반복한다. 어느새 단서를 찾기 시작했다. 피터 한트케, 이명, 없어진 글자 you, 사라진 철자들, 문장이었던 그 말 And then you were gone, Short Letter Long Farewell, 누군가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이야기, 애써 지운 마침표의 흔적, 제멋대로 붙여진 쉼표, 이렇게 하시면 안 된다는 말들, 이렇게 써도 될까 하는 고민 없는 고민, 나의 신분을 묻는 누군가의 물음, 나는 무엇 하는 사람인가, 나는 무엇인가, 물고기의 마지막 비명, 뻐끔. ● 빛은 곰팡이를 소멸시킨다. 드러나는 글자들. And then you were gone. ● 백주은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녀의 단편영화들을 보면 영화라기보다 일종의 시 같은, 명상의 위한 사색을 위한 기억들의 단편 같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그의 헤어스타일이나 옷차림, 혹은 화장기법, 신발, 액세서리 등으로 그 사람을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다. 소설이나 영화로 말하자면 그러한 것들이 캐릭터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옷차림이나 그 사람들이 사용하는 어떤 물건에서도 특징을 찾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시 같은 사람들이다. 한두 번으로 그 내면을 볼 수 없는 사람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 '좀머씨' 같은 사람들 중에 백주은을 넣고 싶다. ■

백주은_빛의 곰팡이展_스페이스 이끼_2016

2016 성북예술동 기획전 ● 스페이스 이끼는 북정마을 끄트머리에 위치하고 있다. 3번 마을버스가 위태롭게 비탈길을 오르고 나면 북정카페를 기점으로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온다. 차를 가지고 이끼에 가다보면 내려오는 차, 혹은 올라오는 차로 인해 간혹 애를 먹곤 한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이력이 나, 마주치는 차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지만 주차문제는 여전하다. 지정주차를 하고 있지만, 지정주차 자리에 차를 대는 것 자체가 간혹 오는 '손님'이 '이웃'들에게는 여전히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듯하다. 2016 성북예술동 '이웃트기'에서 이끼는 네 가지 전시를 기획했다. 백주은 개인전 『빛의 곰팡이』, 이지윤 개인전 『크라임 씬』, 김지윤 개인전 『빈 집』, 공동 퍼포먼스와 영상물인 「24hours」와 「북적북적」이 그것이다. '이웃'과 '트기'라는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나란히 또는 가까이 있어서 경계가 서로 붙어 있는 집 혹은 그런 사람과 막혀 있던 것을 치우고 서로 스스럼없이 사귀는 관계가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동안 이끼에서는 매달 개인전을 해 왔고, 새로운 개인전을 열 때마다 말 그대로 이웃집 할머님들이 첫 관람객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주차문제는 있다.

백주은_빛의 곰팡이展_스페이스 이끼_2016

작가들이 전시를 설치하거나 철수하러 드나들고, 전시를 보러 외지인들이 올 적마다 우리 이웃들은 작품보다는 외지인들을 관람하는 하는 것이 더 흥미로워 보였다. 왜 이런 곳에 이런 것들을 하는지, 뭐 볼게 있어 여기까지 힘들게 올라오는지, 부셔져 내다버린 의자 쪼가리가 뭐 대단하다고 셔터를 눌러 대는지 그들에게는 우리의 그런 행동 자체가 신기하면서도 낯설고 불편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시선에 주목했다. 그들의 환경과 그들의 문화를 예쁘고 아기자기 하게 바꾸고 담아내기보다, 외지인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 여러 갤러리와 문화공간들이 성북동의 빈집들을 터는 것을 바라보는 '이웃'들의 눈으로 작품이 아닌 일종의 현장증거들을 수집했다. 이것은 우리의 시선이 아닌 그들의 시선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 또한 그들의 시선이 될 수 없을 것이고 일종의 작품으로, 범죄사건의 단서로 남게 될 수도 있다.

백주은_빛의 곰팡이展_스페이스 이끼_2016

백주은과 이지윤, 김지연 개인전에서는 성북동 주민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사소한 것들에 주목한다. 외부 관람객들이 지나쳤을 법한 것들, 혹은 주민들에게 낯선 물건들 가령 버려진 가구나 폐허를 찍는 카메라, 버려진, 아무도 살지 않은, 예술가들에게 점령당하지 않은 빈 집과 같은. 성북도원에서 열리는 퍼포먼스 「24hours」 전시 『북적북적』은 금기의 이중성, 파괴와 생성의 경계에서 고정된 역할이 주어지지 않은 성북도원의 장소적 특징을 상기시킨다. 또한 해체된 공간을 시각적으로 채우는 것은 어떠한 사유를 지녔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자 할 것이다. ■ 피서라

백주은_빛의 곰팡이展_스페이스 이끼_2016
백주은_빛의 곰팡이展_스페이스 이끼_2016

불면에 갇힌 이름 그림자가 사라진 곳에 남은 빛 밤에 홀로 남아 부재의 그림자가 된다 호명되지 못한 꿈 빛의 등 뒤로 선 당신이 불쑥 쪼개진 빛 덩어리가 들락거렸다 사어死語 유령도 되지못한 당신을 가리키는 적당한 그 이름 손바닥에 사어가 된 꿈을 쓰면 미래에 읽었던 최승자의 시 입을 벌려 "아무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사어들의 무덤에 깔려 껍질뿐인 태아가 된다고 했지 무너지는 절벽 사이에 낭만적 연민 그 뿐이라고 생이 납작 엎드려 숨어들어 보드랍고 축축하고 역겨워 지어낸 기억에 남은, 지나간 당신의 그림자 빛을 가린 목덜미 거길 지배하는 잔털 손끝에만 전해지는 그 사소함 뱀 같은 살성을 가졌어 하나씩 떼버린 발가락을 주웠어 덜 자란 손가락 태초 무렵에 걸음처럼 그림자에 배를 대고 갈게 놓쳐버린 단어들을 찾아볼게 우리의 이름은 입술보다 먼저 있었지 얼굴이 모습을 지워갈 때 이륙하던 비행기와 착륙하던 별이 마주칠 때 파도 부스러기가 구름에 입을 맞출 때 당신이 눈을 감아 세상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시간이 그대로일 때 운명을 알기 때문에 빨리 죽게 한다는 살성殺星 어둠의 끝자락을 따라 바닥에 닿기 전에 숨자 땅의 마른 거품 발등을 덮쳐와 이피하는 몸의 조각들 미끄러진 살성이 빛을 흔들고 우리는 사어가 되지 (인용시 - 최승자, '일찌기 나는' 시집 『이 時代의 사랑』) ■ 백주은

백주은의 영상들 포옹 (스톱모션애니메이션) 한국/2009/1분/BW www.youtube.com/watch?v=AtHbcjpxvhU&feature=youtu.be - 2009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現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익스트림쇼트 본선 바캉스(단편영화) 한국/2009/23분/color www.youtube.com/watch?v=1cwIl0YNWcM&feature=youtu.be - 2010 서울국제여성영화제 - 메리케이 우수상 - 2010 대만여성영화제 - 2010 8월 단편 상상마당 외 다수 당신의 첫(다큐멘터리) 한국/2014/4분53초/color www.youtube.com/watch?v=E80eBxb7fjo&feature=youtu.be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다큐멘터리, 실험영상) 한국/2016/10분/color & b/w

Vol.20160508b | 백주은展 / BAEKJOOEUN / 白珠銀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