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EET-SMARTS

김부희展 / KIMBOOHEE / 金富希 / painting   2016_0518 ▶︎ 2016_0523

김부희_go &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15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토포하우스 TOPOHAUS 서울 종로구 인사동11길 6(관훈동 184번지) Tel. +82.2.734.7555 www.topohaus.com

STREET-SMARTS: 어떤 처지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요령이나 지혜Ⅰ. 나는 도시 한 복판에서 태어났고, 성장했고, 수십년을 살아왔다. 내게 있어 고향에 대한 향수는 얼룩백이 송아지가 아니라 길위의 바글거리는 사람이었고, 흐릿한 회색스모그였고, 경유가 타서 뿜는 버스뒤꽁무니의 매캐한 매연더미였고, 그 것을 헤치고 나아가는 복잡다단한 관계망에로의 출근이었다. 그렇게 내 그림은 서정적인 향수로 시작되었다. 하나하나 깊이있는 존재의 중량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흐릿한 삶의 배경으로 존재하는 도시속 사람의 모습은 일상의 작은 역사였다.

김부희_stop &_캔버스에 유채_97×145.5cm_2015

Ⅱ. 그렇게 시작된 내 작은 역사의 기록물이 생산되는 동안 나는 역사와 경제, 사회, 정치의 설왕설래안에 갇히게 되었다. 손은 서정적이었으나 귓속을 파고드는 지식과 정보들은 넘쳐났고, 배배꼬여 진실을 알 수 없는 사건과 사고들, 해석불가의 심리적 경제상황, 쏟아지는 음모론 안에서 지식의 축적은 커녕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대한 판단도 용이하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권의 도서목록과 기사, 뉴스, 에세이, 이미지, 영상, 이야기, 팟캐스트, 과학기술, 연구실적, 광고들이 업데이트 되었고 사회적관계망과 숫자가 늘어난 미디어들은 열심히 도시속 구성원들에게 그것들을 옮겼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축하는 하나하나의 세계는 정교하고, 놀랍도록 흥미로웠다. 관심을 두건 그러지 않건,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쏟아지는 input들을 자의적으로 단절시키기는 이미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들어오는 너무 많은 입력요소들 안에 기억해야 할것과 망각해야 할 것들은 뒤죽박죽이 되었고, 옳고그름의 판단력은 널뛰었다.

김부희_같이_캔버스에 유채_45×53.9cm_2015

오늘날의 사회상황이란 단순하거나 명쾌하지 않다.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는 영역안에서 과거보다 훨씬 목소리를 높이며 작게는 자신의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크게는 하나의 영역이 될만큼의 전문분야에 대한 컨텐츠들을 만들어간다. 그리고나서 수많은 편집자, 마케터, 기획자들은 그것들을 통해 열심히 '사람들'의 마음에 파고들어가는 방법을 연구했다.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는 우리의 감각(보고, 듣고, 느끼는)을 통해 교묘하게 입력된 '장치'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원하도록 시스템화 되어져 가고 있다. 그 사실을 눈치챈 영악한 사람들은 점차 타인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를 탐색하고 방어를 모색하지만 정교하게 쌓은 장치의 틀 속에서 길을 잃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목적지를 향해 거리 위를 걷고있지만 실상은 목적지를 잃은 구성원들의 시선은 어디를 향해 있는 것일까.

김부희_대화_캔버스에 유채_45×53.9cm_2016

Ⅲ. 사회적 망 안에서의 삶이 그렇게 복잡다단하다면 인간의 소소한 관계는 어떨까? 상황은 그닥 고무적이지 않다. 사람간의 소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명제를 누군가 외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이미 사람들은 단절된 관계 안에서 헤메이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이 뒤죽박죽이 된 상황안에서 타인에게 말걸기는 공허하다. 전달하고 싶은 말은 상대에게 일백프로 전달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말을 통해 상대를 이해시켰다고 믿지만, 상대는 듣고싶은 말만 믿고, 이해하고 싶은 말만을 이해하고, 진실보다는 얼핏 스친 오류를 기억한다. 게다가 이제 누구나 들고다니는 손안의 기계는 관계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뻑뻑한 단절이다.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착각 안에서 말이다. '자유는 결국 에피소드로 끝날 것'이라고 예언한 한병철의 말과 같이 사람들은 길 안에서 목적지를 향해 자유롭게 걷던 길을 잃었다. 조금은 더 명료했던 오프라인의 세계는 온라인으로 확장되었고, 우리의 삶이 디지털 망안에서 배회할때 단일의 가치관 안에 살아가고 있었던 자아들은 붙잡을 데를 찾지못하고 마구 흘러가고 있다.

김부희_in the street-smarts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16

Ⅳ. "체온은 얼음집 안의 거의 유일한 난방시설이므로 사람들의 따뜻함은 더도 덜도말고 정확히 생물학적 의미로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그들은 유대하고 부대끼고 얽혀서 산다. 그래서 이누이트 족은 관대하고, 인정이 많고, 유머감각도 뛰어나고, 잘 웃는다. 얼음집 안에서의 공존과 평화로움은 절대적이다. 이누이트족은 결코 화를 내거나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다.불평하거나 불만을 말하지도 않는다. 이누이트족은 불평 자체를 금기로 여긴다. 남에게 뭔가를 강요하는 규칙도 없고 심지어 그런 개념조차 없다.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고 말하지 않으며,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도 않는다. 서툰 동정도 서툰 위로도 하지 않는다. 동정이나 위로 그 자체가 상대방에겐 심한 모욕이 될 수 있으므로 사실 간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러니 누가 어떤 상태를 보이든 그저 묵인하며 스스로 견디도록 내버려 둔다. 상대방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는 것처럼 이누이트족은 아무도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고민에 대해서, 분노에 대해서, 외로움에 대해서, 견딜 수 없는 역겨움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 아무도 서로를 간섭하지 않고 아무도 서로에게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 얼음집에서 바다사자와 물개와 고래의 피를 마시고 자란 이 거칠고 뜨거운 사람들은 상냥하고 온순하고 평화롭게 지낸다. 그리고 어느 날 마음에 견딜 수 없는 격정과 우울이 찾아오면 조용히 얼음집 밖으로 나가 혼자서 자살을 한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아무도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바다사자와 물개와 고래의 피를 마시고 자란 사람들은 그렇게 죽는다." (김언수 소설 '잽' 에서 발췌)

김부희_be street-smarts_캔버스에 유채_97×145.5cm_2016

소설안에서 발췌한 이누이트족의 삶이 오늘날 우리의 상황과 다르지않다. 저들이 자신의 격정적인 피 안에서 살아가야 할 길을 잃고 종래에는 저 자신도 알 수 없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소통은 절벽이 되어 간 것 처럼, 우리도 갈 곳을 잃고 단절된 자아 안에 떠돌고 있다. 방향을 상실한 혼돈의 상황에서 떠돌던 사람들은 보는 것이 , 듣는 것이 '진실'인지, '옳은 것'인지의 방향을 상실하게 되고, 감정과 감각은 온전히 자신의 것만이 아닌 세상이 사지선다형으로 제시해주는 것들로 대체된다. 감미로운 음악을 듣고, 감각적 사치를 표면적으로는 요구하지만 이미 우리들의 내면은 천천히 DUMMY의 형태로 옹벽을 쌓고 있다. 마치 이누이트족 처럼. ● 인류는 수만년에 걸쳐 그들이 수십만번 반복하여 겪는 작은 사건의 특질을 유전자 안에 하나하나 각인시켜왔다. 오늘날 우리에게 반복되는 입력체계의 방대함들이 어떤 모양으로 인류안에 자리잡게 될까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DUMMY의 내면으로 도시를 배회하며 살아가는 요령, STREET-SMARTS들은 인류의 유전자에 아마도 작은 흠집을 낼 것이다. 이누이트족이 평화로운 생존을 원해 그 자신이 뜨거운 자살을 선택하게 된 것 같이 DUMMY로 변화된 인간의 모습들은 이 거리에서 살아가는 지혜로운 방법이자 격정적 자살을 하지않기 위한 요령이다. (2016. 5.) ■ 김부희

Vol.20160518c | 김부희展 / KIMBOOHEE / 金富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