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OCI YOUNG CREATIVES-우정수-책의 무덤

우정수展 / WOOJEONGSU / 禹廷秀 / painting   2016_0519 ▶ 2016_0612 / 월요일 휴관

우정수_원숭이도서관_종이에 잉크, 아크릴채색_433×514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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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수 홈페이지_www.woojeongsu.com

초대일시 / 2016_0519_목요일_05:00pm

작가와의 대화 / 2016_0611_토요일_02: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수송동 46-15번지 Tel. +82.2.734.0440 www.ocimuseum.org

난파된 문명과 우주 산보자 ● 도서관에 빼곡히 쌓인 책들이 무너져 내리고, 난파선으로부터 쏟아진 온갖 책과 사물이 바다를 표류하는 가운데, 육식 동물이 출몰하여 책과 다투는 당혹스런 상황이 일어난다. 지극히 비현실적인 이 장면은 우정수의 개인전'책의 무덤'의 몇 인상을 간추린 것이다. 그의 그림에서 무너지고 있는 거대한 도서관은 보르헤스가 상상한'바벨의 도서관'을 연상시킨다. 흥미롭게도 바벨의 어원은 히브리어로 혼돈이다. 보르헤스는 이 도서관을 구상하면서 이미 인류의 미래를 예측한 듯하다. 끝없이 펼쳐지는 문명의 세계와 지식에 의해 구원받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하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비극적 상황은 우정수의 작업에서도 엿보인다. 그의 그림에서 빼곡한 책들은 바벨의 도서관이 은유하듯 인간이 구축한 문화, 문명을 암시한다. 문명의 진화를 의심치 않았던 선형적인 역사관은 오늘날 이미 무너져 내렸다. 전세계 곳곳에서 위기, 재난, 파국이 일어나는 가운데, 인간의 지식이 난국을 극복하고 찬란한 미래를 제시하리라는 기대는 없다. 이러한 상황을 감지하는 작가의 태도는 절망을 부르짖지도, 희망을 모색하지도 않는다. "하강하는 것도 아니고, 상승하는 것도 아닌 중간적인 상황"은 그림 속의 구조만을 뜻하지 않는다. 세상의 혼돈에 휩쓸린 채 표류하는 개인의 상황을 규명하고자 하는 의지로 이어진다. 인류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 세계 곳곳의 불안한 징후, 무엇보다도 이를 감지하는 한 개인의 실존적 고뇌로부터 이번 전시'책의 무덤'이 시작된다.

우정수_부유하는 그림자들_종이에 먹_175×138.5cm_2016

하나의 그림으로부터, 하나의 전시로 ● 작업의 시발점에는 난파된 배가 있다. 이 가상의 상황은 2010년 그가 직접 제작한 드로잉 북으로 거슬러 간다. 당시 머릿속의 이미지들을 쏟아내듯 작업한 100여점의 드로잉에는 죽음, 폭력, 혼돈, 억압, 파멸, 구속, 싸움 등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한 장면들이 가득히 담긴다. 마치 환상 문학과 같이 펼쳐진 드로잉들은 작가가 세상을 이해하고자 강박적으로 읽어온 수많은 책들로부터 영감한 것이다. 2015년 개인전의 제목'불한당의 그림들'이 보르헤스의'불한당들의 세계사'를 참조한 것처럼, 이번 작업의 제목에서도'부유하는 그림자들'(파스칼 키냐르, 『떠도는 그림자들』),'시간과 방'(보토 슈트라우스, 『시간과 방』),'육식의 시간'(다이지로 모로호시, 『밤의 물고기』) 등 문학, 만화, 희곡, 역사서 등 탐닉한 수많은 책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 그의 그림에서 책이 소재로 출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은 작가에게 있어 세상이자 문명, 욕망의 거울, 환상의 구축인 동시에 살아 있는 혼령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한 드로잉을 보면, 난파선에서 떠밀려온 책들이 해골과 뒤섞여 수북이 쌓인 가운데, 긴 장대기를 든 두 남자가 서로를 향해 팽배해 맞선다. 이 드로잉이 바로'책의 무덤'이다.

우정수_시간과 방(좌)_종이에 먹_174×122cm_2015 우정수_시간과 방(우)_종이에 먹_173×122cm_2015

"하나의 그림을 보여주고 싶었다"던 작가의 고백에는 이 작은 펜 드로잉이 기저에 있다. 일찍이 펜, 연필, 목탄, 유화 등 다양한 재료로 그리기를 훈련해 온 그는, 2014년부터 잉크를 중점적으로 다뤄오고 있다. 세상의 무거운 주제를 가벼운 필치로 반동하고자 한 작가에게 잉크는 떠오르는 것들을 직관적인 선으로 힘입게 드러내는 손쉬운 재료이다. 작은 드로잉 작업에서는 잉크로부터 표출되는 손의 힘, 강도, 느낌들이 자유자재로 실험되며, 하위문화를 차용한 조소적이고 풍자적 분위기가 전반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최근의 작업에서는 이러한 즉흥적인 필치가 최대한 억눌러진다. 어찌 보면'하나의 그림'을 그리는 동안 작가는 잉크와 손이 만나 생성되는 감각을 조율하는 인내심을 기른 듯하다. 그렇게 그는 5×5m 크기의 대형 회화'원숭이도서관'을 완성하였다. 검정 잉크의 묵직함을 전체적으로 차분하게 조절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작업실의 비좁은 벽에 한 장씩 종이를 붙여가며 작업한지라, 혼란과 질서 사이에서의 구도 계산도 치밀히 병행해야만 했다. 이러한 작업의 과정은 작가에게'현실적 감각'과'상상의 감각' 사이를 균형감 있게 조절한 수행의 시간이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이중성의 탐구는 회화의 물성을 다루는 감각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구축하는 과정에서도 연구된다.'원숭이도서관'은 작가가 개인의 개성을 누르면서, 흩어지는'분해의 감각'과 이를 모으려는'구축의 감각'을 시도한 작업이다. 이렇게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구성은 그림의 화면뿐만 아니라 드로잉과 벽화가 뒤섞인 전시 구성에까지 총체적으로 수행된다.

우정수_난파선G_종이에 먹, 잉크, 아크릴채색_150×236cm_2015

난파된 문명으로부터 출몰한 광기의 세계 ● 다시 난파된 배로 돌아가면, 전시에서'난파선G'는 작가의 상상에서 나온 배 글로리호의 이니셜을 딴 것이다. 이름에서도 화려했으리라 짐작되는 글로리호는 급작스런 재난으로 처참히 파괴되어, 바다를 부유하는 파편들로 흩어진다. 과거의 찬란한 문명을 상징하는 석상, 유물, 책들이 사물의 파편들과 뒤섞여 표류하는 상황이다. 그가 표현하고자 한 "침몰되고 사라져가는 영광들(기억)"은 이렇게 가라앉는 것으로 종결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우정수만의 회화적 감각이 한껏 발현되는데, 절망적 상황에서 난무하듯 뛰어 오르는 폭력적인 상황을 풍자하는 가벼운 필치가 바로 그것이다. 침몰한 배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한 단면처럼, 비극은 더한 비극을 불러일으키고 더불어 비인격적인 참상마저 수면으로 올라온다.'육식의 시간'에서는 악어 때가 느닷없이 나타나 책을 공격한다. 그런데 책에도 날카로운 이빨이 달려 있어, 책이 악어를 먹어치우는지 악어가 책을 먹어치우는지 판단이 불가능한 폭력성만이 남는다. ● 비밀스런 폭력의 난무를 응시하는 것은 텅 빈 구멍인 채로 남겨진 보름달이다. 이 달빛의 정체는 이후 몇 작품들까지 계속 이어진다. 보름달의 존재는 난파선 이후 본격적인 사건(혹은 서사)이 발생하기 전까지의 전조를 드러낸다. 대왕 문어의 습격으로 배가 산산조각 나고('폰타 델 코타 해전'), 독수리는 카니발적으로 동족을 먹어 치우고('육식의 시간 II'), 표류하는 책으로부터 유령들이 범람하는('책의 유령들') 광기 어린 상황들이 발생한다. 괴물, 혼령, 유령, 괴수 등이 통제할 수 없이 출몰하는 이 기괴한 상황은 세계의 질서가 파괴되는 상황에서 튀어나온 것들이다. 이들은 이미 혼란인 상황을 더 카오스로 몰아넣는데, 이때 기괴한 괴수들의 우글거림은 표류하던 의미들마저 먹어 치운다. 이러한 가운데 앞서 소개한 거대한'원숭이도서관'에는 그야말로 책들이 날고, 떨어지고, 부유하는 혼란의 상태가 일어난다. 혼돈과 질서가 서로 충돌하는 가운데, 원숭이들은 차곡차곡 쌓아올린 인간의 문명을 조소하듯 그곳을 장악한다. 문명의 혼돈으로부터 출몰한 원시적 세계와 범람한 괴기스런 환상은 본격적인 사건으로 이어진다.

우정수_육식의 시간_종이에 먹, 잉크, 아크릴채색_150×146cm_2015

소용돌이와 카오스모제의 세계 ● 전시장에 진입 시 가장 먼저 접하는'밤부엉이'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후, 시간의 경계선에 머문다. 전시의 구성은 부엉이 그림을 사이에 두고 난파된 사물들의 미래와 현재로 구분된다. 지금까지 글에서 소개한 작업들은 난파선의 현재적 상황이 담긴 후자의 이야기이다. 책의 무덤 위에 앉아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부엉이는 불길함 혹은 어떤 사건을 예고해 보인다. 이 불온한 고요는 아주 잠깐일 뿐, 난파선의 파편들은 곧 강한 소용돌이에 휩쓸린다.('부유하는 그림자들') 회오리 안에서는 책이든, 석상이든, 유물이든 간에 속력에 휩쓸린 사물의 잔해로만 작동할 뿐 어떠한 의미나 상징도 존재하지 않는다. 빙글빙글 몰아치는 회오리의 속도는 그림에서 흰 띠를 형성하며 부유하는 사물들을 휘감는다. 이 작업에서부터 보름달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달빛의 구멍이 광선의 소용돌이를 일으킨 걸까? 어둠 속에서 휘몰아친 백색의 광선은 폴 비릴리오의 언급을 연상시킨다. 그는 그림과 필름에서의 상에 대해, 전자를'출현의 미학'으로 후자를'소멸의 미학'이라 구분한 바 있다. 달의 영사기와 같은 구멍, 회오리의 광선 형태가 지닌 비물질성은 사물의 출현을 소멸의 소용돌이로 수렴한다. ● 지금까지 이 모든 이야기는 전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9m 벽 크기의 대형 벽화 '서사의 의무'로 향하는 상황이다. 소용돌이를 지나 도달하는 이 거대한 벽화는 사전에 작업한 5점의 드로잉과 현장에서 그린 벽화가 결합된 월드로잉 형식을 지난다. 광활한 우주 공간과 같이 펼쳐진'서사의 의무' 는 혼돈 이후의 세계라 할 수 있다. 난파선의 온갖 사물들은 이제 망망대해를 지나 우주를 떠돈다. 중심도 없고, 추락도, 상승도 없이 부유하는 상황을 전환시키는 것은, 바로 거대한 유성의 등장이다. 유성은 혼란의 상태를 묵묵히 광속으로 가로지르며, 거대한 빛의 띠를 형성한다. 광속의 유성이 생성하는 띠는, 혼돈의 상태를 아우르는 또 다른 질서를 화면에 부여한다. 이는 일종의 카오스모제(chaosmose)로, 혼돈인 동시에 질서이기도 한 우주적 흐름을 불러일으킨다. 이쯤 되면 우리는 작가가 왜 대형 벽화를 계획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우정수는 그림을 지각하는 방식에 있어서, 관객의 신체가 그림의 상황 속으로 진입할 수 있게끔 유도한다. 자신이 산보자로서 도시를 배회하고, 사람들 사이에 뒤섞여 경험한 이 세계의 그림을, 체험이 가능한 형태로 전시장에 펼쳐 놓는다. 관객의 몸은 발을 옮기며 차츰 그림의 세계로 진입하다, 부유하던 사물처럼 거대한 띠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다. 재현과 환상의 세계, 그리고 차원의 세계인 현실 사이의 경계는 이쯤에서 허물어질 것이다. 벤야민은 근대 도시의 환등상에 대해 얘기하며 "꿈을 꾸면서 이 꿈으로부터 각성을 재촉"했다. 우정수가 그린 하나의 그림(혹은 전시)에는 세계상(像)을 허무는 환상인 동시에 이를 일으키고자 하는 환상이 담긴다. ■ 심소미

Vol.20160519b | 우정수展 / WOOJEONGSU / 禹廷秀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