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The Human Condition

김훤환展 / KIMHWONHWAN / 金萱煥 / painting   2016_0524 ▶︎ 2016_0529

김훤환_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16

초대일시 / 2016_0525_수요일_05:3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대전예술가의집 Daejeon Artist House 대전시 중구 중앙로 32(문화동 1-27번지) 2전시실 Tel. +82.42.480.1081~8 dah.dcaf.or.kr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인간의 조건) ● 궁극적으로 인간은 세계를 언어를 통해 인식한다. 우리가 무엇을 인식한다는 것은 언어구조의 틀 안에서이다. 세계-언어-주체 그래서 언어의 구조가 인식론적 틀이 되며, 모든 생각, 말, 몸짓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에 앞선 인간의 조건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사각의 틀은 언어로 구성된 사유의 지평, 사유의 극한이자, 우리가 속한 세계 그 자체이다. 인간이 세계를 개념으로 포착하는 한에서 언어의 한계가 인간사유의 조건이 되며, 인간의 사유는 그가 속한 언어의 틀(주관) 바깥을 넘어설 수 없다. 글쓰기 작가의 전투적 의미의 생산이 문자조합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듯, 사각의 테두리는 캔버스를 대면하는 나의 생각의 전부이기도 하다. 언어의 차원을 벗어나서 인간이 도달 할 곳이 있겠는가?! 극한에 까지 이끌린 사유의 긴 여정의 끝에 기다리는 것은 결국, 나를 한계 짓고 제한하는 경계/테두리라는 것이다. 테두리는 해석의 지평, 세계와 주체, 자연과 문화의 경계와 다름 아니다.

김훤환_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_캔버스에 유채_80.3×130.3×2cm_2016
김훤환_Amor fati_캔버스에 유채_130.3×80.3×2cm_2016
김훤환_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16
김훤환_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_캔버스에 유채_45.5×53cm×18_2016

언어의 극한 '역설' ● 자기가 속한 세계를 밀고자하는 인간의 행위는 필연 역설적이다. 세계-내-존재가 세계를 미는 것이 다름 아닌 인간 그 자신이라는 것에서 인간은 이 역설에서 벗어 날 수 없다. 역설은 모순의 양립에서 발생한다. 역설은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이 대면하게 될 사유의 끝이자, 언어가 기호기를 그치고 자기의 민낯과 마주하는 장이다. 또 역설은 존재가 마침내 이름의 탈을 벗고, 있는 그대로의 순수 몸짓을 되돌려 받는 그 시작점이다. 역설은 유한한 인간실존의 확인이자 인간의 조건이다. 인식의 한계를 만드는 것은 언어이다. 하지만 한계지어지지 않는 역설(생성)의 동일성을 복구시키는 것도 언어다. 역설과 무의미 속에서는 '안과 밖', '낮과 밤', '주체 객체', '이다 아니다' 의 모든 차별이 와해되며 현재는 늘 이미 지나버린 과거이자,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사이에 무한분할 이다. 인간의 삶이란 끊임없는 한계 지움과 한계에 포섭되지 않으려는 투쟁이기도 하다. 그러한 면에서 나에게 유의미한 인물과 니체의 표현을 취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예수는 어떠한 한계, 조건, 이념, 기준, 동일성에 포섭되지 않는 노마디적 주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려는 주인으로 살아가기의 최고의 초인이다.

김훤환_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_캔버스에 유채_90.9×65.1×2cm_2016
김훤환_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15
김훤환_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15
김훤환_인간의 조건(나를 먹다)_캔버스에 유채_100×80.3cm_2010
김훤환_인간의 조건(나를 먹다)_캔버스에 유채_100×80.3cm_2010

세계는 인간에 의해 부여된 의미로 이글거린다. 그래서 인간에게 세계는 언어로 해석된 의미의 구성체, 그 이상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언어가 곧 존재는 아니다. 언어는 불교식으로 말하면 깨달음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방편인 것이지 언어 자체는 비 존재적이다. 실상을 본다는 것은 언어가 제거된 그 자체일 것이다. 세계는 궁극적으로 하나다. 가끔 창밖 풍경을 보듯 세상을 무심히 보는 때가 있다. 그러면 세계와 나의 경계는 없어진다. 그 순간만큼은 언어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때이기도 하다. ■ 김훤환

Vol.20160524c | 김훤환展 / KIMHWONHWAN / 金萱煥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