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of the Beginning

최인수展 / CHOIINSU / 崔仁壽 / sculpture   2016_0524 ▶︎ 2016_0625 / 월요일 휴관

최인수_그것으로부터 From it_스틸_25×35.8×8cm_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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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524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5:00pm / 월요일 휴관

대구보건대학교 인당뮤지엄 INDANG MUSEUM OF DAEGU HEALTH COLLAGE 대구시 북구 영송로 15(태전동 산7번지) Tel. +82.53.320.1857 indangmuseum.dhc.ac.kr

미적 송과선(松果腺, pineal gland), 그리고 0.5cm 남짓의 함몰부에 고여있는 조각론시간의 얼굴, 과도함과 공허의 인장력이 밀고 당기는 곳 ● 최인수의 세계는 시종 질료주의, 곧 관념주의와 상반된 것으로서 질료주의와 무관하다. 흙을 인식하고 경험하는 그의 태도와 태도에 깃든 관점은 내게 그렇게 읽을 근거로서 부족하지 않다. 이 세계에서 흙은 단 한 번도 주체와 분리된 객체, 중성적인 재료나 건조한 물성(物性), 또는 표현을 이끄는 도구로 규정된 적이 없다. 흙은 늘 대지의 연장, 식지 않은 체온, 포획되지 않은 포에지(poesie)거나 그 이상이다. 이를테면 정복되기를 거부하는 대지(大地), 취급될 수 없는 생생함, 그리고 정당화되기를 거부하는 형태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조야(粗野)한 접근일 뿐임이, 최인수의 「시간의 얼굴,Faces of Time」연작(2016) 앞에서 자명해진다. ● 너무 많은 미학이, 그리고 너무 살찐 것들의 미학이 휩쓸고 지나간 탓에 이 시대는 오직 상실의 미학 하나만을 부둥켜안고 있는 것 같다. 동시대의 미술은 피폐한 풍요에서 풍요로운 피폐 사이를 메트로놈처럼 규칙적으로 오간다. 뒤샹(Marcel Duchamp)과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와 아르망(Fernandes Armand)이 'reality'의 단초랍시고 하나둘씩 주워모으기 시작하더니만, 어느덧 거대한 폐자재 재활용 공장 같은 예술의 시대가 도래했다. 워홀은 T.V.에서 영감을 얻다가 아예 T.V.스타가 되는 길로 접어들었고,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의 세대는 다이아몬드에 눈먼 시대를 일깨우는 대신 그 변호사가 되기로 작심했다. 인상주의 이래로 예술 세계는 과도하게 밝아졌고, 대전 이후론 고도비만을 앓고 있다. 하지만 의미의 휘도는 오히려 더 결핍되고, 나아갈 미학의 길은 거의 막히다시피 했다. 천정을 뚫고 들어와 어두운 실내를 밝히는, 예컨대 카라바조(Caravaggio)와 렘브란트(Rembrandt H. van Rijn)의 한 줄기 빛의 갈증이 여전히 목을 타게 만든다. ● 이 시대에 홍수를 이루는 망막주의에 먼저 경종을 울려야만 할 것이다. 과도한 스펙터클리즘, 마케팅과 돈벌이의 미학, 국가홍보대사 예술론의 반대쪽엔 또 다른 늪지가 조용히 입을 벌리고 있다. 존 케이지나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로 대변되는 이 세계는 모든 물질과 행위 뿐 아니라 심지어 의지까지 거부해야 할 목록에 포함시킨다. 철저한 비(非)계획과 우연이 추구되고, 허공에 나뭇조각이나 동전을 던지는 점성술이 신뢰되고, 이성의 범접을 불허하는 '저 너머 어디'가 궁극으로서 규정되는 그런 세계다. '비평이 곧 예술'이라는 코수드(Joseph Kosuth)나 회화의 물리적 지지대를 박탈한 로렌스 와이너(Lawrens Weiner)의 '신체 없는 회화', 요셉 보이스의 '개념 조각' 등이 이 거창해 보이지만 밋밋하기 짝이 없는 계열의 산물들이다. "프랑스에서 지식인인 척하려면 비관주의자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라는 베르트랑 라비에(Bertrand Lavier)를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이 비아냥이 사실무근인 것은 아니다. 이 일련의 케이지주의자들은 과도하게 엘리트적이어서 최소한의 감흥도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다. 이들은 무시하고, 없애고, 외면하고, 증발시키면서 부정과 부재의 예찬으로 나아간다. ● 최인수의 「시간의 얼굴」을 마주하는 곳이 바로 이곳, 과도함과 공허가, 과도한 조명과 어두움의 인장력이 드세게 교차하는 세상임을 잊지 말자. 그러니 주의를 기울여야 마땅하다. 최인수가 질료와 망막과 표현을 내려놓았다고 해서 곧장 일련의 케이지주의로의 편승으로 읽어선 곤란하다. 「시간의 얼굴」이나 「나오다가 숨다가」가 "파도처럼 변화무쌍한 인생"-몽테뉴가 그렇게 말했다-을 펼치는 대신 오히려 접어나간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세상과의 단절이나 관념의 유희로의 선회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이 세계는 지성의 오만한 끝을 구부러뜨리고, 감정의 숱한 요철을 쳐낸 결과 작고 느슨하게 둥근 것이 되었지만, 세계의 얼굴은 삭감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최인수_바람의 얼굴 Faces of the Wind_종이에 파스텔_56×38cm_2016

미적 송과선(松果腺, pineal gland) 선 ● 최인수의 미학은 물성이 지나치게 비대해져 반사적으로 유물론을 웅변하는 조각, 이를테면 마초성, 팽창한 부피, 스테로이드 근육질로 묘사되는 또는 남아도는 시간을 위한 오락거리나 호사스러운 취향으로 정당화되는 것의 대척점에 위치해 있다. 「시간의 얼굴」은 이 미학의 탈권위적, 탈 가부장적 지평을 잘 보여준다. ● 「시간의 얼굴」은 이미 마초적 기념비성과 첨단 기술에 대한 명백한 거부의 산물이다. 그리고 모든 완화된 각을 끼고 이어지는 부드러운 면들, 그리고 그 한 지점에 존재하는 오목하게 패인 작은 함몰이 특별히 중요하다. 그것은 불에 구워지기 전 무언가에 의해 남겨진 자취다. 사건의 흔적, 또는 그저 세계의 각인일 수도 있다. 사건은 종료되었지만 흙은 그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 크기는 0.5~1cm를 벗어나지 않는다. 거의 송과선(pineal gland)의 크기와 유사하다. 송과선은 성인의 경우 0.5cm 남짓의 크기에 무게는 0.1g을 조금 넘는다. 그 생김새가 솔방울과 닮은 것에서 명칭이 유래한 작은 기관은 뇌의 한 부분인 간뇌의 천장부에 위치해 있으며, 진화론적으로 눈의 전구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생리학자였던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는 이 엷은 선홍색이나 회색의 작은 기관에 이례적으로 주목했다. 여타 척추동물들과는 달리 사람에게 있어서만은 송과선의 기능과 역할이 불분명했기에, 데카르트는 이 기관이 정신과 육체의 상호작용을 주선하는 역할을 담당할 거라고 생각했다. "정신과 육체를 뒤섞어 하나의 전체"로 반죽하는, 육체적 경험이 영혼에 전달되고 영혼이 즉각 신체 작용으로 이전되는 물성(物性)과 심성(心性)의 교환이 일어나는 장소로 여겼던 것이다. 데카르트는 "영혼이 작용하는 신체 부위는 심장이나 뇌수 전체가 아니라 단지 뇌수의 모든 부분 가운데 가장 내밀한, 아주 작은 부분 어떤 선(腺)임이 분명하다"라는 자신의 가설을 의심하지 않았다. ● 신체의 특정 부위에 영혼이 깃든다는 것은 물론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시간의 얼굴」과 그 표면에 패인 0.5cm 남짓의 함몰부에 대한 메타포로선 더없이 유효하다. 전술했듯 이 세계는 물질 자체뿐 아니라 엘리트 관념주의에도 전혀 현혹되지 않는다. 그는 유물론자가 아니기에, 예컨대 바타이유(Georges Bataille)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물질로부터 대안을 구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같은 맥락에서 고상한 사변으로부터 구원을 모색할 수도 없다. 사실 사유야말로 시각보다 훨씬 더 가변적이지 않던가. 흄(David Hume)이 말했듯, "눈이 눈구멍 안에서 회전하면 지각은 반드시 바뀐다." 최인수에게 물질은 사변 이상으로 중요하다. 그는 조각가다! 조각가는 이 사실을 운명적으로 믿고 받아들인 사람이다. ● 하지만 여기에 단서가 없을 수 없다. 물질은 최소의 의미에서만, 즉 자유분방한 사유를 진실의 기둥에 묶는 동기 안에서만 조심스럽게 신뢰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방식을 내놓는 것이 특히 조각가에게 주어진 소임이라는 사실을 그가 모를 리가 없다. 조각가는 그것에 심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심취에서 깨어나기 위해, 즉 매몰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몰로부터 기어 나오기 위해 물질의 전문가가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정당화된 믿음인 지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직 정당화되지 않은 지식인 감각의 통제 아래 그것-물질-을 올바로 정치(正置) 시킬 수 있어야 한다. 최인수의 조각 미학의 말하는 바가 이것이다. 물질에 매몰되지 않는 것만큼이나 철학적 명제의 수준으로 후퇴하거나 신비의 어두운 방을 붕붕 날아다니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미적 혁신은 언제나 이 양자 사이의 투쟁에서 비롯되었다. 이 두 극단이 첨예하게 교차하는 지점들 가운데 한 정교한 지점에서, 「시간의 얼굴」과 0.5cm 남짓의 함몰부에서 최인수의 미학이, 조각론이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다. 데카르트가 주목했던 정신과 물질의 길항(拮抗)적 교차 지대로서 송과선의 미적 차원으로서 말이다. ● 보이지 않는 세계를, 하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로서의 위상을 간직한 채 보이도록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 과제야말로 칸딘스키에서 폴록에 이르는 수많은 추상작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무의식의 심연과 신비의 경계를 넘나들어야만 했던 이유가 아니겠는가. 최인수의 세계가 얼핏 사변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은 그가 그 경계를 이제까지의 통상 그렇게 했던 것보다 더 멀리까지 밀어붙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 최인수는 0.5cm 남짓의 함몰부에 의심하고, 이해하고, 구상하고, 긍정하거나 부정하고, 바라거나 거부하는 모든 정신의 덕을 포에지의 형태로 함축해 놓았다. 즉 그것을 아주 조금 보이도록 했다. 거기까지가 물성의 최대 허용치다. 그 이상은 보여줄 수 없다. 더 보여주기 위해서는 조직해야 하고, 조직하는 과정에서 물질적 기만이 개입되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0.5cm 남짓의 함몰부는 최인수의 미학을 대변하는 미적 송과선이다. 그곳은 가장 정교하게 계량된 물성과 가장 시적으로 조율된 사유가 교차하는 장소다. 이 작고, 완곡하고, 공굴려진 평화로운 세계의 긴밀한 꼭짓점이다. ■ 심상용

최인수_태고의 바람 Prehistoric Wind_테라코타_8.9×8.9×8.5cm_2015

The Sculpture Existing as Itself ● What is the ultimate power of creation and where does it come from? Insu Choi has travelled a long way, knowing that it would be a difficult task to reach his destination. While continuing self-introspection and inquiry, he has paved roads that previously did not exist. He states as follows: "Life dances and becomes more vivid in the state of pre-consciousness, pre-logic and pre-intellect." Choi appears to have preciously endlessly contemplated on source of sensibility concerning numerous objects and phenomena. While the rational gaze observes and measures objects, the emotional vision already embraces their essence and transcends the individual. ● Rather than giving significance or messages to his sculptures, he explains in a roundabout way that he "leaves it to the work process, and just follows it faithfully." That is to say he works as he accepts all the resistance from the material, the various difficult problems that protrude, and subtleness with his whole body. Therefore, the work goes beyond being a means to make a certain shape, providing pleasure of work itself and enabling us to contemplate on emotional survival. Such attitude seems to contradict the dialectic logic deeply rooted in Western art theory. ● Choi's sculptures, in which the acts of art and traces are permeated, take a post-geometrical, simple and plain form. And the haptic sense metaphorically touches upon the auditory imagination. His works, which distance themselves from feats for the eye or spectacles, generally show moderate appearances in terms of scale or exterior form. Beholders of dull eyes sometimes evaluate his works as artless or unceremonious. The simplicity of his works is not a result of compressing or roughly organizing complex and concrete forms, but appears to have been that way originally. In other words, he did not reach abstract simplicity through analytical and mechanical reduction, but through his unique grounds and logic. The formative thought shown in his works are a priori, and originate from sensibility. Moreover, as such sensibility is not only peculiar but is also refined as a very elegant shape, it is independent to the extent that it does not require support for its formativeness through language. His works are independent proposals concerning time and space, and allow poetic contemplation and metaphor. This is the point where his works, as open systems, may be distinguished from modernist reductionism and post-literacy. ● The earth (soil) has been a trustworthy and comprehensive background to human beings. As it is something fundamentally good, it has served as a certain standard. In diverse religions and mythology, earth has been considered the origin of life, and has been dealt in relation to finite beings and infinite time. Earth is used as subject matter throughout culture and art, and in sculpture it is generally used as a material for modeling. Sculptor Insu Choi links the characteristics of earth to the significance of his work, and sees it as the proper function of sculpture. Earth is a material with variability, resistance, absorbance and flexibility. The artist continuously listens to the earth and converses with it repeatedly until the earth's time naturally becomes the body of the sculpture. On the surfaces of the series, Touch, and Faces of Time, which were made with earth and casted in bronze, and have multilateral and diverse bends and curves on them, there are engraved shapes made by pressing the material with the artist's fingers. These forms decenter the vision of viewers through multi-perspectives throughout the overall surface, thus interweaving different temporal tempos and rhythms. His engraved forms, which lead to tactile perception, remind us of ancient hieroglyphs, the Cheonjeonri rock engraving in Ulju, and the letter abstractions by Lee Ungno and Nam Kwan in Korean abstract art. In the case of Choi, the letter figures are not only essential signs that form the work, but also the logical means of the artist to contemplate on the whole shape of the sculpture. Based on his outstanding annotation skills, the artist uses them as resources for his artistic imagination. ● The long or short works casually placed on the floor of the exhibition room, titled At The Edge of Sound, or Path were made by rolling lumps of clay on the artist's studio floor, making plaster casts, and then casting them in iron. The place and time it was rolled, the process of iron casting, and the analog time of the slow rusting process are documented on its surface, and at the same time, the pathos according to the increase of entropy is smeared onto it. Compared to the pictures or text engraved on the Sumer stone seals, which were rolled on clay surfaces to represent static time, Choi's works seem to have breathing surfaces, and to be holding time within them. ● The subject as a sculpture work, the floor that made it possible, and the space within the artist's two hands are mutually relative and each become one another's reason for existing. Hence, the sense of life was conceived and made exuberant from the beginning. The work made by rolling it forward and backward on the studio floor can be seen as a metaphor of the road in itself. This is because it becomes not a place where one dwells but a multi-layered space containing the fluidly interwoven behavior and its time. In the series In and Out, a single lump of clay is reused to form a variation of shapes with identical mass, presenting a composition of space on the floor. Tactile sense unfolds in a different appearance in his earth work. Prehistoric Winds series, which were made by just rolling small lumps of clay between his two hands, drying them, and firing them at a high temperature, evoke a special aesthetic atmosphere with an intimate and immense feeling. The fundamental function of the art work—recalling the first artistic act by humankind—stands out. Anyone can feel the warmth and breath of the artist's hands, and the most basic and primeval formative language becomes a great poem of humanity. ● It is said that Insu Choi mainly works with clay during the warm seasons, and uses different material in the cold season. Compared to the linear and forthright use of time in industries, which take priority in enhancing productivity, Choi's understanding of time is multi-temporal and non-linear, as he follows the flow of nature and the condition of his body. That is why his work does not seem obstinate but reveals itself naturally, and leads us to contemplation. In the series, Appear and Disappear, which was made by cutting a stainless steel rod into short pieces and then welding them together, the sense of mass or material existence is minimized. The volume is transferred into the surface of linear structure, and as viewers' eyes move along the area touching the wall, tension and imagination are doubled. The way he treats material in his clay work or metal work is always basic and familiar; however, the feeling is always new. Through the child-like acts of rolling, cutting, and reconnecting, he enables independent rhythm and spatial perception. Like a play, he works voluntarily and flexibly without being bound to any border. Thus he touches the "time of the beginning," of which use is not considered. ● By extending the identity of sculpture from mass to surface, Insu Choi has transcended the space of homogeneity held by existing sculptures. Hence, the things that appeared as trifling and unessential were transferred into things with unfathomable depth and weight, reaching a completely different reality. He says, "I let the sculpture speak. Then I listen." His thought is deep, but it does not oppress us or constrain us with its labyrinth. He does not pursue the emptiness of philosophy or cause, but seems to be trying to reach true meaning by deconstructing such things and discarding accumulation of significance. It is like the aphorism by the priest Im Je, who said, "If you meet Buddha, kill him." (Translations: Kim Jei-min) ■ Kim Jung-rak

Vol.20160524f | 최인수展 / CHOIINSU / 崔仁壽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