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류화개 水流花開 화첩

팔중 김문식展 / KIMMOONSIK / 八中 金文植 / painting   2016_0601 ▶ 2016_0607

팔중 김문식_구담봉

초대일시 / 2016_0601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8:30pm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SEJONG CENTER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175(세종로 81-3번지) 2관 Tel. +82.2.399.1114 www.sejongpac.or.kr

설한지 ● 버들강아지는 봄을 알리는데 간간히 진눈개비가 날리고 있었다. 십여 년 전 지리산 실상사 근처 한지 만드는 신평식 장인을 만나던 날이다. 깊은 계곡 개울가에 아무렇게 지은 움막에 두툼한 겨울 점퍼를 입고 노인이 종이를 뜨고 있었다. 삼대 째 문종이를 만들다 기술이 아까워 지금도 한지를 만든다고 했다. 닥나무 껍질을 다듬는 수십 번의 공정을 거쳐 얼음 속 흐르는 물로 입춘 전에 만든 종이가 설한지라고 한다. 자연 잿물로 표백한 설한지는 처음에는 누런색을 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맑아지며 적당한 습기만 충족되면 천년이 넘게 보존된단다. 그 생명력에 감동하여 지리산 사생을 함께한 제자들과 몇 십장씩 나눠샀다. 손가락에 침을 바르며 세는 종이는 한 장의 여분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러한 일련의 모습에 신뢰감이 생겼다. 그후로 나는 설한지를 매년 주문하여 반을 자르거나 사등분하여 사생하였다. 그러다보니 몇 백 장이 되었다. 정돈도 할 겸 화첩을 만들고 화첩 전을 갖기로 하였다.

팔중 김문식_대선문
팔중 김문식_대승폭포
팔중 김문식_백운대

화첩 ● 화첩은 그림을 모아 책처럼 엮은 것으로 화책이라고도 한다. 그림의 보관이 편리하며 어깨넓이에서 화첩을 보거나 바닥 또는 벽에 기대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움직이는 미술관이라 할 수 있다. 수장자의 취향에 따라 작가별 또는 소재별 등으로 엮기도 하고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상태로 꾸며져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한다. 대체로 한 화첩에 10~30점 정도 그림이 들어가며 조선시대에 문인들이 즐겨 사용하였다. 개인화첩의 경우 대부분 동일주제와 동일화법으로 이루어져 있어 작가의 작품성향과 특징을 한눈에 파악하고 연구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된다. 우리나라는 많은 국가적 혼란 속에서도 한 가문의 가보나 애장품으로 전해져 내려와 우리회화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화첩은 진경산수화의 화성 겸재 정선이 으뜸이다. 36세에 금강산을 유람하고 풍악도첩을 그렸으며 이듬해에 해악전신첩(37세)을 그려 그의 화명을 떨쳤다. 본격적으로 58세에 청하(포항)현감 재직 시 교남명승첩을 그리면서 60대에 접어들면서 화첩을 많이 제작하였다. 그후로 청풍, 단양, 영춘, 영월 4군첩(62세), 한강주변을 그린 경교명승첩(66세), 임진강의 연강임술첩(67세), 인왕산 장동팔경첩(70세), 금강산의 해악전신첩(72세), 인왕제색도와 함께 경교명승첩 하권을 76세에 제작하였다. 단원 김홍도는 서당도나 씨름도 등 명품의 풍속화첩 보물527호를 남기고 정조의 명에 따라 금강산과 동해안 명승지를 그린 해산첩(44세)을 제작했는데 이것은 겸재와 또 다른 진경산수의 명 화첩으로, 병진년 산수화첩(52세)은 보물 782호호 전해지고 있다. 혜원 신윤복의 양반사회의 은밀한 생활상을 그린 풍속전신첩은 국보135호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대표적 화첩으로는 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강세황의 「송도기행첩」, 안견의 「사계산수도화첩」, 정선의 「장동팔경첩」, 김홍도의 「풍속도화첩」, 임희수의 「초상화첩」 등과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있는 정선의 「경외명승첩」, 신윤복의 「혜원 풍속도첩」 등이 있다. 특수한 화첩으로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로 국보249호(작자미상)가 있는데 16개의 화첩(273×548cm)으로 구성된 대작이다.

팔중 김문식_백운일출
팔중 김문식_삼부연
팔중 김문식_서설

수류화개 ●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는 수류화개는 인간이 꿈꾸는 산수의 이상향이다. 산수화는 이러한 자연의 섭리 속에 전개되는 이상향의 산수를 표현하는 예술이다. 나는 전국의 산과 명승지를 탐방하며 산수화를 제작하여 왔다. 눈이 오거나 비바람 속에서도 좋은 명산과 물을 찾아다녔다. 나무와 숲을 주제로 한 산수경과 더불어 나의 산에 대한 그림은 조선일보사, 월간 산에 도봉산과 북한산 그림을 연재하고 전국 산을 찾아 그림산행 연재(91년-)를 하면서 더욱 애정을 갖게 되었다. 도봉산과 북한산은 그림이 막히거나 답답할 때 화도를 묻던 곳이다. 천 번을 넘게 올랐다. 이번 화첩전은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선생의 작품 속 발자취를 찾았다. 설악산과 동해안 일대다. 무엇보다도 그분들이 제작한 작품의 장소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그릴 때면 그분들이 곁에 있는 듯 하였으며 시공을 초월하여 가르침을 받는 듯한 행복감에 젖곤 하였다.

팔중 김문식_선인노송
팔중 김문식_선인봉
팔중 김문식_자운봉

화첩을 접으며 ● 화첩은 작가의 사상과 마음을 표현 할 수 있는 작지만 넓은 공간이다. 그동안 화첩은 한 작가의 주된 작품과는 격이 떨어지고 거리가 있는 부장품으로만 생각했다. 화첩은 작가마다 자기의 이상과 철학을 충분히 펼쳐지고 있으며 오히려 작품세계를 풍요롭게 하고 있음을 알았다. 좋은 화첩은 밑 그림의 하도를 잡고 수많은 실험 속에 주옥같은 작품만 골라 만든 경우가 많다. 겸재 정선과 강세황, 김홍도 등을 면밀히 보고 동시대에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중국의 명․청대의 심주, 문징명, 석도, 팔대산인, 동기창 등 명 화첩을 차분히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진정 나의 작품을 선정하는데는 난항이 연속이었다. 선대 명 화첩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양파껍질처럼 벗기고 벗기다보니 한 점도 없다. 그동안 작업이 허업이었다. 밀쳐진 무더기 속에서 머뭇거리는 손으로 100점을 겨우 뽑아 20장씩 엮어 5권의 화첩을 만들었다. 북한산첩, 도봉첩, 설악첩, 전원서정첩, 명승첩이다. (2016년 봄) ■ 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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