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랩스 Collapse

2016_0603 ▶ 2016_0625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6_0603_금요일_06:00pm

참여작가 강신대_성유삼_이충열_연미 플로리안 골드만 Florian Goldmann 크리스토프 르 비항 Christophe Le Bihan

기획 / 심소미(독립 큐레이터)

관람시간 / 12:00pm~07:00pm / 월요일 휴관

합정지구 Hapjungjugu 서울 마포구 서교동 444-9번지 105호 Tel. +82.10.5314.4874 www.facebook.com/hapjungjigu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한 층이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1초에 지나지 않았다." (정이현의 소설 '삼풍백화점') ●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붕괴는 흔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무너지고, 전복되고, 좌초되고, 휘감기고, 난장판으로 흩어지고, 쓰나미처럼 몰아쳐 파괴되고, 싱크홀처럼 순식간에 매몰되는 참혹한 사건, 사고, 재해는 각종 미디어를 장악하며 매일 새로이 등장한다. 붕괴가 멈추질 않는 우리 사회를 뒤돌아본다. 성수대교 붕괴(1994), 삼풍백화점 붕괴(1995), 외환 위기(1997), 대구지하철 화재(2003), 경주리조트 붕괴(2014), 이후 불과 3달 뒤 일어난 세월호 침몰(2014)까지 근 십년간의 일이다. 90년대와 2000년대 사이 대형 참사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모두 다 인재이다. 오늘날 우리는 건설과 붕괴 사이, 그 경계 위를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 하루아침에 건물들이 붕괴되고 순식간에 새로이 올라선다. 주식 폭락,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고 은행에 빚을 낸 개개인이 추락한다. 신용도가 떨어지고 더 이상 빚조차도 낼 수 없는 삶은 벼랑 끝에 내몰린다. 그 각박함으로부터 발생한 윤리적 붕괴는 연일 뉴스와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무차별살인과 존속살인, 특히 부모와 자식 간의 믿어 의심치 않았던 끈까지도 붕괴되고 있다. ● 컬랩스된 사회, 파국적 상황, 전 지구적 재난 등에 밀리어 세상은 마치 끝을 향해 가고 있는 듯하다. 개인을 무력화하는 이 급작스런 붕괴로부터 어떻게 우리 스스로를 바로 세울 수 있을까? 이번 전시 '컬랩스'는 오늘날 무방비적인 붕괴 현상을 구조적으로 접근하고자 한 전시이다. 컬랩스라는 혼돈의 상황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가중시키는 사회시스템의 모순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전시 제목은 영문으로 '컬랩스(Collapse)'라 하였다. 국문으로 번역하면 붕괴라 할 텐데 그리 표기하지 않은 이유는 영문 단어의 구조에 주목하였기 때문이다. 라틴어 어원으로부터 그 의미를 분명히 살펴볼 수 있다. 라틴어 컬랩수스(collapsus)를 기원으로 하는데 이는 콜라비(collabi)의 과거분사형이다. 여기서 콜(col)은 '함께(together)'라는 의미며, 라비(labi)는 '떨어지는 것(to slip)'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하여 컬랩스는 '다함께 완전히 넘어진 상태'라 하겠다. 위기가 다가올수록 붕괴의 상황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체감한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세월호와 같은 대형 참사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몰락과 파산에서 폭로되듯 파국은 우연한 이유로 일어나지 않았다. 전시에서는 여섯 작가의 작업을 통해 우리 사회의 표면에서 컬랩스가 작동하는 영향 관계를 살피고, 그 배후에서 '진행 중인 붕괴'의 구조에 접근하고자 한다.

연미_되살아난 공포_신문에 드로잉_56×38cm_2009

재난을 소비하는 미디어와 공포의 시대 : 연미 ● 합정지구 전시장 진입 시 윈도우와 지하층에 전시된 연미의 신문 작업에서는 우리 현실의 암울한 분위기가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작가가 주목하고 있듯 이는 그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신문이 드러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징표'이다. 전시에서 그의 작업은 신문사 앞 전광판에 매일 새로이 붙여지는 신문과 같이 윈도우에서 드러내고자 하였다. 연필이나 목탄으로 검게 칠해진 신문은 사실상 읽을 수 없으나, 임의적으로 드러난 부분을 통해 편집된 사회적 징후들을 발견하게 된다. 신문에 담긴 붕괴, 참사, 살인, 파국적 이미지는 극적이며, 이와 병치된 헤드라인의 텍스트는 자극적인 인상을 더한다. 매일 새로운 파국들이 신문에 담기고, 사람들의 시선을 현혹시킬 드라마틱한 편집술로 드러난다. 연미의 덧칠해진 신문을 보다보면 정치사회적 목적에 의해 극대화되거나, 조작되고 편집되는 현실, 파국을 선전하고, 근거 없는 공포를 확산시켜 비판적 판단을 흐리게 하는 미디어의 권력을 짐작하게 된다.

크리스토프 르 비항_Art rock'n'roll consciousness_우편봉투에 펜_17×13cm_2015

건강보험과 노동자 : 크리스토프 르 비항 ● 다른 편의 진입 윈도우에서는 프랑스 작가 크리스토프 르 비항(Christophe Le Bihan)의 액자 작업이 걸린다. 르 비항은 파리에서 거주하는 아트브뤼 작가로, 영화, 철학, 음악, 시, 소설 등 무수한 분야에 편집증적으로 빠져있는 다다이스트이기도 하다. 그의 작업실에는 수많은 사진, 드로잉, 글귀가 벽에 빼곡하게 채워져 있으며, 심지어 화장실까지도 '호기심의 캐비닛'과 같다. 좁은 화장실 벽에 가득히 걸린 액자 중 마르크스의 문구가 눈에 뜨인 게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그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발송된 우편 봉투에 펜으로 적은 문구는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는 두 가지를 고갈시키는데, 그것은 노동자와 자연이다.'(Le capital épuise deux choses, le travailleur et la nature.) 자본의 축적 하에서 소외되어온 노동자와 자연은 현재 각종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을 최소화하려는 사회보장제는 노동자가 자본가의 자원이 아닌, 인간으로서 삶을 보호하는 사회적 제도이다. 이 봉투 한 장에 기업의 노동착취와 비정규직, 최저임금 논란이 끊이지 않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중첩된다.

이충열_마트_제도지에 펜_100×122cm_2009_부분

신자유시대의 가족제 : 이충열 ● 사회 시스템과 관련해 이충열의 드로잉 작업은 자본주의와 가족제도 사이의 모순에 접근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족제도는 강조되어 왔는데, 그 한 이유로 사유재산제 유지를 들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4인 가족은 가장 안정적이고 보편적인 가족 형태로 권유되어 왔다. 안정된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은행대출로 아파트를 분양받아, 아이를 낳아 키우며, 최대한의 교육을 제공하며 평생 은행에 빚을 갚으며 사는 삶. 하지만 언젠가 빚을 모두 갚고 내 집에서 편안하게 살리라는 희망은 현실로부터 점점 멀어져간다. 경제위기와 불황 속에서 구조조정이 닥치고 직장을 잃는 순간 사회가 규정한 정상가족의 형태는 산산이 부서지기 때문이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마트' 드로잉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획일화된 4인 가족과 소비 형태를 구조적으로 그려 보인다. 그가 제도지 위에 제도펜으로 정갈히 그린 작업 방식은 우리 사회의 강압적 '제도'를 형식화한 것이다. 자신의 호흡을 컨트롤하며 그린 드로잉 방식에서부터 조금의 빗겨남도 허용치 않는 강박적 제도가 강조된다. 이 제도를 터울로 하여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하던 4인 가족들은 어느 순간 질서정연한 배열로부터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한다. 외부의 충격이 아닌 규정된 가족 사이의 획일화된 경쟁과 과열로부터 컬랩스, 즉 다함께 붕괴되어 나가기 시작한다.

플로리안 골드만_Tokyo Will Occur Someday_HD 영상_00:15:50_2016

파국의 모델과 대처의 시뮬레이션 : 플로리안 골드만 ● 플로리안 골드만(Florian Goldmann)은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작가로, 글로벌 시스템의 파국적 상황과 재난, 리스크의 영향 관계를 밝히고 이를 시각적인 구조로 모델링해왔다. 그는 아테네, 도쿄에서 머물며 리서치 한 연구를 바탕으로, 오늘날 재해, 재난, 파국적 상황을 대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신산업화를 비평적으로 접근한다. 전시에서 소개하는 영상 'Tokyo Will Occur Someday'에는 후쿠시마 이후 보다 체계적으로 재난의 상황을 대처하고자 하는 일본의 방재박람회가 등장한다. 쓰나미가 마을에 덮쳤을 때 사람들과 차량이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는 구조물, 강진에도 지지가 가능한 가전장치 및 가구 지지대 등 대비 시스템은 사회, 도시, 건물, 그리고 개별 소품에게까지 치밀한 기술 시스템으로 접근된다. 측정하기 힘든 자연재해의 상황은 시나리오, 시뮬레이션, 데이터, 모델링을 통해 측정 가능한 상황으로 방재박람회에 담긴다. 골드만은 올해 한국에서 머문 레지던시 기간 동안 파국적 상황에 대한 모델을 제작하였다. 미끌미끌한 표면에 마치 건물처럼 부착된 파랑색 스펀지는 한국에서만 특히나 흔히 볼 수 있는 차량용 도어가드이다. 외부 충격으로부터 자동차를 보호하고자 하는 도어가드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물신화된 공포, 사유재산 훼손에 대한 지극한 염려를 드러낸다.

성유삼_버섯구름_스폰지 폼, 유리병, 가죽_33×18×18cm_2015

파국 이미지와 지각작용 : 성유삼 ● 전 세계적으로 파국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대표적 장면으로는 버섯구름이 있다. 원자폭탄이 투하된 순간 천공으로 거대하게 일어나는 버섯구름은 파국 이미지 중에서도 재앙, 묵시론적 여파를 상징적으로 선보인다. 성유삼이 스펀지를 조각하여 형상화한 버섯구름 작업은 우선 시선의 당혹스러움부터 불러일으킨다. 그의 작업은 버섯구름 이미지가 자체적으로 가진 힘, 그 파괴적 인상으로부터 벗어나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소비하고 있는 파국 이미지의 실체는 무엇인가? 규정된 이미지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뒤집듯 그는 스펀지라는 부드러운 물성을 통해 형태화할 수 없는 연기의 형상을 조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펀지는 일상 속에서 외부의 충격을 완화하는 완충제로서의 기능한다. 파국 이미지가 이를 방지하고자 하는 물성에 새겨진 것일까? 그러나 작가가 지목했듯 버섯구름은 작은 사물을 태울 때도 생겨나는 흔한 연기의 형상이다. 하지만 이를 지각하는 우리의 시선에는 미디어로부터 길들여진 하나의 이미지가 깊숙이 관여한다. 익숙한 지각의 방식을 비트는 그의 스펀지 작업은 이미지로서 소비되어온 파국적 형태와 이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수동적인 지각 구조를 질문한다.

강신대_파국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_단채널 영상, 사운드_00:00:15_2016_이미지 스케치 사운드: 해미 클레민세비츠, 영상 디자인: 원준경

반복된 슬럼, 파국과 다음 파국 사이: 강신대 ● 강신대의 작업은 폭격, 남북문제, 세월호 등 충격과 스펙터클로 점철된 우리 사회의 이미지들을 실시간의 시간으로 구현하여 파국을 소비하는 오늘날의 지각방식을 드러내 왔다. 그의 영상 작업에서 파국 이미지는 충격적으로 등장하고 금세 망각되고 새로이 다른 이미지로 등장하시길 반복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지정학적 위기로서 슬럼, 이를 질문하는 가상의 슬럼 이미지를 제안한다.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도시의 팽창은 슬럼의 확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도시는 끊임없이 슬럼을 외곽으로 몰아내고, 이를 불도저로 밀어내고자 하나 상황은 계속 악화되어 나간다. 슬럼은 붕괴될수록 더 처참한 모습으로 재생산된다. 작가는 인터넷에서 수집한 지구 곳곳의 슬럼 이미지를 조합하여 하나의 이미지를 제작한다. 달동네, 판자촌, 파벨라(favela)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도시별 슬럼은 공통적으로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한 폐허의 구조를 지닌다. 하나의 슬럼 이미지를 응시하는 영상은 15초가 되면 갑자기 끊기며 다음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10여 분간 매 15초씩 하나의 슬럼 이미지가 반복된다. 서사적 사운드와 함께 몰입의 지점에 진입할 때쯤 장면은 멈춰서고, 같은 장면이 다시 시작된다. 붕괴는 '파국'과 '다음 파국'의 사이에서 항상 진행 중이다. ● 전시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업에서 드러나듯 컬랩스는 경제성장주의, 도시팽창, 부실공사, 부정부패, 기업폭리, 과적, 안전 불감증, 미디어의 오보와 왜곡 등 사회적으로 발생한 필연적 사유로 인해 서로 축적되고, 연쇄되어 나가다 어떠한 계기를 통해 드러났을 뿐이다. 컬랩스는 보이지 않는 불안으로서, 최후의 공포를 일으키는 '구조화할 수 없는 구조'로서 일상 속에서 전이되어 나가는 중이다. 문득 80, 90년 중반까지의 상황이 떠오른다. 전쟁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뉴스가 보도되면 사람들은 앞 다투어 슈퍼마켓으로 달려가 라면을 박스 채 샀다. 줄을 서 라면과 식료품을 사재기하던 그때를 생각하면, 그 순진한 행동에 얼굴이 붉혀진다. 퍼져나가는 공포 속에서 식량만이 대비책이었을 정도로 우리에게 혼란, 재난, 파국에 대한 대응책은 존재하지 않았다.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 수많은 참사와 붕괴를 경험했지만 변한 것은 없다. 일련의 붕괴를 맞이할 때마다 이를 대처하는 매뉴얼과 국가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으며, 작년 메르스 사태에서 드러났듯 컨트롤타워 부재는 오히려 파국적 상황을 초래했다. 작년 영국신문 가디언에는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건물을 50개 선정하여, 일간지에 50회에 걸쳐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시리아의 시타델 등 도시역사에서 주요한 건물들이 등장한 가운데 한국의 한 건물도 선정이 되었다. 놀랍게도 이는 최대의 붕괴 참사로 전 세계인을 주목시켰던 '삼풍백화점'이다. '삼풍백화점 참사로부터의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기사는 한국의 개발 중심 성장이 불러일으킨 각종 붕괴를 언급하며, 참사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는 사회적 안전 불감증을 전 세계인에게 경고한다. 위기 속에서도 개개인이 견디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은 오작동의 시스템 속에서 무너져 내렸다. 이제 더 이상 라면을 사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 발을 딛고 있는 건물이 1초 만에 붕괴될 수도, 비상구가 열리지 않을 수도, 무능한 컨트롤타워로부터 아무도 구조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심소미

Vol.20160605g | 컬랩스 Collaps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