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을 향한 풍경

A Landscape toward Green展   2016_0603 ▶ 2016_0708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6_0603_금요일_06:00pm_창작문화공간 여인숙  2016_0611_토요일_06:00pm_공간 이다

참여작가 강용석_김혜원_박홍순_전영석

백인백색 기획 시리즈 2

기획 / 김혜원 주최 / 사진인문연구회 백인백색 후원 / 문화공동체 감

2016_0603 ▶ 2016_0609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군산 창작 문화공간 여인숙 Gunsan creative cultural space yeoinsug 전북 군산시 동국사길 3(월명동 19-13번지) Tel. +82.63.471.1993 cafe.naver.com/gambathhouse

2016_0611 ▶ 2016_0708 관람시간 / 11:00am~10:00pm

공간 이다 alternative culture space IDA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로 271(창우동 249-7번지) Tel. +82.31.796.0877 blog.naver.com/space-ida

『녹색을 향한 풍경』 ● 사진인문연구회에서는 예술 활동의 기반을 인문학적 사유에 둔 예술가들의 전시와 그들 담론의 활성화를 지원하는 '백인백색'의 두 번째 기획 시리즈 『녹색을 향한 풍경』전을 마련하였다. 그것은 신록의 계절인 6월을 맞이하여, 근대 과학과 산업 문명이 자연에 가한 착취와 파괴와 폭력 구조를 드러낸 풍경 사진을 통해 가이아(Gaia)의 균형 관계와 전체론적 공생 관계에 대해 성찰하고 에코토피아(ecotopia)라는 생태적 이상향을 지향하는 시간을 갖고자 했기 때문이다. 근대의 역사가 제국과 식민의 관계사로 인식되듯, 문명과 자연의 관계도 제국과 식민의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파악할 수 있다. 인간중심주의라는 특권적 위치에서 자연을 타자화한, 이른바 '자연의 식민화'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콜로지(ecology)는 인류를 비롯한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가 순환이라는 유기론적 맥락을 바탕으로 공생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새로운 우주론과 인류학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녹색을 향한 풍경』전 역시 순수하고 신비로운 야생의 금수강산이 아니라 인간의 손에 의해 훼손되고 변형된 야만의 문화 경관에서 우리 시대 우리 땅의 통점을 찾아 시각화한 전영석, 박홍순, 김혜원, 강용석의 풍경 사진을 초대하여 이들의 에콜로지적 사유를 이해하고 자연과 인간의 바람직한 관계를 모색하고자 한다.

전영석_Wonderland-충북 단양_디지털 프린트_83×100cm_2004

전영석(Jeon, Young-seok) ● 인간이 자연에 가한 폭력과 착취와 파괴 상황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전영석의 「Wonderland」는 기반 공사 산업에 투입될 골재를 채취하는 채석장과 대리석, 시멘트 등의 원료를 채취하는 석회암 지대를 촬영한 사진이다. 산업혁명 이래 과학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개발과 진보의 근대화 프로젝트는 끊임없이 지형에 변형을 가해 왔다. 여기저기에서 행해지는 대규모 공사로 산이 깎이고, 터널이 뚫리고, 물이 막히고, 없던 길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땅을 정복하고 소유하는 영토나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자원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물활론적이고 유기적인 우주관을 제거하고 인간과 자연의 공생 관계를 해체하여 자연의 상실이라는 비극적 상황을 초래하였다. 특히 짧고 조급하고 난폭하게 근대화가 이루어졌던 한국 사회에서는 개발의 양상도 기형적이었고 후기산업사회의 병폐 또한 파행적이었다. 그리하여 전영석은 토건주의에 의해 자연이 파괴되고 있는 현장을 찾아 그것을 문명비판적 시각으로 기록하였다. 특히 그는 인간의 손을 상징하는 포크레인을 통해 물질 문명을 향한 인간의 욕망과 기계 문명의 폐해를 비판하였다. 나아가 성장주의라는 지상 과제로 인해 훼손되는 자연의 살풍경함에 'Wonderland'라는 역설적인 제목을 붙여 자본주의 신화 속 현대판 '절경'을 풍자하고 있다.

전영석_Wonderland-경기도 포천_디지털 프린트_83×100cm_2004

그러나 수량적, 분할적 논리에 기초한 기계론적 자연관에 대한 풍자와 비판의 시각에도 전영석의 풍경 사진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자연을 착취와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실체로 인식하여 지질학적이고 고고학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영석은 깎이고 잘려나간 대지의 지층에서 지질학적 시간의 아우라를 포착해 냈다. 막 발견한 유물인 듯, 오래도록 퇴적해 있던 대지의 속살에서 느껴지는 질감의 아름다움도 발견하였다. 그의 표현대로 "자연의 파헤쳐진 적나라한 모습을 죽어가는 자연이 아닌 아직도 살아 꿈틀대려 하는 아름다움의 은유로서 작업"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총체성을 회복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한국문학사에서 최초의 생태시 혹은 환경시로 평가받고 있는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의 시적 상상력에 닿아 있다.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보듯, 아직 남아 있는 "돌 온기"에서 자연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성북동 비둘기"의 심정은 깎이고 잘려나간 산허리에서도 숭고함과 외경심을 느끼는 전영석의 그것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처 사라지지 않은 대지의 원시적 분위기를 포착하여 아직은 살아 숨쉬는 자연의 위대함을 어루만지고 있어서인지, 전영석의 사진은 촉촉한 땅 온기와 메마른 모래 먼지와 공사장 폭발음 등이 느껴지는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로 우리 앞에 투명하고 아름답게 펼쳐진다.

박홍순_낙동강-후-여름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100×100cm_2014

박홍순(Park, Hong-soon) ● 개발 현장에서 지질학적 시선을 보여준 전영석의 사진과 달리, 박홍순의 「강江, 스스로 그러하다」와 「바다가 육지라면-새만금」은 개발 직전과 직후의 상황에 초점을 맞춘 생태학적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1997년 '백두대간'에서 출발한 박홍순은 '한강'을 넘고 '서해안'과 '남해안'을 종횡하면서 우리 한반도 산하를 20년 동안이나 일관되게 기록해 왔다. 그 결과 민족 정신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인 「대동여지도-계획」(2012)전에서는, 사진전 제목만큼이나 웅대한 프로젝트인 그의 작업이 '대서사시' 또는 '거대 서사'라는 수식어로 지칭되며 호평받은 바 있다. 자연 풍경과 혼재된 인공의 흔적을 지리적이고 역사적인 시선으로 탐사하여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보편화된 근대화 진보 패러다임을 비판했던 것이다. 그러나 2014년 '사대강'을 소재로 한 「강江, 스스로 그러하다」와 2015년 「바다가 육지라면-새만금」에서는 강이나 바다의 신성 파괴, 즉 생명의 젖줄이자 성스러운 땅으로서의 대자연이 죽음의 공간으로 변한 상황을 사진적 대상으로 삼고 있다. '사대강개발사업'으로 물길이 바뀌어 범람하는 강, 물길이 막혀 모래언덕으로 변한 둔치, '새만금간척사업'의 방조제 건설로 매립되어 사막화된 바다와 갯벌 등 난개발로 인한 죽음의 자리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박홍순_바다가 육지라면-새만금1-(14)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30×54cm_2015

이렇듯 개발 계획과 맞물린 '사대강'과 '새만금'을 기록한 박홍순의 사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박홍순이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게 된 생태학적 시선과 그로 인한 프레임의 변화일 것이다. 그는 생물의 생존 상태, 생물과 환경의 상호 작용, 생물의 서식지이자 생존 조건으로서의 생태 공간까지 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범람한 강물의 위태로움이나 염화되어 출산력을 상실한 간척지의 황량함 너머에 있는 자연이 지닌 생명력과 생명의 원리를 발견해 냈기 때문이었다. 에코페미니스트인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의 지적대로 "모든 의미와 삶을 담은 우주, 모든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생태적 원천이 그저 하나의 용지로, 데까르뜨적 공간의 한 장소"로 변한 불모지에서, 자연의 재생력과 생명체의 다양성을 발견한 박홍순은 '사대강'과 '새만금'을 죽음에서 삶으로의 순환 공간으로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그동안 주로 서사적인 프레임을 선호했던 박홍순은 '강江, 스스로 그러하다'나 '바다가 육지라면-새만금'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제 새롭게 키운 생명에 대한 감수성과 대지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더욱 시적이고 서정적인 앵글을 보여주게 된다. 그리하여 척박한 '용지'로 변한 '새만금', "바다가 육지"가 된 간척지에서 염분을 먹고 자라난 새빨간 '함초' 사진이나 염분이 빠진 갯벌에 새로 돋아난 푸른 '잡초' 사진들을 보노라면, 그것들이 상처 위에서 피어난 꽃무더기이고 풀포기라는 점에서 우리는 더 큰 애틋함과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김혜원_Commercial Landscapes_C 프린트_40×50cm_2003

김혜원(Kim, Hye-won) ● 전영석과 박홍순의 에콜로지 시선이 개발 상황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김혜원의 「Commercial Landscapes」는 개발 이후의 소비 상황에 주목하여 관광 산업을 위해 대규모로 변형된 지형이나 상업화된 문화 경관을 소비문화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즉 김혜원은 골프장, 수영장, 스키장, 눈썰매장, 사격장, 낚시터, 객석 등 자연 속의 유료화된 여가 문화 공간을 찾아, 고가의 상품이 되어 버린 오늘날 자연의 실태와 호객을 하며 소비를 부추기는 이 시대 풍경의 양식을 기록하였다. 이 땅의 지형이 근대화의 물결에 휩쓸리기 전, 자연은 대우주였고 인간은 그 속에서 안빈낙도하여 왔다. 부(富)와 권력과 신분을 초월하여 자연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무상으로 열려 있었다. 그러나 시장 자본주의 시대를 맞아 경제 논리의 지배를 받게 된 자연은 스스로 창출한 이윤의 가치만큼 계급화되고 권력화되고 서열화된다. 물질적 풍요나 사회적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됨으로써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는 레저 문화의 그릇된 신화를 낳는다. 따라서 김혜원은 우리 주변의 일상적 여가 생활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상업화되고 산업화된 경관과 유료화된 레저스포츠 인공시설물들을 통해, 인간의 위락 시설을 위해 파괴되어야 했던 자연의 아픈 실상과 인간이 끝내 더불어 살아가야 할 야생의 녹색 환경을 환기하고자 하였다.

김혜원_Commercial Landscapes_C 프린트_40×50cm_2003

김혜원이 지형의 변형과 소비의 관계, 자연의 소유와 이용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가 "풍경 사진은 공간의 조직 체계라는 차원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그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누가 소유하고 있고 누가 이용하고 있는지를 묻지 않으면 풍경 사진의 의미를 알 수 없다."는 지리학자 잭슨(J. B. Jackson)의 문화적 통찰에 수긍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김혜원은 처녀지인 '자연(Nature)'으로부터 경작지인 '문화(Culture)'로 변형되어 소비되고 있는 우리 시대 우리 땅의 문화적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 자연과 인공의 허술한 부조화, 소졸(疏拙)한 불안정의 모습을 보이는 한국적 지형을 포착하였다. 나아가 여가 문화 공간 속 인간이 부재한 텅 빈 풍경을 통하여 소비 문화 시대의 물질 문명을 향한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한 인간 소외라는 모순을 성찰하고자 하였다. 물론 그의 사진은 화폐가 아니라 생명을 유통 수단으로 하는 자연 경제에 대한 긍정과 함께, 생명을 파괴하는 산업 사회, 시장 경제, 자본주의 체제로부터의 거리두기를 의미한다. 정신적 안식처와 물질적 풍요와의 맞바꿈이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교환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김혜원의 사진이 보여주는 비수기를 맞은 텅 빈 유원지의 정적감과 황량함에 쉽게 빠져들게 될 것이다.

강용석_매향리 풍경_젤라틴 실버 프린트_60.96×50.8cm_1999

강용석(Kang, Yong-seock) ● 강용석의 「매향리 풍경」은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매향리'의 '농섬'과 미공군 '쿤리사격장'이라는 대립적 구도를 통해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제3세계의 신식민 상황을 상징해 온 정치적 풍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5년 여 법적 투쟁과 주민 운동으로 2005년 '쿤리사격장'이 폐쇄되고 '평화생태공원'으로 지정되기까지, 1951년부터 54년 동안 '매향리' 섬과 해변은 실탄이 장착된 폭격 훈련이 매일 11시간 600회에 이르도록 실시되던 고통과 희생의 땅이었다. 따라서 강용석은 1995년부터 탄피 자국을 남긴 채 버려져 있는 차량들이나 널브러진 폭탄의 잔해들을 통해 폭격이 지루하게 일상화되었던 '매향리'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매향리'가 고통과 희생의 땅으로 불렸던 것은 폭격의 표적물로서 받은 이러한 외적 상흔에 못지않게, 폭격의 오발탄으로 인명이 희생되고 포성의 굉음으로 보이지 않는 육체적,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며 주민들의 삶이 철저히 유린되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물이 들어오면 어부들이 고기를 잡고 물이 빠지면 아낙들이 조개를 줍던, 생명의 땅인 바다와 갯벌이 폭격장이라는 죽음의 땅이 됨으로써 주민들은 삶의 터전마저 잃게 되었다. 대신 새로 찾은 생계의 방편은 썩은 갯벌이나 메마른 습지에 떨어진 포탄이나 탄피를 주워 고철로 내다파는 것이었다. 강용석은 드넓은 해변의 거대한 포탄과 그 주변 여기저기에서 고철을 줍고 있는 왜소한 인간을 대비시켜, 지구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인 이곳 '가상의 전쟁터'가 겪어낸 비극적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강용석_매향리 풍경_젤라틴 실버 프린트_60.96×50.8cm_1999

반세기의 폭격 끝에 섬 몇 개가 사라진 '매향리'에 대한 강용석의 기억 서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분단 상황이나 식민 상황이라는 역사적 의미뿐 아니라 인간 문명의 파괴적 본성, 자연과 생명의 가치라는 생태적 의미를 정치역학적 차원에서 접근하여 에콜로지의 지평을 확장시킨 사진이라는 점이다. 에콜로지는 인간과 자연뿐 아니라 인간 상호간에도 적용되는 개념으로, 인간 사회의 지배와 착취와 차별에 저항하고 상호연대나 공존공생이라는 관계의 망을 추구한다. 에콜로지는 개발에 의한 환경 파괴뿐 아니라, 차별과 불평등에 의한 인간 소외, 자본 독점화 현상이 낳은 빈곤, 이데올로기로 인한 전쟁 등 현대 문명이 야기한 정치, 경제, 문화의 여러 국면에 관여하면서, 생명 세계를 지속시킬 수 있는 총체적인 시스템을 지향한다. 그러므로 메마른 해변에 널브러진 표적물의 잔해나 조개껍데기로 뒤덮인 탄피 등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상황이 남겨 놓은 이 땅의 생채기는 "껍데기는 가라. / 한라에서 백두까지 /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는 신동엽의 시에서, 총칼의 "쇠붙이"가 상징하는 무력 상황의 대척점에 왜 "흙"의 "가슴"자리 잡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준다. 더구나 생명체의 대량 살상과 환경 파괴를 야기할 '사드(THAAD)' 배치 문제를 미국, 일본과 중국, 러시아의 정치 역학이 좌우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외세의 "쇠붙이"에 의해 상처 입은 '땅'을 바라보면, 한민족의 "향그러운 흙가슴"을 기다리는 우리들에게 강용석의 사진은 더 짜고 쓰리고 비릿하게 다가오게 된다.

강용석_매향리 풍경_젤라틴 실버 프린트_60.96×50.8cm_1999 김혜원_Commercial Landscapes_C 프린트_40×50cm_2003 박홍순_바다가 육지라면-새만금 2-(20)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다_40×40cm_2015 전영석_Wonderland-전북 익산_디지털 프린트_83×100cm_2004

다시 『녹색을 향한 풍경』으로 ● 다양한 시선으로 '자연의 탈식민화'를 시도한 4인의 풍경 사진은 오늘날 자연 경관이 지리, 생태, 문화, 경제, 역사, 정치적 관계와 복잡하게 얽혀 투쟁이 야기되는 현장임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대항 담론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 사진은 프로파간다식의 웅변조로 무분별한 개발을 고발한다거나, 자연 파괴의 재앙을 주입한다거나, 환경 보존의 논리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질적인 대항 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들 사진은 자연 풍경이 파괴되는 실상을 포착하여, 생태 환경의 위기와 생명체의 대량 살상에 대한 사진적 반성과 자연과 인간의 총체성을 옹호하는 사진적 성찰을 꾀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이면서, 저마다의 개성과 형식 미학을 갖춘 예술 사진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이색적인 사회 비평이라고 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과 예술 사진의 경계를 해체시키는 이와 같은 방법론은 인간과 자연을 기계적으로 분할하여 대립시키는 이분법적 사유 체계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된다. 원근법을 파괴한 정면성과 주관을 배제하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중립성이나 객관성은 서구 원근법적 체계가 갖는 주체중심주의 세계관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각적 실천 의지로 보인다. 이처럼 『녹색을 향한 풍경』전에 초대된 4인의 풍경 사진이 근대 과학과 기술 문명이 생태론적 자연관을 분리하고 해부해 놓은 그 지점에서, 차분한 관찰자의 시선과 절제된 어법으로 자연의 생명 원리가 문화의 최고 진보 형태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지, 초여름을 맞아 다시 푸르러진 저 초록나무 잎사귀들도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의 생태 원리에 따르는 21세기 신인류 호모 에콜로지쿠스(Homo ecologicus)의 출현을 그저 소리 없이 기다리고 있다. ■ 김혜원

Vol.20160606i | 녹색을 향한 풍경-A Landscape toward Green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