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렬展 / LEECHANGRYUL / ??? / mixed media   2016_0601 ▶︎ 2016_0630

이창렬_쌓기_혼합재료_100.5×100.5cm_2016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이영갤러리 대구시 수성구 달구벌대로525길 14-26 Tel. +82.53.741.0370

절제와 비움이 가져다 주는 자유-이창렬 ● 흰 색이 가장 희게 보이려면 검은색 그것도 가장 어두운 검은색이 배경으로 있을 때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 정반대의 것이 가까이 그리고 바로 옆에 있을 때 내가 생각하고 주장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는 나와 반대의 것을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울러 상대와 타인의 생각에 대한 부정, 이런 사고가 팽배해 질 때 가해지는 폭력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폭력은 우리 일상 곳곳에 존재하며, 때로는 이것이 자본과 결합하여 상대의 것을 빼앗고 더 가져야 한다는 욕망을 공고하게 하며 정당화 하는 어떤 방어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자본의 시대는 이렇게 부박하다. ● 예술이 이 폭력적인 시대에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희망이라면 가장 반대의 극단의 것을 수용케 하는 미덕을 지녔다는 점이다. 마치 흰 색이 자기 본연의 색을 돋보이게 검은색의 바탕이 필요한 것처럼.

이창렬_쌓기_혼합재료_103×103cm_2016
이창렬_쌓기_혼합재료_74×71.5cm_2016

이창렬의 작품은 매우 단순하고 기계적이다. 이렇게 인식하는 이유는 거의 동일한 아주 작은 캔버스들과 이들이 어떤 일정한 조합을 통해서 하나의 화면으로 구성되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작품의 표면만을 바라본 느낌에 불과하다. 그 표면의 깊숙한 내부에는 현대사회에서 규격화 되고 획일화 되어야 하는 우리의 운명이 오롯이 자리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아마도 이창렬은 기계보다 더 기계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 자신을,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거세한 어떤 정방의 규격을, 획일화에 몸부림 칠 수밖에 없는 작가로서 그 자신을 이 작은 캔버스를 통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창렬_쌓기_혼합재료_63×126cm_2016
이창렬_쌓기_혼합재료_46×138cm_2016

그 자그마한 캔버스, 작은 화면의 병합으로 이루어져 있는 그의 작품은 이 복잡한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우리 개개가 지니고 있는 크기일 것이다. 우리의 삶은 겨우 이 면적 만큼이고 이 작은 면적 안에서의 삶일 터이다. 이창렬은 그 작은 면적 안에서 꾸려지는 생의 의미가 얼마나 거대한지를 알고 있기에 이것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객관적 거기를 유지하기 위해 고집스럽게 캔버스를 잇고, 붙이고, 조합한다. 이러한 자세는 농부가 땅을 숙명으로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농부가 땅을 미감(美感)으로 관망하지 않듯이 그는 그의 화면을 꾸미지 않고 농사를 짓듯이 그냥 치열하게 경작한다. 그래서 면과 면이 만나는 경계, 그 경계의 깊이와 측면의 다른 색과 화면의 미세한 돌출 등은 일견 평이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하나하나가 쉽게 단정내리거나 정의내릴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떠올리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창렬_쌓기_혼합재료_242×123cm_2016

우리가 그의 작품을 바라보았을 때 화면의 사각 캔버스의 반복적인 패턴은 현대의 건축물을 위에서 내려다 본 도면 같기도 하고 벽돌을 쌓아 올린 어떤 벽의 단면처럼 보이지만, 이는 이창렬이 인간의 삶과 세계를 드러내는 가장 최소의 시선으로 구축한 어떤 형태이다. 그리고 그 형태는 현실세계에 대한 절제의 극단이며, 비움의 몸부림으로 이룩한 화면이다. 그는 예술이라는 관념과 인간이라는 존재 사이에서 갈등한 자신의 고백을 꾸밈없이 가감없이 우리에게 제시하는데, 이는 그가 택할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선택이지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결국 우리의 몫이다.

이창렬_쌓기_혼합재료_103×63.5cm_2016

우리는 이창렬의 작품에 대해 다시 질문하고 답한다. 그 작은 구조(캔버스)는 가장 넓은 것을 지탱하는 최소의 단위로서 우리들 자신이며, 그리고 그 기계적인 조합과 선들은 가장 인간적인 결핍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고, 비워진 것처럼 보이는 화면은 우리 스스로 무엇을 채워 삶을 완성할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 자신의 삶에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할지를 묻는 것은 이미 그 자체 만으로도 훌륭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묻는 것만으로도 자각하고 성찰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좋은 작품은 이렇게 질문하는 작품이다. 설명하고 표현하고 강요하고 억압하는 작품이 아닌 비워 있고, 절제하고, 열려 있고, 자유로운 작품 말이다. ● 이창렬의 작품에서 우리는 이러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절제와 비움이 선사하는 무한한 자유를. ■ 박준헌

Vol.20160609i | 이창렬展 / LEECHANGRYUL / ???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