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1주기 추모전: 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

천경자展 / CHUNKYUNGJA / 千鏡子 / paintng   2016_0614 ▶ 2016_0807 / 월요일 휴관

천경자_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展_서울시립미술관_2016 (사진_김상태)

심포지엄 / 2016_0806_토요일_01:00pm_세마홀

관람시간 / 10:00am~08:00pm / 주말,공휴일_10:00am~07:00pm 뮤지엄데이(1,3번째 화요일)_10:00am~10:00pm / 월요일 휴관

서울시립미술관 SEOUL MUSEUM OF ART (SeMA) 서울 중구 덕수궁길 61(서소문동 37번지) 2층 Tel. +82.2.2124.8800 sema.seoul.go.kr

"꿈을 꾼다. 선명한 총천연색이 무서워 거칠게 헐떡거리는 심장을 움켜쥐고 깨어나선 새벽을 기다린다. 그 새벽과 함께 커피를 끓여 마시며 나 혼자의 아침 향연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곤 종일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릴 때에 한해서 나는 행복하다." (천경자, 『탱고가 흐르는 황혼』, 세종문고, 1995) ● 추상미술이 주도하던 근대 한국화단에서 자신만의 형상화 양식으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대표적인 여성작가이자 미술계의 큰 별 천경자(1924~2015)는 지난 2015년 8월 6일, 그녀의 작품 속에 등장하던 미지의 세계로 영원히 그 발걸음을 옮겼다. ● 자신의 작품이 흩어지지 않고 영원히 관객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의지 아래, 작가는 1998년 분신처럼 아끼던 주요 작품 93점과 전작품의 저작권을 서울시에 기증했다. 이번 전시 『천경자 1주기 추모전: 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는 작고 1주기에 맞추어 작가의 화업을 기리고자 마련된 전시로, 서울시 기증 작품 전체와 함께 개인 소장가들의 주요 작품을 작가의 글, 사진, 기사, 삽화, 영상 등의 아카이브와 함께 선보인다. 전시의 부제는, 작가의 저서 『자유로운 여자』(집현전, 1979)에 등장하는 문장 "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 어디서 일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바람들-그 위에 인생이 떠있는지도 모른다."에서 인용한 것으로, 삶의 희로애락을 매 순간 솔직하게 마주했던 작가 특유의 시적 감성을 공유하고자 하였다. ● 천경자는 완성에 이르면 꿈이 없어지는 것이기에, 진행형을 의미하는 "미완성의 인생"이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녀가 멈추지 않고 좇았던 꿈과 환상, 그리고 고통 속에서 항상 새로운 작품을 그려내고자 했던 창작 의지를 마주함으로써 관람객들에게도 도전과 치유의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천경자_동경여전 1학년 작품Ⅰ_종이에 채색_42×32.5cm_1941_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천경자_생태_1951_종이에 채색_51.5×87cm_서울시립미술관 소장

1. 인생 Life ● 천경자는 나혜석, 박래현 등이 수학했던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마친 뒤 귀국하여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두 차례 입선하고, 몇 차례 개인전을 열다가 서른다섯 마리 뱀이 등장하는 작품 「생태」(1951)를 통해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 작품은 당시 전쟁으로 불행했던 시대의 한, 아버지와 동생 옥희 등 혈육의 죽음과 가난 등으로 힘겨웠던 삶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생명의 몸짓에 대한 조명이었다. 추상회화가 주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던 근대 한국화단 속에서 구상성이 짙은 채색화를 그리던 천경자는 개성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형상화 양식을 발전시켜나갔다. 종이 위에 세밀한 필치로 고독을 담은 자화상과 여인상들, 그리고 그를 위해 그렸던 드로잉들은 작가의 독자적인 양식, 즉 '천경자 스타일'이 구축되어가는 흐름을 볼 수 있게 한다.

천경자_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_종이에 채색_43.5×36cm_1977_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천경자_여인의 시 Ⅱ_종이에 채색_60×44.5cm_1985_서울시립미술관 소장

그녀가 사용했던 다채로운 색채와 달리 실제 현실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가세가 기울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생활비를 벌어야만 했고, 이후 네 명의 아이를 혼자 힘으로 키우며 살았기 때문에 안정된 환경에서 작업에 집중하기 쉽지 않았다. 육자배기나 심청가를 들으며 자신을 투영한 여인, 꽃과 동물, 풍경 등을 그리는 행위는 그녀에게 있어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좌절하기보다는 내면의 한(恨)을 다시 창조의 기쁨과 연결시키고, 슬픔과 고통을 삶의 일부로 인정하며 도리어 그것을 작업에 반영시키고자 하는 태도는 '작가 천경자'의 작품세계는 물론, '인간 천경자'의 진솔함과 성실함을 보여준다.

천경자_타히티 고갱 미술관에서_종이에 펜_26×23.5cm_1969_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천경자_아마존 이키토스_종이에 채색_25×33.5cm_1979_서울시립미술관 소장

2. 여행 Journey"한국 사람이 타히티의 후아아 공항에 내린 것은 역사적으로 내가 처음이었다. 그래선지 문득 지금으로부터 2백여 년 전인 1768년 타히티에 세 번째로 상륙한 영국의 선장 캡틴 쿠크 생각이 떠올랐다. 그때는 지금처럼 자동차나 오토바이 등으로 이토록 시끄러운 타히티가 아니고 순수한 꿈의 낙원 타히티였으리라. … 먼 훗날 타히티에서의 모든 일이, 그리고 향기로운 꽃들과 우람한 열대의 나무들과 아름다운 인정들이 내 가슴속에서 포도주처럼 삭아 내려 좋은 그림으로, 또 좋은 글로,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되살아나리라." (천경자, 『영혼을 울리는 바람을 향하여』, 제삼기획, 1986)

천경자_이탈리아 기행_종이에 채색_90.5×72.5cm_1973_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천경자_키웨스트(테네시 윌리엄스의 집)_종이에 채색_37.3×45cm_1983_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천경자는 먼 타국으로의 여행과 그곳에서의 끊임없는 사생(寫生)을 통해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얻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 화가였다. 이러한 행보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색채를 담아내고 이국적인 것에 환상을 가졌던 인상주의 작가들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천경자는 해외여행 자체가 쉽지 않았던 1969년, 돌연 타히티를 방문하여 스케치를 하고 이후 자신의 여행기를 신문에 연재하기도 하였으며, 1972년에 베트남에 종군화가단으로 파월되기도 하였고, 이어 1974년에는 인도네시아와 아프리카 등을, 1979년에는 인도와 멕시코, 아마존 유역을 여행하며 수많은 스케치와 채색화 작업을 이어갔다. ● 기행(紀行)의 결과는 고갱미술관의 풍경을 생생한 드로잉으로 담은 「타히티 고갱미술관에서」(1969), 피렌체를 방문한 뒤 이탈리아 작가들의 완벽한 소묘력에 도전 받아 약 3년간에 걸쳐 완성했다는 「이탈리아 기행」(1973), 아마존 지역의 활력 있는 생선장수 여인의 모습을 과감한 구도와 색채로 표현한 「아마존 이키토스」(1979) 등의 걸작으로 남아 있다.

천경자_초혼_종이에 채색_153×125cm_1965_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천경자_환상 여행_종이에 채색_61.5×130cm_1995_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천경자_여인들_종이에 채색_126×111cm_1964_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_김상태)

3. 환상 Fantasy ● 천경자에게 있어 현실은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 곧 환상과도 같았다. 그녀는 삶 속에서 꿈을 꾸는 듯한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기를 즐겨했고, 그러한 작업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 미완성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와 색채로 나타난다. 특히, 1995년의 미완성작 「환상 여행」에는 1965년에 제작된 「초혼」의 바다에 등장했던, 배를 탄 악단이 원경에 동일하게 등장한다. 즉, 죽은 이의 이름을 부르는 초혼(招魂) 의식에 등장하는 모티프를 환상 세계에 재등장시킨 것이다. 천경자는 환상과 현실, 삶과 죽음은 서로 뒤섞여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는 그녀로 하여금 현실을 피해 환상만을 좇아가게 하지도 않고, 반대로 꿈 없이 현실 속에만 파묻혀있지 않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 "환상이라고 할 수 있는 괴기성이나 미지의 세계, 불안 또는 슬프고 아름다운 설화성은 태고적부터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꿈도 아니고 무슨 기발한 공상도 아니고 바로 일상생활에서 겪는 현실이란 걸 차차 깨닫게 되었다. (...) 실로 내일이라는 길흉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지상 세계, 그 미지의 불안을 헤쳐 나아가는 아기자기한 스릴, 그야말로 환상세계 같은 현실을 어떻게 총명하게 헤쳐 나가느냐가 사는 것이고 천국보다 몇 배 낫다고 생각한다." (천경자, 『캔맥주 한잔의 유희』, 주우,1981)

천경자_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展_ 서울시립미술관 아카이브 섹션_2016 (사진_김상태)
천경자_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展_ 서울시립미술관 아카이브 섹션_2016 (사진_김상태)

4. 아카이브 Archive ● 아카이브 섹션에서는 추모의 뜻을 함께 하기 위해 작가의 유족과 지인, 사진가들이 제공해준 사진 자료들, 인터뷰와 전시 소식이 담긴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신문 기사, 방송 영상, 그리고 작가가 그렸던 잡지의 삽화나 문학지의 표지화 등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문학인 박경리, 서정주와의 교류를 알 수 있는 사진이나 시화는 물론, 그녀의 첫 수필 '신부리'가 실렸던 1953년 10월호 『문예』 또한 선보임으로써 천경자의 문학적 재능은 물론 문학인들과의 관계 또한 살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업을 할 때의 행복과 창작의 고통은 물론, 소소하고 사적인 일과와 감정까지도 일기와 같은 형식으로 담아냄으로써 출간할 때마다 대중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천경자의 수필집 10여권 또한 연보와 함께 선보인다. ■ 서울시립미술관

Vol.20160614h | 천경자展 / CHUNKYUNGJA / 千鏡子 / paintng

@ 통의동 보안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