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ginner

김윤하_이혜진_정화정展   2016_0616 ▶ 2016_0622

초대일시 / 2016_0616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아트스페이스 오 ART SPACE O 서울 마포구 서교동 377-2번지 B1 Tel. 070.7558.4994 www.artspaceo.com

O.Collision ● 주황색 쓰레기봉투에서 나는 깨어진 틈을 발견한 것 같았다. 마치 내가 제주도에서 돌을 발견했을 때처럼 그 틈은 비밀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쓰레기 봉투는 사용되고 버려지는 것이 하나의 속성인데 그것은 매우 소모적이면서도 영원하다. 돌은 수세기 동안 존재하면서 거의 영원하다고 할 정도로 오랜 시간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아주 조금씩이지만 소모가 되어가며 새로운 형태로 머물게 된다. 내가 시선을 두었던 이 오브제들을 섞었을 때 하나의 충돌이 일어났다. 그 충돌은 또 하나의 충돌을 일으켜 냈고, 충돌은 충돌을 불러내었다. 돌에서 느낀 작은 고민은 어느 덧 커다란 진리를 찾는 듯 보였고 틈을 보는 듯 했던 쓰레기 봉투는 그 속에서 새로운 존재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속성을 넘어선, 하나의 존재로 거듭나는 듯 했다. 끊임 없이 이어지는 새로운 주황빛 순환계는 그것만의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내고 있다. O.Territory ● 건물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은 도시 문명의 자연스러운 순환 과정이다. 또한 쓰레기의 생성과 사라짐도 자연스러운 순환과정이다. 나는 이런 자연스러운 현상을 깨트리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주황빛을 가진 그것들을 관찰하였을 때 나는 자연스러운 순환 과정에 의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한 의심 속에서 나의 생각 속 주황빛 그것들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속성이 무너져 보였고, 무엇이 기준인지 알 수 없었다. 또한 철거건물 현장에서 놓여진 오브제들을 통해서 기존의 경계라 불리는 경계를 벗어나는 새로운 영역의 경계를 발견했다. 나는 그 경계의 모호성을 표현하고자 실제 사용하고 있는 건물에 나만의 주황색의 라인과 막을 쳐서 새로운 영역을 만들었다. 그것은 사용하는 것도 사용하지 않는 것도 아닌 모호한 상태 속에서 주황빛을 뿜고 있었다. ■ 김윤하

김윤하_O.Collision_Garbage Bag_단채널 영상_00:01:30_2016
김윤하_O.Territory_plane-1_사진_80×50cm_2016
김윤하_O.Territory_line-1_사진_40×50cm_2016

조화로운 시선 ● 주변을 둘러보면 어디든 안 쓰이는 곳이 없는 것이 비닐이다. 검정색 비닐봉투부터 화려한 색과 다양한 모양, 쓰임새가 다양하다. 비닐은 생활에 아주 유용하지만 모이면 골칫덩어리다. 버리긴 멀쩡하니 아깝고 쓰기엔 주름이 지기 때문에 누구나 집에 비닐봉투가 눈덩이가 불어나듯 많아지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이 만만한 비닐봉투는 내 성미대로 구기면 끝없이 구겨지는 굉장히 연약한 사물이라 생각했지만, 내가 원하는 모양대로 고정되지 않고 계속 움직인다. 오히려 구기면 구길수록 큰 숨을 들이쉬듯 부풀었다. 구겨진 비닐봉투의 손잡이는 늘어나 있고, 몸통은 상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 모습이 누워있는 사람과 같기도 하고, 꿈틀거리는 벌레로도 보였으며 철썩거리는 파도와 날카롭게 깎여내린 적벽을 닮아있었다. 또, 무언가 폭발하여 솟아오르는 것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비닐의 구겨진 모양에서 뿜어내는 아름다움을 느꼈다. 탁탁 소리를 내며 보란 듯이 피어오르는 모습이 꽃과 닮았고, 주름이 펴지는 소리는 그 형태에 더욱 집중시키게 만들었다. 어느새 비닐에서 자연과 사람을 보고 있었다. 생명이 없는 사물에서 생물의 감성을 느끼는 순간 이상하고 야릇한 느낌을 받았다. 더 구기고 싶을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것처럼 보여주고 싶었다. 비닐봉투에서 이루어지는 이상하고 조화로운 시선. ■ 이혜진

이혜진_조화로운 시선_yellow-1_단채널 영상_00:02:33_2016
이혜진_조화로운 시선_beige-1_단채널 영상_00:01:09_2016
이혜진_조화로운 시선_black-2_단채널 영상_00:02:54_2016

얼룩진 ● 나는 난시가 있다. ● '나는 뉴스를 보고 있었다. 그 뉴스는 범죄자가 경찰에게 붙잡혀 연행되어가는 장면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범죄자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모자이크. 하지만 경찰은 얼굴이 보였다. 나는 뭔 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모자이크로 보호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위의 글은 내가 열다섯 살 때, 뉴스를 보고 든 생각이다. 그 당시 나는 '도대체 저 범죄자는 어떻게 생겼을까?', '혹시 저 범죄자의 공범이나 친구들이 있다면 저 사람을 끌고가는 경찰아저씨들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모자이크는 저 경찰아저씨들한테 씌워야하지 않을까? ● 나는 난시의 현상을 표현하기 위해 뿌연 점을 뉴스의 모자이크처럼 사용하고 있다. 뉴스의 모자이크는 특정한 이미지 정보를 차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난시를 겪고 있는 나에게 나타나는 뿌연 점도 마치 모자이크처럼 사람이나 글자 등을 읽지 못하게 한다. 난시를 겪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 아주 아무렇지 않거나 지루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매일 보는 차들이 지나가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매일 같은 길, 같은 간판, 같은 가게, 같은 간격으로 켜지는 신호등. 하지만 나는 '매일 똑같은 거리네' 라고 느끼기 보다 '저 사람은 뭐하는 사람일까? 저 가게 간판은 왜 저럴까? 멀쩡한 저 건물은 왜 갑자기 허물고 다시 짓는 걸까?' 라고 생각하며 눈으로 사람을 쫓아다니고, 건물을, 간판을, 거리를 본다. 하지만 난시가 있기 때문에 내 눈에 보이는 풍경은 겹쳐서 뿌옇게 보이기도 하고, 이물질이 낀 듯 뿌연 점이 보이기도 한다. ● 난시의 현상은 「diplopia」에서 볼 수 있다. 「diplopia」는 차, 사람, 맞은편의 건물들, 건물에 붙어 있는 간판들 등의 풍경을 보고 있지만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에게 모자이크가 씌워져있다. 그 뿌연 점 때문에 '보는 행위'를 방해받게 된다. 이 작품에서 모자이크는 피사체에 대한 관찰을 방해하는 것으로 쓰이게 되었다. 이 작품의 연장으로 사진 드로잉에서도 모자이크의 역할을 볼 수 있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흐릿하게 보이거나, 거칠게 노이즈로 지워져있다. 피사체 무더기인 잡지에 서도 피사체는 매직펜으로 지워져 있고, 구겨지거나 표면이 거칠게 샌딩(sanding)되어 있다. 그 노이즈는 「눈과 색 사이」에서 빛의 파장색처럼 표현되었다. 계속해서 모자이크의 형태로 노이즈는 나의 신체 가까이 옮겨져 색점으로 바뀌었다.

정화정_diplopia_단채널 영상_00:01:09_2015
정화정_얼룩인1,2_사진_84.1×59.4cm×2_2016

「얼룩인」 전까지의 작업들은 보는 행위에 관한 것이었다면 「얼룩인」은 보여짐을 당하는 피사체로써 시선이 전환되었다. 이 얼룩인 자신은 응시 당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을 보고 있는 누군가로부터 은폐, 엄폐하려 한다. 마치 동물의 보호색처럼 원색의 점이 있는 점박이 비닐 가죽을 뒤집어쓴다. 하지만 이 의태현상(점박이 가죽을 뒤집어 쓴 행위)은 오히려 보호색이라기보다 자극을 주며 강한 색채 때문에 경계색에 가깝게 느껴진다. ■ 정화정

Vol.20160616d | Beginner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