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방-특이한 부드러움, 상냥한 떨림

서울혁신파크 전시동 개관 기념展   2016_0617 ▶ 2016_0716 / 공휴일 휴관

초대일시 / 2016_0617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 금혜원_김순임_김승환_김정언_박찬원 성유진_안경진_윤성필_윤정미_임안나 이규철_이한구_주도양_한금선

참여작가(신진) 강지형_구윤정_권민아_김덕기_김도담 김명진_김민화_김민희_김선열_김선우 김세희_김아람_김영랑_김은정_김인영 김인혜_김지수_김태희_김홍빈_나아영 노경화_노히정_박다원_박새해_박소라 박소현_박승혜_박지선_박희원_반가이 서수인_송금희_심민정_안정희_안지원 엄재형_이다희_이산하_이소희_이승종 이예은_이용은_이주연_이창민_임건희 장수영_장지수_전수만_정연진_조미낭 조정은_차혜인_한해동_허정_홍석찬

작가와의 만남 / 2016_0702_토요일_04:00pm

전시축하공연 / 박경랑의 살풀이_유진규의 마임

관람시간 / 10:00am~07:00pm / 공휴일 휴관

서울혁신파크 SEOUL INNOVATION PARK 서울 은평구 통일로 684(녹번동 5번지) 7동 Tel. +82.2.389.7512~3 innovationpark.kr

에스키모들은 해변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해변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도를 그리기 위해 자신의 기억을 모두 동원합니다. 소리와 기억으로 지도를 만들지만 그들이 제작한 지도는 항공 사진으로 제작한 지도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에스키모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1) ● 아직 '전시동'이 되기 전인 지난 봄, 이 빨간 벽돌집에 처음 왔을 때를 기억한다. 으스스하고 황폐한 기운이 공간을 점유하고 있었다. 천정에서는 남은 빛이 감돌았지만 바닥과 벽은 무겁고 거칠게 가라앉아 있었다. 결국 오래 머무르질 못하고 나왔는데, 건물 앞에 키 큰 은행나무 뒤로 북한산 족두리봉이 하늘과 닿은 시원한 풍경이 다가왔다. 다시 건물의 외관을 보며, 벽면을 만져보니 참 단단하게 잘 지어진 건물이다. 천천히 깊이 보니 너른 마당을 오갔을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도 들린다. 건물의 이름은 '5동'이었고, 1962년생이라고 한다. 그동안 '시약창고' 역할을 담당했으며, 건물을 지을 당시 감리가 철저해서 유독 튼튼하게 지어졌다고. 그 역할을 다한 후에는 높은 천정과 확 트인 실내를 휘어잡는 특유의 음산함으로 드라마 촬영장소로도 활용되었다고 한다. 올해 55살이 된 '5동'의 이력은 창고에서 촬영지로 그리고 이번엔 '전시동'이 되었다. 혁신파크 내에 특별히 조용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안고 있는 '5동'은 반백년 만에 자신의 존재감을 발휘하게 되었다. '시약창고'에서 도시의 파르마콘 역할로, 약과 독을 동시에 갖게 된 욕망의 공간이 된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되도록 특이하고, 부드럽고 상냥한 떨림 같은 기운이었다. '특이하게 부드럽고 상냥한 떨림'은 언제 다가오는가. 그것은 흔들림을 동반한 사랑의 순간이다.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쉽게 발굴되지 않기에 상상과 상생의 자장이 형성되어야 그 순간을 잡을 수 있다. 그 사랑이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수용자의 몫이지만, '전시동'으로 재탄생된 이곳은 깊이와 울림과 다층적 생성을 가능케 하는 창조적 공간이 되길 바랐다. 그랬으면 좋겠다. 지천명을 훌쩍 넘은 '5동'에 대한 기대와 함께 개관기념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5동 곁으로 진달래, 철쭉, 벚꽃과 그리고 라일락이 흐드러지게 다녀갔다. 그리고 지금은 접시꽃이 피었고 은행들의 살이 탱탱하게 올라온다.

금혜원_Byeol_피그먼트 프린트_100×83cm_2013
윤정미_자연사박물관-Strigidae_C 프린트_70×70cm_2001

사랑은 어떻게 오는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듣지 못했던 작은 소리들이 음악처럼 울리며 잠들어 있던 세포를 깨우며 온다. 감각의 지층이 뒤엉키기에 일상이 와해되거나 시간이 재편되며, 프루스트처럼 기억은 무의지적으로 한꺼번에 솟아난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모습과 그 실체를 더듬다가 '동물감각', '미메시스'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됐다. 주체가 '주체 없이 흔들리며', '상대방 되기'가 사랑이 아니던가. 그 순간 감각이 충일해져 고통과 희열을 받는 표면적이 넓어지니 그동안 한 번도 살아보지 못했던 존재의 출현이 사랑인 것이다. '사랑해...사랑해...사랑해...'라고, 동어 반복적으로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언어의 한계는 동물감각과 미메시스적인 움직임과 특이한 율동에 의해 그 실체를 얻게 된다. 새로운 사이클과 리듬에 반응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과정에 동참하게 하는 색다른 감수성을 갖게 하는 것. 린다 웨인트롭(Linda Weintraub)의 말처럼 '자기중심적인(Egocentric)'인 삶에서 '생태중심적인(Ecocentric)'인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 사랑이고, 그때 잃어버렸던 감각들(동물감각, 미메시스)도 되살아나지 않을까. 그리고 궁극에는 사랑의 몸짓들이 모여 우리 삶의 아주 작은 영역에까지 침투해 있는 자본주의의 욕망을 와해시키지 않을까. 대량생산된 이미지, 단단한 코드들, 굳어버린 상징체계에 흠집을 내고 해체하는 것, 그리하여 자기생성과 더불어 타자와의 공존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라 생각하며 『일곱 개의 방 - 특이한 부드러움, 상냥한 떨림』展의 관계망을 설계하게 되었다. '전시동'이 된 '5동'의 일곱 개의 방을 연결하고 작품들이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차원에 접속하게 하는데 주목하고, 결국 그물처럼 연결된 생명 네트워크를 5동의 기억과 함께 가시화하고자 한 것이다.

박찬원_봄, 돼지 6_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2016
김승환_공간초상(방역창고)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540×1840cm_2015

그럼 69명의 작품이 걸린 '일곱 개의 방'으로 들어가 보자. ● 전시동의 정문을 들어서면 기존의 5동의 벽체를 그대로 살려 파티션으로 활용한 방이 보인다. 그런데 이 방은 한 마리의 돼지의 감수를 거쳐야만 입장할 수 있다. 돼지는 구부정한 포즈를 취하며 관객을 말없이 입장시킨다. 첫 번째 방인 '동물의 방'에는 박찬원, 윤정미, 금혜원, 김승환의 작품이 걸려있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 장례식장에서 죽음의 의식을 치루는 중인 동물, 과거에 동물 실험이 잦았던 혁신파크의 기억을 가진 건물의 내부를 다섯 마리의 돼지들이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동물원에 갖힌 동물들(윤정미)이 장렬하게 장례식이 거행 중인 금혜원의 동물을 다시 바라본다. 동물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과거 '질병관리본부, 식약의약품안전청, 국립보건원'이었던 이곳에서 120만여 마리가 실험실에서 죽었던 기억을 가진 벽(김승환)은 하얗게 응고된 채로 자기를 에워싼 동물들을 다시 본다. 이 방의 동물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동물식으로 삶과 죽음을 생각한다. 또한 사람인 관객을 동물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들의 언어는 사람의 언어만큼이나 복잡할 것이고 그들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은 비가시적인 영역이기에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한 비의적인 세계이다. 조용하게 걸린 이 방의 사진들이 시끄럽게 말을 걸어온다면, 잃어버렸던 동물감각이 살아난 것이니 놀라지 마시길.

이한구_무무(無舞)시리즈, 남해안별신굿,정영만#08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2011
한금선_굿·판_젤라틴 실버 프린트_13.3×20.5cm_1999
이규철_황해도 굿_2005

'동물의 방'에서 나오면, '사람의 방'이 나온다. 사람의 방에서는 지금 막 굿이 행해지는 중이다. 남해안별신굿 보유자인 정영만선생의 구음을 따라 굿판의 정점에 만신 김금화선생의 춤이 보인다. 만수대탁굿을 행하는 이해경선생 맞은 편에는 거센 바람에 춤을 추는 400살이 넘은 은행나무가 서 있다. '굿 판'이 된 이 방은 산 사람의 길한 복을 빌고 죽음 이후의 극락왕생을 염원하고 억울한 자의 누명과 먼저 간 이를 애도하는 기원의 방이다. 한금선, 이한구, 이규철 세 사진가는 굿판을 촬영했고 세 사진가의 시선에서는 사진가가 사진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극히 자연스러운 미메시스의 욕망이 보인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사람이 무당(巫堂)이고, 아주 옛날에 신관이나 무당의 일이 미메시스의 시작이었듯이, 굿은 세계와 인간을 연결하려는 지극한 미메시스 운동이다. '무당'은 '미메시스적인 것'을 통해 운명의 한계와 자연의 공포의 세계로 스스로를 기투시킨다. 자연에의 순응과 동화를 통해 역으로, 존재의 자유와 해방을 트기 위한 것이다. 운명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더라도, 친화와 해원의 자장이 형성되면서 굿판은 매혹적으로 정점에 도달하게 된다. 2) ● 사람의 방과 연결된 작은 방에는 안경진임안나의 작품이 보인다. 이들은 의미의 감옥에 사로잡힌 시각 이미지를 해방시키고 있는데, '물질-보이는 것' 바깥으로 물러났던 이미지들을 이 세계로 호출하며 보이는 것들을 다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하고 있다. 안경진이 3차원의 환영을 2차원의 환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이미지의 번역의 코드를 교란시킨다면, 역으로 임안나는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환영을 심으며 공간을 해체하고 있다. 폐쇄적인 지시에서 탈피한 역동적인 상징과 암시의 방이다.

안경진_Shape, Shadow & Empty_혼합재료_90×280×20cm_2011
임안나_Fronzen Object #24_피그먼트 프린트_60×120cm_2016

지나 왔던 방들에서 빠져나와 맨 오른쪽 방으로 가면 김순임성유진의 작품이 기다린다. 오직 이곳이어서 가능한, 지금여기에서만 볼 수 있는, 단 하나의 작품이다. 혁신파크에 굴러다니는 271개의 돌맹이들을 '모셔와' 날개를 달아 준 김순임과, 5동의 벽에 벽화를 그린 성유진의 작품은 전시가 끝남과 동시에 이곳에서 사라진다. 3~6일간 수고로운 노동을 거쳐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보았다. 아르네 네스(Arne Haesse)는 근본생태론(Deep Ecology)을 통해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고 피력하는데, 김순임과 성유진의 작업은 바로 '깊은 마음의 생태학'이라 할 만하다. 나의 영역에서 확장해서 주변의 생물과 그들의 서식지, 나아가 지구 전체 생태계로 뻗어가는 두 사람의 작업은 전일한 세계의식을 보여준다. 모든 현상들이 상호 의존하고 개인과 사회가 자연의 순환과정 속에서 그물망처럼 연루되어 있음을 알게 하는데, 그 형식이 참으로 부드럽고 상냥하다. 스스로가 자연과 공존할 수밖에 없는 생태의 일부임을, 타자를 복원시키며 닫힌 형식에서 열린 체계로 나아가는 그들의 몸짓은 목재 천정에서 들어오는 빛의 걸음을 닮았다. 이들과 함께 '5동'은 이제 살아있는 유기체인 생명의 장이며 그 장소에서 작가와 관람객의 신체도 유기체로서의 한 부분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김순임_Nanun Dol 2016_서울혁신파크_2016
성유진_wall painting_서울혁신파크_2016
윤성필_Looking at the real world from whitin the real world 12_ 스테인리스 스틸, 자석, 모터, 액션 센서, 리퀴드_200×200×50cm_2012

이제 '동물의 방'이 있는 뒷문으로 가보자. 먼저 벽면 전체를 에워 싼 목재 선반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윤성필주도양 , 김정언의 작품이 보인다. 큰 방에 달랑 5점의 작품이 놓여 있지만 그 울림은 여백만큼이나 세다. 언뜻 보았을 때 우주의 운동(윤성필)과 곤충의 시각(주도양), 도플갱어의 시각(김정언)이 상충하는 듯하지만, 어떤 환기(suggestion)의 주술(invocation)'적 움직임으로 가득하다. 또한 감각의 물질적 한계를 초월해 비어 있음으로 최대치로 실현되는 직관적이고 음악적인 울림의 공간이기도 하다. 일상의 가시적 세계, 물질의 세계 너머에 엄연히 심연처럼 자리 잡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곤충에서부터 우주의 거대한 흐름이 이 방을 감돌고 있다. 그 기운을 가지고 마지막 방으로 건너가면 전시동에서 가장 큰 방이 펼쳐진다. 올해 55살이 된 '5동'을 기념하기 위해 55인의 신진작가들이 「프랙탈 네트워크 : 아직까지 기억에 없는 것」3) 을 주제로 목제 선반을 작품으로 가득 채웠다. 이 목제 선반은 원형 그대로를 보존한 것으로, 예전에는 시약을 보관하는 선반으로 쓰였던 것이다. 프랙탈(fractal)은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유사한 형태로 반복되는 구조를 말한다. 55인의 각각 고유한 작업들은 스스로 자기를 구성하고 직조하고 생산하며 전체를 이루었을 때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하게 되며, 사실상 이번전시의 불꽃 역할을 하게 된다. ● 그리고 전시동 곳곳에서 김승환은 '5동의 기억'을 따라 간다. 리노베이션이 진행되는 동안 꼼꼼히 채집한 5동의 흔적과 기억을 담은 사진이 바로 그것이다. 김승환은 기억의 벽에 그대로 사진을 자리하게 하여 건물이 품고 있었던 시간을 위무하고 있다.

주도양_SIP II_C 프린트, 핀홀카메라_117×176cm_2016
김정언_silver moment #2_디지털 프린트, 설치_150×150cm_2016

이번 전시를 기획하며 늘 떠나지 않았던 단어가 바로 '변용(變容)' 이다. '스피노자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이 개념은 두 신체가 만났을 때 신체의 일부나 전체가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체의 변화가 촉발되는 것은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며, 상호 긍정되는 기쁨이라는 정서 상태와 오르가즘과 같은 신체 합성의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변용은 상대방의 입장에 서는 것, 상대방 되기, 격렬한 신체변화, 끊임없는 정서의 촉발 등으로 나타나며, 사랑이 만들어내는 세계의 재창조 현상이다.' 4) 시각 위주의 인간에게 숨어 있던 촉수를 깨우고 비가시적인 세계의 실상을 더듬게 하는 사랑의 율동이 변용인 것이다. 장소 특정적(Site-Specific)일 수밖에 없는 이번 전시에서 작품이 놓이는 장소에 따라 그 의미와 형식도 변용되듯이 말이다. ● 『일곱 개의 방 - 특이한 부드러움, 상냥한 바람』展이 전시 된 일곱 개의 방처럼, 생태계는 하나의 네트워크나 시스템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는 관계망으로 형성되어 있다. 사람과 자연, 도시와 자연, 공간과 사람, 사람과 동물, 자연과 문화 등, 인류는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진화해왔고, 운명적으로 문명의 발달사는 자연의 타락사와 함께 했다. 그것은 또한 자연 고유의 네트워크망을 해체하는 해체사였고, 자본주의의 이윤의 도구가 되는 것들의 착취사에 다름 아니었다. 급격한 도시화와 자본이데올로기에 의해 쉽게 파괴되거나 사라진 것, 기억되지 못한 것들과의 '색다른 관계맺음'은 특별한 부드러움과 더욱 상냥한 숨결에 의해 가능하다. 생명 네트워크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거나 희미해진 시대에 '특이한 부드러움과 상냥한 떨림'같은 예술 작품의 역할과 그 작품들이 전시될 공간에 주목하게 된다. 아직까지 없었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해안가에서 지도를 그리는 에스키모처럼 눈을 감을 때이다. ■ 최연하

* 주석 1) 김중혁,「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펭귄뉴스』, 문학과지성사, 2006, pp. 95~96. 2) 최연하, 이규철 사진집『굿-징소리』, 눈빛출판사, 2015, pp.122~125. 3) 신승철은 과학, 에술, 혁명의 원동력이자 대안사회를 만들고 창안할 수 있는 욕망의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한다. " '이미 거기에 존재하는 것'을 가지고 싶어하는 욕구와 달리, 욕망은 '아직까지 기억에 없는 것'을 만들어낸다."고 말하며 새롭게 만들어지는 욕망의 흐름에 따라 끝없이 변이되는 프랙탈 차원의 관계망을 직조해 낼 수 있다고 서술한다. 신승철,『펠릭스 가타리의 생태철학』, 그물코, 2011, p.8. 4) 신승철, 위의 책, p.14.

* 전시장 찾아오는 길 지하철 : 지하철 3,6호선 불광역 2번 출구에서 도보 7분 2번 출구 앞의 횡단보도를 건넌 뒤, 녹번 파출소를 지나 100m 직진한 후, 왼쪽에 있는 정문으로 들어와서 계속 직진하면 전시동이 보입니다. 버스 : 마을) 은평02, 은평04, 은평07 / 지선) 7720 / 간선) 471, 701, 703, 704, 705, 706, 720, N37 / 일반) 99, 330, 567 / 직행) 9709, 9710 / 광역) 9703, 9709 / 공항) 6012

Vol.20160617j | 일곱 개의 방-특이한 부드러움, 상냥한 떨림-서울혁신파크 전시동 개관 기념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