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nt Factory

배성희展 / PAESUNGHEE / drawing.installation   2016_0617 ▶ 2016_0701 / 월요일 휴관

배성희_Plant Factory展_지금여기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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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희 홈페이지_www.sungheepae.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시_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01: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공간 지금여기 SPACE NOWHERE 서울 종로구 창신동 23-617번지 space-nowhere.com

쏟아지는 외부 ● 배성희는 오랫동안 도시의 구조에 관심을 갖고 마치 건축 도면을 그리거나 모형을 제작하는 것과 같은 태도로 작업해왔다. 일상적으로 몸 담고 있는 도시를 바라보던 중에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본격적으로 작업에 임하며 시선을 던진 곳은 가상의 도시 풍경을 보여주는 아파트 광고 전단이었다. 이런 이미지는 주거 공간 및 기반 시설이라는 무기물과 거주민과 동식물이라는 유기물의 집합체인 도시를 포착하기에는 분명 한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도시인의 주요 주거 공간인 아파트 단지의 구조를 그려내기에는 충분하며, 현대의 계급적 욕망이 투사되는 대표적인 장소로서의 아파트를 통해 도시 담론을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배성희는 광고 전단지에서 아파트 단지라는 공간을 이루는 주요 요소로 건축물에 더해 가로수에 주목했다. 이후 아파트와 가로수는 도시의 인공과 자연을 대표하는 사물로서 작업의 주요 소재가 된다. 순백의 입방체로 축약된 아파트와 형태와 크기가 획일적인 가로수. 이번 전시 『플랜트 팩토리』에서 배성희는 그가 발견했던 이 두 가지 ‘유닛’의 조합을 통해 추상적 공간을 구축하려던 이전까지의 시도를 넘어 그 개별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배성희_urban tree_드로잉_104×64cm×6_2014
배성희_jungle_영상_2015
배성희_urban tree_가변설치_2016

클로즈업. 또는 다가서기. 배성희의 작업에서 예전과 눈에 띄게 달라진 게 있다. 가장 손쉬운 설명은 대상과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졌다는 말일 테다. 이전까지 공개된 작업에서 주로 조감도 시점이 쓰였다면 이번 전시에 소개된 지난 3년간의 작업에서 작가는 대상을 클로즈업한 것처럼 보인다. 「어반 트리」(2014-2015)에는 가로수를 아래에서 올려다본 시점이 담겨있다. 앙상한 가지와 전선이 얽히며 드리운 그림자 너머로 윤곽만 겨우 남은 건물이 보인다. 배성희는 이전에도 가로수의 미묘하게 다른 형태를 유형학적으로 포착하는 작업을 했는데, 당시에 나무가 독립된 유닛으로서 다루어졌다면 이번에는 가지가 전선과 엉켜 일체가 된 모양새와 사각 프레임에 가지나 전선이 과감하게 잘려나간 형상이 부각된다. 「어반 트리」에 묘사된 나무는 아파트 광고에 등장하는 것과 다르다. 인공적-이상적 도시 이미지에 등장할 리 없는 전선이 등장한다는 데서 더 이상 대상이 추상적인 재현물이 아니라 유기적인 실제 도시의 구성물이라는 사실을 유추해볼 수 있다. 배성희는 작업실을 벗어나 다시 거리로 나섰다. 광고 전단을 참고하여 나무 이미지를 제작해온 작가에게 가로수는 새삼스러울 만큼 새로워보였다. 전선이 엉킨 가로수는 자연으로서의 나무가 아니라 이미 도시의 인공물 그 자체였던 것이다.

배성희_urban tree_드로잉_77×115cm_2014
배성희_urban tree_드로잉_109×78cm_2015

그런데 「어반 트리」에서 작가는 대상에 물리적으로 다가선 것일까? 예전보다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을까? 조감도 시점으로부터 클로즈업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아파트 광고 전단은 더 이상 확대할 수 없으며 확대해봤자 드러나는 건 픽셀 이미지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번 작업은 이전 작업으로부터 클로즈업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되는 태도가 엿보인다. 배성희는 길거리에서 바라본 가로수의 사진을 찍어 투명한 종이에 무채색으로 옮겨 그린 후 앞뒷면을 뒤집었다. 잉크 얼룩이 남은 표면을 가리면 매끈하고 균질한 몸체가 나온다. 배성희는 오직 형태의 윤곽과 무늬만을 남긴다. 대상이 익명화된다는 것은 그것을 보는 이가 익명화된다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배성희는 조감도 시점을 거두고 나무 아래로 들어갔지만 결코 빛과 그림자의 온도가 피부 속으로 전해지는 나무 그림자의 '내부'에 머물지 않는다. 그보다 앙상한 가지와 전선, 그 너머의 건물이 얽히며 빚어내는 기괴한 무늬에 사로잡힌다. 배성희는 회화적 물성이 배제된 흑백 화면을 통해 개인의 고유한 내면을 부정한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욕망을 들여다보는 대신 노골적으로 간결한 욕망의 투사물을 제시한다. 무채색의 무늬만이, 닿을 수 없이 고립된 '바깥'만이 끝없이 쏟아진다. 이로써 결과적으로 아파트 광고 이미지를 대하던 때와 거리의 가로수 아래 설 때의 물리적 거리감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게 되는 것 아닐까.

배성희_forest_가변설치_2016
배성희_forest_가변설치_2016

투명한 사각 케이스 안에 납작한 모형 가로수 이미지를 채워 차곡차곡 쌓아올린 「포레스트」(2016)는 외부와 내부에 관한 배성희의 시선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규격화된 나무가 체계적으로 밀집해있는 모습에서 전시 제목이기도 한 '플랜트 팩토리'를 떠올릴 수 있는가 하면 배성희의 두 가지 주요 소재인 아파트와 가로수가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포레스트」는 도시의 구조이자 개인의 외부(또는 개인-없음이나 내면의 부재)에 집중하는 듯이 보였던 배성희의 작업에서 처음으로 내부 또는 실내가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단일 규격의 상자가 빼곡히 쌓인 공간은 아파트의 공간 구획을 연상시킨다. 모처럼 실내가 드러났으나 공간을 점유하는 건 인간이 아니라 다시 가로수이다. 이렇게 도시 공간이란 오직 건물과 가로수로만 이루어진 것처럼, 또는 인간이란 그러한 구조 안에 완벽하게 포획된 것처럼, 외부가 암시하는 내부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인식된다.

배성희_jungle_드로잉_2016

배성희는 전시장에 상주하며 「포레스트」의 유닛을 추가로 공급한다. 거대한 도시 건축물을 연상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조잡한 재료를 사용한 수공예적 증식에서 암시되는 것은 도시의 시간성이다. 도시의 몰개성한 건축물은 쉽고 빠르게 세워졌다 허물어진다. 「정글」(2015)은 천천히 변화하는 아파트의 스카이라인을 보여주는 드로잉 애니메이션이다. 물결이나 거품이 뭉쳤다 흩어지듯 움직이는 도시의 풍경은 일시성 속의 영원함이라는 현대성에 관한 이미 오래된 사유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배성희가 작업에 필연적으로 표시되고 마는 시간성 속의 '수행성'을 애써 지워낸다는 사실이다. 손의 움직임과 흔적을 가리고, 관찰자의 신체를 익명화하고, 제작 과정을 탈기술화함(누가 하든 상관없음)으로써 말이다. 정작 그러한 익명성과 무관심성은 역설적으로 오랜 시간동안 신중하게 숙고해서 나온다. ■ 김정현

Vol.20160618e | 배성희展 / PAESUNGHEE / draw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