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젖 잠

박찬원展 / PARKCHANWON / 朴贊元 / photography   2016_0623 ▶︎ 2016_0703

박찬원_봄, 돼지 6_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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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623_목요일_06:00pm

작가와의 만남 2016_0701_금요일_04:00pm~06:00pm "돼지우리가 된 전시장 - 박찬원 + 박지원 + 최연하" 토크

관람시간 / 12:00pm~06:00pm

대안예술공간 이포 ALTERNATIVE ART SPACE IPO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126길 9(문래동 3가 54-37번지) Tel. +82.2.2631.7731 www.facebook.com/spaceipo

돼지가 우리를 바라본다. ● 사진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행복한가? 아니, 자유로운가?…… 이 거대한 질문들은 답을 유예하면서 늘 곁에 있길 원한다. 왜냐면 우리가 아직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음으로 죽음과 삶과 사랑과 자유를 자꾸만 생각한다. 죽기 전까지는 결코 닿을 수 없고 답을 알아버리면 주체할 수 없기에 늘 애매한 의미들의 언저리에 머물 뿐이다. 그런데 부재한 것들이 호명되어 있는 사진들을 볼 때면 (지금은 없지만) '한 때 존재가 분명히 있었음'에 선득한 냉기를 경험하곤 한다. 살아 있었던 대상으로부터 시간을 냉동시키고 정지 상태에 놓이게 하는, 사진은 대상의 현존을 생생하게 보유하고 있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사진이 재현시키는 무수한 것들은 단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았던 현상이다. 즉 사진은 실존적으로 다시는 되풀이 될 수 없는 것을 기계적으로 재생시킨다. 사진에 찍혀 있는 사건은 결코 그 이외의 것을 향해 자신을 넘어서지 않는다. (…) 절대적인 '특수성', 불투명한 최고의 '우연성'이며, 곤란하게도 '그런 것', 간단히 말해서, 그 끈질긴 표현 속에 나타나는 '투케', '기회', '만남', '현실'인" 것이다. (롤랑 바르트, 조광희 역, 『카메라 루시다』, 열화당, 1986, p.12.) ● 한 무리의 돼지가 있다. 돼지는 각각의 이름이 없이 '돼지'로만 불릴 뿐이다. 그래서 바르트가 말한 절대적인 특수성이나 개별성을 획득하지 못한 채 집합명사로 왔다가 간다. 그래서 돼지가 찍힌 사진에서 '투케'를 경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박찬원의 돼지들은 다르다. 마치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인식하도록 유도하고 주의를 집중시킨다. 나 좀 봐달라고,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어떤 돼지는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만일 사진이 재현하려는 세계를 동일하게 재현했다고 해도, 사진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 과정은 이미지와 관객의 관계로서 생성되기 때문에, 돼지 사진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저마다 다른 경험을 할 것이다.) 내가 본 박찬원의 돼지 사진 속에는 삶과 죽음의 대립이 분명하고, 그것은 인간의 세계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돼지의 해부학적 구조와 습성, 수명, 그리고 신체적 능력이 인간과 다르지만, 어미에게서 태어나고,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유한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람과 같다. 이 사진 속에는 생생하게 살아 있지만, 사진 속의 돼지는 곧 죽을 것이다. 사람도 때가 되면 죽는다. 다만 돼지는 사람을 먹지 않지만, 사람은 (이미) 죽은 돼지를 먹으며 자신의 삶을 보충한다. 모든 사진 이미지의 최초의 관객이자, 그것의 촬영자인 사진가는 돼지 사진을 어떻게 보았을까.

박찬원_봄, 돼지 15_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2016

그동안 「소금밭」(2013), 「삶」(2013), 「여행」(2014) 시리즈를 통해 삶과 죽음의 세계를 곡진하게 사진작업으로 표상해 온 박찬원은 이번 전시 『꿀 젖 잠』에서 돼지가 주인공이지만, '돼지 같은 사람, 사람 같은 돼지'의 존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기본적으로 세계의 재현을 목표로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진은 시간의 장르이므로, 시간의 연쇄가 있기 위해서는 사건이 촉발되어야 하며, 그 사건은 발생하게 하는 행위자가 존재해야 한다. 돼지 사진을 촬영한 박찬원은 돼지들의 일상에 불쑥 나타나 사진-사건을 유발시켰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촬영자인 박찬원 외에 돼지들의 삶에 뛰어들어 사건을 일으킨 무수한 사람들이 있다. 박찬원의 사진, 『꿀 젖 잠』의 코노테이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재현된 이미지 이면에 감춰지고 가려진 어두운 파토스를 결코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바르트를 인용하자면, 바르트는 사진을 둘러싼 세 가지 실천을, 촬영자(operator), 유령(spectrum), 구경꾼(spectator)으로 구분하였는데, 사진에 찍힌 지시체(referent)를 '유령'으로, 그것을 관람하는 사람을 'spectator'로 흥미롭게 명명한다. 이 '스펙터클'한 소비사회에서 이미 사라진 돼지를 사진으로 보는 일은, 이미지화 된 자연이 아니라 '날것 그대로의 자연'을 접촉하게 하는 우리의 현실을 전율시키는 드문 경우이다. 매끈하게 봉합된 가상현실이 아닌, '실제'의 살을 경험하게 하는 것. 돼지가 우리를 바라본다. ● 다산, 풍요, 탐욕과 야비함, 때로는 악마의 화신으로 그리고 숭배와 불결한 대상이라는 극단의 상징을 가진 돼지는 인간에 의해 가장 먼저 사육된 동물 중 하나이다. 인간의 집에 함께 살면서 인간의 역사를 따라 왔다. 다른 가축과 달리 한번에 10마리 이상의 새끼를 낳고, 발육 또한 빠르기에 인간은 고기 생산 능력이 우수하도록 이용가치가 높은 몸 부위를 더욱 발달시켰다. 자본주의 사회의 수많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 공장에서 상품을 끝도 없이 찍어내듯이 돼지들이 그렇게 생산되어 왔다. 그렇기에 박찬원의 사진에서 특히 주목하게 되는 돼지의 배는, 인간의 채울 수 없는 끝없는 욕망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두 발이 배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배가 두 발을 끌고 간다.'라는 스페인의 속담처럼 식욕, 권력욕, 성욕 등 무수한 욕망이 그 배처럼 꿈틀거린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회화에서 처참하게 일그러지고 변형된 인체가 마치 정육점에 매달려 있는 고깃덩어리처럼 보이거나, 영화 『델리카트슨 사람들』의 엽기적인 인간들의 행각이 씁쓸하게 공감된다면, 욕망을 향해 돌진하는 인간의 불어나는 살들의 실체 또한 낯설지 않을 것이다.

박찬원_꿀, 돼지 1_피그먼트 프린트_40×60cm_2015

돼지들이 걸어온다 / 이 화창한 대낮에 / 이렇게 꽃 흐드러진 대낮에 / 돼지9 원피스돼지, 돼지9 투피스 돼지, 돼지9 넥타이 돼지 / 걸어온다 / 요리조리 엉덩이 흔들며 하이힐 콕콕 찍어대며 // 돼지9 길러서 먹어주세요 / 돼기9 먹고 울어주세요 / 돼지9 새끼도 낳아 드릴게요 / 돼지9 슬픈 인생이었다고 한 번만 말해주세요 / 돼지9 나를 잘 싸서 준비해주세요 / 돼지9 창자는 줄에 걸어주세요 / 돼지9 하나도 버리지 말아주세요 / 돼지9 트림은 그렇게 심하게 말아주세요 // 맛있는 걸 당신이라고 불러도 되나요? // 아껴가며 살살 파먹어도 되나요? (김혜순, 『피어라 돼지』,「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당신」부분, 문학과 지성사, 2016, pp.23~24.) ● 시인 김혜순의 돼지들처럼, '이 화창한 대낮에' 돼지들은 그렇게 서울의 숨구멍, 문래동의 전시장으로 걸어왔다. '슬픈 인생이었다고', 그러니 '하나도 버리지 말아' 달라고, 제발 '아껴가며' 먹어달라고 속삭인다. 돼지우리가 된 이포 전시장에는 사진이 다르게 읽힐 수 있도록 돼지의 말을 틀어 놓았다. 일상적으로 향유되는 문화적 관습 체계 안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육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사용해야 겨우 들을 수 있는 돼지의 음성 사진전이라고 할 만하다. ● 동시대 사진에서 사진의 기록적 측면과 예술사진의 경계가 흐려진지 오래, 박찬원의 돼지는 기원을 알 수 없는 이미지가 아니라 번뜩이는 실체로 진정하게 걸어왔다. 박찬원은 부재하는 돼지들을 호명하기 위해 돼지우리를 100번이나 찾아가 촬영하였고, 그의 사진은 그동안 동물이 소제/주제가 되었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지점을 점유하게 되었다. 단순히 동물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 아닌, 사진으로 재현할 수 없는 소리와 감각까지, 동물과 사람의 시점을 오가며 서로의 모습을 투사시킨다. 통속과 보편을 사진으로 호소력 있게 보여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박찬원은 이미지가 무기력증에 빠진 상황에서 이미지의 체계 자체를 반성하며, 사진이미지로 무엇을 하려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작가적 진심과 수고를 다하며 제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와 함께 출판되는 『꿀 젖 잠』 사진집에서도 박찬원의 주제를 발견하는 안목이나 그것을 다루는 방법에서 특출한 위치를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 실재의 재현에 머물지 않고 실재를 압도하는 박찬원의 괄목할 활력이 기대된다. ■ 최연하

박찬원_젖, 돼지 1_피그먼트 프린트_67×100cm_2015

돼지 우리가 된 전시장 ● 전시를 위해 어느 공간을 선택한다는 것은 단순히 '작품과 잘 어울린다' 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처음 돼지 전시를 제안 받았을 때 느낌은 '맛있고 웃기고 슬픈' 블랙코메디 같은 전시를 연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작가를 처음 만나는 날, 작가의 열정이 고스라니 드러나는 방대한 양의 사진을 본 후 '숨 젖 잠'이라는 생명활동의 신비로움보다 인간의 극한 탐욕과 자본증식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만 존재하는 한 생명과 이윤을 위해 가해지는 혹독한 노동(가혹한 생명활동)만 있는 생명들과 마주한 충격적인 사진들이었다. 작가에게 얼마나 고통스런 각성과 자각의 시간이었을까! 생(生)과 사(死), 성(聖)과 속(俗), 꿈과 현실, 생활과 예술을 넘나드는 초월과 명상의 시간이었음을 감히 짐작할 수 있었다. 몇 차례 전시회의를 거치면서 구체적으로 전시의 상이 잡히기 시작했다. 장소 특정적으로 문래동에서 생산된 작품은 아니었지만 작품과 장소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상호개입의 장을 마련하고 서로 대화를 나누고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전시를 생각하였다. 이를 '장소 특정화의 작업'이라 부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전시 형식은 문래창작촌처럼 이질적인 직업군으로서 예술과 노동이 충돌하는 것들의 공존, 각자 다른 생의 조건(다양체)들이 공통의 장을 마련하고 새로운 차원을 열어나가는 힘, '숨 젖 잠'이라는 생명활동의 신비로움과 숨쉬고 먹고 잠자는 것이 노동이 되어버린 사회에 대한 자각, 돼지의 생육생장도 자기생산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기계와 흡사한 노동과정의 유사성, 먹고 살아야 만하는 극명한 삶을 통하여 발견하게 되는 생(生)의 은유, 이런 것들이 모순 충돌하여 압축적이고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현실과 특히 검은 섬처럼 떠있는 문래동의 삶들과 잘 어울리는 전시를 생각해 본다. 동화속이나 동물 영화에서나 나오는 귀여운 돼지가 아니고 고기집 집에서 맛보았던 그 맛난 돼지의 모습도 아니고 다 헐고 찢겨진 젓 가슴으로, 불에 그을린 모습으로, 발정난 돼지의 모습으로, 태반을 끊지 못해 죽어가는 모습으로, 옴짝 할 수 없는 철망에 갇혀 살을 찌워야 되는 돼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모습을 조금은 처절하게 바라보아야만 할지 모르겠다. 어떤 작품은, 특정장소와 의도적으로 충돌을 일으키기 위하여 장소와의 관계를 더 부각시키는 작업을 작품의 목적으로 하기도 한다. 도살장이거나 동물 실험실이거나 구제역으로 수만마리가 살처분된 현장이거나 국회의사당이거나 백화점이거나 전쟁터이거나 산이거나 바닷가 이거나 그 장소를 선택하여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강화시키고 새로운 차원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기 위하여 장소선택의 문제를 고려하게 된다. 여기에서 장소는 Space Place Site를 통칭하여 부르기로 한다.

박찬원_잠, 돼지 6_피그먼트 프린트_40×60cm_2016

이포 는 지금까지 장소(Site)를 기반으로 장소 특정적인 공간운영을 해왔고 전시내용도 장소특정적인 작업과 내용으로 활동을 해왔다. 가깝게 작년, 공간을 이전하면서 대안공간이포가 초대하여 함께 준비한 '도시생태도감'이라는 전시의 고민의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자연미술의 관점으로 바라본 도시생태미술" 내가 만난 자연미술은 '발견하고 반응하는 현장미술'이었는데 지금 이 시대의 돼지라고 하는 생태적 조건이 그 동안의 이포의 활동과 이어져 있었고 그것에 반응 한 것 같다. 그것도 7개월동안 100여일을 촬영한 돼지와 함께한 작업이라니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익히 돼지라는 생명이 어떻게 사육되어 왔고 어떻게 살육 되고 있었는지 알기에 이포를 장소 특정화의 공간으로 만나는 의미 있는 전시를 불 수 있겠구나 기대가 크다. ● 문래창작촌은 이른 새벽부터 "쿠웅쾅 쿵쾅" 철자재가 쏟아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문래동은 하루 24시간 다른 사운드를 연주한다. 그래서 문래 창작촌을 방문하는 사람에게 이 말은 꼭 한다. 어디라도 좋으니 옥상도 좋고 골목길도 좋으니 잠시 눈을 감고 동네를 들어보라고 읽어보라고 주문을 한다. 사진을 처음 배울 때 눈을 감는 것부터 배웠던 기억이다. 검은 섬처럼 떠있는 도시 한복판의 작은 마을, 밤에는 커다란 새 울음 소리가 들리고 알을 품는 소리 젓을 빠는 소리도 들린다. 똥싸는 소리도 들린다. 아이의 투정부리는 소리도 들리고 '으르렁' 밥 그릇을 놓고 다투는 소리도 사랑을 속삭이는 소리도 들리고 누군가 화가 나있고 누구는 울고 있고 통곡 소리도 들린다. 도살장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들기도 한다. 어떤 밤에는 처음 보는 괴 생명체의 형상을 만나기도 한다. 영화 속 장면이 아니다. 여기는 문래동 철공단지 문래창작촌 밤과 낮의 소리풍경이다. 소리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히 이 마을이 어떻게 살아있는지 알 수 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망막에 맺힌 잔상처럼 몸은 청진기가 되어 특정장소의 소리와 리듬을 감각한다. 그 도시의 살아있는 생존의 방식을 감각한다. 장소 마다 시간마다 눈을 감아야 선명해지는 존재들 그러나 장소는 그 장소를 알고 느끼게 해주기보다 사실 다른 시공간으로 장소로 이동을 하게 된다. 소리로 시각화된 그 이미지는 장소의 혼돈을 가져온다. '돼지 우리가 된 전시장'에서 잠시 눈을 감아 보시기 바란다.

박찬원_숨, 돼지 4_피그먼트 프린트_40×60cm_2015

작가의 작업일지 마지막 부분이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레도 셔터를 누룬다"(죽음 2015.12.21. 작업일지) 생과 사의 경계에서 폭풍처럼 이는 각성이다. 태반을 벗어나진 못하여 위기에 빠진 아기 돼지의 태반을 벗겨주고 "살아라 살아라" (생명 2016.1.29. 작업일지) 한다. 그리고 돼지 작업이 끝나 날 눈이 펑펑 내렸다. 결국 작업은 미완성이다. 앞으로 계속하라고, 안녕 인사는 하지 말라고 ....,(새로운 시작 2016.2.28 작업일지) '숨 젓 잠' 작가에게 '돼지의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 묻고 또 묻고 싶어지는 밤이다. "돼지우리가 된 전시장"에서 우린 어떤 모습으로 얼굴을 마주하게 될까? 벌써 박찬원 작가의 다음 작업이 기다려진다. (2016년 5월, 이포 전시장에서) ■ 박지원

박찬원_죽음, 돼지 2_피그먼트 프린트_40×60cm_2015

"꿀꿀꿀 끌끌끌…" ● "왜 돼지인가요?" "왜 박찬원인가요?" "왜 이포인가요?" 전시를 준비하면서 기획자가 내게 던진 질문이다.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내내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한 화두다. ● '숨 젖 잠'에서 시작하여 '돼지', '돼지우리', '우리 돼지', '돼지의 꿈', '나는 왕이로소이다.', '꿀', '꿀꿀 끌끌끌', '돼지는 울지 않는다.', '내가 돼지를 본다. 돼지가 나를 본다.'를 돌아서 '꿀 젖 잠'에 이르기 까지 제목에 대한 생각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희생, 생명, 순결, 박해, 어미 등등 돼지에 대한 의미도 깊게 깊게 퍼져 갔다. ● 꿀은 돼지가 내는 소리다. 생명의 신호일수도 있고 자기들끼리 나누는 이야기일수도 있고 사람에게 던지는 메시지일수도 있다. 젖은 생명이다. 전생과 현생을 이어주는 물리적 연결 고리다. 삶의 의미, 가치를 알려준다. 잠은 영혼이다. 살아 있으면서 죽은 것 같다. 전생, 현생, 내생을 넘나든다. 신비의 힘이 작용한다. ● 사람이 돼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돼지가 사람을 본다. 신기한 눈, 기이한 눈, 측은한 눈으로 사람을 본다. 탐욕, 싸움, 시기, 비난, 상처로 가득한 사람 얼굴을 본다. '꿀꿀꿀 끌끌끌~' 혼자서 안타까워한다. 자식에게 박대를 당한 어미가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그래도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놓고 희생하듯 돼지는 사람에게 자기를 바친다. ● 전시장 『이포Ipo』는 돼지에게 딱 어울리는 공간이다. 문래동 철공소 골목은 고층 빌딩 숲 속에 버려진 자투리땅이다. 그 속에 갤러리는 돼지우리다. 자연스럽다. 철은 개발의 상징이다. 개발의 뼈대인 철을 다루는 철공소 거리가 가장 낙후되어 있다는 것도 재미있다. 그 안에 작은 텃밭이 있다. 그곳이 갤러리다. 여기에 돼지를 풀어 놓는다. 문래동은 50년 전 시골 같다. 사람 냄새가 난다. 만나는 사람마다 형이고 동생이고 누이이다. ● 전시를 준비하면서 사진 작품 외에 전시가 갖는 의미, 공간이 갖는 의미, 보여준다는 것, 느낀다는 것을 더 깊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작품 도록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해본다. 한 번 보고 버리는 도록이 아닌 읽히는 도록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디자이너에게 사진 잡지 같은 도록 무크지 같은 도록을 디자인해달라고 부탁 했다. 작품 이미지가 손상될까 겁도 난다. 그래도 실험해 보고 싶다. 촬영, 작품, 공간, 전시, 도록이 각각 또 하나의 작품이다. 새로운 탐험이다. ● "왜 박찬원인가?"는 아직 모르겠다. 두고두고 생각해야할 화두다. ■ 박찬원

Vol.20160623e | 박찬원展 / PARKCHANWON / 朴贊元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