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장로드 春裝道 CHUNJANG ROAD-동생의 여정

한수옥展 / SOO / 韓洙玉 / installation   2016_0624 ▶︎ 2016_0629

한수옥_춘장로드-가족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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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624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02:00pm~08:00pm

스페이스 XX SPACE XX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128가길 1 B1 www.facebook.com/spacexx

춘장로드, 중간지대를 향한 여정 ● 「애리조나 카우보이 보비의 그라지 세일(이후 「애리조나」로 약칭)」(2008)이나 「아무도 모른다」(2009), 「나누기 중개소」(2010)와 같은 한수옥의 전작들에 나타나는 공통점은 이질적인 사물들을 결합시켜 새로운 맥락에 위치시키는 혼종화와 재맥락화에 대한 관심이었다. 「애리조나」에서는 테이블과 훌라후프, 가위와 볼펜, 운동화와 잔디처럼 연관성이 없는 사물들을 결합시켰고, 「나누기 중개소」에서는 이혼을 앞 둔 부부의 물건들을 지혜롭게 분리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주었다. 그러나 이질적인 사물들의 결합 또는 해체가 보여주는 유희의 이면에 가려진 듯 하지만 정작 한수옥의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은 이야기의 혼종화와 재맥락화에 대한 관심이다. 「애리조나」는 카우보이가 되기를 꿈꾸는 인디언 보비가 한국에서 그라지 세일을 여는 이야기를, 「아무도 모른다」는 아마존 강에서 한강으로 이주한 분홍 돌고래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다. 「나누기 중개소」 역시 익숙한 것과 이별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출발점이다.

한수옥_춘장로드-형의 레시피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6

짜장면 소스인 춘장의 역사를 탐구하는 여정인 「춘장로드-동생의 여정」에서는 전작들에서 오브제의 이면으로 몸을 숨겼던 이야기가 비로소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화교인 왕송산이 한국에서 처음 제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춘장이 실은 캐나다에 거주하는 그의 쌍둥이 형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이번 전시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중국 산둥에서 출생한 쌍둥이 형제 왕송산과 왕송강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첨면장 국수(짜장면) 식당에서 일하다 2차 대전의 종전과 함께 한국과 캐나다로 각각 이주했다. 밴쿠버로 이주해 첨면장 국수 가게를 운영하게 된 형 왕송강은 옅은 갈색의 산둥식 춘장에 메이플 시럽을 혼합해 달콤한 맛을 내는 검은 색 춘장을 개발하게 된다. 그것이 한국으로 이주한 동생 왕송산에게도 전해지면서 달달한 검정 색 춘장으로 만들어진 한국식 짜장면이 탄생하게 된다. 1948년의 혼분식장려운동을 기점으로 짜장면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지만, 형으로부터 더 이상 메이플 시럽을 받을 수 없게 된 왕송산은 대신 카라멜 시럽을 넣은 새로운 춘장을 만들어 내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식 춘장의 대명사가 된 사자표 춘장의 기원이 되었다.

한수옥_춘장로드-동생의 여정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6

한수옥은 올해 2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춘장로드」라는 동명의 이야기 퍼포먼스를 선보인 바 있다. 세계 지도가 펼쳐진 작은 테이블 주위에 둘러앉은 관객들에게 왕송강과 왕송산식 춘장을 각각 맛보게 하고 이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퍼포먼스는 불과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그러나 관객들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미각, 후각, 시각, 청각 등 자신들의 감각을 총동원해 중국, 한국, 캐나다를 오가는 춘장로드의 여정에 동참하는 모습이었다. 관객들이 이처럼 짧은 시간 안에 그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2차 대전과 분식장려운동이라는 실제의 역사적 사건들과 한국, 중국, 캐나다를 오가며 만들어진 춘장과 짜장면의 역사를 씨실과 날실처럼 엮은 한수옥의 이야기가 의심의 여지없는 '역사'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한수옥_춘장로드-동생의 여정展_스페이스 XX_2016

그러나 춘장과 쌍둥이 형제에 얽힌 이 이야기는 실은 실제와 허구를 뒤섞어 만들어 낸 '유사-역사'일 뿐이다. 한국식 춘장을 만들어낸 역사 속의 인물인 왕송산과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허구적 인물인 쌍둥이 형 왕송강의 이야기가 결합된 것이 바로 「춘장로드-동생의 여정」이기 때문이다. 한수옥의 전작들에서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은 늘 고향을 떠나 낯선 곳으로 이주한 허구적 인물이나 동물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한수옥의 작품들은 주인공들의 이주가 만들어낸 문화적 혼종성과 그 '중간지대(in-between)'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춘장로드-동생의 여정」은 전작들과 비교해 역사 속의 실제 인물과 사건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차별화 된다. 짜장면은 본래 한국과 중국의 음식 문화가 뒤섞여 만들어진 혼종화의 상징 그 자체이고, 중국인 디아스포라의 이주가 그 출발점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왕송강이라는 허구적 인물을 개입시킨 것은 캐나다라는 제3의 지점을 설정함으로써 이야기의 지리적 영토를 확장하고, 짜장면의 혼종적 속성을 한층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춘장로드-동생의 여정」은 실제와 가상, 역사와 허구의 경계 뿐 아니라 지리적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여정 끝에 만들어진 유쾌한 반전이 있는 이야기들의 중간지대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 전유신

Vol.20160625h | 한수옥展 / SOO / 韓洙玉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