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pring of Splendid Sorrow

최항규展 / CHOIHANGGYU / 崔恒圭 / painting   2016_0629 ▶︎ 2016_0705

최항규_Internal Feeling-너와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Gl, PVC_91×116.7cm_2016

초대일시 / 2016_0629_수요일_05:30pm

관람시간 / 11:00am~06:30pm

갤러리 환 Gallery hwan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23 동일빌딩 304호 Tel. +82.2.735.7047

찬란한 슬픔의 봄"가시적인 것의 고유한 본질은 가시적인 것이 부재로서 현존시켜 놓고 있는 하나의 층, 곧 엄밀한 의미에서 비가시성의 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 메를로 퐁티, 『눈과 마음』 ● 잔물결이 일렁이는 바다 기슭, 혹은 물결과 물결 사이 갈라진 틈 사이로 사념이라는 뭔가 내밀한 이야기들이 언뜻언뜻 내비치도록 꼴라주되어 있기라도 하는 듯 구성된 보다 먼 조망의 바다. 그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로부터 꿈처럼, 신기루처럼 둥실 솟아올라 개화해 있는 하나 혹은 두 송이의 꽃이 있다. 그러나 이 진술만으론 최항규의 그림에 대한 충분한 묘사가 아니다. 개화해 있는 그 꽃이란 기실 한 송이의 완전한 꽃이라기보다는 막 피어나는 중의, 혹은 마악 스러져 가는 중의 명멸의 순간을 포착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흩어져 있는 것들이 존재를 구성해 나오는 힘이었을까, 존재자들이 흩어지면서 정작 존재가 명료해지는 환영의 실체감을 말하려는 것일까….

최항규_Internal Feeling-별이되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Gl, PVC_72.7×60.6cm_2016

다섯 번째의 개인전에 내보이는 최항규의 근작들은 이처럼 화려한 듯 화려하지 않은, 언어인 듯 비언어인, 탄생의 신비에 대한 환호인 듯, 혹은 소멸의 비탄에 대한 애린(愛隣)인 듯, 멈칫거리는 자아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 멈칫거림. 이는 그가 화업을 시작한 초기, '가장 순수한 언어'인 수화(手話)에 주목하고 그 비언어로서의 순결성을 자신의 내면과 일치시켰던 고집의 연장선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우리에게 던져주는 해석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그것이 그의 종교심이긴 하되 너무 단선적으로 해석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단서를 달고서 말할 수 있는, 불교의 반야(般若)가 아닐까 싶다. 주객의 대립을 초월한 경지에서 감득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의식, 이성과 지성의 세계에서 작용하는 즉 '분별'하는 지식과는 명확히 구별하고자 하는 무분별지(無分別智), 법(法, 진리)의 있는 그대로를 체득하는 자각을 말함이다. ● 그의 기예에 이를 정도의 장인적인 수행성 그는 민들레 꽃잎의 가느다란 잎맥을 묘사하는 실선을 그리다가 팔꿈치 관절 부상(일명, 테니스 엘보)을 앓기까지 했다. ● 이 공(空)에 맞닿은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초현실적 화면구성(바다 위의 예기치 않은 꽃의 등장)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미술이 시각의 전유물이기를 강요해 왔던 구성이니 형식이니 하는 강령이 그의 근심거리가 되지 못했다는 데서 더욱 그러한 것이다.

최항규_Internal Feeling-환생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Gl, PVC_72.7×60.6cm_2016
최항규_Internal Feeling-기억된만남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Gl, PVC_130×162cm_2016

어느 날 혈육을 잃고 망연자실한 나날 중의 털썩 주저앉은 풀밭에서 내뻗은 손안에 뜯겨져왔던 민들레꽃 한 송이, 한 점의 씨앗을 중심으로 가련한 힘으로 파상의 열을 지으며 도열해있던 그 가뭇없는 생…. 꽃 그 자체의 보편적, 통계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으로 감겨들어왔던 아름다움이었다, 예컨대 반 고흐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 오로지 생활의 단면을 그저 관찰한 후 데생력을 발휘하여 '그려나가기'만 했던 것은 아니라는, 시각의 전유물로서의 미술에 대한 정당한 항변일 수도 있겠다. 그는 형식과 구성을 내려놓은 자리 그곳에서 내면의 감성(internal feeling)을 구축하기로 한다. 삶의 정황, 시간의 켜, 생활의 애환, 생로병사의 엄격함 등 이 모두가 '인간'을 구성하고 '이념'을 만들어내며 '감각'을 구성하지 않던가!라는 것이다.

최항규_Internal Feeling-희망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Gl, PVC_53×45.5cm_2016

그가 느끼는 이것들을 '보이지 않는 것'이라 얘기해 보자. 그는 이 보이지 않는 것들이 현실의 보이는 것들의 확고한 지반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것은 무질서한 한 무리의 군상들이 음표처럼 도열한 질서의 풍경이며(「Internal Feeling_군상」), 생성인 듯 소멸인 듯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한 화면에 있게 하는 저 먼 곳으로부터 비쳐오는 백색 광선이다(「Internal Feeling_환생」). 이 고전적이며 시간착오적인 큰 이야기는 물론 현대 예술의 동시대의 풍조, 사회적이거나 유명론적 화두는 아니다. 이 무시간적인, 무분별적인 벡터란 무엇일까. 물론 그의 '착한' 성정을 생각해본다면 현대 사회의 기술 진보가 야기한 동시대의 압도적 속도감에 대해 미처 따라잡지 못하고, 않으려하는 한 아날로그적 예술가의 주저함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차라리 시간을 지연시키거나 정지시킨 그만의 어떤 이상향 같은 곳에 대한 화두였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더 옳아 보인다. ● 소위 폴 클레(Paul Klee)가 이제부터 선(線)은 더 이상 가시적인 것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가시적이게 해주는 것'이고 '사물의 발생에 관한 청사진'이라고 말한 바의 비가시성에 대한 통찰을 더 상기해 볼 만하다는 것. 그의 작업은 이념적으로는 이와 유사한 논리의 연장선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화면에 그려지는 사물들은 그 각각의 사물성 자체의 발현에 이르는, 그것의 기억들을 담고 있는 총체이고자 한다는 것. 「내면의 감성」은 그 무의지적 기억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최항규_Internal Feeling-다시,돌아오는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Gl, PVC_91×116.7cm_2016
최항규_Internal Feeling-흩어지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Gl, PVC_91×116.7cm_2016

무의지적 기억. 우리는 이 대목에서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필생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떠올린다. 소설은 무의지적 기억을 따라가는 한 인간의 의식이 자기 자신의 정체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미술이 문학의 어법을 따라야 하는지에 관한 복잡한 논쟁꺼리를 논외로 치더라도 프루스트를 떠올린 이유는 최항규의 '기억'법의 유사성 때문에서다. 그것은 그 자체로 욕심내 볼 만한 주제이자 형식인 것이다. 그러나 막대한 시공간의 두께 때문인지 두 장르의 원천적인 한계 때문인지 우리는 아직 회화에서 문학만큼의 육체성을 확보한 전례를 아직 듣지 못했다. 그렇다. 순전히 프루스트로 인해 생겨난 새로운 요구가 그에게 부과되었다. 그것은 모종의 '회화적 육체성'의 확보일 것이다. 필자는 그것을 어쩌면 '그림자를 남기지 않은 이미지들'이라는 과제를 제기하는 문제라 보고자 한다. 추상성 자체에 내재한 문제, 행정구역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주소'가 지워짐으로써 그것은 이내 '추상적인' 보편적 집이 되고야 말 무기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 색조가 차분히 가라앉는 청회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적막한 그곳에 소란스럽게 웅성거리는 무질서의 혼돈된 상태, 물리학적 용어로는 "상태함수(엔트로피:entropy)가 최고점에 달하는 순간"의 활성을 불러일으킬 문제인 것이다. ● 프루스트만큼의 거장 김영랑이 "수심뜨고 애끈하고 고요하기"라 읊조리고 있던 때의 그런 '내음(냄새)'을 우리는 킁킁대고 있는 것이다. 수심 뜬 슬픈 봄이 찬란할 수 있을만치 아픈 그런 현실의 냄새 말이다.

최항규_Internal Feeling-환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Gl, PVC_53×45.5cm_2016

가늘한 내음 - 김영랑 ● 내 가슴속에 가늘한 마음 / 애끈히 떠도는 내음 / 저녁해 고요히 지는 제 / 먼 산허리에 슬리는 보랏빛 // 오! 그 수심 뜬 보랏빛 / 내가 잃은 마음의 그림자 / 한 이틀 정열에 뚝뚝 떨어진 모란의 / 깃든 향취가 이 가슴 놓고갔을 줄이야 // 얼결에 여읜 봄 흐르는 마음 / 헛되이 찾으려 허덕이는 날 / 뻘 우에 철석 갯물이 놓이듯 / 얼컥 이-는 홋근한 마음 // 아! 홋근한 내음 내키다마는 / 서어한 가슴에 그늘이 도나니 / 수심뜨고 애끈하고 고요하기 / 산허리에 슬리는 저녁 보랏빛박응주

최항규_Internal Feeling-돌아오는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Gl, PVC_72.7×91cm_2016
최항규_Internal Feeling-두마음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Gl, PVC_47.5×55cm_2016

A Spring of Splendid Sorrow"The proper essence of the visible is to have a layer of invisibility in the strict sense, which it makes present as a certain absence." - Merleau-Ponty, Eye and Mind ● A seashore ruffled by ripples, or a sea from a distant view, composed as if some intimate stories or pieces of thoughts, fleeting as flashes, made a collage between split waves. In the middle of that distant and boundless sea, a flower or two in full bloom, floating up above the surface of the water, as if in a dream or a mirage. However, this statement alone can not fully describe the paintings of Choi Hang-gyu. ● The flower in bloom is, in fact, not a flower in a full sense, rather, it is a catch of the glimmering moment of blooming, or withering of a flower. Was it a force coming from the constitution of an existence by the scattered things, or was it intended to tell the reality of the phantoms of which the existences gain obviousness, ironically, when the existing scatter away…. ● The recent works of Choi Hang-gyu that he presented in his fifth private exhibition are, as such, filled with the traces of self―splendidly in one hand, or not that splendidly in other hand, as a language or a non-language, as if jubilating at the mystery of birth, or lamenting the sorrow of extinction―who hesitates. ● This hesitation. It now drops us a clue to understand his paintings in that it is an extension of his persistence with which he, in the early days of his career as a painter, focused on sign language, the "most pure language" in his mind, and identified its purity as non-language with his inner side. This is his piety and maybe at the same time, under the condition that it should not be interpreted in a fragmentary way, a spirit in line with Prajna of Buddhism, which refers to the perception and understanding of the truth as itself, that is to say, the wisdom "beyond act of discerning" (mubunbyeolji, 無分別智) distinctive from the independent consciousness acquired in the state of transcending the opposition between principal and subsidiary, which works in the domains of reason and intelligence, in other words, a knowledge that "discerns." ● This is the reason why his performance similar to that of an artisan, as to reach the level of that of handicraftsman, resonates with the concept of emptiness (空). He even suffered elbow joint infection (tennis elbow) due to a strenuous work of drawing fine lines to describe the veins of dandelion leaves. ● It is not because of the surrealist composition of the paintings (such as the unexpected appearance of a flower above the sea), but it is because of the fact that he was not encumbered with the doctrines of composition or form which had forced fined arts to be the exclusive property of sight. ● One day, devastated by the loss of a family member, he flopped down on a grassland, and that was the moment when a dandelion was pulled out underneath his sprawled hand and entered his mind. That dandelion, a evanescent life forming a wavy line around the tiny seed, with such a faint and feeble force…. Its beauty was not a universal or statistical one that a flower can have, but a kind of beauty that enwound his heart and came into his inner side. Van Gogh's Potato Eaters, for examples, was not completed only by observing an aspect of living and then exerting his dessin skills, and this may serve as a just protest against the fine arts as the exclusive property of sight. Choi decides to establish internal feelings, right on where he let go of composition and form: the context of life, layers of time, joys and sorrows of living, severity of birth, aging, sickness and death, are these all compose humans, create ideas and constitute senses? ● Let us consider all of these, which he feel, as "the invisible." He is convinced that the invisible are the solid foundation of the visible of this reality. It is a scene of world of order in which a crowd of disorder line up as musical notes do, (「Internal Feeling_A Crowd」), and a white ray that arrived from a distance which holds microscopic world and macroscopic world in a single canvas on the dim boundary between birth and extinction. (「Internal Feeling_Reincarnation」). This rather classical and anachronistic discussion is not, of course, a contemporary trend of the modern art, or a social or nominalistic topic, either. Then what is this non-temporal and non-distinctive vector? Surely, in consideration of his "mild" nature, it can be defined as a hesitation of an analog artist who cannot keep up with the overwhelming speed brought by the progress in modern technology, at which his contemporary society changes, or who simply does not want to; however it seems to be fairer, to estimate that it was rather a subject about his own idea of utopia, in which the passing of time is delayed or halted. ● This means that it needs to recall the reflection on invisibility in the sense that Paul Klee presented when he mentioned that lines were not the reproduction of the visible anymore but something that "makes visible" or "blueprints of birth of objects." Choi's work can be considered, ideologically, as being in line with the logic similar to Paul Klee's. That is to say, the objects painted in his canvases are intended to be the full embodiment of the memories in the objects, which arrives to the manifestation of the objectness in each. His 「internal feelings」 are dreaming of that involuntary memory. ● Here, involuntary memory, reminds us of In Search of Lost Time, Marcel Proust's lifework. The novel describes a journey of a human consciousness to discover its identity, following involuntary memory. Leaving aside the controversial issue about whether fine arts should follows the grammar of literature, the reason why Proust is discussed here lies in the similarity found in Choi's way of dealing with "memory." It is a subject and a form worth desire in itself. However, maybe partly due to the vast thickness of space and time, or to the fundamental limitation of the two different genres, there has been no precedent of any thing like achieving corporeity in fine arts. Yes, now a new task developed only due to Proust has been given to him: the achievement of "pictorial corporeity," maybe. The author sees it as an issue that presents a task about "images that do not leave shadows behind." It is an issue inherent in the abstractness itself, and an issue about how to overcome the lethargy of becoming an "abstract" and universal house due to the loss of the "address" that clarifies the administrative section. That is to say, it is an issue that may bring hustle and bustle of chaotic state, in a physical term, the vitality of "the moment when entropy reaches its peak" to the desolate place where the color of gunmetal which calms down the tone dominates. ● We are sniffing the same scent that another great master coming close to Proust, the poet Kim Yeong-rang, recited as "sad, sorrowful and silent." The painful scent of reality, to an extent that a sad sorrowful spring can be splendid. ■ Park Eung-ju

* 최항규 이메일_hgc4135@naver.com

Vol.20160629c | 최항규展 / CHOIHANGGYU / 崔恒圭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