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 Abyss:심연

이동기展 / LEEDONGI / 李東起 / drawing.sculpture   2016_0707 ▶︎ 2016_0813 / 일요일 휴관

이동기_고문 Torture_종이에 볼펜_17.5×20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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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기 홈페이지_atomaus.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2 Gallery2 서울 강남구 선릉로157길 33 Tel. +82.(0)2.3448.2112 www.gallery2.co.kr

이동기 작업의 근원이 되는 드로잉 작품들을 보여주는 전시가 『어비스(Abyss:심연)』라는 타이틀로 갤러리2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90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드로잉 280여점과 새롭게 시도한 조각 한 점이 선보인다. ●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이동기 작가를 설명하는 이 글에 '팝아트'와 '아토마우스'를 금지어로 하겠다. 이동기 작가를 서술할 때 저 두 단어는 그의 그림자처럼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처럼 명쾌하고 간결할 수가. 그러나 명쾌함과 간결함은 사유와 재발견의 가능성을 저 멀리 밀어낸다. 작품을 '본다'는 것은 명칭에 얽매이지 않고 그려진 대상을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관찰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것이 화가가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동기_어비스 Abyss:심연展_갤러리2_2016

이동기 작가의 드로잉은1990년대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제작된 것들이다. 전시를 염두에 두지 않고 그동안 모와 둔 자료들이다. 200여 점의 드로잉은 회화작업을 위한 밑그림에서부터 의도하지 않게 그려낸 낙서들도 모두 포함한다. 이동기 작가를 대표하는 캐릭터들과 패턴들의 반복적인 훈련과 유형화 과정이 흥미롭다. 익숙하고 친근한데, 어딘가 낯설고 생경하다. 그리고 거기까지가 우리가 예상하는 전시장의 풍경이다. 드로잉의 절반은 관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그것은 작품을 위한 구상이라기보다 무료한 시간을 메우기 위한 낙서에 가깝다. 맥락과 의미를 우리는 알 수 없다. 전화 통화 중에 그린 메모지 모퉁이의 형상들은 통화가 길고 지루해졌음을 알려줄 뿐이다. 이동기 작가는 드로잉에 있어 스케치용 종이에서부터 사무용 A4용지, 줄 쳐진 노트, 광고 전단지, 전시 리플렛까지 종이를 구별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리거나 전화를 받으며 메모를 적는데 어떤 종이든 무슨 상관인가

이동기_아토마우스_스테인리스 스틸_42×23×18.5cm_2016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이미지들은 순간적이고 거칠며, 언제나 미완결의 상태로 남아있다. 드로잉은 말실수처럼 튀어나온 작가 내면의 (무)의식을 고착시키는 행위다. 즉각적인 정착이다. 그래서 우리는 작가의 드로잉을 회화의 연장선으로만 귀결시켜서는 안된다. 이것은 드로잉이 가진 발상의 순수성과 즉각성을 배제시켜버리기 때문이다. 드로잉은 그저 회화에 '가장' 접근하거나 '덜' 접근한 하나의 상태임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그것은 완성된 하나의 작업이 아닌, 작품이 될 수 있는 잠재력만을 가진 '가능적 상태'일 뿐이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캐릭터의 유형화 과정을 규칙적으로 배치한 전시방식은 불완전하면서도 유연한 드로잉의 태도와 닮아 있다. 별도의 전시공간에는 반복적인 연마작업으로 공을 들여 제작한 아토마우스 흉상이 놓여 있다. 묵직한 질량감과 부피감, 서늘한 표면의 아토마우스 흉상은 거칠고 순간적으로 만들어진 드로잉들과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며 드로잉의 의미를 다시 한 번 환기시킨다

이동기_권총-사시아 Gun-Sasia_종이에 펜, 연필_21×29.7cm_2010

이동기 작가는 현대미술이 곧 '개념미술'로 일반화되는 현상을 우려한다. 개념적인 미술과 조형에 관한 탐구가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그의 말이 맞다. 인류의 역사 중에 개념이 없는 미술은 존재한 적이 없다.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명칭의 발견은 징후적이다. '개념미술'이라는 명칭의 발견으로 이론이나 철학이 예술적인 실천을 대체했고, 예술가의 표현력과 창조성보다는 태도를 우선시하게 했다. 그리고 미술이 개념 속에 있으며, 탈물질화되고, 회화와 같은 특정 매체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믿게 했다. 드로잉은 그것이 의식적이든 혹은 무의식적이든 호명된 이미지들에 형태를 만들고, 고착시키고, 정제하는 과정이다. 손으로 직접 쓴 글씨를 육필(肉筆)이라고 한다. 손뿐만 아니라 몸을 밀어 썼다는 것이다. 200여 장이 넘는 드로잉은 이동기 작가의 몸을 밀어 조형양식을 견고하게 만드는 직간접적인 훈련이었을 것이다. 의식의 내면을 끄집어 올려 반복적으로 이미지를 생성하고 검토하는 이동기 작가의 드로잉은 편향된 현대미술에 대한 그의 관점을 은유한다

이동기_어비스 Abyss:심연展_갤러리2_2016

19세기 예술비평가 존 러스킨(John Ruskin)의 책 『존 러스킨의 드로잉』은 "드로잉이란 사물에 대한 관찰과 사유의 밀도를 높이는 유용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책의 의미는 드로잉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드로잉을 통해 자신의 외부세계를 마주하는 인간의 자세 그리고 창조적인 노동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찰하는 데 있다. 20여 년간 축적된 드로잉의 조형적 의미를 해석하거나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드로잉이 주제를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무의식과 외부세계에 대한 이해도, 사물을 보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종합하고 정제하는 의식의 과정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드로잉을 내용이나 형태, 시기에 구분 없이 나열하는 전시방식은 드로잉 그 자체의 속성과 상통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본인 시야의 한계를 세상의 한계로 착각한다"는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말은 이 지점에서 인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이동기 작가를 어떻게 서술하고 정의했는가. '팝아트'와 '아토마우스'로 규정되었던 그의 작품은 작가의 한계인가. 우리들의 한계인가. 더 이상 명쾌하고 간결하지 않은 이동기 작가를 만날 준비가 되었는가. 명칭에 얽매이지 말고 그려진 대상을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관찰하라. 화가의 방식으로. ■ 갤러리2

이동기_어비스 Abyss:심연展_갤러리2_2016

Though it may sound ironic, I will forbid the use of the words 'Pop Art' and 'Atomouse' in this essay while talking about the artist Lee Dongi. When discussing Lee Dongi, those two terms always appear like the artist's shadow. How clear and simple it is. However, clarity and simplicity push far away the possibilities of thinking and rediscovery. 'Seeing' art is about observing a depicted subject without being confined to a name as if looking at something unfamiliar. Because that is how a painter looks at a subject. ● The drawings of Lee Dongi discussed in this essay were created from the 1990s to the late 2000s. These drawings have been collected without necessarily being considered to be put into an exhibition. The more than 200 pieces include sketches for painting and scribbles made without any intention. ● Lee's repetitive practice of drawing characters and patterns which are typical of his work, as well as the process of developing the characters into categories, are interesting. It seems familiar and friendly and simultaneously unfamiliar and strange. And this is what we expect from his exhibitions. Half of the drawings takes the audiences by surprise. They are more like scribbles to kill time than a composition for actual work. We do not know what they represent in what context. The shapes drawn in the corner of a memo pad only connote that his phone call was probably long and boring. Lee Dongi did not discriminate regarding the paper he drew on: from sketch paper, office A4, and ruled notebooks, to ad flyers and exhibition leaflets. The types of paper do not matter when drawing images that suddenly pop up in his head or taking down notes while on the phone. ● Images emerging from the subconscious are instant, rough, and always remain incomplete. Drawing is an act of solidifying the artist's (sub)consciousness that springs up, like the way a word slips out of your mouth. It is established instantaneously. Therefore, we should not conclude that the artist's drawing is an extension of his painting. Because doing so will exclude the purity of the idea and the spontaneity that drawing can offer. We should always consider that drawings are in a status of being 'more' or 'less' close to painting. It is not a complete work but the 'possible status' of it has the potential to become a work. Though seemingly indifferent, the way this exhibition regularly juxtaposes the process of categorizing the characters is imperfect yet akin to a fluid attitude of drawing. In a separate exhibition room is a bust of Atomouse that was carefully sculpted in a repetitive sculpting process. A sense of hefty volume and weight, and the coldish surface of the bust of Atomouse create a tight tension in confrontation with the rough and improvised drawings, arousing once again the meaning of drawing. ● Lee Dongi is concerned with how modern art is generalized into 'conceptual art.' The artist said he does not like the binary division between conceptual art and the formal exploration of art. What he said is right. Throughout the history of humanity, no art without a concept has ever existed. However, the discovery of a new term is always phenomenal. A theory or philosophy discovered under the name of 'conceptual art' replaced an artistic practice and prioritized the attitude of an artist rather than an artist's ability to express. And we have come to believe that art is within a concept, non-materialized, and not subordinated to a certain medium such as painting. Drawing, either consciously or not, is a process to give a form, to solidify, and to refine images that are called upon. We call letters written by hand body-writing (肉筆), implying the use of the body in addition to the hand. The drawing of more than 200 pieces may have been a direct/indirect exercise to concretely structure a formative style using the artist's body. Lee Dongi's drawings, which generate and review images in a repetition by visiting the deep recesses of the artist's mind, allude to his view on modern art grounded in a prejudice. ● The Elements of Drawing by John Ruskin, a 19th century art critic, described drawing as "a useful tool to deepen the depth of thinking and observation about an object." The significance of the book lies not in teaching drawing skills, but in contemplating how humanity confronts the outside world and the essence of creative labor through drawing. It is impossible to state or interpret the formative significance of the drawings which have been collected for more than 20 years, because the drawings only convey the artist's subconscious understanding of the outside world, a way of seeing things, and the process of integrating and refining all this, instead of presenting the theme of the drawings. The way in which the exhibition displays the drawings, indifferent to content, form, and period, is well aligned with the very elements of drawing. The quote from Arthur Schopenhauer, "Every person takes the limits of their own field of vision for the limits of the world," should be quoted in this context. How have we described and defined Lee Dongi so far? Are these definitions of his work 'Pop Art' and 'Atomouse' the limits of the artist or our own? Are we ready to meet Lee Dongi as an artist whose work is no longer clear nor simple? Observe depicted objects from a view liberated from notions/terms as if seeing something unfamiliar — in the way a painter does. ■ Gallery2

Vol.20160707k | 이동기展 / LEEDONGI / 李東起 / drawing.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