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현실부정의 미(美)

이승현展 / LEESEUNGHYUN / 李承鉉 / painting   2016_0802 ▶︎ 2016_0904

이승현_생존의 풍경_캔버스에 유채_80×116cm_201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40326a | 이승현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9:00am~07:00pm

경기문화재단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로 178(인계동 1116-1번지) 1층 로비갤러리 Tel. +82.31.231.7233 www.ggcf.or.kr

아직도 답을 낼 수 없는, 게다가 이제 진부해지기까지 한 질문으로 이 글을 시작하려 한다. 왜 그림인가? 불과 지난 세기 초까지만 해도 그림은 시각이미지를 재현하고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매체이자 미적 상상을 투영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사진기의 발명과 인쇄기술의 발전이 이미지 생산을 가속하던 때가 있었다. 그에 뒤이은 대중매체의 보급은 지구 한 켠에서 생산된 이미지가 급속히 지구 반대편으로 퍼져나갈 수 있게 했다. 게다가 최근의 디지털미디어는 모든 사람에게 손쉽게 이미지를 생산하는 역능을 주었다. 불과 100여 년의 흐름에 밀려, 태초부터 인간의 일이었던 그림은 이미지의 복제와 생산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잃어버렸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회화의 시대가 끝났다는 진단이 끊임없이 나온 것은 어쩔 수 없는 필연이다. 지금은 누구든지 눈에 보이는 풍경을 터치 한 번에 박제할 수 있으며 클릭 몇 번에 조작하거나 합성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를 간단히 복제하는 시대다. 더구나 포켓몬의 모습을 한 증강현실 이미지가 우리의 실제 삶 속으로 틈입해 오는 시대에, 왜 아직도 그림인가? ● 하지만 끝나지 않은 종언의 시간 속에서, 그림은 여전히 시각예술의 중요한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 대량생산되는 여타 시각이미지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많은 화가들이(어쩌면 역사상 최후의 화가들이) 남아 있으며, 보행 중에도 실시간 영상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 첨단기술에도 불구하고 매 주마다 새로운 전시가 열린다. 지금도 그림은 살아있다. 단지 위상이 변하고 역할이 변했을 뿐이다. 그림의 존재와 그림 그리는 행위의 의미가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나 어떻게? ● 하나는 장식품으로 기능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류(類)의 그림이다. 이런 류는 시장에서 거래되고 매매되는 데에 목적을 두며, 날마다 변하는 양식(樣式)의 유행을 붙잡는 일에 급급하다. 다만 무슨무슨 화풍이니 실험이니 하는 겉포장을 벗기어내면 그 안에는 최신의(그러나 곧 구닥다리가 될 운명의) 고급 장식품이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억척스럽게도 여전히 그리는 행위의 무게를 주장하는 류의 그림이다. 과거의 그림이 눈에 보이는 대상을 화폭에 재현하는 그림이었다면, 지금 남아있는 그림은 '화폭에 재현된 그림'을 재현한다는 것이다. 즉, 이런 류의 그림은 대상이나 주제, 목적의식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 그 자체를 그린다. 화가의 붓질은 하나의 정직한 노동이자 예술 그 자체요, 예술적 사건은 그 붓질이 화폭에 펼쳐지는 순간에 일어난다. 그러나 더이상 아무 것도 나타내지 않는 그림의 등장이야말로 더이상 그림의 존재가치가 남아있지 않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이런 류의 그림은 새로운 예술의 지평을 열지 않는다. 그 화가를 통해 연결된, 소수의 미적 감수성을 공유하는 엘리트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식별하는 자폐적 코드로 기능할 뿐이다. ● 그런데 한편으로는 오늘날까지 그리는 행위를 계속하면서도, 이 양쪽 모두에 속하지 않는 그림을 그려내는 화가들이 있다. 각자의 이미지 표현과 전달방식이 상이하기에 하나로 묶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유형의 화가들은 한가지 결정적 측면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그들은 그림이 여전히 예술이기 때문에 그리는 행위를 계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예술가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서, 자기 서사를 반영하는 그림을 그린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이승현이다.

이승현_갇힌풍경_캔버스에 유채_181×227cm_2015
이승현_녹색풍경_캔버스에 유채_130×193cm_2015
이승현_붉은 풍경_캔버스에 유채_130×193cm_2014
이승현_삶의 풍경_캔버스에 유채_130×193cm_2015

유신의 군홧발이 사람들의 머리 위를 내리누르던 시대에, 화가 이승현은 가난한 염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나무판을 접붙여 지은 그의 집은 바다와 소금밭의 한가운데 있었다고 한다. 그 자신도 부친을 따라 찝찔한 내음이 해안선까지 펼쳐진 소금밭에서 일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볕이 좋은 날에는 하늘의 풍경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풍경은 태양의 고도에 따라 눈부신 푸른 빛이 되었다가, 섬세한 자줏빛이 되었다가, 마침내 핏빛으로 물들어 저물었다. 어린 시절의 그는 종종 그 거대하고 황량한 풍경 안에 홀로 서있곤 했다. ● 온 가족이 수도권 외곽으로 이주한 뒤에도 노동의 시간은 계속됐다. 주방 설거지 담당을 하다가 세차장이나 주유소의 직원, 신용카드 배송원을 거쳐 건설 인부, 자동차 하청생산공장의 노동자로 사는 동안 그는 말하지 않고 고즈넉이 미소만 짓는 삶을 터득했다. 그는 습관처럼 매일 스스로 손빨래를 해왔다. 버스를 타는 대신 술기운을 빌어 먼 거리를 걸어 다녔다. 20여 년을 거의 매일같이 그렇게 했다. 그것이 세상에 대응하는 그의 방식이었다. 도시문명 안에 살면서도, 그 문명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던져진 채로, 나름의 규율로써 스스로를 통제해온 것이다.

이승현_금지된 풍경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4
이승현_회색풍경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4
이승현_빨래_캔버스에 유채_112×162cm_2016

이런 삶의 누적이 이승현 그림의 특징을 드러나게 한다는 사실을 언급해야겠다. 그의 그림들은 한결같이 그 자신의 자기상이 투사되어 있다. 그것은 빈곤하고 소외되어 있지만 아무런 계급성이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의 자기상이다. 예컨대 「개미의 죽음」이나 「생존의 풍경」과 같은 작품을 보자. 화면 어딘가에 벌레의 시체만 덜렁 있거나, 그 벌레의 시체를 뜯어먹는 다른 벌레들이 있을 뿐이다. 화면 바깥에 다른 어떤 풍경이 있었으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풍경은 사라져있다. 정확히는 켜켜이 쌓고 문지른 물감에 의해 가려진 것이다. 비늘처럼 징그럽게 늘어선 어둡고 짙푸른 색의('서슬 퍼렇다'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겠다) 패턴은 현실에 있었던 풍경을 적극적으로 지워버리고 덩그러니 벌레 시체만을 남긴다. 그렇다고 그 대상을 뚜렷하게 관찰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벌레의 시체가 있다, 하는 단순한 설명만을 제공할 뿐 무엇을 어떻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 자체가 없다. ● 이와 같이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리고 그림 속의 줄거리를 제거해버리는 일은 다른 화면 속에서도 반복된다. 그림이 묘사하는 대상이 비교적 세밀하게 나타난 「갇힌 풍경」에서도 그렇다. 울 안에 갇힌 개들이 있다는 사실 외의 다른 부분은 음울하게 포개어진 색으로 가려버리는 것이다. 판매대에 놓인 생선들과 이따금 몸통이 잘린 생선 토막이 있는 「삶의 풍경」 또한 마찬가지다. 어느 시장 어귀에서 보았을 법한 이 장면에서는 마땅히 판매대 뒤에 있어야 할 생선장수의 모습이나 그 주변의 다른 모습들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 지워버린 것이다. 「빨래」 연작은 지워버림의 태도가 더욱 분명하고도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빨랫줄에 매인 옷가지나 축 쳐진 강아지 인형 따위를 제외한 나머지 풍경을 어둡고 음침하게 덮어버린다. 이처럼 이승현은 화가의 감정이 이입되는 대상을 제외한 어떠한 것도 그리기를 거부한다. 이와 같은 그림 방식은 2년 전 관훈갤러리에서 열린 데뷔 전시 때부터 싹을 보였다. 단색조로 다소 서툴고 우스꽝스럽게 묘사된 옛 기억들에서 군상(群像)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지워버렸던 것이다. ● 다른 한편으로는 주제가 될 만한 대상이나 사건을 지워버리고 비교적 다양한 색채로 풍경만을 남기는 경우도 있다. 이번 전시 출품작 가운데 「녹색 풍경」이나 「붉은 풍경」, 「회색 풍경」 등이 그러하다. 이승현은 모두 가난한 삶의 현장만을 풍경으로 남기는데, 이런 그림들은 매오로시 텅 빈 공간만 있을 뿐 사람이 없거나(귀갓길의 야간버스임에 틀림없는 「붉은 풍경」에는 운전자마저 없는 듯 보인다), 있더라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남자 한 사람만이 빈 공간의 일부로서 남아있을 따름이다. 이런 풍경화들은 작품의 완성도나 미적 측면과는 별개로, 화가 개인의 개성이 도드라지지는 않는다. 단지 감정상태만을 엿볼 수 있다. 그 공간에 꼭 있어야 할, 또는 있을 법한, 주요 대상은 사라지고 없다. 화가 자신의 적막한 응시(凝視)의 시선만이 있는 것이다.

이승현_우울한 풍경_캔버스에 유채_112×145cm_2016
이승현_새 떼_캔버스에 유채_140×140cm_2016

그런데 이러한 감정의 반영이나 먼 발치에서 바라만보는 화가의 시선이 일반적인 관조(觀照)적 관념주의와 다르다는 점은 분명하다. 관조란 외부세계에 화가의 감정을 개입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의 세계가 아닌 자신의 눈에 비친 미적 세계를 표현한다. 그 세계가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었든 그렇지 않으면 완전한 추상으로 나아가든 어쨌거나 무엇인가를 그려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승현은 화면 안에 단 하나의 동일시 대상만을 남기거나 또는 빈 공간만을 남긴 채 아무 것도 표현하지 않으려 한다. 세계를 관념적이든 어떤 식으로든 그려내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거절이 일반적인 리얼리즘과 다르다는 점은 더욱 명확하다. 여기서 리얼리즘이란 단지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기법이 아니라 현실의 세계를 화폭에 반영하여 담대하게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승현은 세계에 참여하기는커녕 도리어 현실을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 그는 거부와 부정의 화가다. 미물의 죽음이나 자질구레한 삶의 언저리만을 화폭에 남긴다. 그 외의 다른 것들은 그보다 더 무의미한 것이렷다. 그가 지워버린 어두운 공백들은 무가치한 현실세계에 대한 소외된 개인의 강렬한 보복이라고 평할 수도 있겠다. 이전 세대의 리얼리즘 화가들이 가난하고 소박한 삶을 표현함으로써 저마다의 계급성을 표현하고자 하였다면 이승현은 빈곤계급 내지는 노동계급으로부터도 이탈한, 장외인간(場外人間)으로서의 자기상을 내보인다. 머리털이 벗겨지는 나이에 그림을 시작한 그는 실제로도 어떠한 유파나 풍조에도, 아무런 그룹에도 속하지 않은 채 화단에서 철저한 이방인의 위치에 있다. 이제 데뷔 3년 차인 그의 작업은 벌써 특정한 형태의 꽃을 피웠다기보다는, 아직 피지 아니한 어린 꽃망울에 가깝다. 그러나 나홀로 싹을 틔운 것처럼 그는 곧이어 혼자서도 꽃을 피울 것이다. 이번 전시는 꽃이 피기 직전의 과정이라 보면 되겠다. ■ 손이상

Vol.20160802c | 이승현展 / LEESEUNGHYUN / 李承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