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범진용_백승섭_서재현_손승범_신준식_윤대희展   2016_0803 ▶ 2016_0903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6_0803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01:00pm~09: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듬 인천시 남구 주안동 1342-36번지 Tel. +82.32.259.1311 cafe.naver.com/daggdum

소수 : 少數 적은 수효 : prime number(1,3,5,7,11,13,17,19,.....) : decimal(0보다 크고 1보다 작은 수) : mmm(?) 少數 ● 은하(eunha)는 현재 인천을 연고로 활동하는 젊은 작가 그룹이다. 개인 작업과 더불어 그룹의 전시 기획 및 커뮤니티 소통의 다양한 접근을 모색하고 있다. 대안공간 듬은 비영리 전시공간으로 진보적 실험과 도전, 진정성의 발굴을 통해 중심과 지역으로 인식되어온 오늘날의 미술현장을 함께 아우르는 문화공간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설 수 있는 무대를 원하고 주변에서 흔할 법한 동네에 이 낯선 공간은 소통을 원한다. 맨 얼굴로 작가의 화장을 기다리는 듯 말이다. 6명으로 구성된 은하와 7평의 화려함보단 소박한 공간, 이 작은 둘은 소수(少數)의 모습으로 닮아있다.

범진용_Beyond the Lights_캔버스에 유채_1000×800mmm_2015
범진용_Beyond the Lights_캔버스에 유채_1000×800mmm_2015
범진용_Beyond the Lights_캔버스에 유채_1000×800mmm_2015
백승섭_꿈_한지에 콘테, 연필_1300×800mmm_2016
백승섭_밤_한지에 콘테, 연필, 먹_1000×720mmm_2016
백승섭_밤의풍경_한지에 콘테, 연필_800×1300mmm_2016

작가의 소수(prime number) ● Prime number는 1과 자신만으로 나누어떨어지는 1보다 큰 양의 수(1,3,5,7,11,13,17,19,.....)를 의미한다. 즉 prime number에서 1은 절대적 기준이 된다. 1을 작가가 가지는 고유한 시선이라 정의해보자. 작가는 각자의 1을 통해 개인의 색을 가지고 있다. 또한 1은 작가가 바라보는 대상을 자신의 색으로 가두는 결과물(작품)을 유도한다. 이 결과물이 공간(갤러리)에 옮겨지고 대중에게 대면되었을 때 작가의 1은 대중의 기호에 따라 다양한 (1,3,5,7,11,13,17,19,.......) 접근으로 풀이된다.

서재현_전리품_디지털 프린트에 혼합재료_1000×810mmm_2016
서재현_전리품_디지털 프린트에 혼합재료_1000×810mmm_2016
서재현_전리품_디지털 프린트에 혼합재료_1000×810mmm_2016
손승범_수호신(A patron saint)_장지에 채색_1300×1300mmm_2016
손승범_교정하는 비너스(Venus Orthodontic)_장지에 채색_930×750mmm_2016
손승범_잃어버린 자유(Lost freedom)_장지에 채색_740×620mmm_2016

공간에 의한 소수(decimal, mmm) ● 대안공간 듬은 7평의 공간이다. 실질적으로 여러 작가의 작품들이 그대로 설치되기엔 제한이 있다. 일반적으로 작품은 공간(갤러리)에서 본연의 모습이 공개되며 이미지(사진촬영)로 소통이 확장되어진다. 이 과정이 역으로 공간에 반영된다면 어떨까. 5명의 작가는 일정한 영역(13×13cm) 안에서 자신의 작품을 재해석한다. 원본 작품이 축소되며 제한된 영역에서 작품이 새롭게 구상되어진다. 일정한 영역(13×13cm)은 작가에겐 불편한 영역이다. 대중에게도 편한 영역이 아니다. 이 선택은 작품과 공간의 공존에 대해 접근하는 은하의 태도이다. 공간이 배경이란 평면영역에서 작가의 작품에 개입되어 전시라는 하나의 덩어리로 융합되는 접근을 시도한다. 또한 대중에겐 작품과 보다 더 가까운 몰입을 유도한다.

윤대희_자라난다_종이에 연필_1000×800mmm_2015
윤대희_자라난다_종이에 연필_1000×800mmm_2015
윤대희_자라난다_종이에 연필_1000×800mmm_2015

앞에서 언급한 1은 작가의 자유로운 영역에서 무한의 원동력을 제시할 수 있지만 현실적 벽은 무겁고 단단하다. 이에 대한 모든 것은 오로지 작가의 몫이자 책임이다. 인정을 받아야 하는 현 미술시장에서 자신의 순수성을 드러낼 수 있는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다수의 인생 또한 행복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예술을 선택한 소수의 인생도 그만한 행복과 아름다움이 공존한다는 것은 부정될 수 없다. ■ 소수

Vol.20160803f | 소수展

Gwangju Bienna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