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One day)

김형곤展 / KIMHYEONGGON / 金瀅坤 / painting   2016_0803 ▶︎ 2016_0815

김형곤_복숭아 꽃-II (Peach blossom-II)_패널에 유채_9×24.5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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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요일_12:00pm~05:00pm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2(안국동 7-1번지) Tel. +82.2.738.2745 www.gallerydam.com cafe.daum.net/gallerydam

전통 고전주의 회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정교하고 그려진 내용도 정물과 풍경을 중심으로 하는 구상작업이 주로 선보인다. 김형곤작가는 박수근과도 같은 강원도 양구 출신 작가이다. 작가는 양구 주변의 과수원에서 본 복숭아, 사과 등을 그리면서 봄에 피어나는 꽃에서부터 그 과실수가 맺는 열매까지를 함께 스케치하면서 이것을 캔버스에 옮겼다. 시작과 결과를 함께 표현하고자 꽃과 열매를 한 공간 안에서 함께 그리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미국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였기에 동양화의 여백을 잘 살린 서양화의 느낌을 갖게 한다. 일례로 「빛과 어둠의 표현기법에 대한 경의」는 빛에 의한 회화적 가치를 되묻는 구성요소이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빛과 어둠의 표현기법에 대한 경의」는 "사실적인 빛의 회화들에 심취했던 시절, 인상주의 시대를 살아가며 고전주의 화풍을 고집했던 부게로(윌리엄 아돌프 부게로)의 작품들에 대한 존경(Hommage)을 담아 모사했던 대상"이면서 "오래된 것에 대한 익숙하고 변함없는 정겨움과 오래된 것에 대한 동경 및 연민이 현재와 미래에서 영원히 반복될 것임을 믿는 작가 의지"를 상징한다. 이번 전시에는 꽃과 정물을 비롯한 신작 12여점이 선보일 예정이다. ■ 갤러리 담

김형곤_어떤 날(One day)展_갤러리 담_2016

오늘, /파란 하늘, 그 모습이 아름답다. //수줍은 모습으로 바라본다. /가지런한 모습이 바라보는 소박한 눈짓이 된다. //스치우는 바람에 묻는다. /마주하는 생각만으로 어제의 이야기를 묻는다. /... //초저녁을 마주한다. //소쩍새 울음소리가, /녹음(綠陰)속에 묻혀 더욱 짙게 들려온다. //햇살은 고개를 기울인다. /나무 그림자, 길게 늘어지다가 감춰졌다. //오늘, 잊혀지지 않는 소박함이 된다. ● 오늘의 모습은 다양하게 보여진다. 오늘을 마주하는 동안 무엇을 보았고, 기억을 하는지?를 묻는다. 오늘이 주는 달콤함과 같은 모습으로 시간의 모습들을 이야기한다.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한 모체(母體)로서, 열매는 길고도 짧은 기다림의 의미'이다. 순간적인 모습들은 감정적 표현을 하고자 하는 이유이지만, 의인적 표현으로서 '너와 나'라는 명제가 붙여질 수 도 있을 것이다. ■ 김형곤

김형곤_어떤 날(One day)展_갤러리 담_2016

작가 김형곤 작업에 드리운 빛에 담긴 지각으로서의 색과 형에 대한 소론-빛, 색을 짓고 형을 만들다 ● 스푸마토(sfumato)와 테네브리즘(Tenebrism)은 르네상스 이후 회화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명암법(키아로스쿠로: chiaroscuro, 빛과 어둠을 뜻하는 이탈리아어)이다. 이 중 '연기와 같은'을 가리키는 '스푸마토'는 이탈리아어 '스푸마레(sfumare)'를 어원으로, 회화에 있어 물체의 윤곽선을 자연스럽게 그려 흡사 먹물 스며들 듯 어떤 대상이 배경에 포박되도록 하는 대기원근법이다. 미술사상 보기 드문 천재로 일컫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의해 도입되었다. ● '어둠'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테네브라(tenebra)를 어원으로 한 '테네브리즘'은 빛을 읽는 방식이자 연출방식을 회화에 적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 카라바조 작품의 영향을 받은 화파인 '테네브로시(tenebrosi)'를 지정하는 용어이기도 한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카라치파의 정신을 잇는 귀도레니를 비롯해 바로크시대를 대표하는 벨라스케스, 피터 폴 루벤스 등이 이 화파의 작가들로 꼽힌다. 이들의 작품은 하나같이 격렬한 명암대조에 의한 극적인 표현이 특색이다. (렘브란트 역시 이 영향 하에 두며, 보다 가깝게는 베르메르와 신고전주의자들인 다비드, 앵그르, 부게로까지 연관성을 지닌다.) 기실 이 두 가지 명암법은 서양회화를 이전과 완전히 다른 차이로 이끄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전 중세시대의 경직되고 건조한 회화 표현방식을 진일보토록 했으며,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의 평면에 가장 효과적으로 재현 및 이입시킬 수 있는 최적의 기법으로 평가받았다. 그야말로 새로운 회화세계를 개척한 혁명적인 방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형곤_목련(木蓮) a white Magnolia_캔버스에 유채_18×41.5×2cm_2016

흥미롭게도 작가 김형곤의 작업엔 위와 같은 두 가지 기법이 절묘하게 녹아 있다. 배경과 사물의 경계 없는 조화, 빛과 어둠을 기반으로 한 음영의 운율 및 사실적인 처리는 오랜 시간 학습된 철저한 회화적 가능성이 특유의 리얼한 언어들과 조우한 채 분포되어 있음을 증명한다. 실제로도 그의 누드 인물 시리즈를 비롯한 풍경화, 정물화를 보면 매우 꼼꼼하고 모범적이며 엄정한 화풍이 균질하게 나열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깊은 어둠 속으로 스르르 빨려 들어가는 사물(형상), 상하좌우 대칭 아래 정돈된 질서, 광선의 강약에 따른 극명한 효과, 빛과 색의 진폭에 의한 감정의 유동 등이 바로 위 두 기법에 의한 효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김형곤 작업의 특징으로 봐도 무방하다. ● 그러나 무엇보다 김형곤의 그림에선 고풍스럽거나 혹은 클래식한 분위기가 남다르다는 점이다. 이는 탁월한 '빛'의 운용성 탓이 크다. 빛이 쪼개져 색을 낳고 그 색이 균형을 유지하여 에너지를 갖는 형국이다. 색상, 명도, 채도 아래 구현되는 입체감, 규범적인 리얼리즘이 지닌 시지각적 한계성의 배제, 감각을 담보하는 매력적인 결과물로 치환될 수 있는 것도 결국 빛의 영향으로 봐도 무리는 없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색과 형에 대한 지각은 빛에 의해 생성되고, 빛이 없으면 색도 명암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여기에 작가의 빼어난 소묘력과 날카로운 관찰력은 예술적 묘사의 고고학적 정확성과 합리주의적 미학의 소환을 불러온다. 특히 규율의 미학이 엄격한 질서미는 시각적 인식력을 충만하게 창조할 뿐만 아니라, 망막에 대한 항거를 유보시킨 우리네 실존을 확인할 수 있는 지평으로까지 나아가도록 만든다. 그리고 작가는 이를 「빛과 어둠의 표현기법에 대한 경의(Hommage to Chiaroscuro)」, 「색동저고리(Korean Traditional Dress)」, 「일상의 풍경(Impressive Scenery of an Ordinary day)」 등의 회화적 알고리즘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동시대 언어의 일부로 상정해 놓고 있다.

김형곤_복숭아 꽃 V (Peach blossom V)_캔버스에 유채_15×30.5cm_2016

일례로 「빛과 어둠의 표현기법에 대한 경의」는 빛에 의한 회화적 가치를 되묻는 구성요소이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빛과 어둠의 표현기법에 대한 경의」는 "사실적인 빛의 회화들에 심취했던 시절, 인상주의 시대를 살아가며 고전주의 화풍을 고집했던 부게로(윌리엄 아돌프 부게로)의 작품들에 대한 존경(Hommage)을 담아 모사했던 대상"이면서 "오래된 것에 대한 익숙하고 변함없는 정겨움과 오래된 것에 대한 동경 및 연민이 현재와 미래에서 영원히 반복될 것임을 믿는 작가 의지"를 상징한다. ● 그러나 이와 같은 부언은 그의 회화 기원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오늘날 그의 작품에 드리운 빛과 어둠의 명료성이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게 사실이다. 즉, 김형곤 작업의 원류가 '빛'으로부터 시작해 '부게로' 식의 따뜻한 인간미를 더한 시각예술임을 증거 한다는 것이다. ● 인물과 정물, 풍경 등 다양한 소재를 '빛과 어둠의 표현기법'(Chiaroscuro)에 의한 고전 화풍으로 그려내고 있는 김형곤에게 있어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인물이 등장하는 그림인 「색동저고리」는 빛과 색의 조응을 우리 전통복식에 접목한 경우이다. 일반적으론 한국적 특색의 일부로서의 의복문화나 전통적인 여성성을 상징하는 기표로써 이해되지만 작가에게 있어 '한복'은 "여인의 선을 중요시하며 빛에 의한 색의 충만함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로 귀착된다. ● 그러나 다소 냉정히 말해 「색동저고리」 연작에서 '여인의 선'을 엿보는 건 쉽지 않다. 색동저고리는 일명 까치저고리라고도 하는데, 주로 돌맞이 아기에서부터 14세 정도의 아이들에게 입히던 의복이었다는 점에서 '여인의 선'과는 거리가 있고, 굳이 '여인의 선'을 말하자면 그의 누드 시리즈가 훨씬 근접한 표상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주의적인 화풍의 연계에서 미학적 실험의 무대를 개간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여느 작품처럼 공히 빛과 어둠은 존재하지만 빛과 어둠의 균등을 통한 사물의 구현이 아니라, 빛을 이용해 빛의 특성을 강조하고 빛에 의해 빚어진 색의 조율을 따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양의 미적 에토스에서 탈피해 동양적 종교성과 민간신앙 이론을 조합한 철학 체계를 구축하려는 작가의 도전의식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은 '색동저고리'라는 명사의 가치를 합당하도록 꾸민다. ● 통념을 넘어선 고찰은 구체적 실천을 이행시키기 마련이다. 시간에의 의탁은 보이지 않던 틈을 보게 하고 그 틈에서 새로운 공간과 시간을 직조하며 흔적을 남기곤 한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김형곤의 「일상의 풍경(Impressive Scenery of an Ordinary day)」에서도 확인된다. ● 작가에 의하면 「일상의 풍경」은 "매일 산책을 하며 바라 본 주변의 사물들과 미술관(그가 현재 레지던시로 참여하고 있는 박수근미술관)에서 자리하고 있는 나무들을 표현함에 있어, 그 '빛의 깊이'를 담아내는 것."에 방점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풍경화에는 그가 밝힌 내적 지향(언어적 지향 또는 실질적 기표로서의 지향, 혹은 두 가지 모두의 지향)처럼 "빛과 선, 공간이 들어서 있고 양감과 색감"이 하나의 화면에 투영되어 있다. ● 디테일은 약간씩 다르지만 이를 역대 작가들에 대입하자면 흡사 콩스탕 트루아용이나 알렉상드르 뒤부르의 일상적 풍경이 읽힌다. 어떤 경우엔 감미로운 색채감각이 돋보이는 로베르 팽숑의 풍경을 연상케 하며, 펠릭스 발로통, 알렉상드르 티올레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과도 일견 맞닿는 부분이 있다. 바로 색의 발현과 빛의 깊이를 일상에서, 자연에서 예술적 미의식으로 풀어내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풍경이든 정물이든, 혹은 인물이든 그의 회화에 있어 가장 유의미한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지난 시간 동안 찾아온 회화성에 대한 탐구, 그 고집스런 행보이다.

김형곤_이화(梨花) Pear blossoms-I_캔버스에 유채_41×24.5×2cm_2016
김형곤_이화(梨花) Pear blossoms-II_캔버스에 유채_35×90×3cm_2016

그가 삶과 시각언어의 매개로 사용해온 회화 방법론은 사실 거스를 수 없는 원초적인 내부의 표상, 실존의 기호를 담는 그릇이었으며, 작가 자신의 존재성에 관한 질료와 갈음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존재성은 예술가로써의 길, 그 여정에서 올곧이 피어난다. 600년 역사에서 회화를 회화답게 하는 두 축인 견고한 프레임인 빛과 색을 논하는 것도 본질적으론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에 대한 끝없는 자문과 갈음되며, "나의 예술은 성찰(省察)과 표현의 한 형태"라는 발언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예술은 상상의 결과가 아닌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한 현실 자각적 분동(分銅)이자 미의식의 궁극인 감동을 향한 길고 긴 여정을 담보한다. ● 그런 까닭에 오늘날 그의 회화는 화면에 가득한 어떤 형상과 그 의미에 대한 물리적 결과인 유(有)와 호흡하는 공(空)이 녹아 있고, 이는 실제 그가 추구하는 방향성과도 일치한다. 즉, 철학적 시각에서 볼 때 그의 그림은 한편 공(空)이요, 공(空)은 결국 나를 비롯한 모든 것에 대한 비움의 드러남이자 채움의 여백(餘白: 비움의 '무한함'과 비워짐으로 인한 '충만함')이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간략히 말하면 공은 빛이고, 빛은 시각에 잡히지 않으나 존재함(有)을 의미하며, 그 존재성은 색과 형으로 대체되는 것과 같다. ● 김형곤은 인물을 그리든 자연을 배어내든, 그에게 있어 그림은 삶의 목적이자 방식이 다. 어쩌면 자연과의 호흡이요, 내계와 외계, 표상과 실제, 내외 혼연일체의 투영이다. 이는 곧 삶이라는 여로의 단락이자 운율(韻律)이며 삶의 고저에 의한 정신의 분출이다. 하지만 김형곤의 작업이 가리키는 또 다른 지점은 인간과 세계(자연)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실재적 가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를 깊이 분석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적 표현 세계를 현대적 감각으로 확립해 나가는 것에 있다. 그렇기에 우린 그의 그림에서 고집스러움과 변화에 대한 걸음이 동시에 교차하는 것을, 또한 그 속에서 현재가 아닌 내일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예술을 통해 존재형식에 대한 내적 문제를 언급하며, 예술 활동으로 존재 의미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이어가고, 자기 발전적인 가능성을 선택하기 위한 적절한 선택으로 실존은 항상 세계내 존재임을 밝힌다는 것이다. ● 위와 같은 해석을 전제로 할 때 김형곤의 예술은 결국 표피적인 이미지, 드러난 이미지, 눈에 맺힌 이미지와는 달리 그 내부엔 현존재(Dasein)라 불리는 인간의 본질을 말하고, 나로부터 시작된 존재성에 대해 탐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술 활동을 하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그 연장과 다름 아니다. 그 스스로 표현했듯 "생의 원천인 자연을 모태(母胎)로, 인간 본연의 삶의 모습"에 접근하고, 여기서 자연은 그저 "나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에너지"와 같은 셈이다. 그리고 이는 역설적이게도 예술의 신성을 공유함으로써 진정한 자기를 상실(loss of self-identity)하게 됨을 드러낸다. 이러니 외현의 세계에 집중한 듯 보이는 그림에서 외현이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읽는 건 쉽지 않으나 유의미한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 홍경한

Vol.20160803g | 김형곤展 / KIMHYEONGGON / 金瀅坤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