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G : 맛의 정치학

유비호_윤현선_정정엽_최성임_한승구展   2016_0805 ▶︎ 2016_0821 / 8월15일 휴관

초대일시 / 2016_0805_금요일_06:00pm

후원 / 서울시_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_문화집단기호_예술공작소 시주라 기획 / 프로젝트 아메바

관람시간 / 10:00am~06:00pm / 8월15일 휴관

서울문화재단 서울시창작공간 금천예술공장 PS333 SEOUL ART SPACE_GEUMCHEON 서울 금천구 범안로15길 57(독산동 333-7번지) 3층 Tel. +82.2.807.4800 blog.naver.com/sas_g geumcheon.blogspot.com

Taste란 단어는 '맛', '맛보는 능력', '좋은 맛' 등 미각(味覺)과 관련된 의미뿐만 아니라 미학에서 말하는 각자의 기호와 선호를 뜻하는 '취미(趣味)', 미(美)의 판정능력을 뜻하기도 한다. 일찍이 칸트는 공통감에 근거한 보편타당한 취미 판단을 이야기했지만, 욕망의 분화가 기하급수적으로 나타나는 다원화 사회에서 보편적 취미란 수긍되기 힘들다. 오히려 이 시대의 취미는 미결정 상태로, 자유롭게 영역을 넘나들며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 하는 가변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 지점에서 『MSG: 맛의 정치학』展은 MSG라는 인공감미료를 알레고리로 사용하여 미학과 정치학을 연결시킨다.

한승구_Mirror Mask_랜티큘러_60×100cm_2012
한승구_MSG-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_혼합매체_가변설치_2016
최성임_겉 Exterior_MSG, 폴리카보네이트, 목재, 아크릴_가변설치_2016
최성임_안 Interior_아크릴, 철제, LED조명, 벽에 드로잉_가변설치_2016

MSG (Monosodium Glutamate) : 글루타민산나트륨 ● 기존의 단맛, 쓴맛, 신맛, 짠맛과 전혀 다른 감칠맛이 발견된 것은 100년 전이다. 원래 MSG는 천연재료인 사탕수수에서 추출, 정제, 농축한 것이지만, 중국에서 웨이징, 일본에서 아지모토, 한국에서 미원이라는 상품으로 대량생산되면서, 인공화학조미료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MSG의 위해성 여부는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입증된 적이 없다. ● 한승구의 「Mirror Mask : Gas mask version」과 「MSG-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는 이러한 MSG의 이중성을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이들에게 MSG는 가스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피하고 싶은 대상이지만,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의 MSG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외관을 투사하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거대한 조각 위로 흘러가는 프로젝션 맵핑 장면은 우리를 광활한 우주 속으로 인도한다. 한승구의 MSG가 거대하게 확대된 눈(雪) 결정체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최성임의 MSG가루는 슬레이트 지붕에 소담하게 내려앉은 눈(雪)의 형상을 하고 있다. 기둥과 지붕만으로 이루어진 집은 집(住)의 본래의 기능, 즉 비바람과 같은 외부의 위험요소로부터 보호하고, 타인의 시선을 피해 잠잘 곳을 마련해주는 기능을 상실했다. 대신 이 집은 먹는(食) 행위를 은유한다. 광야에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양식인 만나에 의존했던 것처럼, 안과 밖이 하나가 된 이 집에서는 하늘에서 흘러내려오는 하얀 가루로 하루하루 삶을 영위한다.

윤현선_Cereal 01_디지털 C 프린트_80×120cm_2015
윤현선_Coldblood-01_디지털 C 프린트_110×165cm_2016

MSG(Measure of Sensory Guilt) : 감각적 유죄의 잣대 ● 과연 욕쟁이 할머니는 MSG를 넣을까 안 넣을까? 우리가 기억하는 고향의 맛, 어머니의 손맛도 어쩌면 MSG의 맛이 아닐까? MSG의 유죄를 선언하는 이영돈 PD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먹는 먹거리에 마구 뿌리기에는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반면 "MSG친다"라는 유행어를 따르는 화려한 담론의 생산자들에게 MSG는 무죄이다. 그러나 너무 많이 MSG를 치게 되면, 이야기 전체가 거짓으로 보인다. 태생적으로 가상(假像)을 생산해내야 하는 예술도 MSG의 전략을 어디까지 어떻게 취할 것인지 같은 문제에 봉착해 있다. ● 윤현선의 사진은 감각의 과잉 상태까지 몰고 간다. 그는 시리얼, 아이스크림, 팬케잌 등을 켜켜이 쌓아 거대한 매트릭스를 이룬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이 바벨탑들에 양념처럼 흩뿌려져 있는 사람들은 오로지 본능에 충실하고 있다. 외모를 과시하고, 스포츠에 열광하고, 성(性)에 탐닉하는 다양한 욕망의 군상이다. 그러나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아슬아슬 매달려 있는 주위 사람에 대한 관심 하나 없이 자신의 욕구 충족에만 몰두하는 모습이 나와 닮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정정엽_마을-고들빼기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3
정정엽_미산리 양파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6
유비호_Euphoric Drive 황홀한 드라이브_애니메이션_00:05:00(loop)_2008
유비호_「MSG : 20세기 신화의 탄생」_영상설치_2016 * 참조이미지 : 1977년 미원광고(모델 영화배우 홍세미)

MSG(Mistrials for Sensible Generation) : 양식 있는 시대를 위한 무효판결 ● MSG의 가치 판단이 무효(Mistrial)인 것처럼, 감성의 차이를 존중하는 예술에 대한 심판도 미결정 상태로 남아 있다. 좋은 취향(bon goût)에 어울리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것의 구별이 사라진다. 감각이 로고스에 의해 계산되고 해석되던 시대, 사회적 이성이 의미를 부여한 것들만 예술의 대상으로 여기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 시대는 의미 없는 것들, 아주 작은 것들, 일상적인 것들이 예술의 대상이 되며, 그러므로 삶과 필연적 연관성, 즉 정치성을 갖는다. ● 정정엽이 직접 키우고 화폭에 담은 다양한 모양의 가지, 냉이, 달래, 양파 등은 작은 생명들과 공생(共生), 상생(相生)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오롯이 담고 있다. 기괴하게 뒤틀린 형상의 가지들이나, 지렁이가 기어 다니고 나방이 날아다니는 공간을 유영하는 나물들은 우리의 입맛(goût)을 돋구진 않는다. 그러나 그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은 제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생명의 솔직한 단면이다. 이것을 바라보는 우리는 혀끝으로 느껴지는 맛이 아닌, 온 몸으로 감각하는 향취(goût)를 맡는다. 유비호의 「황홀한 드라이브」는 그 누구의 방해도 속박도 없이, 내 마음대로 속도를 조절하며 미지의 세계로 달려가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그러나 양옆으로 지나가는 대기업의 광고표지판, 획일화된 아파트의 모습은 자본의 권력이 우리가 가는 길의 방향을 은밀하게 조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MSG: 20세기 신화의 탄생」은 매체가 광고를 통해 어떻게 여성의 이미지를 정형화하고, 맛을 보편화하는지 그 과정을 되짚어보고 있다. ● 그러나 우리는 자본과 미디어가 강요하는 권력에 그대로 끌려가지 않는다. 랑시에르(J. Rancière)가 말했듯이, 변화 가능성에 대한 의지는 지식에 의한 앎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적인 것의 나눔에서 촉발된다. 가치중립적이거나 딜레마에 빠져 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과 감각적인 것들을 어떻게 함께 나눌 것인가? 만약 합의 또는 일치(consensus)에 이르려 노력한다면 실패할 것이다. 오히려 타인의 맛과 취향을 배려하고, 사회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모순이라는 불일치(dissensus)를 인정하며 새로운 분배 방식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MSG: 맛의 정치학』展의 5명의 작가들도 지금 이 시대의 서로 다른 지점에서 저만의 감성혁명을 시작하고 있다. 이들의 감성혁명에 동참하여 감각적인 것들을 나눌 때, 맛의 미학은 맛의 정치학이 될 것이다. ■ 한의정

Vol.20160805e | MSG : 맛의 정치학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