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Earth

임영선展 / LIMYOUNGSUN / 林英宣 / painting   2016_0805 ▶︎ 2016_0831

임영선_세월호_캔버스에 유채_260×194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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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805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인디프레스_서울 INDIPRESS 서울 종로구 효자로 31(통의동7-25번지) 경복궁 서쪽 영추문 건너편 blog.daum.net/indipress

삶의 토템, 풍경, 대지 : 임영선의 작품에 대하여 ●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세계의 오지마을에 사는 아이들의 모습을 대형 캔버스에 기념비적인 규모로, 그러나 세밀하고 따스한 터치로 그려온 작가 임영선이 이번 전시에 들고 나온 새로운 작업들은 광화문을 그린 연작이다. 뒤집어진 배와 바다가 그려진 어느 정도 직접적인 작품도 있지만, 나머지는 광화문 이외에는 거의 확인 가능한 형상이 없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배가 그려진 작품을 먼저 보지 않았더라도, 어렵지 않게, 그 앞 광장 앞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냈던 수많은 사람들, 세월호 유족들을 떠올리게 된다.

임영선_Tibet Himalaya_캔버스에 유채_260×194cm_2016
임영선_Tibet himalaya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16
임영선_Tibet Himalaya_캔버스에 유채_91×72.5cm_2016

아이들을 그린 붓질의 부드러움과는 대조적으로, 화면을 뒤덮듯이 거칠게 흘러내린 물감들, 비나 먼지처럼 덮이고 깎인 덩어리들의 흔적이 강조된다. 이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작가는 먼 이국 땅에서 순수함의 장소를 찾는 대신 지금 이곳으로 돌아온 것일까?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광화문 연작과 아이들 연작 사이에는 분명한 연속성이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먼 곳에서 이곳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이곳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존재와 광화문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임영선_Nepal_캔버스에 유채_91×72.5cm_2016
임영선_Tibet Himalaya_91×72.5cm_2016
임영선_Nepal_캔버스에 유채_91×72.5cm_2016

광화문은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논쟁의 장에 등장했던 상징적 존재이지만, 직접적인 표현은 (한 작품을 제외하고는) 삭제되어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가 묘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사건의 말없는 증인으로서의 광화문이 갖는 '거기 있음'의 존재감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방금 전까지 문 앞에 누웠던 사람들의 흔적인 양 화면 아래에 흩어져 있는 청회색의 물감뭉치들, 바닷물처럼 묘사된 푸른 흐름들...그러나 그 혼돈의 와중에도, 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듯 총총하다. 이 별이 빛나는 밤하늘의 이미지는 아이들을 그린 작품들 속에서도 발견된다.

임영선_Tibet Himalaya_캔버스에 유채_116.5×90cm_2016
임영선_Tibet Himalaya_캔버스에 유채_259×182cm_2013
임영선_The sky and the earth_194×260cm_2008

아이들의 튼 살이나 남루한 옷,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굳이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아도 세계를 긍정하는 하나의 장소, 토대가 된다. 그것은 물론 시간을 초월한 형이상학적 토대가 아니다. 일시적이고 바스라지기 쉽지만, 우리 존재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정서적 지지대, 말하자면 일종의 토템 같은 것이다. 대형 캔버스에 수직적으로 그려져 있지만 아이들의 초상화들이 기념비적이고 영웅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먼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들의 얼굴은 수평적으로 펼쳐져 있다. 아이들의 얼굴은 풍경과 겹쳐져 있으며, 그 자체가 풍경으로 변한다. '대지'로서의 풍경, 그리고 얼굴. 토템으로서의 캔버스. 이 현대의 주술과 같은 공간들은 광화문의 텍스처와 형상 속에서 다시 한번 반향된다. ■ 조선령

Vol.20160805i | 임영선展 / LIMYOUNGSUN / 林英宣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