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김종영미술관 KIM CHONG YUNG SCULPTUER MUSEUM 서울 종로구 평창동32길 30 신관 사미루 Tel. +82.2.3217.6484 www.kimchongyung.com
김종영미술관은 일생을 미술교육에 헌신한 김종영 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2009년부터 매년 3인의 청년작가를 선정하여 『창작지원 작가전』을 개최하고 있다. 올 해는 강우영, 정성윤, 최고은 세 작가가 독립된 공간에서 개인전을 개최한다. 각기 다른 주제로 선보이는 이번 세 작가의 전시는 현대 한국 현대조각사의 젊은 현위치를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김종영미술관에서의 전시를 통해 이 젊은 작가들이 앞으로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강우영 ● LOST 강우영 작가는 전시장 천장에 매달은 반투명한 셔츠들에 수화로 무엇인가 말하고 있는 손만 보여주는 동영상을 투사하고 바닥에 구부러진 대형 대못을 설치한 「LOST」라는 제목의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그녀는 작품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관객과 더불어 되새겨 보고자 한다. 강우영 작가는 이번 전시에 『Lost』라는 제목의 작품을 선보인다. Lost라 하면 형용사로 '길을 잃은', '잃어버린', '분실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편 'lost memory'는 '기억을 잃어버리다'라는 의미이다. 그녀는 전시장에 여러 장의 셔츠를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넓은 면적에 겹쳐서 매달았다. 매달린 셔츠들은 모두 관객을 등졌으며, 셔츠는 속이 비친다. 그런 셔츠들 위로 동영상이 투사된다. 셔츠가 속이 비치는 관계로 동영상은 겹겹이 매달린 셔츠를 통과하여 셔츠의 겹만큼 상이 맺히게 된다. 투사된 동영상은 수화手話이다. 그러나 동영상에서는 수화로 대화를 나눌 때 의미전달의 큰 몫을 하는 발화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손만 보인다. 수화 발화자는 "1월부터 12월까지, 매일 새벽부터 빛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숨소리부터 아우성까지, 안개로부터 검은 도로까지, 어디에 있었습니까? 기억과 망각사이 어디쯤 서있습니까?"라고 관객, 아니 관객들에게 등 돌리고 허공에 매달린 유령 같은 존재들에게 묻고 있다. 강우영은 이 문장을 단어나 구절 단위로 해체시켜, 일부는 누락시키고, 일부는 반복하고, 전체 순서를 뒤섞어서 의미전달이 되지 않는 수화로 편집하였다. 한편 전시장 바닥에는 약 120cm정도의 대형 못이 있다. 아현동 재개발지역의 빈 집에서 그녀가 수거한 녹슬고 구부러진 못을 확대한 것이다.
정성윤 ● 사소한 위협 Minor threat 『사소한 위협』이라는 전시타이틀로 세 개의 거대한 삼각형이 상하로 떨고 있는 「Shapes」라는 키네틱 작업을 선보인다. 「Shapes」는 삼각형의 형태, 3이라는 숫자의 다양한 함의, 그리고 떨림이 내포하고 있는 양가적 의미가 결합되어 하나의 알레고리를 이루고 있다. 검은 색의 거대한 삼각형이 떨고 있다. 떪의 속도가 각기 다 다르다. 검은 색이기에 더욱 육중해 보인다. 삼각형이기에 모서리가 더욱 날카로워 보인다. 그들이 떨고 있다. 『Shapes』는 삼각형의 형태, 3이라는 숫자의 다양한 함의, 그리고 떨림이 내포하고 있는 양가적 의미가 결합되어 하나의 알레고리를 이루고 있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과거 정성윤의 '사적인 실패담'에서 출발한 작업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추상화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논리와 감성의 적절한 조화 속에 발생하는 아이러니는 시각적으로 기계장치에 의해 움직인다는 신기함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그의 작품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묘한 심리적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고은 ● TORSO 최고은 작가는 「토르소」라는 제목으로 가구들을 해체하고 재조립한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그녀는 "토르소가 머리, 팔, 다리를 생략하고 몸통으로만 미를 표현하는 전통적인 조각 방식인데, 일상사물을 해체 재조합 하는 작업을 하면서 나는 사물로 토르소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닌 가하는 생각이 든다. 네가 사용하는 일상사물 특히 가구들에 네 몸의 기억이 섞여 들어 있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최고은의 작업은 오브제라는 소재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내용과 형식면에서 지속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뒤샹 이후 오브제는 개념을 중시하는 작가들이 사용하였다. 물론 초현주의자들도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메레 오펜하임과 만 레이 같은 작가의 작품이 그렇다. 필자의 관점에서는 그녀가 오브제를 대하는 태도는 개념미술가들보다는 초현실주의자들의 태도에 좀 더 가깝지 않나 싶다. 그녀의 작업은 논리보다는 직관에 좀 더 많이 경도되어 있지 않은 가 싶다. 그녀도 "오브제를 좀 더 감각적으로 접근하고 싶다"는 바람을 표명한 바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최고은 작가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오브제들을 해체하고 재조립한 이번 전시의 제목을 『토르소』라 하였다. 논리적으로 그녀의 작업을 토르소와 연관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거 같다. 그녀의 설명에는 매우 주관적이고 급격한 비약이 있다. 하긴 그것이 시각예술의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공적인 장소로 옮겨 놓는 것이 전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시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작품을 통해 작가와 관객은 어떻게 공감대를 형성할 것 인가이다. 바꿔 말하면 소통의 문제이다. 지금 그녀는 '제시'와 '제작'의 경계에서 자신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어디로 갈 것인가? ■ 김종영미술관
Vol.20160806c | 2016 김종영미술관 창작지원작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