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는 밤

정철규展 / JUNGCHOULGUE / 鄭哲奎 / painting   2016_0808 ▶︎ 2016_0903 / 일,공휴일 휴관

정철규_도망가는 밤_캔버스에 유채_80×173cm_201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0907g | 정철규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사)서울영상위원회_서울시

관람시간 / 11:00am~08:00pm / 일,공휴일 휴관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 갤러리 미술동네 OHZEMIDONG GALLERY 서울 중구 퇴계로 지하 199 충무로역사내 Tel. +82.2.777.0421 www.ohzemidong.co.kr

나는 일기를 쓰지 않고, 편지를 쓰려한다. 일기는 자기 성찰의 글쓰기다. 자기를 성찰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기에서는 환영을 부숴 버릴 수 없다. 그래서 일기에서는 진실에 접근하기 힘들고 사건의 실체를 온전히 보여주기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편지를 쓰려한다. 꾹꾹 눌러쓴 편지에는 정성을 담아 진심을 전한다는 다소 낭만적 인상을 담을 수 있다. 그래서 일기보다 편지가 "고백"이라는 것을 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편지는 누군가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간직된다. 간직된 편지는 부쳐지지 않음으로써 과도한 가치를 부여받게 되고, 이러한 역설은 편지에 더 중요하고 더 진실한 내용이 담겨 있을 것 이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정철규_매일 가고 싶은 숲_캔버스에 유채_80×173cm_2016

양면적 모습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프로이트는 원초적 아버지의 신화에서 오이디푸스적 아버지의 두 형상을 제시한다고 했다. 아이의 욕망을 법에 종속시키는 아버지가 주체의 욕망을 규제하는 상징적 구조로서의 초자아라면, 절대적 힘으로 모든 여자와 부를 차지하는 폭력적이고 방탕한 아버지 또한 초자아의 기능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설적 초자아의 지배는 '도덕'이라는 가면을 챙겨들고 여론의 심판을 빌미로 삼아 사디즘적 충동을 표출하며 강박적으로 누리는 자들의 대중적 만연을 통해서 드러난다. 금지가 강해질수록, 금지마저 금지가 될수록, 우리는 욕망의 법을 따르지 못한 자아를 구속하고, 비난하는 초자아의 힘은 커져간다. 그래서 우리는 큰 소리로 웃고 즐기고 소리치며 얼마든지 잔혹하고 파괴적인 끔찍한 자가 될 수 있다. 아침이 될 때 까지만.

정철규_툭툭 몸서리치는데_캔버스에 유채_128.5×128.5cm_2016
정철규_들락날락_캔버스에 유채_33×24.5cm_2016

이름을 의심 받으면서 사는 자들,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자들이 모이는 밤. 그 밤은 불 꺼지지 않는다. 아니 불 꺼뜨리지 않기 위해 그토록 참았던 것들을 발산하려고 모여든다. 그들은 밤을 찾아 도망쳐 왔고, 도망쳐온 밤을 다시 도망가기 위해 함께 자리하고 있다. 그러다 밤이 도망가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다시 아침이 되는 것을 지연하려고 한다.

정철규_달을 가리려고_캔버스에 유채_15×15cm_2016

주류의 포장도로를 달리던 그들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를 묻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그들에게 무엇 일까?를 끊임없이 묻는 자임과 동시에 자신의 욕망에 도달하기 위해 동일화해야 할 주체의 위치를 잡지 못하는 '밤'속에 자리 잡은 자들이다. 그들 속에 내가 속해있고, 그래서 그들이 겪는, 혹은 내가 겪고 있는 모습을 담담하게 담아내려고 한다.

정철규_여덟명의 자기소개_캔버스에 유채_10×10cm×8_2016
정철규_이름을 지우고 모이는 자리_캔버스에 유채_162×336cm_2016

주류의 세계에서 가면이라는 필수품을 들고 울타리를 쳐야 숨 쉴 수 있었던 그대들이 속한 밤의 모습을 아름답게 보여주기 위해, 과도한 가치가 생겨버린 부치지 않았던 편지를 부치기 위해 도망가는 밤은 계속된다. ■ 정철규

Vol.20160808a | 정철규展 / JUNGCHOULGUE / 鄭哲奎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