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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타展 / Critical Hit / 致命打 / drawing   2016_0819 ▶︎ 2016_0830 / 8월23일 휴관

치명타_페이스북 드로잉-송경동님의 글과 노순택님의 글, 사진_종이에 수채, 콩테_42×30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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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819_금요일_06:30pm

* 오프닝 퍼포먼스

후원 / 충북문화재단_자계예술촌

관람시간 / 01:00pm~07:00pm / 8월23일 휴관

공간 해방 SPACE HAEBANG 서울 용산구 신흥로 80 B101 www.haebang.org

치명타-진심과 농담사이 ● 몇 년 전 우연히 내가 먼저 모르는 그녀에게 sns를 통해 친구신청을 했다. 정말 우연이었다. 치명타에게서 답신이 왔고 얼마 후 나를 찾아왔다. 알다시피 이건 거의 일어나지 않는 종류의 일이다. 당시 나는 부평 콜트공장에서 빈 공장을 점거하고 있었고 마당에서 일상을 보내는 해고 노동자들과 그럭저럭 좋은 시간을 보내며 예술을 하고 있었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치명타와 이야기를 나눴다. 치명타는 넉살좋게도 콜트콜텍 아저씨들의 저녁밥상에 끼어 저녁을 먹고 돌아갔다. 나는 치명타에 대한 몇 가지 단상을 가지게 되었다. 매우 의욕적인 사람이구나. 현장예술에 대한 어떤 이상한 환타지를 가지고 있나보다. 이러다 말겠지.

치명타_페이스북 드로잉- 흑표범님의 글과 오마이뉴스의 사진_종이에 수채, 콩테_42×30cm_2016
치명타_페이스북 드로잉- 방종운님의 글_종이에 수채, 콩테_30×42cm_2016
치명타_페이스북 드로잉- 청년유니온의 글과 알바노조의 사진_종이에 수채, 콩테_42×30cm_2016

이듬해, 그리고 또 이듬해 치명타는 계속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을 찾아왔다. 되려 나는 그 시간 농성장을 가끔 찾아가는 손님이 되고 있었고 치명타는 지속적으로 농성장에 찾아와 놀다 가는 식구가 되어 있었다. 치명타는 정말 의욕적이다. ● 작년부터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은 여의도로 농성장을 옮겼다. 손님 역할이 불편한 나는 「드로잉 데이」 라는 것을 만들어 매주 목요일에 농성장에서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이왕 이면' 이라는 생각에 sns에 광고를 내고 농성장으로 사람들을 초대했다. 포스팅에 '좋아요'는 많았으나 직접적인 답신은 없었고 '아마도 혼자 하게 되겠군' 이라고 생각했다.

치명타_페이스북 드로잉- 신유아님의 글과 사진_종이에 수채, 콩테_42×30cm_2016
치명타_페이스북 드로잉- 김경봉님의 글과 고동민님의 사진_종이에 수채, 콩테_42×30cm_2016

그러나 예의 그 의욕적인 치명타는 스케치북을 들고 나타났다. 그 다음 주에도 나타났고 그 다음주, 다음주,,,,, 치명타는 계속 스케치북을 들고 나타났다. 나는 그림을 그리다가도 슬며시 치명타를 관찰했다. 2,3개월은 해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 틈에서 홀로 집중해 그림을 그린다는 건 실상은 그리 쉽지 않다. 일종의 내공이 필요한 작업시간이다. 쉽게 피로해 지기도 하고, 그 피로감에 슬슬 재미가 없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부터는 발길이 끊긴다. 그러나 「우리가 같이 아는」 치명타는 정말 의욕적인 사람이어서 항상 목요일마다 나타났다. 치명타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오면 조금 늦은 시간에 도착하였는데, 항상 나와 아저씨들은 치명타가 오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치명타_페이스북 드로잉- 황경하님의 글_종이에 수채, 콩테_30×42cm_2016
치명타_여의도-로잉, 띄엄띄엄 알아_종이에 마카 색연필_26×18cm_2016

농성장 안은 나름 화기애애하고 수다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공간이었다. 어느 날, 농성천막 안에서 오렌지를 까먹으며 각자의 과거시절을 생각나는 대로 떠들고 있었는데 치명타가 깔깔 웃으며 우리의 말들을 스케치북에 드로잉 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치명타는. 아저씨들의 웃자고 하는 농담을, 한숨 같은 하소연을, 농담 섞인 핀잔을, 부끄럽게 드러낸 자존심을, 쓸쓸하고 고집스러운 침묵을, 그 흩어지는 말들을 종이에 그렸다. 치명타가 한권의 스케치북을 채웠을 때, 나는 진심과 농담 사이의 기록들을 보았다.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다른 이에게도 소중해 진다고 생각한다. ● 어느날 치명타가 나에게 20대를 어떻게 보냈냐고 물었다. 작가로 살기 위해 어떤 노력과 선택을 했는가 하는 질문이다. 잠시 생각해봤는데 별로 생각나는 게 없다. 단지 지금 치명타를 바라보며 감지하는 것은 20대의 그녀가 수많은 좌절과 불안속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해지고 싶어서 애써 담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치명타의 노력들을 응원한다. 의욕적이고도 의지적인 치명타다. ■ 전진경

치명타_여의도-로잉, 130_종이에 수채_26×18cm_2016
치명타_여의도-로잉, 좋을나이에 이험한곳에_종이에 오일파스텔_18×26cm_2016

페이스북에는 뉴스에서 다루지 않는 많은 사건들이 올라온다. 내가 레지던시 때문에 잠시 영동의 조용한 시골 마을에 내려와 좋은 공기를 마시고 노니는 동안 도시에서는 연일 크고 작은 사건들이 터졌다. 나는 뉴스 대신 페이스북을 통해서 중요한 사건들을 접할 수 있었고, 멀리 영동에서 이를 드로잉으로 기록했다. 매일 '페벗'들의 타임라인에서 그날을 대표하는 이슈를 발견하고 관련 기사를 리서치한 다음, 개인의 시선이 잘 묻어난 글을 선별했다. 그리고 웹에서 수집한 이미지들 중에서 어울릴만한 것을 골라 글과 한 화면에 재구성했다. 매일 이런 방식으로 타임라인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건들과 사람들의 목소리를 붙잡았다. 타자의 목소리가 와 닿기에는 바쁜 현실 속에서 처음엔 부채감으로 사람들의 목소리를 채집하기 시작했다. 끔찍하고 거대한 사건을 목격하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매일 드로잉 하면서, 그런 일이 다시 우리에게 일어나지 말라는 의미의 수행적 행위가 되어 갔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십여 점의 페이스북 드로잉과, 지난 3년간 현장에서 그린 콜트콜텍 여의도 농성장의 일상 풍경들을 선보인다. ■ 치명타

Vol.20160819d | 치명타展 / Critical Hit / 致命打 / 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