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Line 선(線)에서

박용선展 / PARKYONGSEON / 朴容宣 / drawing   2016_0825 ▶︎ 2016_0831

박용선_펜뜨개질 Pen Knitting_종이에 펜_89×58cm_201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대전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7:00pm

이공갤러리 IGONG GALLERY 대전시 중구 대흥로139번길 36(대흥동 183-4번지) Tel. +82.42.242.2020 igongart.co.kr

어떤 것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제각기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마음에 각인된 무엇이기도 할 것이고 풀지 못한 숙제 같은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 작가에게 하나의 세계만이 있다고 믿는 것만큼 당혹스러운 것도 없겠지만 매번 다른 세계가 펼쳐지리라고 믿는 것 또한 삶의 보편성을 간과한 오해가 아닐까 한다. ● 작가는 이른바 펜뜨개질 작업을 오랜 시간동안 해왔다. 그러는 동안 각기 다른 양태의 작업을 동시에 선보이곤 했는데 어떤 작업을 진행하든 작업실 한켠에는 누군가의 옷자락 같은 작업들이 연필이나 펜과 함께 놓여 있곤 했다. 그러므로 적어도 각기 다른 작업들의 선,후와 우,열은 작가에게는 무의미해 보이는듯하다. 그리고 그것을 외부에 펼쳐 보이는데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이것은 펜뜨개질 작업이 작가의 여타의 다른 작업과 비교해서 본질적으로 결이 다르다는 것을 감지하게 해준다. 무엇인가를 착상해내고 생각을 구조화시켜 다듬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는 무던히 그리는 행위의 기묘한 성실함에서 작업의 의미를 찾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그것은 마치 은밀한 수련(修練)과도 같아 보인다.

박용선_펜뜨개질 Pen knitting_종이에 펜_80×80cm_2013
박용선_펜뜨개질 Pen Kntting_종이에 펜_100×100cm_2012

초기의 펜뜨개질 작업은 말 그대로 실(絲)의 느낌을 갖는 무엇이었다. 작가는 감정의 미묘함에 주목한 듯 했는데 그것은 일면 지극히 개인사적 경험이나 정서에서 찾는 모종의 보편성 같은 것이었다. 어떤 감성적 상태가 작가에게 이미 있고 그것의 최적화된 방식으로서 표출된 드로잉에 가까웠다. 그러므로 당시의 작업은 지극히 서정적인 감정의 선들 예를 들면 연민, 부드러움, 포근함, 미련 같은 것들이 펜으로 뜬(그린) 스웨터와 함께 보여 졌다. 그리는 행위의 수고스러움보다는 그려진 것의 이른바 '느낌'이 화면을 지배하고 의미가 붙여졌다고 보인다. ● 그런데 펜뜨개질 초기작업의 보풀 같았던 연필선 들에서 언제부턴가 직물의 두툼함 대신 무심한 '수고'가 엿보이기 시작 했다. 감정이 사라진 듯 화면위의 옷가지 작업들은 마치 잘 직조된 제품 같다거나 직물성의 따스함을 벗어나 반복되는 선들의 집적(集積)처럼 보이기 시작 했다. 이는 작가의 감정과 감성의 자리에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아마도 작가의 내부에서 일어난 어떤 변화가 선(線)들에게서 정념을 지운듯한데 근래에 등장하는 연필선의 반복은 어떤 면에서는 나이테와 같아 보이기도 한다.

박용선_펜뜨개질-사이에 Pen knitting-Between_캔버스에 펜_100×100cm_2015
박용선_펜뜨개질-사이에 Pen knitting-Between_캔버스에 펜_100×100cm_2014
박용선_펜뜨개질 Pen knitting_캔버스에 펜_120×100cm_20160825b
박용선_펜뜨개질-사이에 Pen knitting-Between_캔버스에 펜_120×100cm_2014

작가는 오랜 기간 동안의 펜뜨개질 연작을 통해 일시적 감정의 상태를 벗어나 이미 다른 작업세계에 들어와 기거하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세계는 촘촘한 연필선 마냥 집요하고 깐깐하고 의미의 사족이 끼어들어갈 여지가 없어 보인다. 상념이나 정념의 작업이 일상을 만나 새로이 마주하는 세계는 일면 건조한 것이다.. 희비(喜悲)와 오호(惡好)가 없다. ● 그가 그리는 옷작업들이 감각을 벗어나 나무껍질이나 종이에 새기는 선들의 집적 같이 느껴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다시 말해 감정과 감성의 자리가 시간 속에서 성찰을 통해 다시 움트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작업이 기록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의식적인 기록 보다는 매일 매일 일어나는 행위의 무작위에 가깝다. 이는 작가의 다른 작업에서 분명하게 보이는 개념적이고 사변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는 다른 방식의 작업이고 삶이다. 어떤 것을 반복하는 것은 연습이고 단련이다. 하물며 오래 지속되는 행위는 결국 어딘가에 깊은 결 하나를 남기기 마련이다. 어떤 이는 이것을 '습'(習) 이라 부르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이는 '성'(誠)이라 부르기도 한다. 나는 작가의 다른 작업들을 미루어 보건데 마땅히 이것을 '성'(省)이라 생각 한다. 작가 스스로 고백하듯 「여타의 작업에 묻혀 변변히 살피지 못한」 펜뜨개질 작업을 비로소 펼쳐 보임은 아마도 자신의 작업과 그 의미를 다시 성찰하기 위함일 것이다. ● 자신의 작업들은 자기 자신의 걸음을 증명해주는 거울 같은 것이다. 무심한 듯 선의 반복이 계속될수록, 외형이 실재의 모습에 가까워질수록, 작업 속의 옷가지들이 더는 옷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작가는 진즉에 행위의 세계에 들어와 있으며 여기서 자신의 날들을 기록하고 증명한다고 본다. 이것은 그림보다는 선들의 연속된 움직임이고 긴 시간을 보아야 할 어떤 나이테라는 생각을 한다. ■ 이강욱

박용선_펜뜨개질-배려 Pen knitting-consideration_캔버스에 펜_120×200cm_2015
박용선_펜뜨개질-배려 Pen knitting-consideration_캔버스에 펜_120×200cm_2015
박용선_펜뜨개질-禪에서 Pen knitting-In Zen_캔버스에 펜_175×175cm_2016

If a thing lasts long, there will be reasons for it. It may be something imprinted in mind, or an assignment unsolved. Indeed, it would be embarrassing, if one should believe that an artist has only one world in him or her, but it also would be a myth far from universality of life, if one should expect to see an artist display another world every time. ● The author has been pen knitting for a long time. In the meantime, other modes of works were also presented at the same time, but always at the side of a workroom were laid works like the train of someone's garment with pencils or pens. So at least to the author, working order or merits and demerits of the works, it seems, do not matter. And the author has not been enthusiastic in presenting pen knitting works before the public, and this makes us perceive that the author's pen knittng works are essentially different in their disposition from other works. It seems more reasonable to find out the works' significance from queer sincerity in drawing endlessly rather than from conceiving things and concentrating his mind on trimming it by structuring ideas. It seems, as it were, like secret discipline. ● His earlier pen knitting works were, literally, what had a texture like threads. The author seemed to focus on delicacy of feeling, and it was a kind of universality seeking from experiences or emotions gone through in extremely private personal history. It seemed like a drawing that showed, in an optimized manner, a certain sensitivity which had already been in the author. So the works at that time showed extremely lyric lines of feelings, such as compassion, tenderness, coziness, lingering attachment, with pen-knitted (or drawn) sweaters. What prevailed the canvas was not the effort of drawing but the feeling seen from the drawn objects, and there were meanings attached to those feelings. ● However, since God knows when, casual 'toil', instead of thickness of textiles, has begun to gleam from pencil-drawn lines which looked like naps in earlier works. As if the author lost emotions, works of clothes on the canvass began to look like well-woven products, or clusters of repeating lines without warm texture. This may be a sign showing another world spreading in the author's emotion and sensitivity. Certain change in author's inside may erase his sentiments from lines, and repeating pencil-drawn lines in more recent works, in a sense, look like growth rings. ● Through a series of works by pen knitwork over time, the author seems to have taken off whim and have already been dwelling in another world of creation, and the world is so pertinacious and fastidious like closely-drawn pencil lines that there seems no room for redundancy of meanings. Prima facie arid is a new world faced when works of conceptions or passions are combined with things in one's daily routine. No joy and sorrow, and love and hate. in it. ● It is no coincidence that his works of clothes feel like clusters of lines inscribed on bark or paper beyond feeling. To be more specific, the place for emotion and sensitivity began to sprout again over time through introspection. So now the works feel like records. But not conscious recording, but close to indifference to daily activities. This is quite different mode of working and living, and far from conceptual and speculative mode obviously seen from his other works. ● Repeating something is at once an exercise and a discipline. Moreover, long-lasting activities will leave a deep trace somewhere. Some call it learning, and some call it devotion. Considering the author's other works, I think it more proper to call it devotion. Though, as the author himself confessed, the pen knitting works have not been appropriately attended due to other works, the reason for displaying them may be to introspect his own working and its meaning again. ● The works are mirrors reflecting one's own walking in life. As lines casually repeats, as appearance approaches reality, clothes in the works do not look like clothes, and it is a natural result. The author has already entered a world of activities, and, I think, here he testifies and records his past days. This is, I think, successive movements of lines rather than a picture, and growth rings to see for long. ■ Kang-Wook Lee

Vol.20160825b | 박용선展 / PARKYONGSEON / 朴容宣 / 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