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 대한 사진의 몇가지 입장 Not architectural photo but photographic architecture

더텍사스프로젝트 廢館展 4부   2016_0827 ▶︎ 2016_0831

초대일시 / 2016_0827_토요일_04:00pm

참여작가 김성윤_김천수_김정회_박시찬 박찬민_신선주_장명근_조문희_현홍

관람시간 / 01:00pm~06:00pm

더텍사스프로젝트 THE TEXASPROJECT 서울 성북구 동소문로42나길 26-16(하월곡동 88–290번지) www.facebook.com/thetexasproject2013

작품의 배후는 늘 불온하고 불안하다. 작가의 학력과 이력과 명성과 가족력과 인맥과 이론과 평론과 유행이 항상 그 배경에 있다. 보드리야르가 『예술의 음모』에서 거론했듯 예술은 예술계의 회로안에서만 존재하며 그 양상은 사실상 공모이며 음모이다. 작품은 허약하기 짝이 없어서, 그 작업 자체로만 보여지기 힘들다. 결과, 대중은 좋은 작업을 보기 원하는 것이 아니라 유명한 작업을 보길 원한다. 대부분의 예술애호가나 컬렉터 역시 마찬가지다. 소장의 가치는 유명세에 영향을 받는다. 작가들은 어떨까? 남의 언어뒤에 비겁하게 숨어서 안위하고 있지 않나 스스로 반문해 봐야 한다. 도록의 유명 평론가의 작품 해석으로 마치 자기 작업의 가치가 상승하고 의미가 귀결된다는 착각은 하고 있지 않은가? 일종의 상승작용을 내심 원하고 있지는 않은가? 작업이 자기언어가 아닌 남의 언어에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작가는 실로 자기 평론의 글을 이해는 하고나 있는 것인가? 작가는 자기 작업을 담보로 너무 많은 양의 전당을 요구하고, 평단는 너무 후하게 보증을 서주며, 기관은 장부를 조작하고, 저널과 전시공간은 돈을 세는 재미에 빠져있다. 지난 3년간의 더텍사스프로젝트의 전시들은 작가와 관객과 평단과 저널에 대한 일종의 실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작가는 주목받지 못하는 이 열악한 공간에서 자신의 작품을 아무런 포장없이 민낯으로 관객에게 보여줘야 했고, 대중은 생전 처음 와봤을수도 있는 사창가로 작품을 보러 와야 했으며, 평론과 저널은 뭔가 다른 틀을 만들어 설명하느냐 좀 귀찮았을 수도 있었겠다. 뮤지엄도 좋고, 갤러리도 좋고. 대안공간도 좋다. 허나 이미 있는 것는 것들에 대한 권위와 진부와 답보에 대한 반응과 대응이 예술의 주요 태도라면 이 공간에서의 전시들은 더욱 좋다. 훌륭한 예술은 어느 곳에서든 존재한다. 아름다운 꽃은 꼭 화단에서만 피는 것은 아니다. 폐관하는 순간까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린다.

더텍사스프로젝트 페관 릴레이 4번째 전시는 『건축에 대한 사진의 몇가지 입장』이다. 단순히 건축사진을 만들어 놓고 건축사진이 아니라고 우기는 건 넌센스다. 건축사진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작업이 건축사진인지 아니면 다른 접근인지 구분 못하는 것이 문제다. 건축가들이 재료 건축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사진작가들은 시각 건축을 하는 사람들이다. 물리적 재료를 시각적 구성으로 전환해야하고, 자기 이야기로 마감을 해야한다. 그리고 완성된 사진안에서 감상의 동선을 만들어 낼줄 알아야 한다. 대상을 사진으로 변환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촬영을 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성과 전달에 있어 나름 개인들의 감각 플레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쉬운 것이 아니다. 그간 건축에 대한 다양한 작업들이 있어 왔다. 작가들이 대상(건축)과 어떠한 관계식을 설정하고 있는지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접근해 왔는지, 한번 모아봤다. 최소한 이곳에 있는 작가들은 건축사진이 아니라 사진건축이다. 작가노트를 잘 읽어주시길 바란다. ■ 현홍

김성윤_무제_알루미늄 전사_75×50cm_2016

오랜 역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통념을 탈피해온 건축의 결과물을 촬영하는 일은 정작 작가주의를 침범하지 않는 경직된 배려행위가 되기 쉽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냉정히 말해 여느 분야와 마찬가지로'건축'은 관심사가 아니다. 나는 철저히 주관적인 관람자의 입장에서 관념적 경계와 구조의 해체를 통해 왜 보는 것인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사고의 자유를 지향할 뿐이다. ■ 김성윤

김정회_Light in the Night-11_디지털 C 프린트_67×100cm_2013

'빛'이란 무엇일까? 또한 '빛'에서 생성되는 정신적 의미는 무엇일까? 빛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개념이 변화했다. 보통 사물을 비출 때의 현상을 지각하는 것으로서의 질료적인 차원의 빛과는 달리, 예술에서 빛은 단순한 자연적 현상 이상의 것으로 표현되었다. 즉, 자연을 초월하여 작가의 정신세계를 나타내 주는 도구이며 우리의 내면을 비추어 주는 것으로서 오늘날 예술가들에게 정신세계를 창조하게 하는 대상이 되어왔다. 「어둠 속의 빛 Light In The Night」의 작업은 작가가 유년 시절 기억하는 도시에서 나오는 빛의 풍경을 회상하며 이루어졌다. 이는 본인의 기억 속에 있는 희미한 기억을 좇는 과정이며, 그 기억을 이미지로 재현시키는 작업이었다. 본인의 작품에서 도시풍경에서 나타나는 건축물과 인공의 빛의 조화는 과거로의 회귀이자, 기억의 연장을 가능하게 해준다. 작품에서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빛은 또 다른 언어이며, 그것은 곧 작가의 정신을 나타내준다. ■ 김정회

김천수_Untitled_잉크젯 프린트에 먹선_가변크기_2016

김천수는 카메라 또는 그것을 이용한 재현 기술과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의 공통점, 그 중에서도 취약성, 불완전성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드러내고자 한다. 이 번 작업에서는 건축사진에서 보여지는 수직 수평선에 대한 강박을 건설현장에서 사용하는 먹선을 이용하여 보여주고자 하였다. ■ 김천수

박시찬_Untitled 2_잉크젯 프린트_63×100cm_2007

공간이라는 궁극적 의미 속에 삶과 관련된 요소들이 배제된 특수한 사회적 목적을 지닌 미술관, 공항 등... 빈 공간, 그 속에 내제된 초월적인 욕망과 권력 지배적 의미를 표현하고자 했다. ■ 박시찬

박찬민_BL214367780127020327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50×64cm_2014

「Blocks」에서는 현대적 주거 공간의 대표적 형태로 자리잡은 아파트 혹은 tower-block과 같은 공동주거형태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공동주거형태를 단순하게 표현하여 형태와 표면적 구조의 강조에 중점을 두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공간이 창고나 컨테이너와 같은 공간과 과연 무엇이 다른 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지금의 공동 주거 형태는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규격화된 제품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렇게 표준화된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도 그것과 같은 제품의 일부와 무엇이 다른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한편 이렇게 단순화된 공간 속에서 우리 도시인들의 관계는 분리되고 단절된 것처럼 느껴진다. ■ 박찬민

신선주_Cathedral of St.John the Divine_ 코닥 캔버스에 울트라크롬 피그먼트, 아크릴채색, 오일파스텔_200×300cm_2015

화면을 거의 덮은 블랙의 공간. 한자에서의 검을 "흑'이 아니라 검을 '현'의 의미를 구현한다. 검을 현{會意字} 玄은 위 부분[入(입)]은 '덮는다'는 의미이고, 아래 부분[幺(요)]은 '작고 그윽이 멀고 깊다'는 의미로 둘이 결합하여 '그윽이 컴컴하고 멀어서 미칠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그윽이 멀다'는 뜻... Black, Gray, White로 세 덩어리로 나누어 그 구성적 긴장과 조망으로 그 곳의 빛과 어둠, 그리고, 듣고 느꼈던 소리와 공기까지 끌어당긴다. 정면으로 관통한다. 각 각의 작품대상과 작가는 관계성을 가진다. 맞닥뜨려진 Architectural대상을 그래서, 이질적이고 친절하지 못한... 블랙화면에 상채기를 내는 긴 작업기간동안 친밀해지려 한다. 감각하고 지각하고 인식하는 과정에서 노스텔지어가 공존하는 시공간의 재현으로 관계를 만들려 한다. ■ 신선주

장명근_26_라이트젯 C 프린트_76×114cm_2005

나는 사회라는 커다란 조직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일상의 미묘한 감정들을 주제로 한다. 형태가 분명치 않은 감정들을 주제로 정하면서 스스로도 매우 당황스럽다. 잠시만 고개를 돌려도 금세 사라져 버리는 회색 빛그림자. 그래서 나는 인식의 경계를 지나 미묘한 삶의 감정들이 내게 형태를 내보이던 그 순간들에 더욱 집착한다. 나는 한 건물의 유리를 통해 반사되는 구름을 보았다. 유리의 표면은 내가 서있 는 장소의 공간을 반사한다. 그리고 유리창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공간도 함께 보인다. 안과 밖 모든 것이 하나의 표면 위에 존재하고 있었다. 유리를 통해 반사 되는 구름이 있고 내 등 뒤로 존재하는 구름이 있다. 안과 밖에 위치한 사람들의 모습이 함께 뒤섞이면서 누가 어디에 있는지 구별이 힘들다. 이 모든 것이 현기증을 일으킨다. ■ 장명근

조문희_코너_피그먼트 프린트_15×17cm_2016

작업은 이미지의 소통이고, 그것을 둘러싼 환경과 사회의 물리적 상태를 보여준다. 나는 이미지와그것을 인지하는 물리적 상태를 보여준다. 나의 작업은 지워지거나 오려내는 방법 등을 통해 이미지들이 해체되고, 본질이 없어져버린 모호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작업은 시각적으로 대상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해체를 통해 인식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과정이다. 그로써 대상은 본래의 모습과는 다르게 만들어져 실재와 다른 결과를 갖고 온다. 허구가 되어버린 실재의 장소나 이미지들은 공허한 감성을 오히려 뚜렷하게 상기시키는 과정에 있다. ■ 조문희

현홍_목격자 02_잉크젯 프린트_가변크기_2016

TO SEE – TO LOOK AT – TO DESIGN         l              l     CAMERA         IDEA 현홍

Vol.20160827g | 건축에 대한 사진의 몇가지 입장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