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두사의 사랑

안춘희展 / ANCHOONHEE / 安春姬 / painting   2016_0826 ▶︎ 2016_0901 / 월요일 휴관

안춘희_Love of Medusa(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16.7×91cm_2016

초대일시 / 2016_0826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0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뮤온 예술공간 Muon gallery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 418 203호 artmuon.blog.me

2012년 이후 아홉번째에서 이번 열네번째 개인전까지 안춘희 작가의 최근작들은 모두 '메두사의 사랑'이라는 일관된 제목을 달고 있다. 『메두사의 사랑』은 순수한 회화의 표면이 어떤 심원한 내면세계를 제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연작이다. 오로지 회화성으로 승부하는 작업으로서 『메두사의 사랑』은 전적으로 표면 효과에 방점이 놓여 있다. 『메두사의 사랑』의 표면 효과는 그 전의 구상적 작업들과는 차원을 달리한 것으로서 외부 풍경으로 향했던 눈을 내부로 돌리며 보다 본격적으로 화업에 파고드는 것이고, 그러면서도 의도 즉 지향성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한국 앵포르멜 회화의 우연성에 대한 오랜 천착에 잇닿아 있으며, 또한 아크릴과 유화를 주 재료로 사용하고 있지만 제작 방식은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에 비견될 수 있다. 무엇이 표현될지 작가자신 모른채 '우연에 의지하기도 하며' 과정을 겪어가는 가운데 기다리며 그려가는 것이다. 초현실주의에서 그러했듯 이때 우연은 그저 우연은 아니어서 그 효과에 있어 일종의 '객관적 우연(objective chance)'과 같은 무엇을 가져오며, 임계적 공간(liminal space)에로 관객을 인도한다. 작가는 자신이 무엇을 그려갈지 선험적 도식을 갖지 않고서 오로지 미적 직관에 의지해 그려나간다. 마치 시인들에게 자신이 알지 못하는 외국어처럼 미지의 시어가 떠오르듯 작업은 천천히 형상화된다. 빈 캔버스를 마주하여 아크릴 물감을 섞고, 붓고, 바르고, 숨결을 불어넣고, 다른 색을 방울방울 떨어뜨리고 가늘고 옅고 미세한 결의 번짐을 확인하고, 가장자리에 자연 그자체가 만들어낸듯한 불꽃같은 파문을 찬찬히 기다린다.

안춘희_Love of Medusa(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16.7×91cm_2016

그것은 사물의 물성(物性)에 근본적으로 다가가며, 구체적으로 실체화되어가는 작업과 마주하며 대상 사이와 공간과 살을 섞어 자기자신의 몸을 직조해가는 현상학적 체험이다. 사물 자체(큰사물das Ding)에 우리는 다가갈 수 없다. 실재의 핵심, 우리가 영원히 상실한 주이상스(jouissance), 큰사물(la Chose) 그 자체와 우리는 몸을 섞을 수 없다. 그건 죽음의 다른 이름에 다름 아니니까. 다만 그걸 대체하는 다른 사물들, 캔버스와 물감과 같은 질료들이 있다. 안춘희는 그와 같은 다른 사물들에 접촉해가며 자신만의 '비밀의 숲'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내면의 광막한 바다, 불꽃의 심연, 미지의 불확정적 공간이 열리고, 또한 미지의 형상들이 태어난다. 그 형상들은 비정형적인 것이며 언어 이전의 것이다. 제목으로 '메두사'가 붙여진 것처럼 그것은 뱀의 형상을 닮기는 했지만 뱀이라고 심지어 동물적인 것이라고도 단정지어 말할 수 없는 비결정적인 무엇이다.

안춘희_Love of Medusa(3)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16

이 시리즈로의 분기점이 된 자그마한 작업 「Love of Medusa (10)」에서 그것은 심해 해초를 연상시키는 식물 형상으로부터 태어났고, 식물과 동물, 무기물과 유기물, 동물과 광물, 반쯤 살아있는 것과 반쯤 죽어있는 것 사이를 오간다. 때문에 '메두사'라는 이름을 부여받았고, 유화로 제작된 최근작에서 보이듯 그 일부는 꿈틀거리는듯한 패턴의 조각이 되었다. 이와 같은 패턴은 최근 김남시 교수가 「광기, 예술, 글쓰기」(2016)에서 해제했듯 프린츠혼의 형상화 충동(Gestaltungsdrang), 꾸밈충동(Schmucktrieb)과 모방충동(Nachahmungstreib)과 같은 개념에 의해 이해될 수 있다. 꾸밈충동은 생겨난 시각적 형상화 유형을 장식과 치장 두가지로 구분하는데, 주어진 표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분할하여 생겨나는 규칙성이 장식이라면, 벽지에서 볼 수 있듯 무한히 큰 표면에서 잘라낸 부분이 반복되는 패턴의 질서가 치장이다. 모방충동이 불러내는 모사경향은 질서화 경향과 대립하는 것으로, 내면에 떠오른 직관상(Anachauungsbild)을 그대로 보는 사람에게도 파악되게 하려는 경향이다. 이때 모사란 어디까지나 내적 심상에 관한 것이며, 외부에 존재하는 실제 대상을 충실히 모사하려는 욕구와는 무관하다.

안춘희_Love of Medusa(4)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16

메두사의 시선은 잘 알려져 있듯 본래 '얼어붙게(freezing)' 한다. 그 눈을 마주치는 사람을 얼어붙게 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춘희의 작업은 역설적으로 차라리 '용융점(melting spot)'이라 할만하다. 푸르른 깊은 바다와 검푸른 심연이 겹쳐진듯한 메두사의 사랑이 있고, 톡톡한 질감의 핑크빛 캔버스가 있으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황금빛 감도는 화염의 거대한 난초형태의 메두사의 사랑이다. 소용돌이치는 꼭대기에는 활화산처럼 마그마가 분출되고 있다. 동남아 어느 섬의 값진 고목을 절단한듯한 혹은 녹아 흐르는 표면은 이글거리는 거대한 난초같기도 하다. 용융점, 발연점, 생장점, 과학자들이 말하는 '기이한 끌개'..어떤 사물의 상태가 근본적으로 변화되는 카오스적 역동의 장소.

안춘희_Love of Medusa(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7×91cm_2016

「메두사의 사랑」연작들은 크게 네 범주로 분류된다. 정조대를 모티프로 한 작업들, 동식물적 요소의 연작, 적과 흑의 연작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모두를 아우르는 가장 큰 특성은 관능이다. 가장 성숙한 여성의 관능. 작가 자신, 가장 큰 주제는 '사랑'이라 술회한 바 있다.

안춘희_Love of Medusa(6)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5cm_2016

이 연작은 시작 지점에서는 초기의 풍경화적 구상 작업들의 흔적을 갖고 있다. 「Love of Medusa (10)」상단에 남아 있는 황토빛 갈색으로 칠해진 나무판 조각은 말하자면 그 잔여이다. 정조대 모티프는 이 연작의 초기에 출현했다가 곧 사라지는데, 정조대로 상징되는 '금지'가 장애물로서 기능한다기보다는 충동의 불가능한 실재적 대상 '사물'의 출현이란 오히려 금지를 매개로 한다는 역설적 진실을 드러내보인다. 법과 금지가 욕망을 매개하는 것이다.

안춘희_Love of Medusa(7)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72.5cm_2014

안춘희 작가는 뛰어난 댄서이기도 하다. 한때 작가들은 퍼포먼스를 그림과 일치시키고자 한 적도 있지만, 그림은 춤과는 그 어법이 사뭇 다른 세계이기도 하다. 철학자 알랭 바디우(Alain Badiou)의 말로는 춤을 추거나 영화를 볼 때 이념이 지나가거나 혹은 이념이 우리 몸을 관통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가장 강한 긴장이자 밀도이다. 작가들조차 자신이 지나온 세계를 온전히 가질 수 없지만, 춤은 춤을 추는 이의 몸과 분리될 수 없는 무엇이다. 내 눈은 그 말을 들은 이후 내내 그림으로부터 그가 추는 춤의 리듬과 패턴을 찾고 있었다.

안춘희_Love of Medusa(8)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91cm_2013

안 작가는 가장 큰 화두는 사랑이라 말했지만, 그 사랑은 분신처럼 고독과 깊이 맺어져 있다. 그러면서도 춤의 준비 동작처럼 바른 자세로 스스로를 가다듬는다. 때문에 '천년의 고독'은 지금까지도 은은히 이어지는 일관된 주제가 아닐까 싶다. 고독은 사랑의 배면인 것이다. 메두사의 사랑의 주 모티프인 정조대와 함께, 또한 그가 2015년 참여했던 그룹전 『화양연화(花樣年畵)』(인천, 가온 갤러리) 그대로의 간절한 사랑이 바로 그가 펼치는 몸짓이다. 작가의 말은 이러하다.

안춘희_Love of Medusa(9)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1.5×53cm_2012

"사랑은 생명을 기르는 달콤한 이슬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를 한 단계씩 성장시킨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말이다. 그림은 그 성장 과정중 나타날 수 있는 감정들을 표현한 것이다. (...)"

안춘희_Love of Medusa(10)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2×41cm_2012

메두사는 너무 아름다웠기에 신들의 분노를 사 괴물이 되고 만다. 그 메두사가 사랑하면 어떤 무엇일까? 바라보는 자마다 '얼어붙게 하여(freezing)' 돌로 만들어버리는? 아마 스스로 시선을 거두고 머리카락을 스스로 자르리. ■ 최정은

Vol.20160827j | 안춘희展 / ANCHOONHEE / 安春姬 / painting